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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위에 피어난 모두의 텃밭
등록일 2017.12.02 17:19l최종 업데이트 2017.12.06 21:07l 장은재 기자(kozkonj@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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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퍼스 안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 사이, 도시 농부들이 만나 인연을 맺는 곳이 있다. 교수와 학생은 물론이고 각자의 직업을 가진 관악구 주민들이 공과대학 35동 옥상에 모여 함께 ‘빗물 텃밭’을 가꾸고 있다. 

  빗물 텃밭은 홍수 방지 대책으로 처음 시작됐다. 2012년 한무영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정문에 저류조를 설치하는 대신, 옥상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막아 홍수를 막자고 제안했다. 그해 겨울, 절반은 서울시의 지원으로, 절반은 한무영 교수의 사비로 35동의 옥상 공사가 시작됐다. 옥상 턱이 10cm씩 올라갔고, 고인 빗물을 보관할 스티로폼 판이 옥상 전체에 깔렸다. 만들고 보니 모은 빗물로 꽃과 채소를 기를 수 있어 보였고, 2013년 봄 한 교수는 ‘관악도시농업네트워크’와 협력해 옥상에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한 교수는 “(텃밭을 개방하자마자) 하루도 안돼서 텃밭을 가꾸겠다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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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가꾸는 35동 옥상의 '빗물 텃밭'


  텃밭은 크게 25개의 개인 텃밭과 1개의 공동 텃밭으로 나뉜다. 한 구역당 너비 3m, 길이 1m의 개인 텃밭에서는 각자 자유롭게 작물을 기르고 수확해간다. 이와 달리 공동 텃밭의 작물은 관악구 불우이웃과 외국인 유학생에게 기부된다. 다 같이 모여 모종을 심고 수확할 때를 제외하면, 공동 텃밭은 그때그때 시간 되는 사람들이 물을 주거나 풀을 뽑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편이다.

  텃밭에는 저마다의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이 찾아온다. 정주호(건설환경공학 석사과정) 상수도시스템실험실 연구원은 “매일 연구실에 앉아 공부만 하면 답답한데, 가끔 (텃밭을 가꾸러) 옥상에 올라와 관악산도 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상쾌해진다”고 말했다. 부모들도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 학내 부모학생협동조합 ‘맘인스누(Mom in SNU)’의 이진화 대표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꽃이 폈다 지고,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봉천동에 위치한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의 교사인 노수진 씨 역시 농업원예 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함께 빗물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노 씨는 “처음에는 흙을 만지거나 벌레가 나오면 소리를 지르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시간이 지나자 벌레가 귀엽다며 이름을 붙여 노는 등 학생들이 자연과 친해졌다”고 돌이켰다. 

  한편 지난 11월 18일 빗물 텃밭은 공동 김장으로 그간 흘렸던 땀의 결실을 맺었다. 공동 김장은 이틀간 치르는 빗물 텃밭의 가장 큰 행사다. 첫날에는 공동 텃밭에서 키운 배추를 수확하고, 둘째 날에는 김치를 담가 관악구 불우이웃, 외국인 유학생들과 나눈다. 한무영 교수는 빗물 텃밭의 환경적 효과보다도, 텃밭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됐다는 점이 더 뜻깊다고 강조했다. 3년째 텃밭을 관리해온 윤새롬(건설환경공학 석사과정) 상수도시스템실험실 연구원 또한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소통하는 것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빗물 텃밭이 2014년 ‘에너지글로브 어워드 국가상’을 수상하며 한무영 교수에게 해외 강연 요청이 오는 등, 빗물 텃밭은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 교수는 “서울대 220개 건물의 옥상 녹화를 이루는 것이 꿈”이라며 “빗물 텃밭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안하면 못 견딜 만큼 멋있는 옥상 녹화 모델을 만드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전했다. 빗물 텃밭이 회색 관악을 초록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