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호 > 특집
경의선공유지가 꿈꾸는 제3의 공간 이분법적 토지개념으로부터 주거권 지켜내기
등록일 2019.02.25 16:19l최종 업데이트 2019.03.02 19:55l 김지은 기자(kje19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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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의중앙선 공덕역 1번 출구를 나오면 마주하게 되는 스카이라인. 밀도 높은 고층건물들 사이 어딘가 허전하게 빈 공간이 보인다. 경의선숲길로 불리는 장소다. 입구에 경의선공유지 26번째 자치구 선언문이라 쓰인 검은 안내판이 눈에 띄고, 더 걷다보면 간소한 건물에 각종 조형물과 텃밭 등이 옹기종기 모인 풍경이 펼쳐진다.

 

철도시설공단의 부지이지만 건설사의 개발지연으로 황량한 공터가 가던 이곳에 경의선공유지를 일군 사람들이 있다. ·공유지도 사유지도 아닌 제3의 공간을 지향하는 이들은 이곳을 서울의 스물여섯 번째 자치구로 선언하고, ‘경의선공유지 시민행동을 시작했다. 경의선공유지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며, 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공간일까. 경의선공유지에 터를 잡은 이들로부터 그 답을 찾아봤다.

 


기찻길에서 26번째 자치구가 되기까지

 

경의선공유지는 철도시설공단이 소유권을 갖는 공공 목적의 토지다. 이곳은 1906년부터 경의선 열차가 지나는 철길이었으나 용산에서 가좌에 이르는 구간이 지하로 개발되자 공터로 남게 됐다. 이후 철도시설공단과 서울시는 MOU를 통해 해당 지역의 역세권은 개발하고, 나머지 공간엔 숲길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경의선공유지는 개발구역으로 지정돼 2012년 이랜드가 철도시설공단과 사업추진협약을 체결했고, 이랜드공덕()라는 출자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개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1년 간 진척 없이 공터로 남아 있자 경의선공유지는 일탈행위가 일어나는 우범지대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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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공유지에는 광장, 텃밭, 공방 등 다양한 시설이 위치해 있다.

 


보다 못한 마포구 시민단체들이 이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경의선 포럼을 열고 대안을 모색했다. 이들은 당시 주목받던 개념인 사회적 경제에 착안해 시민 장터인 늘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늘장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며 3년차를 맞을 때쯤 이랜드공덕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개발을 시작해야 하니 나가라는 통보였다. 경의선 포럼에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생겨났다. 원래 이 땅은 사회적 공공성을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는데, 기업이 수주권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행동을 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경의선공유지가 공유지이든 사유지이든 그곳에 공공성은 없었다. 이로부터 시민들이 직접 계획하고 활용하는 공익적 자치공간을 조성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경의선공유지 시민행동(시민행동)’은 그렇게 생겨났다.

 

201611월 시민행동은 경의선공유지를 시민들이 운영하는 서울의 26번째 자치구로 선언했다. 국내에서 공유지와 공유경제 개념에 대한 인식이 겨우 싹트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약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지만, 여전히 시민행동에게 공유지(Commons)’라는 개념 전파는 힘든 과제다. 해외의 사례를 참고해서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시민행동의 박선영 사무국장은 초기에는 국내 사업에 참고하기 위해 해외에서 공유지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를 많이 찾았지만, 대부분 한국보다 소유권 개념이 유동적이고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이 발달돼 한국에 적용하기 어려웠다결국은 한국만의 새로운 공유지를 개척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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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공유지 입구에 있는 '경의선공유지 26번째 자치구 선언문'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곳

 

박선영 사무국장은 공유지가 도시의 완충제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은 인구, 시설 등 모든 면에서 밀도가 높기 때문에 공간에 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유지가 많지 않다. ·공유지라 하더라도 국가와 지자체가 배타적인 소유권과 운영권을 갖기 때문에 시민의 필요에 반응하기 어렵다. 강제철거, 재개발, 주거난민 등 토지 관련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이 민간과 국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해 갈 곳을 잃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결국 이들이 자유롭게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제3의 공간, 공유지(Commons)뿐이다. 공유지는 소유자가 없는 땅이 아니라 모두가 소유할 수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의선공유지는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주거문제를 겪은 이들과 함께했. 그 중 일부는 문제가 해결돼 공유지를 떠나기도 했다. 지금은 아현포차, 청계천 두꺼비 등의 점포를 비롯해, 청년 주거권 활동가 여러 예술가가 이곳에 남아 있다.

