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호 > 특집
‘딸깍’ 끊어지는 것은 전기, 혹은 삶 단전원과 함께 신림2동 단전 현장을 가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이지윤 기자 (liy4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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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한국전력입니다. 잠깐만 뵐게요. 계신가요? 단전하러 왔습니다.”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어디 있을까? 밤에 전등 빛이 밝아 별도 안 보인다는 ‘포화 불빛 도시’ 서울 한복판에서 나홀로 전등 하나 못 밝히는 심정은 어떠할까? 11월 14일 사당역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한전) 남서울본부 주차장. 여느 때처럼 단전원 오영열 씨는 오토바이에 갖가지 공구를 싣고 전기를 끊으러 시동을 건다. 기자는 단전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오 씨를 따라가 봤다. 현장에서 느낀 현실은 올 겨울만큼이나, 차디찼다.
단전원 오영열 씨가 지하방에 단전조취를 취하고 있다. 신기한듯 처다보는 2층 할머니


신림 2동만 해도 하루 50가구 이상이 단전예고가구
오 씨가 손에 쥔 신림2동 관내도에는 빨간 사인펜으로 수십 개의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그가 하루동안 방문할 ‘고객’의 위치다. 신림2동 만해도 하루 50가구 이상을 돌아야 한다고 한다. 바로 녹두 앞 동네, 익숙한 그곳에 ‘단전’이라니. 놀란 마음에 잠깐 얼어있는 사이, 한전 수급팀 배정주 과장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들러야 할 곳이 생각보다 많아. 요즘 들어서는 경기가 나쁘다 보니 일거리가 더 많아진 게지”라며 혀를 끌끌 찬다. 빈곤도, 아픔도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보이지 않는 얼룩처럼 우리 사이사이에 남아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61만 2,806가구가 3개월 이상 전기요금을 연체하고 있어 단전예고대상가구가 된다. 전국 가구의 100가구 중 3가구가 단전 예고대상에 포함되는 셈이다.
한전이 집으로 무턱대고 들이닥쳐 전기를 끊지는 않는다. 전기요금이 석 달 연체되고 나면, 한전이 고용한 용업업체에 근무하는 오 씨 같은 단전원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해지시공서를 직접, 혹은 대문 앞에 스티커를 붙여 전해준다. 원룸건물을 운영하는 최갑수(가명) 씨는 단전원이 원룸 대문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보고 자기 일인마냥 씩씩거리며 말한다. “이거 무슨 겁주는 거야? 이게 큰 사고나 난 것 같이 말이지.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이야. 한전이라도 전기를 끊으면 안 되지!” 붙여진 해지시공서에는 ‘11월 17일 이후 단전!!’이라는 문구가 적나라하게 적혀있다. 말 그대로 단전통보지다. 그때까지 요금을 내지 않으면 두꺼비집을 내린 것 마냥 전등스위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문에 붙은 작은 종이쪽지가 얼마나 사람 맘을 무겁게 만들지….

쉽게 끊어지는 전기
때마침 들린 집이 5개월이 체납된 반지하 가구다. 집에 사람은 없다. 윗집 노인 부부의 말로는 그 집은 초등학생 2명이 살고 있는 젊은 부부의 집이라고 한다. 노인 부부는 그 부부가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둥 핀잔을 덧붙인다. 단전을 위해 한전 중앙본부에서 명령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오 씨가 전기계량기의 전기가 들어오는 전선을 니퍼로 ‘딸깍’ 끊어버리면 그만이다. 이렇게 간단히 전기가 끊어질 줄이야. 그리고는 ‘소전류제한기’를 설치한다. 소전류제한기는 220W의 전류를 흐르게 해주는 장치로 05년부터 ‘최소한의 전기를 제공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네 식구 살기에 220W의 전력량은 부족한 걸까. 설치한지 10 여초 만에 계량기는 과부하로 다시 멈추고 만다. “이거 다시 (계량기를) 돌리려면 집안에 있는 코드 다 뽑고 전등만 켜고, 텔레비전 리모컨으로 제한기를 조정하면 돼요.” 그리고는 뜸을 잠시 들이다가 허탈한 표정으로 전기계량기를 둘러싼 철판을 툭툭 치며 오 씨는 말을 잇는다. “근데 말이죠. 애로사항이 있는데, 이렇게 철판이 있으면 텔레비전 리모컨이 안 먹더라구.” 좋은 취지로 설치해주는 소전류제한기는 결국 그 집 초등학생들에게 박탈감만 안겨주는 고철덩어리가 된 것이다.
신림2동 관내도에 표시한 단전예고가구들
어느 주택의 전기계량기. 전기가 흐르고 있을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이 할 직업이 아니에요, 이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 씨가 찾아간 가정마다 사람이 없었다. 때문에 단전예고가구 중 한 가구를 영하 5도를 기록한 11월 17일 어렵사리 전화로 연결했다. 신림본동에 거주하는 남수복(63) 씨는 “집이 너무 냉골이야. 너무 추워 청평에 와 있어”라며 가스가 중단돼 도저히 집을 지킬 수 없어 친척의 집에 있는 자신의 형편을 소개했다. 남 씨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에 38만원씩 지원금을 받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부채를 갚아야 하고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는 교인들에게 근근이 돈을 꾸어 삶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세상이 캄캄해 앞이 안 보이는 맘이지. 이 엄동설한에 어딜 가. 다리도 아픈데….” 전기요금도 6개월이나 밀렸고, 집세도 못 내 나가야 할 상황이다. 단전은 작년에도 이미 겪어봤다. 세상의 끝에서 그녀는 어떻게든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기도 하루 이틀 끊겨본 것도 아니야, 돈이 없으니 이렇게 살 수 밖에.” 모든 것을 체념하는 듯한 그 말투에 기자는 아무 말도, 아무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이 일은 정말 3D 중 3D야.” 오 씨는 이 일을 14년째 하고 있다. 단전하려들면 멱살을 잡히는 것은 기본이요, 따귀까지 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 “90도로 절하면서 요금을 내달라고 하죠. 하지만 다들 내고 싶지 않아서 그러겠어, 돈이 없으니까 그러지.” 오 씨가 단전 고객 리스트가 적혀진 종이다발 중 한 장을 보여준다. ‘불쌍해서’라고 적혀있다. “이 사람, 식당종업원인데 사정이 너무 딱해서 못 끊고 있지. 5개월 밀렸어.” 오 씨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이런 가정이 수두룩하단 것을 가장 잘 느끼는 산 증인이다. 이 일을 왜 계속하느냐는 기자의에 질문에 오 씨는 “어쩝니까, 그럼…. 가정이 있는데”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2008년 겨울을 맞이해 한전에서는 단전을 ‘선물’로 살포시 놓고 간다. 이들에게 닥쳐올 추위와 두려움을 떠올려야하는 ‘선물’을, 기자도 덤으로 받고야 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