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 > 특집
서울대 장애인권 "안습"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 미흡한 점 여전히 드러나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2013.10.31 04:25l 김상형 기자 (starbabykr@snu.ac.kr), 이진혁 기자 (hyugin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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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거리’ 조성 이후 사라진 자하연의 경사로. 장애인 이동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2006년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지난 2005년, 서울대학교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선정한 장애학생 교육복지 최우수대학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3년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생긴 이후로 여러 편의시설이 확충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장애학생들의 생활이 완벽하게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여전히 학교 곳곳에서 수많은 장벽에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다.

장애학생 외면하는 입·휴학 제도

같은 장애복지센터에서 함께 공부한 A씨와 B씨. 고등학교 3년 내내 비슷한 성적을 유지했지만, A씨는 서울대에 떨어지고 B씨는 합격했다. A는 B와 달리 자기가 중증장애인이라 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추측일 뿐, 달리 항의해볼 방법도 없어 A씨는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서울대학교 정시모집 특수교육대상자특별전형의 선발 상한 인원은 20명. 올해 입시에서는 총 14명이 이 전형으로 지원했다. 지원자 모두가 대학에서 요하는 수능 자격등급을 갖췄지만, 단 7명만이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우리 대학교에서 수학하기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되는 자는 지원 및 선발인원에 관계없이 선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외 규정 때문이다. 입학관리본부에서는 선발기준을 비공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규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장애인권연대사업팀 김미향(종교 06) 씨는 “최근 몇 년간 중증장애인이 한 명도 입학하지 못했는데, 선발기준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편, 장애 학생들에게는 휴학도 또 하나의 장애물이다. 장애학생은 종종 장기간 수술 혹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지만, 현재 학사제도는 이들을 전혀 배려하고 있지 않다. 사유를 불문하고 휴학이 가능한 기간을 최대 6학기로 못 박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학사과에서는 자퇴한 후 재입학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지만, 입학금을 다시 마련해야 하는 등 재정적인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소수자를 배려하지 않는 학사제도가 수술비로 고통 받는 장애학생들을 두 번 죽이는 생활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저상버스 도입 발목잡는 본부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C씨는 올해 새 자동차를 마련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장애인용 셔틀버스가 서울대입구역, 낙성대역으로 운행이 안 되기 때문이다. 교내 건물 간 이동은 그나마 편하지만, 학교 밖에서 볼일이 있을 경우 매번 택시를 타야한다. 뇌성마비 장애인 D씨는 일반 셔틀버스를 이용하고 싶지만, 장애인 전용좌석이 없어 탈 엄두를 못 낸다.



학내에서만 운행되는 장애인 전용 셔틀버스. 장애인들은 “장애인을 비장애인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지난해 5월 서울시가 2013년까지 시내버스의 50%를 저상버스로 운행하기로 한 데 이어, 올해는 경기도에서 저상버스 125대를 연말까지 추가로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추세의 이면에는 저상버스를 환영하는 장애인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다. 일반버스의 경우 출입문 발디딤 높이가 40~60cm인데 반해, 저상버스는 20~30cm 수준이어서 장애인들의 승하차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내에서 저상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부의 시선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본부에서는 빠른 승하차가 요구되는 셔틀버스를 장애 학생이 함께 이용할 경우, 순환이 느려져 비장애 학생들의 편의가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안 그래도 셔틀버스를 늘려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빗발치는 판에 순환마저 더디게 할 저상 셔틀버스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인 것이다. 장애인 전용 셔틀버스가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본부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애 학생들이 본부의 교통시스템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운행하고 있는 장애인 전용 셔틀버스는 고작 1대. 절대적인 수가 모자라 서울대입구역이나 낙성대역까지 운행할 여력이 없다. 학내를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복지과 관계자는 “장애 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나 가족생활동으로 이동하는 노선도 버스 기사의 초과근무로 겨우 운영하고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장애인 전용 셔틀버스로 인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분리도 문제다. 지체장애 판정을 받은 문영민(화학 04) 씨는 “같이 수업 듣고 같이 식사하는 친구들이 왜 이동에 있어서는 ‘전용버스’라는 수단으로 분리돼야 하느냐”며 불만을 제기했다.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인간관계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2002년부터 지속적으로 있어왔지만, 본부는 장애인 전용 셔틀버스가 있다는 핑계로 저상 셔틀버스의 도입을 늦추고 있는 상황이다. 문 씨는 장애인 전용 셔틀버스가 저상 셔틀버스의 도입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덧붙이며, 저상 셔틀버스 도입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견을 밝혔다.


