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 학원
"우리는 이미 승리하고 있다" 대학의 평등한 구성원으로 우뚝 서기 위한 학생들의 저항과 연대
등록일 2018.06.06 14:51l최종 업데이트 2018.06.09 00:10l 김건우 기자(kon951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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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학과 H교수에게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린 교원징계위원회(징계위)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는 행정관 앞. 파란 천막 안에서 학생들은 여전히 밤을 지새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막 농성을 시작한 지는 두 달이 넘었고, 처음 징계가 내려진 지는 한 달이 돼간다. 인권침해·성희롱·연구비 횡령 혐의를 받는 H 교수에게 징계위가 처음으로 양형을 선고한 5월 1일은 인권센터의 징계 권고가 나온 지 1년 반도 더 된 시점이었다. 성낙인 총장은 해당 결정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권의식 수준에 미달하고, 약 천오백만 원의 대학원생 연구 인건비 횡령 사실을 확인한 교육부의 감사 결과가 결정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재심을 요청했다.


  5월 15일 회의 때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재심을 미루던 징계위는 지난 21일 정직 3개월 결정을 반복했다. 결정이 있던 날, 파면을 요구하며 14일째 단식 중이던 신재용(체육교육 13) 총학생회장은 심각한 두통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이송됐다. 학내 곳곳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사회학과 대학원생 대책위원회(대책위) 10명 전원은 23일 기자회견 이후에도 본부의 별다른 반응이 없자 다음 날 집단 자퇴서를 제출했다. 징계 결정의 재가를 거부할 수 있는 총장에게 대책위는 “우리를 내치시거나, 갑질 교수를 받으시거나 둘 중 하나를 해달라”고 밝혔다. 사회학과 교수진도 H교수의 학과 복귀를 수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내 학생을 지지했다.


  지난 5월 31일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연대'(학생연대)가 연 집회에서는 “방탄 징계위 규탄한다, 논의내용 공개하라”와 “2차 가해 운운 말고 징계위를 징계하라” 등 징계위의 폐쇄적인 의사결정을 비판하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날 집회에서는 “우리가 직접 H교수의 복귀를 저지할 것”이라 선포하는 2천여 명 학생들의 성명서가 발표됐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H교수의 복귀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하고 늦어지는 징계 결정을 비판했지만, 제도적인 절차를 존중해 징계위원회의 판단을 기대하고 기다려왔다. 그러나 제도와 절차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지금, 학생들은 “우리는 H교수를 교육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징계위가 못한다면, 우리가 추방한다”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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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행정관 유리문에 하고 싶은 말이 담긴 메모를 부착하고 있다. ⓒ최한종 기자



  <서울대저널>은 학교를 더 민주적인 공간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이야기의 재료와 결론은 각기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학생이 학교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고,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천막을 지키고, 자퇴서를 제출한 당사자들


  가장 먼저 학생연대 백인범(사회 16) 대표를 만났다. 학생연대는 H교수 사건의 첫 공론화 당시부터 징계위와 본부에게 피해자와의 소통·신속한 징계 등 정당한 절차를 요구하고, 천막 농성과 강의실 선전전 그리고 수차례의 집회와 기자회견까지 H교수 투쟁의 선두에 섰다. 처음 그가 대응에 나서게 된 동기는 대학에 대한 신뢰였다. “대학이 가치가 실현될 곳이며, (연구자로) 남아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신뢰가 있었다”는 그는 사회학과가 젠더 불평등이나 폭력에 대한 민감한 문제의식을 가진 집단이기에 문제를 지적하면 변화가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운동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백인범 대표는 정직 3개월 징계 결정이 또 한 번 내려지던 날, 대학이라는 공간에 큰 실망과 회의를 느꼈다. 대응 활동을 이어나가는 내내 백 대표는 학교가 학생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언제나 학생들이 천막 농성이나 단식처럼 자신을 희생해서 무언가 해야만 그제야 학교가 얘기를 들어준다”고 탄식했다. 백 대표는 대학을 “학문하는 사람들끼리 토론해서 방향을 정하고 결과를 만들어나가는 곳”이라 정의했다. 한 사람 이 주도하고 나머지가 따르는 공간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재 학교 의사결정 권한의 대부분은 교수에게 치중돼 있다. 백 대표는 이런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가 “연구실에서는 교수가 학생을 위계적으로 지배하는 관계로 나타나고, 의결기구에서는 학생이 빠져있는 구조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내부에서 학생의 목소리를 듣는 문화를 만들려면 학생에게 동등한 의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학생연대는 새로운 교원징계규정을 만드는 과정에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은 문제의식을 반영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한 투쟁을 이어온 백인범 대표는 대학이 “사회적 악습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곳인 동시에 그에 대해 제일 먼저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했다. 대학에 대한 신뢰로 운동을 시작해, 폐쇄적인 징계 결정 과정을 지켜보며 회의감에 빠졌던 그가 연대하는 이들에게서 또 다른 대학의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백 대표는 저녁을 반납하고 천막을 지켜준 학우들을 보며 감동했다고 한다. “이들의 연대 덕분에 서울대도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장벽을 넘지 않았나 싶다”는 그는 이들이 자신의 행동으로 변화를 끌어냈다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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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징계위의 결정을 규탄하고 재심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백인범 대표가 사회를 보고 있다. ⓒ박은성 수습PD



