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호 > 특집
문화의 탈을 쓴 경제논리, 서울을 접수하다 컬쳐노믹스를 내건 ‘창의문화도시 서울’ 마스터플랜 짚어보기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양정숙 기자 (dorothyv@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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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가운데 서있는 세종로의 충무공 이순신상.


‘컬쳐노믹스’? 알쏭달쏭하다. 신조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터득한 감으로 짐작하자면 컬쳐는 우리가 아는 그 컬쳐(culture), 그러니까 문화일 테고 노믹스는 경제(economics)의 줄임말인 것 같다. ‘컬쳐노믹스’는 덴마크 코펜하임대 피터 듀런드 교수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문화가 갖는 경제적 가치를 의미한다니 추측이 어느 정도는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가 바로 이 ‘컬쳐노믹스’를 핵심전략으로 하여 ‘창의문화도시 서울’을 조성하겠다고 하는데, 시작부터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문화는 돈인가?

2008년 4월 서울시는 ‘창의문화도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마스터플랜의 첫머리에는 ‘문화는 돈입니다. 그러나 문화가 돈이 되기 위해선 환경이 필요합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서울시 측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GRDP(지역내총생산) 증가율은 95년에 5.7%였으나 2005년에는 1.3%로 크게 낮아졌다. 또한 제조업 성장률은 2005년부터 마이너스대를 기록하면서 제조업은 사실상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 이에 서울시는 문화를 원천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컬쳐노믹스’를 도시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핵심전략으로 삼았다.
그런데 ‘문화가 돈이다’라는 말은 너무나 자극적이다. 참여연대 홍성태 정책위원장은 “이런 발언은 서울시의 천박하고 저열한 수준을 드러낸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서울시가 기존 공간을 없애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재개발 사업을 합리화하기 위해 문화를 개발논리로 포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영리단체인 ‘문화우리’의 최미영 연구원 역시 “문화라는 것은 특정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습관이 축적된 것으로 고유한 특색을 갖는다. 그런데 (서울시가) 개발논리로 단기간에 형성한 것들을 문화라고 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오만”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부실한 문화의 ‘알맹이’, 사업 추진에 혼선 겪는 행정당국

1960년대 당시의 청계천변 판잣집과 2007년 서울시에서 복원한 판잣집들. 복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괴리가 크다.


‘문화가 돈’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자체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돈이 될 ‘문화’ 자체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 사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유적인 석축을 모두 걷어낸 이력이 있다. 지난 해 5월 관광객 1200만명 유치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9억여 원을 들여 마장동 청계천 문화관 앞에 1950∼60년대의 판잣집을 복원했다. 한국 전쟁 이후 가난했던 시절의 모습을 재현하여 역사 체험 공간을 만든 것이다. 취지는 좋지만 이러한 서울시의 행보는 아이러니하다.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서민들을 그들의 보금자리로부터 강제로 떠나게 한 장본인 역시 서울시였기 때문이다. 디자인거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노점상을 철거하면서 폭력을 동원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이번호 30쪽 기사 ‘?????’ 참조) 참여연대 홍성태 정책위원장은 “(서울시가) 실제 판잣집에 거주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생존의 극한으로 몰아넣으면서 그들의 삶을 볼거리로 만드는 것은 그들에 대한 우롱”이라며 판잣집 복원사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창의문화도시’ 투자계획 전체 예산은 약 1조 8532억원 가량인데, 이 가운데 10%가 넘는 2173억원이 역사 복원사업에 쓰이게 된다. 역사복원사업은 크게 서울역사 복원, 근현대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 성북동 관광문화체험 등의 세 가지 분야로 나뉜다. 서울역사 복원사업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고대사 부분까지 포함해 삼국시대의 수도였던 서울의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다. 성북동 관광문화체험 사업은 이미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삼청각이나 북촌한옥마을을 주 대상지역으로 하면서 옛 가옥과 명원다례체험관 등과 같은 명소들을 새롭게 포함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건물인 경교장.


