151호 > 특집
그때도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여성운동의 역사에 비춰본 대한민국의 오늘
등록일 2018.10.25 13:41l최종 업데이트 2018.10.29 12:50l 여동준 기자(yeodj@snu.ac.kr)

조회 수:380

  이제 ‘반성폭력’은 너무나 일상적인 말이 되었고 마초들은 자신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는 여성운동진영에 공공연하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나타내게 되었다.’ 
- 서울대학교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 8호 中 (2003).


사진1.JPG
서울대학교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 8호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을 통해 누구나 들어봤을 ‘잠재적 가해자’라는 단어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글에서 정확히 동일한 용법으로 사용된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이 남성인 누군가에게 위협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미투 운동은 이러한 위협이 그저 상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임을 드러냈다.

  반면, “이제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퀄리즘이 맞다”,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로 고통받고 있다”는 목소리는 여성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며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지위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앙을 검증하듯 “너 페미니스트야?”라고 물으며 주홍글씨를 새기기 바쁜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펜스룰’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이 시대의 여성억압이 실현되는 형태다. “꼴페미는 믿고 거른다”며 페미니즘을 위협하고 ‘탈코르셋’을 조롱하며 여성억압을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을 비웃는 것은 문제 해결로 나아가지 못하고 감정적인 대응만 남은 현실을 드러낸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을 떠올린다면 과거를 통해 현실을 헤쳐 나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성운동의 어제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고민했다.


지금의 ‘여성혐오’, 90년대의 ‘성폭력’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책임연구원 홍찬숙(사회학과) 교수는 80년대에도 여성의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90년대 이전의 여성운동은 민주화 운동에서 분리된 형태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의 여성운동은 가장 큰 정치적 의제였던 민주화를 달성하고 난 뒤에야 독립적으로 첫 발을 뗄수 있었다. 그녀는 “80년대에는 가정폭력이나 성매매 등을 문제시 하는데 그쳤다면, 9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젠더권력 차원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90년대 여성운동은 성폭력을 ‘정조에 관한 죄’로 규정하는 등 젠더의식이 낮은 기존의 법체계 개선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동시에 여성운동은 법적으로는 처벌받지 않는 수준이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일상의 성폭력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익명을 요청한 여성학자 A교수는 “지금의 ‘여성혐오’가 사회적인 유행어로서 불평등한 젠더권력의 표지어로 쓰이고 있다면, 90년대에는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홍찬숙 교수는 “IMF 이전까지 호황을 누리던 대한민국 경제 상황에서는 여성의 지위 상승이 남성의 가부장적 의식에 위협을 주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 즉 성폭력은 혐오가 아니라 약자를 향한 지배의 방식으로 실현됐기 때문에 성폭력과 여성혐오는 구분돼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1996년, 400여명의 고려대 학교 학생이 남성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대동제에서 여학생의 팔을 부러뜨리거나 훼방을 놓기 위해 떼를 지어 기차놀이를 하는 등의 난동을 부린 것은 당시의 여성억압이 성폭력의 형태로 실현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한 일화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누구보다 평등을 지향한다고 표방하는 운동권 내부에서도 자행됐다. A교수는 “조직을 지켜야 한다는 보위논리 때문에 운동조직 내의 부조리는 문제제기되는 것이 금기시됐다”며 운동권 내부가 성폭력의 온상이 됐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1994년 전국지하철노조 파업 당시 연대투쟁을 하던 자신의 후배가 노조 간부의 도주를 돕던 중 해당 간부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A교수는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했는데도 조직을 지키기 위해 침묵할 수 밖에 없어 죄책감이 들었고 참담했다고 말했다. ”왜 조직 내에서 여성만 컵을 닦느냐”며 단체가 갖고 있던 컵을 모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깼던 ‘컵깨기 퍼포먼스’와, 운동권 내의 성폭력 가해자명단을 실명 공개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100인위)의 활동은 조직 내부의 부조리를 밝히고 고쳐나가려는 시도였다. A교수는 “운동권 여성의 평등에 대한 의식이 다른 집단의 여성에 비해 강했기 때문에, 그나마 부조리를 포착하고 고발하는 시도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조직 내 성폭력에 대한 내부고발이 뒤늦게라도 진행된 이유다.

