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호 > 특집
불법촬영물 연대기 불법촬영은 언제, 어디서부터 있었나
등록일 2018.12.17 20:16l최종 업데이트 2018.12.18 14:59l 김지은 기자(kje19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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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언제부터 화장실 벽에 난 구멍을 메우고,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 의식적으로 다리를 가리기 시작했을까. 인기 연예인의 유출 영상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국산 몰카물’이 취향으로 인정되던 시기는 언제부터였을까. 일련의 불법촬영 범죄 사건들과 그에 따른 법 개정 논의, 규탄집회 등은 얼핏 최근의 현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법촬영 범죄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일찍 등장해 기술의 발달, 제도의 미비, 사람들의 묵인이라는 토양 위에서 조금씩 자라 왔다. 불법촬영이 범죄에서 산업으로 변해온 과정, 그리고 그에 우리 사회가 대응해 왔던 연대기를 짚어보자.


몰래카메라, 범죄가 되다

  1970년대부터 소위 ‘빨간 비디오’로 불리던 음란물은 세운상가 등 대규모 시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유통됐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박희원 연구원은 불법촬영 영상의 유통이 가정용 캠코더의 보급 이후 이러한 음란물에 섞여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불법촬영물을 칭할 때 자주 쓰이는 용어인 ‘몰래카메라’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1년부터 연예인 이경규가 진행했던 예능 프로그램에서였다. 당시 몰래카메라란 출연자를 속이는 프로그램 혹은 단체나 개인의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취재진이 현장을 몰래 촬영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1997년 신촌 그레이스백화점 화장실 카메라 설치 사건과 ‘빨간 마후라’ 비디오라고도 불리는 중고등학생 성관계 비디오 비동의 유포 사건 이후, ‘몰래카메라’, ‘도둑촬영’은 불법촬영물을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당시 두 사건을 성범죄로 인식했던 여성단체는 적극적으로 입장을 발표했고, 여론 역시 새로운 범죄에 충격을 받았다. 다음 해인 1998년 권영자 의원이 최초로 불법촬영 처벌에 대한 규정을 포함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로서 ‘제14조2(카메라등의이용촬영)’ 처벌 규정이 신설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영상을 찍은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며, 찍는 건 범죄지만 보는 건 큰 죄는 아니다’라는 식의 인식도 존재했다. 일부는 연예인 유출영상을 비밀스럽게 거래했고,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나 비디오 유출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등은 자극적이지만 흥미로운 뉴스가 됐다. DSO(디지털성범죄아웃)의 이한기 활동가는 “연예인 O양 비디오 사건이나 중고생 성관계 비디오 유포 사건을 보며 사람들은 영상 속의 여성을 피해자인 동시에 음란물의 주인공으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말은 인터넷 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시기다. 인터넷 네트워크가 기존의 PC통신 시스템을 대체했고, 인터넷 속도는 해마다 빨라졌다. 기술의 진보는 불법촬영물이 널리 퍼지는 데 기여했다. 비디오·CD의 형태로 공유되던 불법촬영 영상은 인터넷 파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자료 공유 및 보관이 용이한 웹하드와 P2P사이트는 음란물, 그리고 불법촬영물을 보다 빠르게 유포하기 위한 좋은 장소였다. 유통흔적을 확인하기 어려운 채팅 프로그램(버디버디), 토렌트와 같은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 등으로도 불법촬영 영상, 사진 등이 수없이 유통됐다. 그동안 휴대전화도 발전했다. 2002년경부터 휴대전화에 사진촬영 기능이 생기면서, 범죄 수법은 이전처럼 카메라를 특정 위치에 설치하는 방식이 아닌 휴대전화를 직접 대상에 가져다 대고 촬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휴대폰 카메라로 오피스텔, 공중화장실, 지하철 등에서 몰래 신체를 촬영하다 적발된 사례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불법촬영물, 산업이 되다

