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호 > 학원 >캠퍼스라이프
폐허에서 예술공간으로, 폐수영장의 귀환
등록일 2017.09.03 19:37l최종 업데이트 2017.09.27 11:55l 장은재 기자(kozkonj@snu.ac.kr)

조회 수:300

  유전공학연구소(105동) 맞은편 관악산 등산로 중턱에 오랫동안 잊혀왔던 곳이 있다.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쓰러져 가는 건물이 보이는데, 한때 탈의실로 쓰이던 곳이다. 건물 뒤편의 계단을 올라가면 거대한 수영장이 움푹 파여 있다. 물이 차있었던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곳. 지금은 버려져 손 닿는 곳곳 마다 녹이 슬어있고, 먼지와 쓰레기로 뒤섞여 있는 폐수영장이다.



KakaoTalk_Photo_2017-09-03-19-37-27_41.jpeg

▲한때 물이 차있던 수영장은 잡초와 쓰레기 더미로 뒤덮여있다.



  폐수영장은 서울대가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부터 자리를 지켜왔다. 수영복이나 물놀이 기구도 빌릴 수 있는, 말 그대로 ‘수영장’이었다. 80년대 재학할 당시 수영장을 애용했다는 조재범(영문 84•졸업) 씨는 “관악산 계곡에서 차가운 물이 내려오니 심장마비를 조심하라는 팻말과 함께 안전요원도 배치돼있었다”고 회상했다. 수영장의 주 이용객은 학생보다는 교수나 직원, 그리고 그 가족들이었다.


  90년대 초, 수영장은 돌연 폐쇄됐다. 캠퍼스관리과 김미숙 주무관에 따르면 수영장이 정확히 언제, 무슨 이유로 폐쇄됐는지에 관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80년대 후반 이미 수영장이 드문드문 개장했다는 증언만 전해진다. 수영장은 폐쇄 후 지금까지 특별한 관리 없이 방치돼왔다. 2013년 본부의 녹지화 사업 계획으로 폐수영장 역시 철거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사실무근이었다. 김 주무관은 “현재 폐수영장을 관리하는 부서는 없으며, 펜스를 쳐서 출입을 막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폐수영장을 찾는 발걸음이 늘고 있다. 고유한 분위기에 주목한 예술가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20여 년간 버려져왔던 폐수영장이 예술공간으로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러 독립영화 감독들이 이곳을 촬영지로 택하고, 2010년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가 앨범 ‘누 예삐오(NU ABO)’ 사진을 이곳에서 찍으면서 대중에게 폐수영장이 알려졌다. 2012년에는 14명의 화가들이 폐수영장의 시각적 강렬함에 영감을 받아 이곳에서 전시회 ‘블랙아웃(BLACKOUT)’을 열기도 했다.


  그래피티와 낙서들, 잘려나간 마네킹. 먼저 다녀간 이들의 작업물로 폐수영장은 스산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지난 2월부터 꾸준히 폐수영장에서 촬영해온 연극배우 겸 모델 문도연 씨는 “폐수영장은 퇴폐적인 분위기나 버려진 느낌을 표현하기 좋다”고 말했다. 버려진 공간의 공허함에 매혹된 사람들이 폐수영장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