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호 > 특집
을지로는 정말 되살아나고 있을까 개발 지역에 대한 고민 없는 재개발
등록일 2019.02.25 16:59l최종 업데이트 2019.02.27 17:52l 최재혁 기자(coliu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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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지구 3구역 거리. 왼쪽 노란 천막 너머엔 여전히 철거가 진행 중이다. ©김혜지 사진기자



  청계천 주변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역 상인들은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재개발이라며 반발했다. 여기에 더해 철거 시 을지면옥 등 오랜 역사를 가진 가게들이 사라진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개발 보류를 선언했다. 을지로의 사례를 통해 재개발 과정에서 지역 상인이 지속적으로 소외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무엇이든 만들어줄 수 있는 곳

  서울시 중구 산림동에 위치한 대림상가.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상점들로 가득한 이곳 3층 한편에는 가게가 아닌 낯선 전시장 <산림살림>이 있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가운데 탁자에 가지런히 분류된 기본적인 금속 재료들이다. 입구에 있는 봉투에 재료를 담아가는 관람객도 더러 보인다. 벽에는 을지로에서 일하는 금속 상인들의 인터뷰 내용과 금속 공정 과정을 설명하는 글이 쓰여 있다. 전시를 기획한 내용연구소 김상윤 대표는 <산림살림>을 “전시라기보다는 소개하는 것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소개하는 대상은 물론 상가 주변 을지로에 자리한 금속상인들이다. 을지로의 현재 모습이 재개발로 사라지기 전에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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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살림> 전시장에 진열된 금속 재료들



  김상윤 대표는 을지로 상가의 특성을 설명하며 “을지로 안에는 공동체적 분위기가 굉장히 잘 형성돼 있다”고 운을 뗐다. 이러한 공동체적 분위기는 공장들 간 관계에서 만들어졌다. 을지로의 개별 공장은 주문자가 요구하는 물건을 홀로 완성할 수 없다. 가령 어떤 가게는 목형을 담당하고, 또 다른 가게는 프레스를 찍는 역할만을 맡는다. 가게들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는 결과적으로 주문자의 요구사항에 맞는 물건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과정에 최적화돼 있다. 한 가게가 주문을 받으면 그 물건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가게를 모아서 단시간에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개발 후 이들이 옮겨갈 부지가 있더라도, 그곳에서 전과 같은 가게들의 협력관계가 복원되지 못한다면 성공한 정책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청계천 공구거리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지식’이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심한별 선임연구원은 지난 1월 30일 진행된 ‘세운상가 일대 산업생태계와 역사문화,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오늘날 제조업은 지식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정보 교류가 활발한 도심에 자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을지로의 모습과 유사하다. 김상윤 대표는 “이분들이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암묵적 지식을 엄청나게 많이 갖고 있다”며 상인들을 ‘장인’ 대신 ‘기술자’로 호명한다. 설령 을지로가 개발되더라도 이들이 갖고 있는 지식을 보존하고 전승할 수단은 남겨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공사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개발이 갑작스럽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지난 1월 23일 사업을 중단하고 올해 말까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을지로의 재개발 사업은 세운상가·대림상가에 인접한 구역을 포함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세운지구)’와 길 건너편의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수표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수표구역의 개발은 올해 말까지 전면 보류됐으며 세운지구 역시 일부 구역을 제외하고 잠정적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문제가 되는 곳은 세운지구 3구역이다. 3구역 전체 중 3-1, 3-4, 3-5 구역은 철거가 중단되지 않았다. 재개발 사업의 최종 단계인 관리처분인가까지 난 상황에서 이미 철거가 상당 수준 진행됐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철거 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남은 상인들에게 돌아갔다. 세운지구 3구역에서 공장 ‘원일기어’를 20년 가까이 운영해 온 이원일 씨는 “공사하기 전에 비해 일이 1/10 정도로 뚝 떨어졌다”며 “차라리 (내가) 빨리 나갔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골목 입구인 청계천 쪽이 공사 중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부에도 가게가 없다고 생각해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사 중단은 3구역 내 상인들에게는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이원일 씨는 “차라리 이사 비용 조금 받고 딴 데 가서 6개월 정도 미리 자리 잡는 게 낫다”며 공사 보류 조치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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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지구 3구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이원일 씨 ©김혜지 사진기자