  처벌조항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2004년에는 애인 관계에 있었던 비동의유포 촬영물 피해자가 신고 이후 고소를 취하했음에도 가해자가 유죄를 선고받은 판결이 화제를 모았다. 영상을 유포하지 않았더라도 촬영 그 자체로 범죄임이 인정된 시점이었다. 2006년에는 성폭력처벌법에 유포에 관한 규정이 신설돼 불법촬영 영상을 내려 받고 재업로드 하는 사람들도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보다 넓은 범위의 처벌이 가능해졌지만, 법률 조항의 모호성은 강한 처벌을 어렵게 했다. 학원 여자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수년간 학생들의 영상을 촬영했던 학원 강사나, 약 7800건의 여성 다리 사진을 촬영한 남성, 여름철 해변에서 신체부위를 촬영하는 사람 등 관련 범죄가 꾸준히 보도됐지만, 해당 범죄가 처벌조항 내의 ‘성적 수치심과 음란성’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판결마다 상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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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아웃(DSO) 활동가들이 사무실에서 불법촬영 범죄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2010년 이후 등장한 스마트폰은 직접 찍은 촬영물을 쉽게 유포하고, 다른 촬영물도 쉽게 내려 받을 수 있는 도구로서 불법촬영물의 유통 가속화에 일조했다. 이와 함께 SNS라는 새로운 유통매체가 성장하며 트위터, 카페, 텀블러, 블로그 등을 통한 촬영물 소비가 증가했다. 유통 매체는 더욱 다양해졌고 규제는 그만큼 어려워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음란 게시물’을 불법촬영물 혹은 비동의유포 촬영물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간주하고, 웹하드와 SNS사이트를 비롯해 성매매·음란 게시물이 올라온 사이트에 매년 시정요구를 한다. 그 수치는 2014년 4만 9,737건에서 2016년 8만 1,898건으로 큰 폭 증가했는데, 이는 매년 수많은 유통매체가 생겨나고 있어 규제가 어려워진 현실을 보여준다. 심지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사이트의 경우 국내 사이트처럼 규제나 삭제 요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가 접속 차단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주소를 우회하면 쉽게 통과할 수 있어 무력화됐다. 불법촬영물의 온상이었던 소라넷의 경우 소위 리벤지 포르노라고 불리는 비동의유포 성관계 촬영물, 지인 모욕 등 수많은 형태의 성범죄 자료를 유통했지만, 서버를 계속 해외로 옮겼기 때문에 추적이 어려웠다.

 한편 파일노리, 위디스크 등의 웹하드 사이트는 서버가 국내에 있어 상대적으로 규제가 용이했다. 그러나 사이트 유저 및 관리자들은 시정명령을 받고 삭제한 후 제목만 바꿔 촬영물을 다시 올리고, 가짜 아이디를 만들며 유통을 이어나갔다. 이런 구조 속에서 불법촬영물 유통은 하나의 사업으로 변해갔다. 특히 2012년 한·미 FTA 시행 이후 불법촬영물이 웹하드 업체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가 되면서 이는 더욱 견고해졌다. 정부가 저작권이 있는 자료의 불법 유통을 금지하면서 웹하드 등록제를 시행해, 당시 웹하드에서 유통됐던 미국·일본 AV 및 포르노 영상이 대거 삭제되거나 저작권물로 인정받아 수익이 줄었던 것이다. 웹하드 업체는 저작권물을 변형 또는 우회해서 재업로드 하거나 저작권이 없는 성인영상 컨텐츠를 찾는 등 새로운 수입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내에서 제작된, 자연스러운 음란물’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요구가 맞물려 불법촬영물은 ‘국노, 유출, 신작’ 등의 키워드를 달고 널리 유통됐다.

  소비 및 재유포의 단계도 착실히 진행됐다. 100원 내외 금액으로 거래되던 ‘컨텐츠’는 보는 이에게는 ‘비용을 지불하고 시청할 권리를 얻었다’는 정당성을, 찍고 유통하는 이에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익을 제공하며 유통구조의 근절을 더욱 어렵게 했다. 특히 지속적으로 영상물을 게시해서 웹하드 업체의 수익에 큰 도움이 되는 일명 ‘헤비업로더’에 대해서는 업체의 특별한 관리가 이뤄졌다. 여기에 인터넷 상에서 개인정보가 담긴 영상물을 삭제해 주는 일명 ‘디지털 장의사’ 업체와의 유착이 더해졌다. 박희원 연구원은 “디지털 장의사업체는 영상 삭제를 원하는 이가 없다면 사업을 운영할 수 없다”며 고객 유치를 위해 불법촬영에 기생해야 하는 디지털 장의사 업체의 모순을 지적했다. 실제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게 영상을 삭제해준다는 명목으로 수 달 간 약 200-300만원을 받아 온 한 디지털 장의사 업체가 웹하드 사이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생산-소비-삭제-유통의 전 과정이 견고한 하나의 사업으로 굳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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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4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 신설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모습



