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호 > 특집
"그럼에도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지금, 대학의 여성혐오에 맞서는 사람들
등록일 2018.10.25 17:20l최종 업데이트 2018.10.26 17:23l 김선우 기자(natekim052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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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가 여성주의의 맥은 30년 이상 이어졌다.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위해 여성혐오적 문화에 맞서고, “이 정도면 평등한 것 아니냐”는 말을 넘어가며 현재에 다다랐다.

  그러나 대학가는 지금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않다. 캠퍼스는 여성인권이 사라진 카카오톡 채팅방을 고발한 자보로 가득하고, 성폭력을 막기 위한 성평등 교육은 희화화된다. 그러나 더 성평등한 대학을 위한 앞선 노력이 있었듯, 지금도 더 성평등한 대학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 깊은 여성주의를

  여성혐오가 강해지면서 그에 대응하는 여성주의의 노력도 심화됐다. 여성주의 활동가들은 강의실과 세미나실을 빌려 더 깊은 여성주의를 탐구하고자 모였다. 고려대에서 여성주의 학술활동을 주도한 사람들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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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여학생위원회의 집담회 포스터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5월 30일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여학위)는 권김현영 교수를 초청해 ‘여성주의 백래시’ 강연 및 집담회를 열었다. 강연 및 집담회의 배경에는 연세대 총여학생회(총여) 폐지 운동과 고려대 내 여성주의 소모임에 대한 공격 등 대학가 전반에서의 여성주의 탄압이 있었다. 고려대 여학위 안효원(경제학과) 위원은 “여성주의에 대한 무지나 비판을 넘어 거대한 흐름이 되고 있는 백래시에 맞서 학생사회의 대안을 찾고 담론을 조성하기 위해 집담회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집담회에서는 권김현영 교수가 대학 내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를 강연했다. 이어 집담회 참석자들이 여성주의자로서 대학에서 겪은 어려움을 공유했다. 학생사회의 대표자로서, 여성주의 활동가로서 안티페미니스트의 공격을 받은 경험을 나누고 서로를 다독였으며, 연대의 기반을 다졌다. 여학위는 해당 집담회뿐만 아니라 인권주간 참여, 연 1-2회의 강연 및 다큐 상영회 등을 통해 학내 여성주의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안효원 위원은 여성주의 학술활동의 의의가 현재 대학가의 권위적, 남성중심적 문화와 이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끊임없는 성폭력 사건의 배경에는 대학가의 남성중심적 술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 위원은 “술문화만이 아니라 (대학가의 문화에는) 나이, 학벌 등에 기반한 권위주의가 녹아 있다”고 덧붙이며 여성주의가 대학가 문화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권김현영 교수 역시 강연 중 대학 내 반성폭력 운동의 핵심이 “사건중심적 해결이 아니라 (대학가의) 문화를 바꿔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고 강조했다. 여성주의 학술활동은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를 지키는 공동체 문화를 만든다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광장으로 이어진 여성의 연대

  여성주의의 목소리는 강의실과 토론회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성주의를 담은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성균관대학교 위드유특별위원회’(위드유특위)는 지난 여름  ‘6.5 성균관대 백래시 박살대회, 결국엔 우리가 이긴다’를 열었다.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 캠퍼스 안에 여러 공동주최 단위들의 자보가 붙었고, 참석자들은 6월 5일 저녁 명륜캠퍼스 앞을 메웠다. 함수민(성균관대 사학과) 위드유특위 공동대표는 미투에 연대하는 자보를 철거하며 자보 부착과 같은 정치적 활동이 ‘학생에게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교당국에게 정치라는 이름으로 여성주의와 미투(#MeToo)의 목소리를 배척하지 말라고 외쳤다. 위드유특위는 더불어 백래시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단순한 문화로 수용하는 학생사회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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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성균관대 백래시 박살대회'에 등장한 피켓 ⓒ성균관대학교 위드유특별위원회


  위드유특위의 존재의의는 연대에 있다. 함수민 공동대표는 위드유특위가 남정숙 전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교수의 미투 1인 시위에 대한 지지에서 출발해 여성주의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라고 소개했다. 위드유특위는 ‘동덕여대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 ‘중앙대 K교수 권력형 성폭력 기록보관소’ 등 타 학교의 여성주의 단체와 함께 <프레시안>에 ‘당신을 위한 강의실은 없다’라는 연속기고를 보냈다. 성폭력 피해자의 폭로에도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사건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위드유특위를 비롯한 기고 담당 팀은 6월 28일 <프레시안>에 게재한 ‘강의실 미투 생존 보고서’를 통해 ‘침묵 혹은 폭로의 양분된 선택지를 고르게 하지 않기 위해’ 기고를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성폭력에 맞서는 싸움은 개별 대학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에 함께 침묵을 깨기로 선택한 것이다. 위드유특위는 그밖에도 ‘전국미투생존자연대’와 활발한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미투 운동을 선정적, 상업적으로 이용한 ‘미투-숨겨진 진실’ 상영반대 운동에 협력하고, 대학의 독립적인 인권센터를 요구하는 자보에 연명했다.

