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호 > 특집
웹툰에도 ‘비평’이 필요할까 웹툰평론가 선우 훈을 만나다
등록일 2016.05.02 18:16l최종 업데이트 2016.05.03 17:20l 신일식 기자(sis62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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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만화평론가 그로엔스틴은 만화비평 웹진 <크리틱엠>과의 인터뷰에서 “비평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독서의 즐거움에 그 깊이를 더해 준다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장르와 시대에 따라 비평의 역할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비평이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화비평, 특히 웹툰비평은 우리에게 생소한 분야다. 문학에는 비평이 짝처럼 따라붙고, 영화평론가는 대중적 스타가 되기도 하지만 만화에 비평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 않다. 90년대 중반 박인하, 박석환 평론가 등이 <스포츠서울>에서 만화평론가로 등단한 뒤 만화평론 등단 무대 자체가 사라졌다.


  근 20년이 지나 지난해 5월 <크리틱엠>에서 다시 만화평론 등단 무대를 열었다. <크리틱엠>의 ‘제1회 신인 만화평론가 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사람은 웹툰 작가 겸 평론가 선우 훈이다. 출판만화가 아닌 웹툰을 다루는 평론가가 데뷔한 것은 그가 최초다. 독자들의 새로운 재미를 위해 웹툰에도 비평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을 들어봤다.



웹툰은 댓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작가와 독자가 소통한다. 댓글란은 평가공간이 아닌가?


  댓글란에서 작가와 독자는 서로 정면을 보고 대화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혼잣말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독자에게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작가에게 의미 있는 피드백을 한다. 여러 성격이 혼재돼 있지만 독자들끼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관심을 끌려는 부분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의미 없이 쓴 인터넷 유행어, 언어유희들이 베스트 댓글을 가득 채우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와 같이 수만 개의 댓글이 달리는 경우 의미 있는 피드백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전달에 한계를 느끼고 굳이 댓글을 달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처럼 인터넷 유행어와 언어유희로 가득 찬 베스트댓글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작가들도 있다.



조회 수와 별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중문화 작품성 평가에 있어 조회 수와 별점이 그리 유용하지 않다는 사실을 영화산업이 보여준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라고 해서 작품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것처럼, 조회 수는 작품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별점 같이 간소화된 평가 방식의 경우 여러 요소들이 한꺼번에 평가에 반영된다. 독자들이 ‘귀향(조정래, 2015)’에 대해 별점을 매길 때, ‘귀향’이 다룬 주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해 만점을 줄 수 있다. 영화의 작품성에 대해 평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별점은 작품성에 대한 유의미한 측정 기준이 되기 힘들다.



대중성 중심인 현재의 평가 방식이 어떤 문제를 가져올 수 있나?


  획일화된 대중성에 맞춰 웹툰의 ‘흥행코드’가 생기고, 그런 작품들만 수익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흥행코드’에서 벗어난 작품은 ‘수익이 안 된다-투자하지 않는다-수익이 더 안 된다’는 식의 악순환에 빠진다. 그리고 이들이 발전시켜온 장르, 주제, 서사구조와 표현방식 역시 무시 받게 된다.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 이런 현상이 일부 보이는데, 이 때문에 해당 매체에서 오래 전에 탐구됐던 서사구조나 표현방식들이 굉장히 새로운 것인 양 평가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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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우 훈 웹툰평론가 겸 작가 ⓒ감나영 사진기자



웹툰에 비평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또 왜 지금은 가능한가?


  웹툰의 역사가 너무 짧았고, 웹툰 시장이 너무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웹툰이 만화라는 주류 대중매체에 반하는 ‘하위문화’로 시작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부분도 있다. 웹툰은 10대들이 소비하는 만화로 출발했다. 지금은 웹툰 시장이 충분히 확장되고 작품 수가 많아졌다. 어떤 작품이 더 좋은 작품인지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웹툰은 더 이상 만화의 ‘하위문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네이버 상위권 웹툰들은 100만 단위가 보는 공공의 영역이다. 이런 배경에서 웹툰 비평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누가 비평을 읽을 것으로 기대하나?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들이 주류의 위치에 있지만 30만의 관객이 ‘캐롤(토드 헤인즈, 2015)’을 찾기도 하듯이 웹툰 시장에도 미적 기준으로 작품을 고르고, 즐기려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취향을 아는 독자라도 다 못 볼 만큼 많은 웹툰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작품들이 서로 다른 플랫폼들에서 연재되고 있는데, 여러 플랫폼을 옮겨가며 웹툰을 찾는 일 역시 힘들다. 비평은 이들을 위한 표지판이 될 수 있다. 웹툰을 여전히 10대들이 보는 매체로 생각하고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들에게 좋은 비평, 좋은 글을 소개하면 웹툰을 안 보던 사람들도 한두 작품씩은 보고 싶어질 수 있다.



작품 선별 외에 비평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재미는 무엇인가?


  윤리와 만듦새 또한 독자의 재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돌려줄 수 있다. 독자들이 창작물을 소화하고, 윤리를 찾고, 만듦새를 따져보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비평은 독자가 이를 위해 함께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창작물이다. 가령 양영순 작가의 ‘덴마’를 생각해보라. 작가는 SF를 그리면서도 사회 전반에 대한 정확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귀족, 비참한 사회상, 암거래부터 택배와 물류까지 모두 다루고 있다. SF를 쓰는 작가들이 수치나 추상적인 사회상만을 이야기하기 쉬운데 양영순 작가는 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정과 수고까지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빠져있는 것은 여성에 대한 시선이다. ‘덴마’에서 여성은 항상 독자와 남성 주인공의 동정대상으로만 나올 뿐, 주체적인 인간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를 그리면서 비중 있는 인물들의 성별이 편중돼 있으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덴마’는 뛰어난 만듦새를 가졌지만, 여성에 대한 시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많이 부족하다. 비평은 이런 종류의 논의를 제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