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호 > 특집
우리 만화가 달라졌어요 2015 한국 만화를 되돌아보다
등록일 2016.05.02 18:58l최종 업데이트 2016.05.03 17:13l 선창희 기자(sch71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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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한국 만화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고민을 담아냈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 그리고 최규석 작가의 ‘송곳’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공감하게 하고 여러 세대를모아 의제를 공론화했다. 한국 만화는 세간에 반향을 일으키는, 영향력 있는 문화 매체로 성장했다.

  그 성장의 동력은 웹툰이다. 코리안 클릭의 조사에 의하면 2013년 기준 네이버, 다음, 네이트 웹툰 방문자 수는 일평균 820만 명에 달한다. 2003년 미디어다음에서 ‘만화속세상’이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웹툰은 2014년 기준 약 1,700억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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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안 클릭의 조사에 의하면 2013년 기준 네이버, 다음, 네이트 웹툰 방문자 수는 일평균 820만 명에 달한다. ⓒ네이버



포털에서 부활한 한국 만화

  90년대 중반은 출판 만화의 전성기였다. 당시 30개가 넘는 만화잡지들과 3만여 개의 만화 대여소가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며 만화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청소년보호법’은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내용이 담겼다고 여겨지는 만화책들을 불법 만화로 지정했고, 백여 명의 만화방 점주들은 불법 만화 유통으로 입건됐다. 이후 서점 주인들은 만화책 판매를 꺼렸고 만화방 역시 사라져 갔다. 상명대 한상정 교수(만화컨텐츠학과)는 “당시 정부 지침 이후 대여소들이 3000여 개밖에 남지 않게 되고, 연이어 만화잡지들도 우르르 무너졌다”며 90년대 말을 회고했다.

  그러던 중 2003년 다음이 포털 최초로 웹툰 연재를 시작했다. 연이어 네이버가 이듬해에 웹툰 서비스를 내놓았다. 골목길의 만화방이 사라지고 인터넷 포털에 만화방이 만들어진 셈이다. 포털들은 왜 웹툰을 연재하기 시작했을까. 다음 ‘만화 속 세상’의 책임자인 박정서 총괄PD는 “하루가 지나면 트래픽이 배로 뛰는데 휑한 홈페이지에 뭐라도 게시해야 했다”며 당시상황을 설명했다. 박 PD는 “웹툰이 성공할 줄 처음부터 알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강풀과같은 천재적인 작가들이 나타난 것”이라며 웹툰 성공의 이유를 작가에게서 찾았다.
 
  작가들의 역량뿐만 아니라 포털의 투자가 웹툰 산업 성장에 중요했다는 시각도 있다. 웹툰 에이전시인 ‘누룩미디어’ 이지은 책임 PD는 “자금이 충분했던 네이버와 다음이 무료 서비스인 웹툰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웹툰 시장이 이만큼 성장했다”며 포털의 기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 모두의 광장, 웹툰

  웹툰이 기존 출판 만화와 구분되는 것은 신인 작가의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 경력을 쌓아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학생, 승무원, 회사원, 가정주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닥터 프로스트’ 이종범 작가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기는 원산지 직송의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웹툰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광장을 만들어냈다. 한국에 사는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단순한 캐릭터로 익살스럽게 그린 ‘나는 귀머거리다’, 동성 커플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말하는 ‘이게뭐야’에는 소수자의 목소리가 생동감있게 실렸다. 작가의 일상을 소재 삼아 그린 웹툰을 ‘일상툰’, ‘생활툰’이라고 하는데, 생활툰의 장르에만 다양성이 국한되지 않는다. ‘아만자’는 젊은암환자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투병하는 서사의 웹툰이다. 국내 연재는 2013년에 끝났지만 잔잔한 파급력으로 현재 일본에서 조회 수 600만을 넘기며 연재 중이다. ‘미지의 세계’는 허영과 욕망으로 가득 찼지만 매일 좌절하는 비루한 청춘, 대학교 7학년인 미지의 세계를 그린 웹툰이다.