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검찰청에 따르면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는 2007년 564건에서 2016년 5,249건으로 대폭 늘었으며, 현재까지도 꾸준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처벌은 범죄 발생 빈도와 관련 법 존재에 비해 지나치게 관대했다. 가해자 검거율은 97%였으나 기소율은 30% 정도였으며, 그 중에서도 실형 비율은 더욱 낮았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발표한 2011년~2016년 사이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서울지역 내 1심 양형 판결은 벌금형이 70% 이상이었으며 징역형 실형은 약 5%에 불과했다. 이는 피해자의 신고 동기를 약화할 뿐 아니라 범죄 예방 차원에서도 효과가 적기에 최근 일각에서는 범죄 처벌 강화 및 불법촬영물 유통 수익 몰수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불법촬영에 적용되는 법에도 문제가 있다. 현행법상 불법촬영물 생산 및 유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법)' 그리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가해자가 분명한 사건의 경우 성폭력처벌법으로, 불특정 다수이거나 특정이 어려울 경우에는 정보통신법과 명예훼손법을 적용해서 처벌한다. 그런데 성폭력처벌법의 경우 피해자가 피해 입증을 위한 채증에서 많은 부담을 감수해야 하고, 처벌기준인 ’성적 수치심’의 인정 범위가 좁아 여러 사례에 적용하기 어렵다. 정보통신법의 경우 해석범위는 상대적으로 넓으나 성폭력처벌법보다 처벌수위가 낮고, 무엇보다 ‘음란물 유포’ 항목을 적용하여 피해영상을 음란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박희원 연구원은 이 문제가 해당 법의 목적 차이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성폭력처벌법의 목적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라면, 정보통신법의 목적은 인터넷 환경을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소 부적절한 표현이 쓰였다”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되기 때문에, 대신 성폭력처벌법의 해석을 다양화하고 수사 과정에서의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에 근거해 법 개정 논의는 활발하게 이뤄져 왔다. 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국회에 발의된 불법촬영 범죄 관련 법안은 몰래카메라 사용 규제부터 처벌 강화까지 총 20개다. 그동안 이 법안들이 실제 개정안에 반영된 경우는 극히 적었으나 최근 디지털 성범죄 처벌강화 목소리가 커지자 실제 입법도 활기를 띠고 있다. 올해 3월 불법촬영물에 대한 국가의 삭제 지원 및 구상권 청구 관련 규정이 마련돼 시행 중에 있다. 스스로 찍은 영상을 타인이 유포하는 사례나 불법촬영물 이미지 형태를 재촬영하는 사례 등 이전에는 법망을 벗어났던 사례도 디지털 성범죄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추진 중이다. 이한기 활동가는 이런 법률 개정과 함께 기술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불법촬영물도 저작권물처럼 DNA 추출 필터링 방식을 도입해 보다 빠르게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개선 의지도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몰카, 리벤지 포르노 완전 근절’을 거듭 약속했으며, 2017년에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종합 대책’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 종합 대책은 촬영기기 규제부터 피해자 지원까지 단계별로 구성돼 있으며, 처벌 강화 외에도 영상 삭제, 법률 지원 및 상담 등의 피해 종합지원 방안을 담고 있다. 특히 종합 대책은 향후 입법 과정에서 영리목적 촬영물 유통의 경우 기존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하던 것을, 징역형으로만 처벌하고 기간도 7년 이하로 늘리는 등 대폭 강화하겠다고 명시했다. 지난 11월 23일 공중화장실 불법촬영기기 단속 의무화 법안이 시행됐으며, 같은 달 29일 불법촬영 징역형 및 벌금형 강화에 대한 개정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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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부터 2018년까지 주요 불법촬영 범죄 및 처벌법 개정 과정



  디지털 성범죄가 국가적 문제로 불거지고, 규제 및 처벌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가 많아지고 있으며,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국가 차원의 노력과 더불어 개인의 인식 역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박희원 연구원은 “처벌과 삭제는 범죄가 발생한 후의 문제이므로 아예 이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또 아무도 범죄물을 소비하지 않는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발달과 함께 시작된 범죄의 발생과 이에 따른 처벌의 개선과정, 이 긴 연대기는 불법촬영물을 아무도 찍지 않고 보지 않을 때 끝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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