그런데 근현대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 사업은 ‘정부수반 유적’을 공간문화화한다는 점에서 사업의 경제성과 타당성이 다른 사업들에 비해 떨어진다. 서울의 문화유산은 근현대의 정치사보다는 그 이전에 오랜 기간동안 유지됐던 역사문화에서 유래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광복절에 광복 63주년이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이 이들 정부수반 유적에서 진행됐다는 점도 사업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정부수반 유적에는 경교장, 이화장 및 장면·윤보선·박정희·최규하 가옥 등 총 6채의 건물이 지정돼 있다.
그러나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전우용 교수는 “한국 관광객들이 해외여행을 가서 그 국가 수상의 집을 방문하는가”라며 정부수반 유적 지정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전 교수는 장면·윤보선·박정희 가옥 많은 예산을 들여 관광자원화하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정치과잉 상태였다는 것을 구태여 밝힐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근현대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라는 사업 목적과는 달리 이 사업의 담당자인 서울시 정부수반문화재과 김수정 학예연구사는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 아니다”라고 밝히는 등 사업추진을 담당하는 행정당국 내부에서도 혼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은 역사복원 사업뿐만이 아니다. 한강 공간문화 조성사업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 설립계획 역시 현재 답보상태에 놓여있다. 이 사업은 2012년 수명을 다하게 되는 당인리 화력발전소 부지를 활용하며,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지 전체에 문화창작발전소를 유치하려는 마포구와, 수도권 비상전력을 책임질 여분의 발전기기를 부지 지하와 일부 지역에 남겨놓아야 한다는 한전과 지식경제부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마포구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관련 태스크포스가 회의를 진행했으나 문화창작발전소의 소프트웨어적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혀 사업이 난항에 빠졌음을 밝혔다.

디자인 컨벤션 사업 유치에 일반 시민들은 배제돼 있어

2012년 세계디자인수도를 유치한 서울시는 이를 계기로 서울시의 이미지를 기존의 양적 성장과 관련한 ‘하드시티(Hard City)’에서 높은 수준의 디자인을 구현하는 ‘소프트시티(Soft City)’로 전환하고자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0월 열리는 서울디자인올림픽도 그 중 하나다. 서울디자인올림픽은 디자인서울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외국의 선진 디자인 사항을 교류하며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디자인을 친숙하게 느끼게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다. 세부사업으로는 공공디자인 공모전을 열어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고, 우수디자인을 서울시 건축물에 시범적으로 반영할 계획도 세워져 있다.
그러나 디자인올림픽 공모전의 심사 기준에는 국내외 활동 경력이나 입상 경험이 포함돼 있어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일반인은 입상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디자인서울 총괄본부 이재근 주임은 “활동 경력이나 입상 경험은 단순한 참고자료로만 사용될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화우리’ 최미영 연구원은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공모전에서 수상경력이나 국내외 활동 경력을 보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아예 이력서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이는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유치하고자 하는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선정한 서울 상징 아이콘 해치.


한편 서울시는 올해 5월에 서울시의 상징아이콘으로 ‘해치’를 선정했다. 분명 ‘서울 600년 역사를 함께 해온 친숙한 동물’이라는데 서울시민 대다수는 생김새는 둘째치고 이름부터 낯설어한다. 서울을 상징하는 아이콘을 선정과정하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서울 상징아이콘 선정 과정에서 각각 한번의 설문조사와 청문회를 열었을 뿐이다. 설문조사 역시 그 표본의 수가 시민 500명과 외국인 500명으로, 천만명이 넘는 시민 전체를 대표하기에는 매우 부족했다. 서울시를 대표할 아이콘을 선정하면서 시민의 의사는 0.01%도 수렴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그 결과물인 ‘해치’가 시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조차 낯설어 하는 상징물이 과연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원칙 없는 개발보다는 시민과의 수평적 소통이 시급

‘서울은 깊다’의 저자 전우용 교수는 서울시 당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각종 개발사업에 비판적인 시각을 피력했다.


전우용 교수는 “여태까지 서울은 쉼 없이 발전해왔다”고 평가하며 “이제는 건설업자들의 압력에 밀려 무리한 개발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도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서울시를 누구보다 시민들이 안락하게 살면서 생활 속에서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가꿔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전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도시 경쟁력 향상의 성패를 가를 요건으로 서울시 당국과 시민들 간의 적극적인 소통을 꼽았다. 지금까지 시민을 대표하는 서울시 의회가 있었고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시장도 있었지만, 당국과 시민들 사이에 실질적인 소통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자연스레 서로 간에 서울의 발전 방향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도 형성될 수 없었다.
“서울이 관 위주의 개발정책으로 일괄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이 오로지 집값 하나에만 관심이 있어 자신이 사는 공간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관에 양도해버린 탓이다.” 전 교수는 그동안 서울시 당국과 시민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관료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공간’에 대한 의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