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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물을 들인 머리로, 일흔에 시작한 내 꿈 이야기’
등록일 2018.12.18 01:21l최종 업데이트 2018.12.18 14:57l 김건우 기자(kon951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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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짜리 동생을

등에 업고 남쪽으로 오던 날

나는 꿈을 꾸었다

난리가 끝나면 다시 가족에게 가겠다는 꿈

(중략) 언젠가 함께 한 곳에서 만날 것이라는 꿈

-김보부, <> -


‘20대 내 꿈은 너무 가난해 

먹고 살기가 꿈이었다

(중략) 지금은 다른 바라는 것 하나 없다

선생님 얼굴 더 보기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배우기

그것이 내 마지막 꿈이다

-김성삼, <앞으로의 내 꿈은> -


 

  손수 시를 쓴 건 문해(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 학습 공간 선의교실의 어르신들이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생들과 선화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은 시에 녹아든 감성을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그림으로 옮겼다. 1127일부터 29일까지 문화관(73) 전시관에서 시화전(시와 그림을 전시하는 전람회) ‘다시, 꿈을 꾸다가 열렸다. “1세대와 3세대가 함께 소통해 만들어낸 작품”. ‘선의관악종합사회복지관(선의관악복지관)’ 이정희 팀장은 전시를 이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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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전 봉사자 김윤지 씨와 황유순 어르신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화관 입구에 들어서자 가수 양희은 씨의 노래 인생의 선물이 잔잔하게 전시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흘러나오는 가사와 달리, 50여 개의 작품에는 젊은 날로 다시 돌아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배우고 싶은 것들, 이루고 싶은 목표들이 가득했다. 몇몇 작품에는 문자를 익히고 쓰는 게 꿈이었기에 시화전 준비가 곧 꿈을 이루는 과정이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했다. 대다수 사회복지관은 1년간의 문해 교육을 평가하기 위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진행한다. 선의관악복지관도 재작년까진 그랬다. 정답이 아니라는 빨간 작대기로 가득한 시험지에 어르신들은 많이 좌절했다고 한다. “옛날에 못 배워서 지금 배우는 게 창피하다며 가족한테도 한글교실을 다니는 사실을 숨긴다는 어르신들. 이정희 팀장은 그런 어르신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고, 주변인들로부터 응원도 받을 수 있는 공부의 결과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시화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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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정자, 그림 전은정 (선화예고)



  올해 선의교실이 문을 두드린 대상은 서울대 학생들이었다. 장희진(동양화 15) 미술대학 학생회장은 이정희 팀장이 내민 손을 흔쾌히 마주 잡았다. 장 회장은 단과대운영위원회에서 시화전참가의 안에 만장일치로 찬성표가 나왔다고 회상했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기 전, 학생들과 어르신들이 가진 만남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장 회장은 시만 봤을 땐 몰랐던 감정을 어르신한테 들을 수 있었다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아예 다시 하는 친구도 있었다고 웃었다. 창작에도 함께한 장 회장은 어르신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있더라며 감상을 밝혔다.


  이정희 팀장은 문해의 개념은 단순한 문자해독이 아니라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까지라고 강조한다. 이 팀장은 이번 시화전을 통해 우리나라에 아직 문해 교육이 필요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사실을 젊은 층에 알리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문맹이 적다고 여겨지는 우리나라지만 중장년층 중에는 글을 읽고 쓰는 게 어려운 이들이 여전히 많다. OECD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긴 문장 속 정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독해능력은 OECD 22개 국가들 중 끝에서 세 번째다(OECD, 2013). 장희진 미대 학생회장도 이번 시화전을 계기로 성인문해에 대해 무지했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장 회장은 문해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했다.


  선의교실 다솜반의 10년 차 반장이자 시화전에 두 작품을 출품한 황유순 씨는 자신의 어렸을 적 꿈이 글 쓰는 작가였다고 한다그의 작품 <시작>의 마지막 문장이 이루지 못한 꿈을 다시 시작한다이제라도 내 꿈에 날개를 달아본다학생들이 물감으로 수놓은 도화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써 내린 그의 문장처럼문해 교육은 어르신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었다더 많은 어르신이 글로 꿈을 펼쳐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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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은심, 그림 이한나 (서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