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호 > 특집
직장여성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일과 가정의 갈림길에 선 직장여성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이지연 (leejy3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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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일과 가정을 병행해야 하는 직장여성들은 직장에 들어가는 순간 출산과 육아의 부담으로 문제를 겪는다.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일-가정 양립제도’가 있지만, 워킹맘들은 “제대로 활용하기 쉽지 않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근로기준법에도 명시돼 있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직장여성의 삶을 조명해봤다.

마음놓고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워킹맘의 현실
지난 10월 8일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키즈푸드페스티벌’은 어린이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을 소개하는 행사로 아이를 둔 부모들이 많이 참석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여성 김모 씨는 막 돌이 지난 딸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아이에게 줄 간식을 챙기기 위해 행사에 참여한 김 씨는 출산휴가 3개월을 채 다 쓰지 못하고 곧바로 직장에 복귀했다. 일반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그녀는 “주변 동료들이 내 업무를 나눠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담이 돼 출산휴가를 다 쓰지 못했다”며 “동료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하고 돌잔치를 한 뒤에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을 대신할 대체근무제도가 활성화돼 있지 않아 휴직한 여성의 주변 동료들이 그 업무를 분담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경기대학교 민현주 교수는 “출산 휴가를 사용하는 여성들은 주변의 시선에 심리적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 2달 정도 휴가를 쓴 뒤 복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민 교수는 “근로기준법에서 육아 휴직은 근속 년수에 포함되기 때문에 여성들이 장기간 휴가를 사용하는 것을 남성들이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며 제도를 활용하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부정적인 시각을 지적했다. TV조선 이유진 기자도 “공영방송국 일부에서는 여러 제도를 이용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출산휴가 외에 다른 제도를 이용하기 쉽지 않다”며 “되도록 자리를 오래 비우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키즈푸드페스티벌’에서 워킹맘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출산․육아 휴가를 쓰는 여성들이 승진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김 씨는 “주변의 동료 여성들이 3개월의 출산휴가를 다 쓰고 복귀하자 상사가 눈치를 주는 모습을 보고 신경이 쓰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규정된 휴가를 다 쓰고 복귀하게 되면 승진에서 불이익을 본다는 인식이 있어 여성들은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직장여성 이모 씨는 “휴직을 사용할 경우 해당 기간을 전후해서 업무 성과가 좋을 수 없고 승진 누락이나 부서 이동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대학도 워킹맘의 문제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민현주 교수는 “방학이 있기 때문에 출산을 가능한 한 방학에 맞춰 하게 되는 분위기”라며 “대학은 비공식적인 근로시간이 길고 출산 여성에게도 다른 사람과 비슷한 성과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여성에게 비친화적이라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대학원생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원생 A씨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점과 학교 차원에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그는 “집안일을 병행하면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학생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어, 결국 박사과정을 수료만 한 채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슈퍼맘을 요구하는 사회
워킹맘들은 집에서는 엄마와 아내로서, 밖에서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일과 가정 둘 다 충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워킹맘연구소 이수연 소장은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놓고 일터에 나가면 제대로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고, 집에 돌아오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 소장이 주최한 워킹맘 세미나에서는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직장여성들의 고민과 애환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워킹맘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아이가 어린이집 시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극심한 우울증을 느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소장이 “누구나 그러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위로하자, 워킹맘들도 가정과 일터에서의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이기고 안도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여성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워킹맘연구소 이수연 소장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서 성공한 여성으로 꼽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은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다. 경기대학교 민현주 교수는 “일부 여성들이 조직 내 차별이나 유리 천장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소수자로서의 특혜를 일반화시켜 전반적인 직장여성 문제의 심각성을 자칫 흐릴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민 교수는 “일부 여성들의 경우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덜 느낄 수 있지만, 이를 두고 ‘능력만 있으면 된다’라고 하는 것은 여성들이 겪는 부담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 덧붙였다. 워킹맘연구소 이수연 소장 역시 “대다수의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만큼 이들에 대한 배려가 절실히 요구된다”며 여성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직장인 김모 씨도 “‘다른 직장여성들은 잘 하는데 당신은 왜 못하냐’라는 말을 듣고 차별을 느꼈다”며 “보편적인 기준으로 워킹맘의 문제를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워킹맘 문제, 경력 단절과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져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경력 단절’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20대 중후반에서 시작된 경제활동이 결혼적령기와 출산․육아기를 거쳐 중단되고 자녀들이 성장하고 나서야 다시 여성들의 경제활동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뒤늦게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장기간 휴직으로 인해 조건과 맞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노동시장에서 사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워킹맘연구소 이수연 소장은 “‘몇 년만 아이를 돌보고 사회에 복귀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 일을 그만두지만 나중에 사회에 복귀하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키즈푸드페스티벌’에서 만난 주부 박모 씨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과 가깝고 출퇴근 시간이 일정한 직장을 구하려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며 “결국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포기하고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대학교 민현주 교수는 “여성 자신에 대한 교육 투자비용과 경력 단절기간에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비용을 포함하면 이는 엄청나게 큰 사회적 비용”이라고 지적했다. 고학력 여성들이 결혼과 육아 문제 때문에 가사 노동에 전념하는 것은 큰 국가적 손실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호적인 육아 환경
제도의 효율적인 활용도 중요하지만 직장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우호적인 육아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주부 박 씨는 “주변에서 조금만 배려해줬더라면 지금쯤 직장에 다니고 있을 것”이라며 전업주부가 돼 버린 현재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박 씨는 “기업에서 육아환경에 신경을 써주지 않았고 친정이나 시댁에서도 아이를 돌봐줄 수 없었다. 육아 도우미 비용도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원생 A씨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대기 신청을 했다. 1년에 12명이 입소하는데 대기번호만 40번 대였다”며 당시 힘들었던 상황을 털어놨다. 아이를 키우고 돌봐줄 환경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여성들이 직장에서 활발한 성과를 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성들에게 우호적인 출산‧육아 환경을 강조하는 경기대학교 민현주 교수

이에 경기대학교 민현주 교수는 “CEO의 한마디가 기업 문화를 크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만큼 그들이 워킹맘에게 보다 우호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민 교수는 최근 모 기업의 회장이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시사하자 여성 근로자의 승진과 채용이 늘어난 일화를 들면서 “현실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임을 강조했다. 워킹맘연구소 이수연 소장도 “아이의 엄마, 아빠, 기업, 정부의 고른 협조가 있어야 여성의 가정과 직장 병행이 가능할 것”이라며 일하는 여성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