  90년대의 진보와 개혁에 앞장선 운동권 사회가 성평등의 차원에서 발전이 더뎠던 것과는 달리 사회 전반적으로는 페미니즘이 마땅히 지향할 가치라는 합의가 있었다. A교수는 90년대를 “사회가 얼마나 평등하고 민주적인지를 평가하는 가늠좌로서 페미니즘이 수용된 시기”라고 분석했다. 성평등을 적극적인 실천으로 옮기지 않던 남성들도 페미니즘이 옳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홍찬숙 교수는 “당시 대중에게 페미니즘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해 여성을 억압하는 형태의 대응은 거의 없었고, 급격히 서구화 되는 것에 놀라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A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공지영으로 대표되는 여성작가들이 출판 등의 문화 분야에서 페미니즘의 관점을 가진 채로 자리할 수 있었다”며 90년대 페미니즘 문학이 발달할 수 있던 것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진보하는 사회, 발전하는 여성억압

  2000년대 들어, 여성운동은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낸다. 2001년에는 군 가산점으로 대표되는 군복무 보상의 폐지를, 2005년에는 대표적인 남성 중심적인 사회제도인 호주제의 폐지를 이끌어냈다. 정계나 학계에 진출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사법고시를 비롯한 각종 시험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증가하는 등 여성의 제도권 진입이 활발해지던 시기이기도 하다. 대학가에서의 흐름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가 여성운동가들은 90년대의 끊임없는 반성폭력 운동으로 반성폭력 학칙을 제정하고 학내 성폭력 상담소 설치에 성공하는 등 변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긍정적인 상황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여성계에 새로운 숙제를 던졌다. 2000년대 이후, 온라인에서 여성을 향한 공격이 시작됐다. 2001년, 부산대학교 페미 니즘 웹진 <월장>이 예비역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작성하자 남성들이 <월장>의 구성원에게 집단적으로 성적 폭언, 신상털이, 인신공격을 행한 ‘월장 사태’가 대표적인 예시다. A교수는 월장 사태는 “온라인에서 여성을 향한 공격이 세력화 된 형태로 나타난 최초의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기존에는 논객과 같은 소수의 사람이 행동하고 다수가 침묵하는 형태였다면, 이때부턴 다수의 사람이 집단을 형성해 공격하는 형태로 변했다는 것이다.


사진3.JPG
▲'그래서요 깔깔깔' 사태 당시 논란이 된 장면. KBS1에서 제작한 '길종섭의 쟁점토론' 2000년 1월 13일분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보관 중이다.