  웹툰의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웹툰은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각색됐다. 매체의 파급력도 강력하다. 몇 년 사이에 웹툰 캐릭터를 활용한 지하철 광고, 공익 광고가 눈에 띄게 늘었고 웹툰 자체가 광고의 수단으로 기획된 브랜드 웹툰도 많아졌다. 카톡 이모티콘, 피규어를 비롯한 2차 상품 제작 역시 활발히 진행됐다. 한국영상대 박석환 교수(만화콘텐츠과)는 “웹툰은 이제 대중문화”라며 “웹툰 입장에서만 본다면, 2015년은 고민했던 것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웹툰은 ‘다양성’과 ‘자유’”


  이종범 작가는 “(웹툰이) 영상매체의 문법을 더 닮아있다”며 웹툰과 출판 만화를 구분했다. 종이 만화는 페이지라는 단위로 분절되는 반면, 웹툰은 화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디지털만화규장각과 만화비평웹진 크리틱엠이 공동 주최한 ‘2015 만화를 되짚다’ 전문가 좌담회에서 임덕영 만화가가 “웹툰은 다양성과 자유”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과거에 꿈도 꾸지 못했던 스타일로 연재를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웹툰이 더 자유롭고 대담한 작화 방식을 허용하면서 우리나라 만화는 다양해졌다.

  독자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비동시적이었던 작가와의 소통이 댓글 게시판이 생성됨으로써 동시성을 확보했다. 독자는 댓글로 작가와 작품에 영향을 주는 한편,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통해 웹툰의 출판에 직접 투자한다. 작년 7월, 레진코믹스는 김달 작가의 웹툰 ‘여자 제갈량’을 출판하며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tumblbug)에서 3500만원을 투자받았다. 크라우드 펀딩이 성공한 사례 중 하나다.


“웹툰, 더 다양해져야”

  그럼에도 현직 만화가들은 웹툰이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신명환 만화가는 “웹툰 덕에 만화 인구가 늘었으나 아쉬운 점이 있다. 우리나라 웹툰은 학원, 무협, 일상, 성인물이 전부”라면서 장르의 스펙트럼이 좁다고 지적했다. 내용의 깊이가 얕다는 비판도 있다. 하민석 만화가는 “웹툰은 한 번 보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전체적인 질적 저하에 공감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질적 하락은 곧 문화의 경쟁력 상실과 직결된다. 같은 이유로 만화가들은 출판 만화 시장의 쇠퇴를 안타까워했다. 2015년,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 선정한 ‘오늘의 우리만화’ 5편 중 출판 만화는 홍연식 작가의 ‘마당 씨의 식탁’ 단 한 편뿐이었다. 나머지 4편은 웹툰이다. 이는 출판만화 시장의 축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종범 작가는 “(출판 만화에는) 웹툰이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며 “영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2미터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의 에너지를 직접 느끼는 연극 무대와는 다르다”고 빗대어 설명했다.

  신명환 작가는 현재 웹툰 시장에서 “독자 눈높이, 입맛에 맞추는 것들이 너무 많이 생산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회 수, ‘좋아요’ 수로 평가되는 시장의 공정성은 시장의 발전 가능성,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과 별개의 영역이다. 박석환 교수는 “넓지만 깊어지지 못하는 것이 웹툰의 고민”이라고말했다. 그는 이 문제가 국내 웹툰 소비 시장의 작은 규모와 관련이 깊으며, 웹툰은 성장하기 위해 더욱 다양한 소비자의 수요가 있는 넓은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문제의 원인을 일부 포털의 독주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2014 만화산업백서(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웹툰 구독 경험이 있는 사람 중 83.7%는 네이버 웹툰을, 13.5%는 다음 ‘만화 속 세상’을 주로 이용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백수진 글로벌사업팀장은 “포털의 선의와 무관하게 포털의 독주는 문화 산업의 정체성인 다양성을 없앨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네이버 웹툰은 10대층을 겨냥하고, 카카오페이지 ‘오늘의 웹툰’은 순정만화를 중심으로 연재하는 등 각각의 플랫폼들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특정 플랫폼의 독주는 독자들의 접근 경로를 좁혀 다양한 플랫폼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더 나아가 웹툰의 장르적, 소재적 다양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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