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호 > 특집
호스피스, 죽는 순간까지도 잘 살아가기 위하여 서울대학생호스피스모임의 호스피스봉사 동행 취재기
등록일 2018.10.25 23:39l최종 업데이트 2018.11.07 14:51l 유서희 기자(cow110358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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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삶의 마지막 순간을 고민할 시점이 오기 마련이지만, 의료인은 “남들보다 몇 배는 빠르고, 복잡하고, 격하게” 고민을 맞이한다. 일상에서 죽음을 떠올리기 어려운 보통 사람들보다 죽음을 접할 기회가 잦고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를 살리는 데 목적이 있는 일반 병원과 달리,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 호스피스는 죽음이 보다 일상적인 공간이다. 지난 9월 27일, ‘서울대학생호스피스모임’(서울대학생호스피스)의 정기봉사에 동행해 서울대학교 암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를 찾았다.



호스피스 의료진이 말하는 호스피스


  서울대학교 병원(서울대병원)은 현재 호스피스 병동을 갖춘 호스피스완화의료전문기관은 아니다. 완화의료는 치료가 완전히 불가능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호스피스의료뿐만 아니라 치료가 진행중이지만 완치가 어려운 환자까지 포괄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다. 서울대병원은 보건복지부 호스피스완화의료 시범사업기간이었던 2007년부터 2012년까지는 전문기관으로 지정됐으나, 보건복지부가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환자를 말기암 환자로 제한하면서 호스피스 지정 대상병원에서 빠지게 됐다. 보건복지부의 제한조건이 말기암 환자 외에 만성 폐쇄성 폐질환자 등도 호스피스완화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서울대병원의 뜻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서울대병원은 일반병동에 있는 환자를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자문형 호스피스를 운영 중이다. 가정형, 소아청소년 호스피스도 시범사업 중에 있다.


  서울대병원의 호스피스는 1991년 ‘진행암, 말기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교육과 상담(등불)’ 모임에서 첫발을 디뎠다. 등불은 종양내과 허대식 교수의 주도로 약사, 영양사, 사회복지사 등이 모인 곳이다. 치료할 수 없는 환자는 결국 죽게 되므로 환자의 신체·심리적 고통과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도 병을 낫게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료인의 역할이라는 문제의식에서였다. 당시 한국사회는 의료계에마저 호스피스가 생소했기 때문에 등불은 호스피스에 대한 교육만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담당 홍진의 간호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해 2007년 서울대병원으로 오게 됐다. 그는 서울대병원으로 오기 전 일반병동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수많은 임종 환자를 마주하며 무기력함을 느꼈다. 일반병동에서 의료진이 말기암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홍 간호사는 “맛있는 것 많이 먹고 3개월 뒤에 다시 보자”는 식이었다며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모르핀 주사만 놓아줄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서울대병원이 완화의료전문기관으로 선정된 후에도 등불은 연구 및 의료활동을 이어갔지만, 병원에서는 따로 인력을 마련해주지 않았다. 이후 허대식 교수가 자비를 털어 상근간호사를 두면서 호스피스 의료를 시작했고 2012년에는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가 마련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홍진의 간호사의 하루는 그날 찾아갈환자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루어 활동하는 자문형 호스피스팀에 속해있는 홍 간호사는 일주일에 한 번 회의를 통해 환자들의 돌봄에 관한 사항들을 결정한다. 호스피스 대상 입원·외래 환자들에 대한 상담과 미술치료, 편지쓰기 등 각종 행사나 교육을 준비하는 것도 홍 간호사의 일이다. 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는 특정 종교와 무관하지만, 환자와 가족이 종교적 의식을 요청할 경우 연계를 주선하기도 한다.


  홍진의 간호사에게 호스피스는 “진정한 삶을 완성하는 공간”이다. 그의 말처럼, 호스피스는 죽음이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받아들이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삶을 정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호스피스가 원활히 운영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홍 간호사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의료진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서울대병원의 호스피스 담당 간호사는 홍 간호사를 포함하여 2명뿐이고, 담당의사는 없으며 겸임으로 지정된 의사 5명이 전부다.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호스피스 운영의 큰 장애물이다. 홍 간호사는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일수록 환자 본인도, 가족도 호스피스·연명의료를 말로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환자들이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부정하거나 마지막까지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암으로 사망한 환자 중 호스피스를 이용한 환자는 15%를 넘지 않고 전체 임종환자를 대상으로 하면 비율은 훨씬 낮아진다. 호스피스를 선택했다가도 중간에 다시 치료를 고민하는 환자 역시 20-30%정도 존재한다. 홍 간호사는 “법제도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이 함께 변해야 호스피스 돌봄이 온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호스피스, 환자와 소통하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돌봄


  ‘서울대학생호스피스모임’(서울대학생호스피스)은 간호대학, 의과대학 학생들이 연합해 예비의료인으로서 호스피스를 ‘배우고 행하고 알리는’ 동아리다. 2014년 예비의료인에 대한 호스피스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됐고 작년부터는 동아리 차원의 봉사를 시작했다. 의료계에서 호스피스가 주류가 아닌 만큼, 서울대학생호스피스는 대학의 다른 의료봉사 동아리보다 소수 인원이다. 하지만 치료의 종착지는 궁극적으로 호스피스가 될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인이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서울대학생호스피스 배현지 회장은 1학년 전공수업 중 호스피스 담당간호사의 특강에서 호스피스를 처음 접한 뒤로 봉사를 시작했다. 배 회장은 호스피스 봉사를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수용하게 됐다”고 한다. 이들은 방학 중에는 주3회, 학기 중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호스피스 봉사를 위해 서울대병원을 찾는다.