  자퇴까지 결의하며 H교수 사건의 변곡점을 마련한 대책위 소속 김정환(사회학과 박사과정) 씨는 징계 결정에 대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라고 일갈했다. “정직이 몇 개월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H교수가 다시 학생들한테 돌아올 수 있느냐 없느냐, 0 아니면 1의 문제”라는 그의 어조는 단호했다.


  김정환 씨는 이번 사태를 통해 제도 개선의 중요성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징계위의 구조가 비민주적이라 비판했다. 징계위 구성부터 논의과정까지 모두 비공개로 진행돼 외부의 객관적인 검토나 공론장에서의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씨는 “대통령을 탄핵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전부 이름이 공개되는데, 그보다 교수 권력이 더 대단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징계위원을 포함한 교수들이 현재 의무화돼 있는 인권·성평등 교육에 더하여 성폭력 및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특정 전공 분야에서 전문가이고 교육자라는 사실이 인권 및 성폭력 문제에 대해 교육받을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수는 문제 해결과 판단의 권한을 가진 만큼, 조직이나 공동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및 성폭력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상대적 약자이며 더욱 섬세한 인권 감수성을 가진 학생의 입장이 심의 및 징계과정에서 대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본부 교무처가 신설되는 교원징계규정에 학생 의견 반영을 약속한 지금, 징계위원 교육과 징계위 학생 참여 같은 개선이 이뤄질지 주목되는 이유다.


  김정환 씨에 따르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대학원생들이 대책위에 공론화·대응 방법을 문의한다고 한다. 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학생 스스로 역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김 씨는 “(학생이) 공동의 논의를 만들어내고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피해를 실질적으로 예방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현재 대학원생은 자신의 연구주제 나 지도교수와의 일대일 관계에 매몰되기 쉽다. 김정환 씨는 “주변 대학원 동료들, 다른 과의 상황들, 다른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 등판하는 불펜 투수마냥 행정관 앞 천막으로 출근했다”는 이동우(사회 10)씨는 지난 여름 사회학과에서 H교수 파면을 요구하는 연서명을 모으면서 처음으로 운동에 참여했다. 천막에서 주로 핸드폰으로 야구 중계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천막 농성이 갈수록 힘들었다고 했다. 5월이 되고 비가 많이 오면서 천막 안에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폈다. 이불이 천막 모퉁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빗물에 젖은 날에는 추워서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시민단체에서 천막 농성을 하면 보통 책임자 한 명이 인력 배치 등을 전담 관리한다. 그러나 학업과 투쟁을 동시에 이어나가는 학생이 농성 현장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동우 씨는 H교수 사건을 처음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사회학과 학생들의 입장을 대표할만한 대의기구가 없어 곤란했다고 털어놨다.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한 반에 섞이던 학부 체제상 사회학과 학생들이 여러 반으로 흩어져있었다. 이 씨처럼 과/반체제가 정립되기 이전 입학한 사회학과 학생에게는 사회학과 공동체가 실체 없는 허상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나마 사회학과 학생들이 행정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모인 사회학과 운영위원회(운영위)도 선출직이 아닌 자원자들로 구성돼 있었다. 운영위는 당시 사회학과 학부생 총 백 팔십여 명 중 백 명을 일일이 만나 연서명을 받아내는 과정을 통해 어렵사리 학생 입장의 대표성을 갖출 수 있었다고 한다.


