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호 > 특집
하이 용돈 만남 가능? 소라넷을 향한 분노와 행동, 정미경 작가의 ≪하용가≫
등록일 2018.12.17 17:49l최종 업데이트 2018.12.18 15:01l 유지윤 기자(jiyoun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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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소라넷이 폐쇄됐다. 100만 여명의 회원들이 불법촬영물을 유통하고 강간을 모의해온 사이트였다. 17년간 건재하던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을 무너뜨린 데에는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의 활약이 있었다. 페미니즘 다큐소설 ≪하용가≫는 소라넷 폐쇄를 이끈 여성들의 움직임과 그간 소라넷에서 자행돼온 참혹한 폭력을 재구성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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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가≫의 표지 ⓒ이프북스



헬조선의 가장 은밀한 지옥, 소라넷

  “들어가 봐. 헬게이트가 열릴 거야.”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 지수는 친구 희준으로부터 링크 주소를 건네받는다. 소라넷의 ‘여친게시판’에 막 올라온 ‘초대남 모집’ 글이다. 글을 쓴 남성은 술에 취한 여자친구를 모텔로 끌고 왔다며 여자친구를 강간할 남자들을 ‘초대’하고 있었다. 익명의 댓글들이 내뱉는 열광적 반응에 지수는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경찰은 희준의 신고전화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수사할 수는 없다고 답할 뿐이다. 지독한 분노와 절망 속에서, 지옥의 밤은 그렇게 흘러간다.

  이틀 뒤, 지수는 친구이자 마케팅회사 인턴 동기인 시형의 입에서 다시 소라넷이라는 단어를 듣는다. 소라넷의 ‘베스트 영상’이라며 친구가 보내준 몰래카메라 영상에서 우연히 또다른 인턴 동료인 화영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소라넷을 안다는 시형의 말에 그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잠시, 지수는 화영에게 이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한다. 화영이 자신을 수치스럽게 느끼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지수는 화영에게 말을 전한다. “저기, 그러니까, 네 잘못 아냐. 물론 네가 어떤 심정일지 나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자책하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해.”

  여성의 몸이 철저히 제물로 소비되는 곳, 그래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곳. 소라넷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은 희준도 마찬가지다. 희준은 한 남성으로부터 샤워하는 자신을 몰래 촬영한 사진을 전송받는다. 그리고 그 남자가 사진을 소라넷에 게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게시판을 훑으며 희준은 자신도 제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물속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희준은 곧 마음을 다잡는다. “지면 안 된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지면 안 된다”라며.


“안 보고 안 듣고 살 수 있어?”

  소설 속 인물들은 의도치 않게 가혹한 상황을 직면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그 상황에 가둬놓지 않는다. 화영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피해자’가 아니라 빼앗긴 걸 받아내는 ‘준엄한 피해자’로서 살아내겠다고 다짐한다. “정말 수치스러운지는 중요하지 않아, 수치스러워하지 않기로 결심한 게 중요해.” 자신이 ‘느껴야 할’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규정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화영의 각오는 그가 스스로 가해남성을 찾는 싸움을 시작하는 동력이 된다. 희준 역시 자신의 삶을 누구에게도 좌지우지 당하고 싶지 않다. 범인이 침범했던 집에서 이사하는 게 좋겠다는 지수의 말에, 희준은 “내 힘으로” 집을 다시 편하고 안전하게 만들고 싶다고 답한다.

  삶을 지키려 할수록 소라넷을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이들의 생각은 선명해진다. 희준은 지수와 화영에게 ‘메두사 자경단’에 가입할 것을 제안한다. 스스로 자, 경계할 경. ‘남자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여자들이 모인’ 사이트 메두사에서 시작된, 스스로를 지키는 여자들의 단체다. 소라넷 폐쇄를 목표하는 그곳에서 지수는 모니터링을 담당한다. 그러나 그는 곧 ‘육변기(남성의 성욕을 받아내는 변기라는 의미)’ 게시판에 댓글 세 개를 달아야 하는 승급조건 앞에서 망설인다. “나 못하겠어. 이거 꼭 해야 돼? 다른 걸로 세상에 도움이 되면 안 되겠느냐 말야.” 하지만 희준의 대답은 단호하다. 안 보고 안 듣고 살 수 있냐고. 육변기라는 단어가 있다는 걸 모른 척 한다고 우리가 안전해지냐고. 여자들이 죽고 싶은 마음으로 들어오는 소라넷은,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메두사는 곧 ‘너 소라넷 하지?’라는 제목의 글로 소라넷 게시판을 도배하는 온라인 공격을 계획한다. 소라넷 팔로워들을 찾아내는 트위터 계정 ‘소라넷 하니?’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일시적으로나마 서버를 마비시킨 ‘승리’ 앞에서 지수와 희준은 소라넷이 더 이상 불가침의 영역이 아님을 확인한다. 승리는 다른 자경단에게도 큰 동력이 되고, 이어진 이들의 활동에 경찰도 압수수색을 약속한다. 마침내 2016년 6월 6일, 소라넷의 공식 트위터가 사이트 폐쇄를 발표한다. 그날 밤 만난 지수와 희준은 “하용가”를 외치며 건배한다. 여성의 몸을 침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의 ‘하이 용돈 만남 가능?’이라는 물음을 조롱하듯이. 그리고 이 물음이 일상적인 사회에서, 여자들은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듯이. 


한번 이긴 여성들은 다시 이길 수 있다

  정미경 작가가 ≪하용가≫ 집필을 다짐한 계기는 ‘초대남 모집글’을 접하면서였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던 그는 ≪근본 없는 페미니즘: 메갈리아에서 워마드까지≫의 공동저자들로부터 ‘초대남 모집글’에 대해 듣는다. 소라넷에 대해 알게 되며 정미경 작가는 “여성의 몸을 폭력적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온라인에서 아주 일상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이 처벌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에 분노했다. 그는 소설로써 참혹한 현실을 고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등장인물은 소라넷 폐쇄운동에 동참했던 여성들,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경험을 전해준 이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특히 중점을 뒀던 부분은 피해자로서의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는 일이었다. 정미경 작가는 기존의 남성중심적 문학 서술이 성폭력을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로만 소모해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하용가≫에서는 “피해 여성의 이미지를 전복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피해자다운 피해자’를 요구하는 가부장적 인식을 깨뜨리는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성폭력 생존자 화영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가치를 창조해 나가는 부분을 가장 공들여 쓴 이유다. 정미경 작가는 “성폭력의 경험은 고통스럽지만, 무기력과 공포만을 동반하지 않는다”며 “그것에 직면하며 삶을 다시 살아낼 용기와 힘이 우리여성 안에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소설을 쓰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소라넷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그는 “이거 꼭 해야 돼?”라고 묻는 지수처럼 지독한 염증과 좌절을 느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던 정미경 작가는 ‘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부서져라’ 키보드를 두드렸다. 결정적 계기는 피해여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유저가 단 ‘유작이라니, 어쩐지 더 꼴리더라’라는 댓글이었다. 댓글을 본 정미경 작가는 이처럼 심각한 범죄행위가 “매일,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행해진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현실을 외면한 대가가 무엇일지는 명백했다.

  불법촬영의 근절을 위한 싸움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정미경 작가는 ≪하용가≫를 통해 싸움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다고 느낀다.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한다면 불법촬영 및 시청을 하지 않는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소라넷 폐쇄라는 승리의 역사가 기억되기를 바란다.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은 이렇게 전한다. ‘싸움은 시작됐고 우리는 이겨야 한다. 그리고 한번 이긴 여성은 다시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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