  집단화에 익명성이 더해져 여성혐오는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2000년, <KBS>에서 진행된 군가산점제 폐지를 주제로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남성 방청객의 ‘저도 총 대신 책을 잡고 싶었습니다’는 발언을 여성 패널이 ‘그래서요?’라며 비웃고 무시했다는 악의적인 편집으로 해당 여성 패널이 인터넷에서 몰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일명 ‘그래서요 깔깔깔’ 사건의 당사자인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김신명숙 객원연구원은 “인터넷 공간에서 여성을 공격하기 위해 편집된 자료들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진실로서 받아들여졌다”며 인터넷의 익명성이 여성혐오를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홍찬숙 교수는 “인터넷 도입 초창기에 남성이 여성에 비해 인터넷 문화에 보다 빠르게 적응했고, 특정할 수 없는 상대의 여성혐오는 여성으로 하여금 추상적인 남성 집단에 대한 공포를 갖게 만들었 다”고 설명했다. 화자가 구별되고 특정되는 오프라인에 비해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에서는 극단적이고 대응할 수 없는 공격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성운동 내부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여성운동이 제도적 측면에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었으나, 법과 제도의 개선이 인식의 변화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았다. 홍찬숙 교수는 “제도 도입에 앞장섰던 세대는 제도 도입이 종착역이 아니고 사회에 제도가 정착이 돼 학습될 때까지 더 노력해야 함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제도 이후의 세대는 그런 의식이 부족했다”며 제도화 이후 여성운동이 느슨해진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여성운동의 성과를 무너뜨리는 제도적인 움직임도 존재했다. 2010년 3월 19일, 여성부는 여성가족부로 명칭이 바뀌었고 보건복지가족부의 가족기능을 이관 받는 변화를 겪었다.홍찬숙 교수는 “기존의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육아 문제 등을 여성과 연관된 문제로 규정해 여성가족부에서 함께 다루게 됐다”며 당시의 부처개편이 시대역행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녀는 “개편 이후, 여성가족부에서 한식의 세계화가 핵심 의제로 다뤄지고, 식품영양학 교수가 장관으로 임명됐다”며 여성이 보육, 음식의 문제를 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성차별적 인식이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모습을 바꿔오며 존재해 온 젠더 권력관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여성억압의 맥락과 모습 또한 변했지만 그 기저에는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가 존재해왔다. 홍찬숙 교수는 90년대에 대해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가 일상에서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나 오히려 문제제기가 (지금보다) 덜 된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권력관계가 확고하게 학습돼 문제임을 인식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이다. 남성이 여성 위에 군림하는 가부장적인 관계가 사회의 지배적인 분위기였고, 실제로 남성은 여성의 지위 상승에도 불구하고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의 여성억압은 약자에 대한 지배의 형태로 나타났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급변한 사회구조 속에서 공고하던 남성의 가부장적 지위는 위태로워졌다. 김신명숙 연구원은 “남성성의 대표적인 성격 중 하나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인데, 이것이 도전을 받았다”고 말했다. 홍찬숙 교수는 “IMF 이후, 직장을 잃은 남성의 분노가 아랫사람에서 경쟁상 대로 지위가 상승한 약자인 여성에게 향했다”며 경제위기가 가져온 사회의 변화가 남성을 압박해 여성에 대한 억압을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는 해소되지 않았다. 홍찬숙 교수는 “우리나라의 조직문화는 군대문화와 흡사한 형태로, 남성 위주의 문화적인 관습이 굳어져 온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표준화’된 문화가 남성 중심적이라고 해석했다. 김신명숙 연구원은 “이런 사회에서 여성은 생존을 위해 남성성을 학습함과 동시에 여성성을 잃지 않아야 하는 부담에 시달렸다”며 여성이 이중 부담을 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 여성이 집안일과 경제활동을 동시에 수행해내야 하는 ‘슈퍼맘’ 현상을 여성의 이중부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로 들었다. A교수는 “이제는 성평등한 사회라는 말은 남성화된 표준을 마치 젠더중립적인 척 기만하려는 시도”라며 여전히 성별간 권력 관계는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적인 억압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탈코르셋’ 운동이 주로 여성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은 성별 권력관계가 존재 한다는 또 다른 증거다. 김신명숙 연구원은 “여성과 남성이 모두 사회적으로 압박을 받지만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여성뿐이며, 이는 남성이 사회적인 압박으로부터 권력을 획득 하고 있음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지하고 있다는 뜻” 이라고 해석했다. 홍찬숙 교수도 “여전히 취업 분야, 임금 수준 등 다양한 차원에서 유리천장은 존재한다”며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는 의견에 힘을 실었다.

 
반복되는 여성억압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지난 지방선거에서 신지예 서울시장후보는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걸었다는 이유로 포스터를 훼손당했다. 페미니즘 도서를 읽었다고 인증한 연예인에 대한 악성 여론이 형성되는 것도 익숙한 일이다. 갈등은 첨예하고 해결은 요원해 보이는 지금, 우리는 지난 여성운동의 흐름에서 어떤 교훈을 찾을 수 있을까.

  김신명숙 연구원은 어떤 남성이 여성혐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요 깔깔깔’ 사건 당시에 30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결과, 고소 대상 중 사회적으로 약자인 남성들이 다수였다”며 남성 내의 권력관계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남성일수록 혐오감정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이야기했다. 김신명숙 연구원은 남성의 지위 불안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직결되는 만큼 여성운동이 사회 전체적인 복지 문제의 해결과 함께 진행돼야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운동이 선도적으로 의제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A교수는 과거의 100인위 사건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폐쇄적인 운동권 문화의 변화를 불러온 것을 예로 들며 “남성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모습에서, 문제를 공론화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몰래카메라 문제를 공론화 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혜화역 시위가 이상적인 형태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여성억압의 근원을 건드리지 않고 개별적인 현상만 다뤄서는 반복되는 고리를 끊어낼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홍찬숙 교수는 “여성이 취약한 계층인 것은 경제적인 지위가 낮기 때문”이라며 여성이 독립적인 생활 기반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어렵다면 여성억압은 계속될 것이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계속 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찬숙 교수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자신들의 요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뿐만 아니라 거리가 있어보여도 다양한 (차원의) 내용을 폭넓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남겼다.

  한국사회에서 독립적인 여성운동이 시작된 지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여성억압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다만 그 모습이 시대에 따라 변해왔을 뿐이다. 여성억압이 형태를 바꾸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은 과거에서 배운 교훈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를 인지하려 노력하고 해결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대학가에서 살아남기 - 페미니즘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