  과 후배들과 친해지고 싶어 운영위 활동을 계속했다는 그는 처음 H교수 대응에 참여한 이유가 사회학과에 대한 공동체 의식의 발로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씨는 연서명에 참가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사회학과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마주하면서 사회학과 공동체가 실재한다고 느꼈다. 지쳤다가도 다시 힘을 내 활동에 참여한 이유 역시 “사회학과 학생으로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총학생회까지 연대하고 있는 “전체의 대응”으로 확장돼 많은 학생이 관심을 가지고 투쟁의 규모도 커졌다. 이 씨와 같은 사회학과 학생들의 초기 분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당사자들의 손을 맞잡아준 학생들


  인권침해 및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공론화에 나설 수 있으려면, 피해 사실이 공론화됐을 때 구성원들이 연대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사회학과 외부에도 피해자와 당사자 공동체의 손을 맞잡아준 이들이 있다.


  김진우 약학대학 16학번 대표는 집회 기획과, 자연대나 약대처럼 학생연대와 가맹돼있지 않은 단위들의 연락책을 맡고 있다. 그는 H교수 사건이 본인의 단위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타자화하는 학우들에게 섭섭함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학 공동체 안에 학생을 아랫사람으로 취급하고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위계질서가 만연해있다며 “이 사건은 H교수 개인의 문제나 특정 단과대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서울대학교  모임 이재현(인문 18) 대외협력국장은 관악구 정당들과 시민단체 협의체로 이뤄진 ‘관악구 공동행동’의 H교수 징계 규탄 기자회견을 성사시켰다. 징계위가 정직 3개월 결정을 유지하기로 발표한 이후, 그는 정치권·시민사회와 연계된 원내정당 소속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보탬이 되는 방안을 고민했다. 다양한 정당과 관악구 시민사회의 힘을 빌리면 학교를 더 압박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씨는 정의당 김수정 관악 구의원 후보(*)에게 기자회견 주최를 제안하고  실무를  도맡았다.  기자회견으로 H교수 사건에 대한 언론의 주목도도 높아졌다. 이재현 씨는 이처럼 관악구의 지역사회와 서울대 학생사회가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면, 학내외 투쟁 모두 지금보다 원활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탄탄한 연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허운(컴퓨터공학 17) 컴퓨터공학부 학생회장은 학과 사람들과 연서자보를 작성하는 중이다. 허 학생회장에 따르면, 다른 단과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업 부담이 과중한 공과대학 학생은 H교수 사건이나 시흥캠 문제 등 학교 사건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그는 “공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며 전문 지식뿐 아니라 사회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다루는 훈련, 연습, 준비 역시 대학에서의 중요한 배움이라고 강조했다. 허 학생회장은 이번 방학 중으로 H교수 사건처럼 그들이 공과대학 내에 서 다루기 힘든 사회적인 문제를 공부하고, 이를 외부로 알릴 수 있는 소모임이나 학회를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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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학생회장은 천막에서 마주친 친근한 얼굴들이 대응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대학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희망


  정직 3개월 결정이 다시 한번 발표되던 날, 많은 학내구성원이 징계위와 본부의 제도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숨기지 못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결과이기에 학생들의 남은 투쟁은 더욱 지난해 보인다. 그러나 징계 결정 이튿날인 23일 기자회견에서 조민서(사회학과 석사과정)씨는 오히려 “우리는 희망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는 “총학생회장을 비롯하여 연대의 의미로 천막을 지키고 단식에 동참해주시는 모든 분, 그리고 학교 안팎에서 함께 민주적인 학문 공동체로서의 대학을 소망하는 모든 분의 (연대의) 말들 덕분”이라고 했다. “징계위가 열리고 있는 본부 건물이 상징하는 제도가 아니라, 이 말들이 울려 퍼지는 곳이 바로 대학”이라는 그는 “대학의 정신을 실어나르는 갖은 말들에 충실해 왔던 우리는 역사 앞에 이미 승리하고 있다”고 힘차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대학 공동체는 미비한 제도와 악질적 관행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꾀하는 이들에 의해 배움과 가치실현의 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다. 학생들의 분투로 서울대학교가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민주적 공간으로 변모할지 지켜볼 일이다.


(*) 지면에는 김수정 관악 구청장 후보라고 쓰여 있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