장애학생들에게는 너무 먼 강의실

지난해 장애인특별전형으로 입학한 D씨. 인문대 8동 수업을 듣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인문대 한 바퀴를 돌아야 했다. 매주 2번씩은 이래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졸업을 앞둔 시각장애인 E씨. 졸업학점이 15학점 남았지만 막막하다. 이동이 불가능한 강의실이 있기 때문이다. 강의실을 옮겨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번에도 거절당할 것 같다.


학생회관에 설치할 예정이었던 장애인 전용 리프트는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이유로 설치되지 않았다. 승강기가 서지 않는 층은 장애인들이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승강기가 설치된 건물은 117개 동, 전체의 53.8%다. 지체장애 학생들이 2층 이상의 강의실을 이용할 수 없는 건물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점에서 볼 때, 이는 매우 낮은 수치다. 그나마 이러한 건물은 지체장애 학생들이 1층이라도 쓸 수 있다. 경사로가 없어 아예 출입이 불가능한 건물도 전체의 25%나 된다.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원하는 강의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미향 씨는 "지체장애 학생들이 듣지 못하는 수업이 어림잡아 절반 정도는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부에서는 그런 장애 학생들을 위해 강의실을 변경해주는 학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장애 학우들의 수강신청이 미리 이뤄지고, 필요한 경우 교수에게 얼마든지 강의실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문영민 씨는 “수강인원이 맞아 떨어지는 1층 강의실을 찾기 힘들고 교수마다 각자 선호하는 강의실이 있기 때문에, 강의실 변경을 요청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듣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강의실 변경 여부가 교수 개인의 재량에 달려있는 한, 제도는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의가 이뤄지는 건물은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이다. 행정 및 편의시설의 승강기 설치율은 27.6%에 불과하다. 특히 각종 동아리방이나 편의시설이 밀집돼있는 학생회관의 경우에는 지체장애 학생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곳도 있다. 반층으로 설계된 학생회관의 구조상, 승강기가 두 개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만 설치돼있기 때문이다. 계단에는 장애인용 리프트를 설치하기 위한 구조물만 앙상하게 남아있을 뿐, 장애 학우들의 편의는 전혀 배려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려 취미를 즐기기 위해 맘대로 동아리도 들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본부 측은 예산의 한계를 언급하며 장애학우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시급히 확충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손지영 씨는 "학생회관에 승강기가 하나 더 필요하다고 건의했지만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다"며, "지난해에 미대에 1급 지체장애 학생이 입학하자, 강의동에 급하게 승강기를 설치한 것도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대필제, 눈 가리고 아웅하기 식...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F씨. 도무지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다. 옆에서 수업 내용을 속기해줘야 할 근로봉사장학생이 아프다는 핑계로 오늘도 빠졌기 때문이다. 다음 주가 시험인데 걱정이 앞선다. 대책 없이 그저 교수 얼굴만을 바라볼 뿐이다.

거의 모든 강의가 청각에 의존해 이뤄지는 만큼,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대필 제도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학생의 핵심적인 권리인 수업권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와 직접적으로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대필을 담당하는 속기사는 1명뿐이다. 대필을 요하는 청각장애 학생들이 15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복지과에서 속기사를 추가 고용해줄 것을 매년 건의하지만, 예산 때문에 번번이 거절당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복지과에서 근로봉사장학생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매학기 기준에 적합한 학생을 근로봉사장학생으로 선발하여, 청각장애 학생들의 대필을 돕게 하는 것이다. 이 제도 덕분에 인력난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식의 해결이다. 양적으로 봉사자의 수를 늘리는 데에만 집착했지, 질적인 측면의 고려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근로봉사장학생이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전문적인 인력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분당 600타’ 이상이어야 한다지만, 검증상의 어려움으로 실제 선발 과정에서는 그 기준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성실한 학생이 선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완성도가 부족한 제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도 성별이 있다고요!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G씨. 볼일이 급해서 대학원기숙사 화장실을 찾았다. 하지만 일을 해결하기는커녕 기분만 상했다.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장애인 화장실로 나뉘어있었기 때문이다.


919동 화장실. 신식건물의 장애인 전용 화장실에는 대부분 남녀 구분이 없다. 장애인은 제3의 성이라는 인식이 화장실 설계에서부터 드러난다.
장애인이 외부 출입을 꺼리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 문제다.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한, 이들의 이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문제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장애인 화장실 설치기준이 마련되는가 하면, 장애인 화장실의 구비 여부가 건물사용 허가 기준으로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서울대학교에도 신축 건물에는 장애인 화장실을 필수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남,녀 구별없이 장애인 화장실만 덜렁 설치되는 경우다. 남성, 여성이 아닌 '장애인'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이면서 이들은 순식간에 무성화된 존재가 돼버린다. 법령에 관련 규정이 없다보니, 설계 과정에서부터 아예 장애인의 성별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 화장실을 갖추었다는 사실 자체에만 관심을 둘 뿐, 시설을 실제로 이용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부족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