  기자가 동행한 9월 27일은 봉사원들이 월정기봉사를 가는 날이었다. 오전 9시 30분, 서울대학교 암병원 3층 완화상담실은 환자들에게 제공할 과일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기자도 손길을 보태기 위해 손으로는 사과를 깎으며 녹음기를 켜놓고 입과 귀로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과일이 준비되자 짐을 챙겨 말기암 환자와 만성호흡기질환 환자가 모여있는 124병동으로 향했다. 서울대병원에서 호스피스 의료대상 환자들은 암병원 124병동에 모여있다. 124병동에는 호스피스의료를 받는 환자와 항암치료가 진행 중인 환자가 섞여 있는데, 말기암 환자가 대부분이고 만성호흡기질환 환자들도 일부 있다. 10시 40분 무렵, 병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홍진의 간호사와 서울대학생호스피스는 준비실에서 회의시간을 가졌다. 회의는 이달에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시작했다. 홍 간호사가 환자의 명단을 부르자 나머지는 눈을 감고 환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어 오늘 방문할 환자명단을 확인했다. 홍진의 간호사가 그중 전염성이 있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특이사항이 있는 환자를 설명했다. 접촉주의 환자는 호스피스 봉사대상에서 제외됐는데, 봉사자들의 안전뿐만 아니라 면역력이 약한 다른 환자들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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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환자에게 나눠줄 과일을 준비중이다. 

(아래) 학생호스피스들이 아로마손마사지를 연습하고 있다. ©정명훈 기자



  이날 호스피스봉사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과일과 차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여기에 평소보다 많은 총 7명의 봉사자가 모여 아로마손마사지가 추가됐다. 아로마손마사지는 마사지 자체보다 환자나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목적이다. 서울대학생호스피스 배현지 회장은 “처음에는 발마사지를 생각했으나, 손은 경계심이 가장 낮은 부위이며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촉진”되기 때문에 아로마손마사지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봉사자들은 “손이 참예쁘시네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는 말로 능숙하게 환자, 보호자들과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환자가 봉사자의 인사말에 응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당황한 기자와 달리 봉사자는 환자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길 소망하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로마손마사지는 손상 부위가 있거나 부종이 있는 환자는 받을 수 없는데, 이는 그때그때 환자의 상태를 보고 판단해야 했다. 그러나 환자가 원할 경우에는 환자에게 해를 가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마사지를 진행했다. 호흡기에 꽂은 호스때문에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한 환자는 정성스러운 마사지에 입모양으로 “너무 고맙지. 천사들 땡큐”라며 인사를 전했다. 그의 보호자는 “사람을 너무 그리워해. 신이 났네. 그렇게 좋을까”라며 마스크를 쓴 채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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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보호자에게 선물할 시화를 고르고 있다.  ©정명훈 기자



  호스피스의 심리사회적 돌봄에서는 환자와 가족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중요하다. 따라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선물할 시화와 시를 고르는 것도 봉사자들의 중요한 임무였다. 봉사자들은 환자나 보호자가 원할 경우 시를 직접 낭송해주기도 했다. 남편이 암으로 입원한 지 한 달 반이 조금 넘은 아내는 삶의 동반자에 대한 마음을 그려낸 이수동 시인의 〈동행〉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암투병으로 상해버린 환자의 얼굴은 아내의 눈물 앞에서 더욱 어두워졌고 그는 눈을 감고 소리 없이 울었다. 환자의 아내는 “이렇게 찾아와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감사를 전했다. 환자와 그 가족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도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감정에 직면하도록 돕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의사를 전달하는 것조차 어렵거나 마음의 문이 닫힌 경우 등 모든 환자와 보호자가 호스피스 봉사자를 반기는 것도 아니었다. 봉사자들은 환자의 상태가 다양한 만큼 이를 눈치껏 파악해야 했다. 전문호스피스인력은 아니지만, 환자와 보호자에게 학생 호스피스는 단순한 봉사자가 아님을 실감했다. 호스피스의료의 목표가 환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인 만큼 환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우는 힘은 치료 그 이상의 의미였다.


  12시 30분을 넘겨 봉사는 끝이 났다. 뒷정리를 마친 서울대학생호스피스는 봉사소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죽는 순간까지도 잘 살아가는 것, 죽음 이후에 가족들이 그 과정을 겪어가는 것까지도 죽음의 과정”이라는 한 봉사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죽음 앞에 우리 모두 예외가 될 수 없다면, 죽음은 회피가 아닌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호스피스는 존엄한 죽음, 고귀한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호스피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잘 죽어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