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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저널 기네스 기록을 찾아, 누가 누가 잘하나 ‘서울대저널’ 제호를 달기 시작한 통권 47호부터 100호까지, 9년의 기네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문지선 기자 (mnjs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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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만 있는 아이는 어리석다’란 아이슬란드 속담은 비단 육아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게다. ‘편집실에만 있는 기자는 어리석다!’ 책 한 권 한 권 낼 때마다 이 말을 몸소 실현하는 기자들은 언제나 눈으로 귀로, 그리고 다리로 기사 쓰는 데 몸을 바치곤 한다. 그러다보면 뜻하지 않게 만의 기네스를 남기기도 하는데, 통권 100호까지 소소한 기록을 남긴 기자들, 누가 어떤 기록을 세웠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1. 한 호에 가장 기사를 많이 쓴 기자
월간지 을 내기 위해서 가장 ‘빡센’ 한 달을 보냈던 기자는 누구일까. 바로 이진혁 현 편집장이다. 그는 2009년 6월 통권 97호에서 무려 27페이지를 맡았다. 그 중 기고를 제외한 24페이지의 기사가 이진혁 당시 기자의 이름을 걸고 등장했다. 기획 ‘특수고용직, 자본이 낳은 기형아’를 맡은 이 기자는 이것도 모자라 고정코너에서만 다섯 코너를 더 맡았다. 기획을 위해 대전으로 내려간 그는 간 김에(?) 광주로 가 ‘사진으로 보다’에 518 광주항쟁의 기억을 담았다. 대전, 광주 찍고 ‘우리가 만난 사람’ 코너를 위해 부산까지 내려가 최민식 사진작가를 만났다. 저널의 홍길동이 돼버린 그는 5월 한 달 동안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그에 비해 그가 학교에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는 “21학점으로 시작했던 학기는 12학점만이 남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뿐이 아니다. 마감이 한창 진행되던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겹쳤다. 역시 그가 기사 ‘盧, 그가 떠난 자리에서’에 서거 이후 학생들의 표정을 담았다. 독자들은 이 학기 저널 기자상 수상자를 어렵지 않게 짐작했을 것이다. 바로 이진혁, 욕심쟁이 우후훗!

2. 가장 긴 제목을 가진 기사, 가장 짧은 제목을 가진 기사
2009년 6월 통권 97호의 “노동부가 앞장서 노동자를 압살,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인정이 시급”은 가장 장황한 제목을 달았던 기사로 기억된다. 보통의 헤드라인은 간결함이 생명이건만, 이 기사의 제목은 무려 27자다. 부제는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말하는 특수고용직 문제 해결방안’으로 만만치 않게 길지만 제목이 더 길다는 점이 남다르다. 기사를 쓴 김진용 기자는 “홍 의원의 발언을 끝내 추리지 못하고 그대로 실었다”며 “심지어 기사 분량은 적다”고 스스로도 신기해했다.
반면 가장 짧은 기사 제목은 박원아 기자의 ‘밥!밥!밥!’으로 2002년 4월 통권 52호에 실렸다. 학내 식당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를 알아본 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 가장 인기가 높은 식당은 음미대 식당과 동원관이었다. 고정코너 기사 제목으로는 2009년 4/5월 통권 96호의 ‘꿈’이 가장 짧다. 이 코너를 맡았던 박수경 기자에게 소감을 묻자 “이런 기네스는 하지마”라고 하며 매우 황당함을 드러냈다.

3. 기자들, 가장 멀리 간 취재는 어디까지? (km 기준으로)
서울에서 9692.351km 떨어진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기사를 보내온 이미하 객원기자가 1위로 꼽혔다. 그는 2008년 12월 통권 94호의 기사 ‘테러로 얼룩진 독립 움직임’에 스페인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교환학생으로 결정된 때부터 객원기자로서 스페인에 관련된 기사를 쓰려 구상했다고. 소감을 묻자 그는 웃음과 함께 “한국에 돌아오면 밥을 산다던 당시 편집장으로부터 연락이 없다. 빠른 연락 바란다”고 전했다. 당시의 편집장을 기사에서 밝히지는 않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상봉 있으시길.
국내에서는 제주도 제주시 한림오일장의 풍경을 ‘사진으로 보다’에 담은 김소라 기자, 김규래 기자가 455.253km로 가장 멀리 갔다. 김소라 기자의 “고향의 풍경을 담을 수 있어 좋았다”는 소감에 훈훈함이 전해왔다. 기사에는 김소라 기자의 아버지께서도 깜짝 등장하셨다니 다시 봐도 좋을 듯하다.

4. 질뿐만 아니라 양으로도 승부한다! 가장 많은 기자가 활동했던 학기와 가장 두꺼웠던 책
의 분량은 보통 90페이지를 넘나든다. 2006년 6월 통권 79호는 134페이지로 가장 꽉꽉 기사들이 들어찬 책이다. 일명 ‘사기치지 맙시다’란 제목을 단 79호는 황라열 전 총학생회장 사건 초점 기사, 대추리 특집 기사 등 총 39개의 기사가 실려 풍성함을 자랑했다. 당시 마감이 끝나고 황라열 씨 탄핵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기사량이 평소보다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79호에 초점 기사 ‘황라열 씨, “자진 사퇴는 없다”’를 비롯해 가장 많은 기사를 실은 김도원 기자는 기네스에 선정된 소식에 한동안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는 “정기자 첫 학기라 의욕을 불태웠다”며 “취재와 기사 쓰기가 힘들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재밌게 했다. 학생사회가 지금보다 더 관심받던 시기였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가장 많은 기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2005년 2학기, 서울대저널 공채 9기 수습기자 모집에는 무려 18명이 지원했다. 05학번 새내기부터 01학번까지, 인문학부생부터 전기공학부생까지 그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당시 이유미 편집장은 고정코너 ‘편집실에서’에서 ‘작은 입시’란 제목의 글로 그 때의 난감함을 전했다. 당시 수습기자로 지원했던 박진광 기자는 “수습기자가 너무 많아 대형 강의실을 빌려 수습교육을 하고 좌석표까지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많다보니 국제부, 정치부, 경제팀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5. 가장 오래 한 인터뷰 시간은?
가장 오래 한 인터뷰 기록은 6시간으로, 송두율 교수를 독일 베를린 자택에서 만난 정원일 기자가 차지했다. 베를린 어학연수 중이었던 정 기자는 송두율 교수를 만나 거의 하루를 같이 한 셈이다. 2008년 3월 통권 89호에 실린 “지금 동북아 현실에서 탈민족은 위험한 발상”은 공식 인터뷰만 3시간 걸렸다. 여기에 식사와 술자리에서의 대화가 이어져 결국 정원일 기자는 6시간을 채운 후 막차를 타고 베를린자유대 기숙사로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후유증으로 다음날 학교에 가지 못해 납치된 것 아니냐는 온갖 소문까지 돌았다고. 송 교수를 만난 소감을 묻자 그는“송 교수는 독일에 40년 넘게 살면서도 조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며 “그 생각에 전부 동조할 수는 없지만 경계인의 지위에서 남과 북을 아우를 수 있는 학자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지하게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