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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를 교육자로 인정할 수 없다” 학생 인권 향방 가릴 ‘H 교수 사건’, 징계위 결정에 귀추 주목돼
등록일 2017.09.02 21:25l최종 업데이트 2017.09.02 21:25l 김종현 기자(akdtkd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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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강사에게 성적으로 희롱하는 말이나 음담패설을 전화나 만나서 대화하는 중에 들었다.’ 응답자 총 1222명 중 57명, 4.7%.

  ‘2016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환경 조사보고서’ 한 귀퉁이에 담긴 누군가의 경험들이 연구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사회학과 H 교수가 폭언·부당업무지시·성희롱 등 학생에 대한 지속적인 인권침해 행위로 직위해제 돼 징계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대학원생의 적극적인 공론화와 각계의 연대로 거둔 성과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안심할 수 없다. 인권센터가 권고한 대로 H 교수가 3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는다면, 그들의 일상은 다시 익숙한 폭력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등잔 밑 폭력이 수면 위로

  H 교수는 2010년 부임한 뒤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인권침해를 자행했으나, 피해자를 고립시켜 공론화 가능성을 차단했다. 대학원생 A(사회학과 박사과정)씨는 “예전부터 H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심각성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사태의 심각성이 알려진 건 3월 13일 사회학과 교수회의에서였다. 피해자들과 동료 대학원생들이 모여 구성한 ‘사회학과 대학원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이날 회의에서 몇 달에 걸쳐 조사한 피해사례를 발표했다.

  이후 인권센터 조사에서 광범위한 인권침해 사실이 드러났다. 욕설과 폭언은 다반사였고, H 교수는 학부강의에서 학생에게 공개적으로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H 교수의 지도 대학원생들은 그의 집에서 냉장고를 청소하고 곰팡이를 없앴으며, 명절이나 휴일에도 H 교수의 연락에 ‘항시 대기’해야만 했다. H 교수는 지시에 따르지 않는 학생들에게 “(너는) 졸업할 수 없다”고 협박했고, 심지어는 권력관계를 이용해 학생과 교직원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과 성적 발언을 일삼았다.

  대책위는 3월 13일 피해사례를 밝히며 공간분리를 포함한 긴급조치를 제안했고, 사회학과 교수진은 이를 수용했다. 교수진은 H 교수를 학과장에서 면직함과 동시에 학생과의 연락 및 접촉을 금지시켰다. H 교수가 맡았던 수업이 모두 폐강되고, 그의 지도 대학원생들은 새 지도교수를 배정받았다. 학생과 교수가 함께 참여해 학과 내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대처할 ‘사회학과 인권위원회’도 설치됐다. 3월 22일, 대책위와 교수진은 인권센터에 H 교수를 신고했다.


정직 3개월 권고에 학생·졸업자 연대 이어져

  그러나 사회학과 대학원생들은 납득하기 힘든 결과를 마주해야 했다. 6월 15일 인권센터 심의위원회(심의위)는 H 교수에 대해 정직 3개월 처분을 권고했다. 정직 3개월은 서울대에 적용되는 사립학교법상 해임 다음가는 징계 수위지만, 대책위 관계자는 “정직이 끝나고 H 교수가 강단에 돌아오면 2차 가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대학원 총학생회(원총) 이우창(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문위원도 “현 교수 징계규정은 징계보다는 면죄부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징계 조치가 피해자 보호와 사건 재발방지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2학기 수강편람에 H 교수 이름의 강의가 올라왔다가 학생들의 항의로 삭제되면서, 이번 사건에 관심이 증폭됐다. 학부생은 ‘H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모임(학생모임)’을 결성했고, 이에 총학생회와 사회대 학생회,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이 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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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열린 공동기자회견. 이날 사회학과 학부생·대학원생·박사졸업자 총 319명이
연서명한 
H 교수 해임 촉구 의견서를 본부에 제출했다. ⓒ박윤경 기자


  하지만 조사 및 징계 절차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사실상 없다. 현재 H 교수 징계를 심의하고 있는 교원징계위원회(징계위)는 부총장을 포함해 총장이 지명한 교수 10명 이내로 이뤄지며, 피해학생의 진술을 필수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심의위도 인권센터 전문위원과 교직원, 외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다. 이에 대해 대학원생 A 씨는 “심의위나 징계위에서 피해학생의 입장이 대표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계속해서 H 교수의 엄중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8월 10일 사회학과 학부생 123명·대학원생 106명·박사졸업자 90명은 H 교수의 해임을 촉구하는 연서명 의견서를 본부에 제출했다.


대학원생 권리보장 흐름 속 남겨진 징계위 결정

  학생사회는 조사와 징계 과정에 학생의견을 반영할 통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백인범(사회 16) 학생모임 공동대표는 “조사 중 빈번히 일어나는 2차 가해를 막고 학생을 대변하기 위해 (인권센터와 징계위 등) 조사기관에 학생 대표자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총 이우창 전문위원도 “조사기관에 대한 신뢰회복을 위해 학생 참여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 징계규정을 현실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번 연서명에 동참한 사회학과 박사졸업자 한신대 김민환 교수(정조교양대학)는 “현 규정은 정권이나 사학재단을 비판하는 교수에게 돌아올 정치적 보복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1986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파면·감봉·견책이 전부였던 징계에 해임과 정직이 추가됐고, 정직과 감봉 기간이 1~3개월로 한정됐다. 해당 규정이 교수의 인권침해 행위를 막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 씨는 “더 큰 권력으로부터 교수를 보호해야 하지만, 동시에 교수가 학생을 착취할 가능성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많은 관계자들은 ‘대학원생 인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데서 근본적 해결이 시작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수가 논문지도·졸업심사·진로추천서 등 대학원생의 ‘생사’를 쥐고 있는 한, 학생 참여보장, 징계규정 강화 등의 조치로는 부족하고, 교수의 학생지도나 대학원생의 노동권 등 첨예한 사안에 대해 대학 내 논의가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원총 이우창 전문위원은 “대학원생의 기본권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교직원과 학생 사이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맥락에서 김민환 교수는 ‘학업과 관련한 괴롭힘(academic harassment)’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의 방만한 논문지도나 사적업무지시 등 대학원 내 특수한 권리침해에 관해 규범이 필요하다는 논지다. A 씨는 “지금 대학원생의 처지는 교수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연구자로서만이 아니라) 교육자로서 교수의 자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올 상반기 ‘스캔노예 파문’,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 등이 터지며 대학원생 권리운동에 힘이 실리고 있다. 7월 13일 서울대에서 ‘대학원생 인권시위’가 열렸고, 7월 28일에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국회에 ‘대학인권센터 설치의무화 법안’을 제출했다. 현재 징계위는 인권센터 조사에 더해 H 교수의 대학원생 인건비 횡령 혐의까지 조사 중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H 교수의 복귀 여부다. 대책위와 학생모임은 H 교수를 교육자로 인정할 수 없으며, 피해자의 상처와 공동체 정의를 회복하려면 H 교수가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H 교수 사건’이 대학원생 권리보장의 새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징계위의 결정에 서울대를 넘어 한국 대학사회의 눈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