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 > 특집
사라지는 담론, 위태로운 복지 학내에서 장애인권 담론 사라져, 새로운 의제 발굴에 힘써야 할 때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이진혁 기자 (hyugin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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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장애인 복지에 관해선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서울대학교의 장애학생 복지수준은 불과 2,3년 만에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이는 학내에서 꾸준히 장애인권에 관한 담론이 재생산됐기 때문이다.

김미향(종교 06)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연사팀) 팀장은 지난 2002년 도입된 ‘장애학생특별전형’을 학내 장애인권 담론이 확산된 계기로 꼽았다. 장애학생의 기본적인 수업권조차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애인 입학이 시행되면서 장애인 수업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커졌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2003년부터 연사팀에서 활동한 김원영(사회 03) 씨는 “03~04년에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시설이 없었다. 심지어 장애인 전용 책상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며 당시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 교육권에 관심을 가진 여러 단위가 모여 연사팀이 설립됐고, 이를 중심으로 학내에서 장애인권에 관한 운동이 펼쳐졌다. 김원영 씨는 “지금과 비교해 당시에는 장애인권 운동을 하는 주체가 많았다. 이는 2001년에 시민사회로부터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부터 영향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 전반적인 흐름에 발맞춰 장애인 스스로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집단적인 해결을 강구하게 됐다. 이런 흐름이 서울대학교 내에서도 진행된 것”이라며 당시 운동이 활발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김원영 씨는 “장애인권은 비교적 대중성이 있는 담론이었다. 90년대 후반부터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의 열기가 빠르게 식었지만 이에 대비되는 운동으로서 여성운동과 환경운동, 장애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장애를 가지지 않은 학생들의 공감이 컸던 것도 당시 장애인권 담론이 활발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꼽았다.

이 당시 논의를 바탕으로 지난 2003년 9월에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만들어졌다.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설립되면서 이동차량지원, 대필도우미제도 등 장애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하나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현재의 장애학생 복지에는 학내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장애인권 담론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2006년 이후 급속히 사라진 장애인권 담론
김미향 씨는 “2006년 이후 학내 장애인권에 관한 담론은 급속하게 침체했다. 작년에는 연사팀조차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다. 학내의 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도 잘 되지 않고,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장애인권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총학생회선거 기간에도 장애인권이 부각되지 않았다. 일부 선본에서 문제 지적이 있었지만 예년과 같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08년 새맞이에서도 장애인권은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새맞이 기획단을 중심으로 장애인권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단과대는 인문대밖에 없었다. 나머지 단과대학 가운데 과/반 중심의 논의가 진행되는 곳이 있었지만 이 역시 소수에 불과했다.
김원영 씨는 학내에서 장애인권 담론이 사라진 것의 원인으로 가장 먼저 “장애학생이 생활하면서 체감하는 어려움이 줄었다”는 것을 꼽는다. 김 씨는 “지금도 학내에서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면 어떻게든 생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권 담론도 정체된 상태”라고 말했다. ‘투쟁’을 해서 무언가를 ‘쟁취’할 정도로 현실이 절박하지 않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지난해 서울대 대학생사람연대 대표를 맡았던 김희선 (국문 04) 씨도 이와 관련해 “장애인권 담론이 예전보다 약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아직까지 장애인 이동권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인권과 관련한 새로운 의제도 발굴해야한다”고 말했다.

장애인권 담론, 끊임없는 재생산 필요해
장애인이 생활하기 적합한 환경이 됐기 때문에 장애인권 담론이 사라지게 됐으므로 이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김미향 씨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도 과거에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달성된 것이다. 현재 상태가 완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꾸준한 비판이 있어야 앞으로의 복지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덧붙여 “행정적 부분을 해결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다. 장애인지원센터나 본부 측도 예전에 비하면 학생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장애인권이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고, 누구도 장애인권을 말하지 않는 현실”이라며 현재 학내에서 장애인권 담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김원영 씨는 “장애인권 담론이 사라지면 앞으로 문제가 있을 때 장애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창구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지원센터는 행정기구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게 김 씨의 지적이다. 김 씨는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이라는 특수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권 담론은 신체, 다양한 욕구,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담론임을 인식해야 한다”며 장애인권 담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