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 > 특집
대한민국은 이주노동자에게 관대하다? 외국인 고용 제도 샅샅이 뜯어보기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이지윤 기자 (liy4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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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불법인가요?
외국인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위해 받는 비자는 총 28가지다. 이중 EPS(외국인고용관리시스템)를 통해 들어오는 제도로는 고용허가제, 산업연수제, 방문취업제, 고용특례허가제 등이 있다. 제도마다 절차 또한 복잡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고용허가제를 살펴보자. 도표(오른쪽)를 보면 사업자와 외국인구직자가 직접 취업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8개의 기관을 거쳐야만 한다.
고용허가제를 통한 취업절차

모든 절차를 걸쳐 한국으로 들어와 취직하더라도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체류기간이 초과될 경우, 갱신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미등록체류자로 전환되고 바로 단속의 대상이 된다. 2006년 몽골에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A씨는 입국한지 한 달이 채 안되어 일하는 공장 내 한국인 직원의 홀대와 숙소, 식사에 불만을 갖고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로 찾아갔다. A씨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해 센터에 딸린 쉼터에 머물게 됐고, 센터에선 공장에 연락해 A씨의 이직을 요구했지만 공장측에서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 공장 측의 무단이탈신고로 A씨는 입국 한 달 만에 불법체류자가 됐다. 산업연수제 시절 미등록이주노동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50~60%이었던 반면, 고용허가제에서는 3.7%로 현저히 줄었다(2007년 12월 노동부 발표).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고용허가제 이외의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들어온 후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한 경우는 전체 이주노동자 중 14.1%에 달한다. 합법이주노동자가 곧 잠재적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되는 현실 하에선 100% 합법체류를 꿈꾸기는 어렵다.
이주노동자, 한국에서의 위치는?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들어오며 ‘코리안드림’을 꿈꾼다. 그러나 낯선 한국 땅의 현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0여 년의 세월을 한국에 ‘감금’시킨다. 사업자가 한국인 노동자보다는 이주노동자를, 그중에서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더 쉽게 여기기 때문에 악순환은 계속된다. 안산 반월공단 근처의 인력업체 직원 임종호(37) 씨는 “중소기업은 회사사정이 안 좋아서 쉽게 고용하고 자를 수 있는 불법체류자를 쓴다”며 “이는 회사 위기 시 탄력적으로 직원 수를 조정하려 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장호 조직위원장은 “불법체류자 양산은 제도의 문제다. 임금체불이 허다하고, 노동시간은 길며, 사장은 월급 안 주고 도망가기 일쑤”라며 이주노동자 노동환경의 열악함을 꼬집었다.
임금체불의 경우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작년 상반기 집계한 고충상담 중 전체의 28%를 차지할 만큼 심각하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 관계자는 “고용허가 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비자와 외국인등록증을 사업주가 보관하거나,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는 미등록 신분을 이용해 임금을 안 주고 협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이주노동자 아퓨잘 씨는 봉투공장에서 3년간 일하다 작년 추석 뒤에 임금 2개월분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채 불법체류자라며 해고당해 이주노동자센터로 찾아왔다. 센터측은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임금체불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
산업연수제 시절 불거졌던 이주노동자 송출과정에서의 문제점은 고용허가제로 바뀐 후에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에서 2006년 자체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의 공식 송출 비용은 699달러이지만 실제 브로커의 개입이 이루어지면서 5천 달러에서 1만 2천 달러까지 급증한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체류기간 내내 일해도 알선비 갚기 바쁘다. 결국 이주노동자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길을 택하게 된다. 안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에서 아무리 좋은 기술을 배워 간다 해도 현지에는 산업기반이 발달해 있지 않아 기술이 쓸모없게 된다. 그래서 한국에 남아서 기술을 살려 일하고 싶어한다”라며 이주노동자가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고용허가제, 너무한거 아냐?
한국에 들어온 지 12년차인 꼽힐(39) 씨는 “고용허가제로 온 사람은 처음에는 일도 잘 못하고 말도 잘 못한다. 3년 정도 생활하며 한국에 적응할 즈음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고용허가제 기간인 3년 후 재고용을 원하면 노동부에 재고용신청서를 작성하고 나서 자진출국하여 1개월 후 신청해야 한다. 노동부 외국인고용관리팀 하창용 씨는 “현재(2월 말)까지 외국인노동자 중 50%가 다시 고용됐다”고 밝혔지만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절차를 거쳐 다시 재고용을 시키는 제도라는 점에서 이주노동자의 의사가 배제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남는다.
한편 사업장이동 문제는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으로 비판받은지 오래다. 3년 동안 이주노동자가 직장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3번뿐이다. 돈을 벌기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은행에서 대출받아 지난 3월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21살의 몽골청년 B씨는 한국의 공장 생활이 익숙치 않아 사업장을 3번 이동했다. 그 후 B씨가 받은 것은 사업장변경 횟수가 다 찼으므로 2개월 후에 본국으로 출국하라는 통보였다. 쉼터를 떠난 B씨는 결국 미등록이주노동자 상태가 됐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 관계자는 “3회의 기회를 사용하면 출국해야 하므로 사업장변경을 원하더라도 참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차기정부의 10대 인권 과제 중 ‘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 이동제한 완화’를 개선안에 포함시켰다. 이주노조 측에서는“대선기간 이명박 후보에게 이주노동자 관련 질의를 한적이 있었는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라고 언급해 차기 정부의 행보가 주목된다.
정부의 이중적 태도에 이주노동자는 갈팡질팡

정부에선 지난 5월 ‘이주노동자의 선별적 합법화’와 ‘F-2비자(한국인과 결혼하거나 국내 5년 이상 거주자 등에게 주어지는 비자)를 통한 거주자격 취득조건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해 8월부터 ‘고용허가제의 완전한 정착’과 ‘불법체류자 획기적 감소’를 위해 집중 단속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정부는 2003년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일부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 합법화 조치를 하기도 했다. 대구성서공단노조 이주사업부장 박희은 씨는 “합법화 당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 나갔다 들어오면 다시 비자를 준다 하여 자진 출국했지만 다시 들어오려 하니 자리가 없었다”며 이주노동자 합법화의 허상을 지적했다. 실제 2003년 자진출국대상자 6만 5천 명 중 실제 출국자는 2만 6천명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이 중 1만 6천 명이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F-2비자 취득 요건 또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F2비자 취득을 위해선 ‘5년 이상 합법체류자 중 연수입이 3천 만원 이상인 자’여야 하는데 이주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에 대해 출입국 관리소 측은 “합법화를 시행하면 그동안 법을 준수한 자들이 손해를 보는 꼴”이라며 “합법화는 현재 정책 대상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크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방문취업제처럼 고용허가제의 사업장이동을 완화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방문취업제는 동포들을 위한 제도이고 고용허가제는 지정된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큰 틀이 있기 때문에 바꿀 생각이 없다”면서 동시에 “사업장이동이 문제시 되는 것은 알고 있으며 사업주나 노동자가 불편해 하는 것들은 고쳐나갈 것”이라 말했다.
작년 도입된 방문취업제는 외국노동력 유입의 유연성을 높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남아있는 문제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단속’만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