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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N 늬우스 <서울대저널>의 숨겨진 이야기를 집중보도하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강은하 기자 (s11alic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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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SJN 뉴스 앵커 이진혁입니다. 오늘은 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건들을 집중보도 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소식입니다. 기존 비공식적으로 점유됐던 의 공간이 공식적인 편집실로 등록됐다는 소식입니다. 박수경 기자?
기자: 네, 박수경입니다. 의 전신 는 기존 대학원생자치회의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학내 분위기의 변화로 대학원생자치회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의 취지를 인정한 대학원생자치회에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줬던 것입니다. 이렇게 비공식적이었던 의 활동공간이 학생회관의 건축과 함께 6층에 공식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는 자치언론으로 등록되고 단독 편집실과 전화회선을 가지게 됩니다.

앵커: 편집 공간을 확보한 는 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백지제호. 보도에 문지선 기자입니다.
기자: 문지선입니다. 2001년 9월호는 백지제호로 발행됐습니다. 21세기진보학생연합의 정치신문에서 출발했던 는 지금까지 뚜렷한 정치적 주장을 피력해왔습니다. 의 기자들은 긴 논의를 통해 정치색을 벗고 로서 새로운 방향을 도모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백지제호는 대중성과 전문성, 객관성을 제고해 새롭게 거듭난 의 의지 표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화제가 됐던 표지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통권 제 78호에 표지에 ‘편집장 부고’가 실렸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권형구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기자: 권형구 기자입니다. 통권 제 78호에는 편집장 부고가 실렸습니다. 살아있는 편집장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당시 특집이 댓글, 낚시글을 분석한 기사였고 그것이 커버스토리로 이어졌습니다. 표지 사진도 파닥파닥 등의 댓글과 관련된 사진이었고 같은 맥락에서 장난스러운 부고를 실었던 것입니다.
기자: 편집장은 안에 ‘낚이셨나요? 편집장은 과로했지만 사(死)하지는 않았습니다’라는 해명을 달아놓았습니다. 편집장 부고를 둘러싼 반응은 ‘재밌다’ ‘표지에 장난을 쳤다’ 등으로 분분하게 나뉘고 있습니다.

앵커: 통권 제 78호에 이어 통권 제 79호의 황라열 씨 표지 역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계속해서 보도에 김진용 기자입니다.
기자: 황라열 씨는 총학생회 선거 당시 ‘사기 치지 맙시다’라는 슬로건으로 운동권 선본들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황라열 씨는 임기 기간 동안 각종 이력과 활동의 진위에 대한 진실공방에 휩싸였습니다. 통권 제 79호에는 황라열 씨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사기 치지 맙시다’라는 슬로건이 실렸습니다.
인터뷰: 황라열 씨와 대립하는 운동권을 대변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황라열 씨가 ‘사기 치지 말라’는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짓말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비판하고자 슬로건을 그대로 이용한 것입니다. 표지의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 몇몇 기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기 치지 맙시다’라는 사진 이외에는 아무런 기사 소개를 싣지 않았습니다.
기자: 공교롭게도 황라열 씨의 사진이 단독 표지로 발행된 날은 황라열 씨의 청문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청문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에 높은 관심을 보였고 배포된 은 유례없는 속도로 동이 났습니다.

앵커: 현재 은 02학번부터 09학번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반면 한 때는 동갑내기로만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임현정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2004년 을 꾸려갔던 9명의 기자들은 모두 03학번 동갑내기였습니다. 동기들만 남은 상황은 자칫 의 위기가 될 수 있었지만 당시의 기자는 오히려 모든 기자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전력투구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합니다. 을 직접 만들어 가는 재미 역시 굉장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기자들은 2004년이 지나고 나란히 20대, 21대, 22대 편집장을 지내며 을 버티는 기둥이 됐습니다.

앵커: 의 조직 구성은 시대의 변화와 기자들의 요구에 의해 변화합니다. 2006년에는 경제부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보도에 김가해 기자입니다.
기자: 통권 제 78호에서 통권 제 82호까지 에는 경제부가 존재했습니다. 경제부가 자리 잡기까지 기자들 간의 많은 논쟁과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인터뷰: 내에 ‘너무 많은 부서가 형성됐다’는 조직의 비대화 문제, ‘경제부가 계획한 기사들이 에 걸맞은가’하는 의 정체성 문제 등이 불거졌습니다.
기자: 경제부의 전신인 경제팀이 보도한 대학생 재테크 기사 역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재테크 기사에 반대한 기자들은 경제와 관련된 기사들이 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재테크 기사를 지지하는 기자들은 기사가 정보제공에 그치지 않고 재테크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는 점, 다양한 독자층을 위한 기사를 제공해야한다는 점을 들어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란의 배경에는 다양하고 풍부한 을 만들기 위한 기자들의 고뇌가 있습니다. 실제로 2006년은 기사의 형식과 내용이 다양해지고 칼라 출판이 도입되는 등 많은 변신의 노력이 있었던 해였습니다. 재테크 기사와 경제부 신설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의 변신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앵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온 은 2008년 선거신문 영어판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보도에 양정숙 기자입니다.
기자: 2008년에 발행된 선거신문에는 영어로 쓰인 지면이 실렸습니다. 외국인 대학생과 다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던 시점에서 은 외국인 대학생들의 투표권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최초로 시도된 영문 기사 작성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처음에는 단지 한글 기사를 영문으로 번역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어려울 거라는 예상은 못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죠.
기자: 계속된 밤샘 작업으로 만들어진 선거신문의 영어 지면은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던 참신한 시도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앵커: 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동맹휴업 당시 현장을 실시간 보도했습니다.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권형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2008년 6월 4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동맹휴업 총투표가 가결됐습니다. 제 51대 총학생회는 6월 5일부터 동맹휴업을 선포했고 약 1500명의 학생들은 집회에 돌입했습니다. 은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동맹휴업 선언과 궐기대회, 거리집회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도했습니다.
인터뷰: 궐기대회와 집회 현장을 취재한 뒤에 근처 PC방에서 블로그나 스누라이프에 기사를 계속해서 올렸죠. 현장을 지킨 덕분에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이장무 총장과 이정재 학생처장이 귀가를 촉구하는 모습도 실시간으로 알릴 수 있었습니다.
기자: 9신에 걸친 속보를 보도한 특별취재팀은 기말고사 기간에 계속된 철야 취재로 인해 몸살을 앓는 등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앵커: 앞으로도 치열한 기사를 약속하는 의 소식은 이후 계속 보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준비한 SJN 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나날이 쌀쌀해지는 겨울 길목,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