보상 없는 이주

  을지로를 개발하겠다는 계획 자체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청계천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 강문원 위원장은 개발의 시작을 청계천 복원이 시작된 2003년도로 봤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상인들에게 장지동에 지어질 ‘가든파이브’에 비교적 저가로 입주시켜 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상황은 오세훈 서울시장 시기에 바뀌었다. 분양가가 이전에 약속했던 것보다 최소 세 배 넘게 올랐다. 강문원 위원장은 “실제로 거기(가든파이브) 갔다가 다시 나온 사람도 많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지역 상인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주민들에게도 제대로 고지된 공청회는 없었다. 이원일 씨는 몇 년 전부터 집주인들이 미리 건물을 팔았다며 “집주인들이 집을 파니까 재개발된다는 말이 돌긴 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부술 줄은 몰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갑작스럽게 개발 대상임을 알게 된 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야 했다. 우선 철거 대상인 3-1, 3-4, 3-5 구역의 공장들은 시행사의 압박에 직면했다. 강문원 위원장은 “시행사가 우리들 때문에 공사 진행속도가 늦어지니까 그에 대한 비용을 보상하라며 소송을 통보했다”며 시행사가 사실상 상인들을 강제로 쫓아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상인들은 정신적인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박은선 활동가 역시 1월 31일 개최된 ‘청계천 을지로 재개발 재생인가, 축출인가?’ 토론회에서 “(이주한) 상인들은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며 상인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을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26일 관리처분인가 5개월 전부터 선제적으로 철거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이주 대상이 된 상인들에겐 적절한 보상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강문원 위원장은 “폐업한 사람도 있고 여기를 아예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주한 사람도 있다”며 대체부지가 제시되지 않은 사이 공동체가 해체됐음을 지적했다. 공사에 따라 지급된 이사 비용 역시 철거로 발생한 실질적 손실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원일 씨는 “이사 비용은 말 그대로 ‘이사 비용’에 불과하다”며 “정착하고 터를 잡을 수 있게끔 해줘야 하는데 안 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서울시는 을지로에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이지만 여전히 재개발의 전면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강문원 위원장은 “주거시설은 여기보다 안락한 곳에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지 않느냐”며 “이곳은 ‘제조문화산업특구’ 형태로 지정이 돼야지 그 가치가 오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재개발 대상인 상인들만의 의견이 아니다. 세운상가 3층에서 3D 프린터 제조업체 ‘아나츠’를 운영하는 이동엽 씨는 재개발로 인해 기존에 거래하던 공장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며 “자재와 숙련 장인에 대한 접근성이 파괴됐다”고 토로했다. 재개발 사업이 애초에 세운상가의 상점들과 인근 공장 간의 연계성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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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 강문원 위원장 ©김혜지 사진기자



지역 주민과 공존할 수 있는 법적 개선 시급해

  을지로에서 드러난 재개발 과정의 문제점은 새롭지 않다. 재개발 사업을 규정하고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행 도정법 하에선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는 세입자가 상당수 있더라도 민간 자본의 재개발 추진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토지등소유자(정비구역 안에 있는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자)로 구성된 조합은 토지등소유자 75%의 동의만 있으면 재개발 반대자들의 재산을 처리할 권리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동의하지 않은 소유주뿐만 아니라 세입자 역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 세입자의 권리가 구조적으로 보장될 수 없는 상황에서 갈등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철거에 따른 강제적인 이주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이른바 ‘강제퇴거금지법’이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18대 국회에서부터 꾸준히 발의되고 있는 법안이다. 2011년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특별위원회에서 작성한 제정안에서 해당 법안의 제3조는 “퇴거·철거에 대한 강제집행, 행정대집행 및 강제퇴거 금지, 개발 사업에 관하여는 이 법을 다른 법률보다 우선하여 적용”함을 명시하고 있다. 나아가 제7조에서는 단순히 철거 과정에서의 폭력 행위를 규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가 퇴거 대상자에게 주거 및 생활 안정대책을 수립할 의무를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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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연락처가 적힌 벽 위에 재개발에 반대하는 포스터가 붙여져 있다.



  근본적으로 재개발 지역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지역민의 인권을 더욱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를 반영한 것이 강제퇴거금지법 내 명시된 ‘인권영향평가’다. 해당 조항은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개발사업 전후 생계대책과 사회안전망 ▲개발사업 과정에서 거주민들의 정보 접근권 ▲개발사업과 재정착, 퇴거 등의 사항에 대한 거주민들의 의견 제시·참여·협의의 권리 등을 포함한 평가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한다. 현재 개발 계획을 세우기 이전에 요구되는 교통·환경 영향평가를 지역민의 생활 단계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약 을지로에서 나오게 되더라도 다시 일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이원일 씨는 “아직 나이가 있는데”라며 웃었다. 국가는 재개발 과정에서 계약관계 상 가장 아래쪽에 있는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번번이 실패해왔다. 비록 일부 구역은 철거됐지만, 지금부터라도 상인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면 을지로를 진짜 ‘되살리기엔’ 아직 늦지 않았다.


여전히 잔인한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