 

공유지는 땅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이분법적 토지개념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박선영 사무국장은 토지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대상이고, 그 가치를 지불하고 소유하는 자가 권리를 가진다는 인식을 젠트리피케이션·무분별한 재개발 등 주거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이런 인식 속에서 공간을 소유한 건물주와 자본을 가진 기업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해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의선공유지 개발권한을 가진 이랜드공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당 업체는 개발을 수년간 지연하면서도 공간 관리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박 사무국장은 이런 경우 사업자로부터 개발 권한을 회수하는 일몰 규제가 시행돼야 하지만, 이랜드와 철도시설공단이 체결한 계약에는 관련 규정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시민행동은 시민과 함께하는 지식커먼즈광장을 넘어 숲길로 시민커먼즈센터일시적 사용(점유) 및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경의선광장이라는 세 개의 기조를 마련해 활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유지 담론을 확대하고, 토지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되찾아 궁극적으로 토지 소유의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는 게 목적이다. 박선영 사무국장은 땅이 없는 사람은 계속해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없애고자 한다땅을 갖지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땅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향후 시민자산화와 토지공개념 법제화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에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실제로 주거권 문제를 겪은 사람에게 공유지는 적절한 대안일까. 현재 이곳에서 아현포차를 운영하고 있는 전영순, 조용분 씨는 원래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아현초등학교 옆 노점상 골목에서 약 25년간 가게를 운영했다. 이들이 사비를 들여 장사할 터를 다듬고, 여러 상인들과 함께 청과물, 주류 등을 팔며 상권을 형성했던 시간 동안 마포구는 노점상 시설 이용료 외에 어떤 것도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인근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자 상황이 바뀌었다. 포장마차는 유해업종이며, 주변 교통도 불편하게 만들기에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조 씨와 전 씨는 타협점을 찾고자 애썼다. 마포구 측에 업종을 변경해 영업하겠다고 제안했고, 가게를 철거할 테니 저금리 대출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20161월과 6월 두 차례에 거친 철거 명령이었다. 강제철거는 8월의 어느 새벽 집행됐다.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공간을 잃고 방황하던 그들에게 현재 시민행동 대표이자 당시 노동당 서울시 위원장이었던 김상철 씨가 경의선공유지에 다시 터를 잡고 영업할 것을 제안했다. 아현포차가 경의선공유지 식구가 된 후, 포차 단골손님과 시민 등으로 조직된 아현포차 지킴이는 시민행동 연대에 참여하며 아현포차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고 집회를 진행하는 등 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전 씨와 조 씨에게 아현포차는 생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고, 손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많은 추억을 쌓았던 곳이었다. 전 씨는 돈을 많이 버는지 여부를 떠나 경의선공유지에서 가게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젊은 손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그는 지금도 가게 안에서 어르신 모임 장소인 늘장마루를 운영하며 소통의 장을 만들고 있다.

 

이들에게 경의선공유지는 서로 연대하며 희망을 나누는 창구다. 강제철거 피해보상과 책임소재 규명 등 아직도 해결할 문제는 많이 남아있지만, 그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힘은 이곳에서의 생활이다. 전 씨와 조 씨는 아현포차 사장님으로서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공연과 전시를 준비하고, 대화를 나누며 문제에 다시 맞설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조 씨는 여기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여기서 더 소외된 환경의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며 공유지에서 연대의 소중함을 배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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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분 씨가 운영하는 아현포차의 모습



공유지는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경의선공유지에서도 현실적인 문제는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공간 사용 주체들 간 진행하는 반상회에서의 의견 차이다. 박선영 사무국장은 함께 쓰는 공간이니 수평적 운영을 하려 노력하지만, 오랜 시간 공간을 사용하며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조금씩 배타성이 생기게 된다며 내부적으로도 이상적 공유지와 현실 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의선공유지가 진정으로 시민들의 공공성을 대변하는가에 대한 지적도 많. 일부 시민들은 시민행동이 해당 부지에 대한 권한이 없음에도 비합법적인 점유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서울시, 철도시설공단, 이랜드공덕 등의 이해관계로 공유지의 처리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시민행동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일시적 점유를 지향하며 사회적 공감대의 폭을 넓히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특히 인근 거주민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공유지 내에 시민들의 자율 텃밭을 조성하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는 등 조금씩 공유지의 기능을 증명하고 있다.

 

다른 단체와의 협력에 대해 박선영 사무국장은 시민행동이 문화연대, 문화도시 연구소 등 다양한 주체들의 네트워크로 시작한 만큼, 앞으로도 철거 관련 투쟁, 도시 재생이나 개발 등 주거 문제 뿐 아니라 사회문제 전반으로 관심의 폭을 넓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26일 경의선공유지 내에서 창립총회를 진행한 연구자의 집은 이러한 네트워크 확장의 결과다. 연구자의 집은 교수, 대학원생, 시민 등이 자유롭게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가 기획을 맡았다. 박 사무국장은 앞으로 커먼즈(Commons)라는 개념을 토지뿐 아니라 지식, 네트워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할 예정이라며 경의선공유지가 커먼즈 운동의 성공적인 시도로 남아 앞으로 더 많은 공유지를 만드는 마중물이 되길 희망한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그간 땅에 금전적 가치를 매기고, 소유하고, 다시 판매하는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상식으로 인정받아 왔다. 그러면서도 이는 오늘날의 불평등하고 제한적인 토지 소유 구조의 뿌리다. 토지 소유자와 세입자가 나뉘는 구조 속에서 경의선공유지는 단순히 같이 쓰는 땅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경의선공유지는 우리에게 폭넓은 연대를 통한 기존의 소유 구조 극복을 제시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주거권을 지켜내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