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호 > 특집
인문대 X반 카톡방 성폭력 사건, 어디까지 왔나 대자보 게시 이후 두 달을 짚어보다
등록일 2016.09.16 00:56l최종 업데이트 2016.09.21 18:10l 신일식 기자(sis62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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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일, 학내 곳곳에는 대자보가 걸렸다. ‘서울대 인문대학 카톡방 성폭력 고발’이란 제목의 자보였다. 대자보에는 남학생들이 모인 한 카톡방에서 오고간 성적대상화 발언의 일부가 담겨 있었다. 대화 내용은 동기 여학생, 과외 학생,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 남자 선배 등 광범위한 대상에 대한 성적대상화를 포함하고 있었다. 대자보를 계기로 이 사건은 주요 언론사를 통해 보도되며 빠르게 공론화됐다. 과연 공론화 이후 사건은 얼마나 ‘해결’됐을까. 대자보 게시 이후 기자회견까지 사건 개요를 피해자의 인권회복 상황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피해자 인권 고려하지 않은 언론 보도


  인문대 카톡방 성폭력 사건 공론화의 계기는 올해 6월 발생했던 ‘고려대학교 카톡방 사건’이었다. 인문대 카톡방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은 사건을 공론화할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고려대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에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의 모습을 보고 공론화를 결심했다. ‘서울대 인문대 X반 단체카톡방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관계자는 “가해자들 중 일부가 고려대학교 카톡방 사건의 피해자들이 너무 예민하다며 비난하는 대화로 인해 피해자가 공론화를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자보 게시 이후에도 일부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피해자 인권회복은 더디게 진행됐다. 몇몇 언론은 ‘서울대학교에서도 카톡방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을 뿐,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사건을 최초 보도한 <YTN>의 경우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사건을 보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실관계까지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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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 직전의 대자보. 2달간 붙어 있으면서 해어진 흔적이 엿보인다.  ⓒ한민희 사진기자


  당시 피해자들은 사건 공론화 이전까지 기사화를 원하지 않아 학과 관계자를 포함한 소수의 학교 관계자들에게만 피해사실을 알린 상태였다. 하지만 <YTN>은 피해자와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학교 관계자와의 인터뷰만을 근거로 오보를 내보냈다. <YTN>은 최초 기사에서 ‘죄책감을 느낀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사실을 알리면서’ 카톡방 사건이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공대위 관계자가 밝힌 공론화 경위에서 드러나듯 이번 사건에서 죄책감을 느낀 내부 고발자는 없었다. 공대위 관계자는 “<YTN> 보도가 단독보도로 나가면서 조회 수가 가장 높았고, 사건이 잘못 알려지게 됐다. 추후 피해자의정정보도 요청에도 <YTN>은 해당 기사를 정정하지 않았다”며 <YTN>의 보도윤리 부재를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보도도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로 다가왔다. <조선일보>는 사건 직후 가해자 중 한 명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고, 해당 기사에서 가해자는 카톡방에서의 성적대상화 발언들이 ‘순전히 장난’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대위 관계자는 “‘장난’이라는 가해자 발언은 대자보에서 제기한 ‘그럴 수도 있던 일들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를 완벽하게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공대위 관계자는 “가해자의 인터뷰 내용 자체가 상처이기도 했지만, 2차 가해가 분명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가해자의 말을 직접 인용한 언론 역시 문제”라며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를 꼬집었다.



피해자 인권회복 위해 공동대책위원회 조직돼


  언론들이 피해자 인권에 대한 고려 없이 사건을 보도하는 동안, 학생사회에서는 공대위를 중심으로 피해자 인권회복, 가해자 사과와 반성 등의 절차가 조금씩 진행됐다. 공대위에는 총학생회장, 인문대 학생회, 인문대 X반 학생회, ‘피해자대책위원회(피대위)’ 등의 단위가 포함됐다. 사건 공론화 초기에는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가 공대위 구성 단위로 포함돼있었으나, 위원장 사퇴로 학소위 활동이 잠정 중단되며 현재 학소위는 공대위 활동에서 제외된 상태다.


  공대위 측은 사건의 해결에 있어 학생사회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해 인권센터에 사건을 전담시키는 대신 공대위를 조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인문대 대표로 공대위에 참여한 김광민(철학 13) 부위원장은 “각 단위들의 공조를 통해 피해자들의 인권회복과 학생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공대위가 조직됐다”고 말했다. 교내 인권 문제 전담 기구인 인권센터와 대학 본부가 일차적으로 사건 조사 및 가해자 징계를 담당하고 있지만, ▲사건 처리과정 감시 ▲2차 가해 예방 ▲재발 방지 ▲ 공동체의 교훈 마련 등 학생사회의 역할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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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은 오보를 냈고, <Dispatch>는 이를 그대로 옮겼다. <조선일보>는 가해자 인터뷰를 그대로 내보내며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줬다.


  공대위의 다섯 가지 활동 목표는 ▲피해자 인권보호 ▲가해학생 반성과 책임 요구 ▲대학당국의 조치 요구 ▲공동체의 자정 ▲학생사회의 교훈 마련이다. 현재 공대위는 피해자 인권 보호에 주의하는 한편 가해자 반성과 책임 요구 및 대학당국의 조치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광민 부위원장은 “가해자들의 사과문이 공대위 측에 접수됐지만 사과의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재작성을 요구했고, 관련 면담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공대위의 활동 현황을 밝혔다. 이밖에도 피대위가 대학본부 측에 요구한 사항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간 분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공대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남녀 대립이나 갈등으로 해석하지 말 것을 입을 모아 당부했다. 공대위 관계자는 <경향신문>과 피해자의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며 “‘성적 구도에서 어떤 불합리함을 느꼈을 때 그것을 한 쪽 성의 일방적 가해로 치부하는 건 소모적이다’는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며 이 사건을 남녀 대립관계를 통해 바라보거나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이 사건이 더 큰 혐오를 불러오기보다 우리 안에서 반성과 자정 작용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