  여성 억압에 맞서는 성균관대학교에서의 움직임은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성성어디가)’의 총여학생회 재건 투쟁으로 힘을 얻었다. 총여학생회 재건 투쟁엔 성균관대 문과대 여학생위원회, 여성주의 소모임 ‘나은’과 같은 여러 여성주의 단체들이 함께했다. 많은 단과대 게시판에 “XX대에는 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자보가 붙었다. 연대한 단체들도 총여학생회 선거를 촉구하며 광장으로 나왔다. 여성주의 단체 ‘펭귄프로젝트’에서도 성균관대 총여학생회 폐지를 다룬 만화를 통해 사건의 공론화에 힘을 보탰다. 10월 8일 열린 총여 폐지투표 보이콧 선언 기자회견에는 초대 총여학생회장을 비롯한 이전의 학생대표자들이 찾아와 활동가들의 손을 잡았다. 직접 오지 못한 전 대표자 및 동문 47명은 지지서명을 발표해 도움을 줬다. 여성주의 단체들은 무력화되는 대학가의 총여학생회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혼자만의 싸움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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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여학생회 폐지투표 보이콧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이 현수막을 들고 있다.


  활동가들에게 여성주의를 내걸고 광장에 나온 이유를 물었다. 함수민 공동대표는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여성주의적인 공동체를 열망한다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답했다. 모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투(#MeToo)와 여성주의에 연대하길 포기한 학생사회와 학생의 정치적 활동을 억압하는 학교당국을 넘어서 공동체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노서영 활동가는 “대학이 하나의 공동체임을 환기하기 위해서도 정치와 토론이 필요하다”면서 “정치의 영역에서 쉽게 지워지는 성정치를 지키려면 입장을 내고 발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활동가들에게 광장에서의 성정치는 변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넘어온 산들, 넘을 수 있는 산들

  여성혐오에 맞선 운동은 역시 순탄치 않다. 노서영 활동가는 “(사람들이) 여성운동에는 유독 다른 운동에 비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여성운동 활동가들은 익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낙인찍기와 공공연한 자보 훼손을 비롯한 여러 압박에 시달린다.

  노서영 활동가는 “탈정치화된 학생사회에서 정치활동에 나서는 것이 낙인이 되는 순간 활동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학내에서 운동에 나선다는 것은 곧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활동하는 것이다. 노 활동가는 매일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의식하게 됐고 자연히 심적으로 위축됐다고 털어놨다. 함수민 공동대표는 “익명의 전화번호로 욕설 전화가 걸려오는 등 신변의 위협을 겪은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활동가들의 삶에 침투한 백래시의 위협은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줬다. 얼굴을 내놓고 활동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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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성균관대 백래시 박살대회'를 제안하는 대자보가 훼손된 모습 ⓒ성균관대학교 위드유특별위원회


  그럼에도 활동가들은 여성주의를 놓을 수 없었다. 고려대 여학위 안효원 위원은 “백래시는 여성주의가 ‘리부트’됐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5-16년을 전후하며 여성주의가 리부트되며 사회의 관심이 커짐에 따라 생긴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안 씨는 더 많은 페미니스트가 연대와 지지를 통해 백래시에 맞선다면 전보다 훨씬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보였다. 함수민 공동대표는 “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불편함이 발화되며, 사회가 규정한 조건들이 개인의 존엄을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학내에 여성주의 담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함 대표는 불편한 사람이 떠나는 공동체가 아니라, 불편함이 변화를 만드는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여성주의라고 주장했다.

  활동가들은 학생사회가 일종의 대안사회로서 사회의 성평등을 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여학위 김도운(철학과) 위원은 학생사회가 학외사회에 비판을 제기하는 역할을 오랜 시간 수행했다며 “사회에 만연한 여성차별·억압을 비롯한 차별과 폭력을 철폐하고자 하는 노력은 학생사회에 필요한 움직임”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대학가 여성운동이 교정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진보의 발판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여성주의 활동가들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기존 질서에 맞서고 있다. 노서영 활동가는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오랜 투쟁 끝에 이긴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전했다. 투쟁이 더 나은 대학과 사회를 만들었다는 확신으로 여성운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노 활동가는 “지금처럼 싸우면 언젠가는 나아지지 않을까. 진보를 담보할 수는 없지만 투쟁하는 자가 있어야 진보가 있다”고 말했다.

  지지자의 연대도 활동가에게 힘이 됐다. 위드유특위는 6.5 백래시 박살대회 선언문에서 “우리(여성주의자들)는 이미 오랜 역사 안에서 여성주의를 이야기하며 늘 함께 싸워왔다”며 여성주의가 연대 위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재정 활동가는 “참페미 소모임 활동 중 대자보가 훼손됐을 때, 타 대학 여성주의 동아리에서 많은 지지성명서를 받았다”며 대학 내 여성주의자들이 연대를 통해 동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여줬다.

  활동가들이 보기에 성평등한 공동체를 위해선 조직화된 힘이 필요하다. 김도운 위원은 “여성주의가 파편화된 개인의 목소리에 그치지 않고 울림을 갖기 위해선 개인에게 힘을 실어줄 단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직화는 여성주의자들의 공개적인 지지와 응원을 통해 이뤄진다. 이재정 활동가는 “흩어진 지지자들이 모여 여성주의 조직을 지원하고, 드러내놓고 응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대학의 여성주의는 수십 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탄압받아왔다. 지금의 여성주의 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여성주의의 잇따른 승리가 사회의 성평등을 견인했듯, 지금의 여성혐오와 백래시도 언젠가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었다. 지금의 여성운동이 더 평등한 대학가를 만들길 바라며, 오늘도 활동가들은 혐오에 맞서고 있다.


대학가에서 살아남기-페미니즘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