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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곳, 서울대학교미술관 대학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 확립 필요해
등록일 2019.10.21 13:06l최종 업데이트 2019.10.21 23:05l 권민재 기자(mjkw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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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골 트러스 구조와 특수유리로 마감된 서울대학교미술관(서울대미술관)의 외관은 미술관이 추구하는 ‘새롭고 독창적인 공간’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정문 옆에 위치해 익숙해진 외관과 달리, 대다수 학교 구성원들에게 서울대미술관의 내부는 낯설고 멀다. 그 내부에서, 현대적이고 화려한 외관과 달리 서울대미술관은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서울대미술관이 대학미술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했다.


학생을 위한 미술관은 어디에

  서울대미술관에선 해마다 6~8개의 기획전시가 열린다. 작년 12월부터 1월까지 개최된 ‘예술과 노동’을 시작으로 현재 열리고 있는 ‘미디어의 장’까지 올해에만 8개의 전시가 열렸다. 서울대미술관에서 근무하는 조나현 선임학예연구사는 서울대미술관이 학내 미술관으로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는 전시를 기획”한다며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전시에 발맞춘 교육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전시워크숍, 초등교사 미술연수 프로그램 등 종류가 다양하다. 관악구청의 지원을 받아 한 해에 두 번가량 성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현대예술문화강좌는 관악구민 100명과 타 구민 30명을 모집하는데 접수 시작 한두 시간 안에 접수가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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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현대예술문화강좌 ⓒ서울대미술관



  이처럼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있지만 학내 구성원을 위한 프로그램은 부족하다.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현대예술문화강좌의 경우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진행돼 재학 중인 학생은 참여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미술관 측은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더라도 학생의 참여가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초 ‘여성의 일’을 주제로 영화상영회를 두 달간 진행했지만, 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했다는 이유다.

  그러나 서울대미술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학부생 A씨의 의견은 달랐다. A씨는 “대학미술관이라면 관련 학과와 교류하며 대학의 학술적 성과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학과 차원에선 미술관과 관련된 수업이, 미술관에선 학술적 성과와 관련된 전시가 기획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미술관 윤동천 관장은 “학교 밖 미술관과 달리 장기간 연구가 필요한 전시를 진행하거나 외부 미술관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전시를 진행하는 것이 대학미술관의 장점”이라면서도 “예산의 어려움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학미술관인가, 소형사립미술관인가

  서울대미술관이 겪고 있는 문제는 한국의 소형 사립미술관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과 닮아있다. 대부분의 어려움은 예산 부족에서 비롯되는데 서울대미술관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서울대미술관은 경력이 쌓여 명성이 높은 작가에겐 작품 기증을 유도하고 유망한 젊은 작가들에겐 일명 ‘뮤지엄 프라이스(museum price)’라고 부르는 일반가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작품을 구입한다. 윤동천 관장은 미술관 측이 기획전시에 필요한 작품을 빌려오거나 제작을 의뢰할 때 작가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 있지만, 서울대미술관은 작가들에게 재정적 어려움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표준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을 기증받는 경우, 재정적 부담은 덜 수 있지만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증에 적극적인 작가는 주로 서울대 미술대학 출신이 많아 작가와 작품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풍부한 소장품 확보에 난항을 겪다 보니 소장품전은 기획전시에 비해 자주 개최되지 못한다. 개관 이후 진행된 112번의 전시 중 서울대미술관의 소장품만으로 구성된 전시는 한 번의 기증전을 포함해 4차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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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행된 서울대미술관의 전시회



  미술관 측에 따르면 서울대미술관은 본부로부터 연간 2억 9천만 원의 운영비를 받는다. 그러나 전시에 필요한 작품을 대여하거나 제작을 의뢰할 때 내는 비용은 때론 수백에서 수천만 원에 달한다. 이 예산 안에서 소장품을 늘리고 관리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2016년에 처음으로 소장품 구입비 항목이 생겼지만 1~2년에 걸쳐 금액을 모아야 겨우 몇 작품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치 않다. 2억 9천만 원은 1년 동안 전시를 기획하고 미술관을 운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현재로서는 발전기금과 교육프로그램을 통한 수익이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ACP(Art & Culture Program for Creative Leaders) 과정도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해 만들어졌다. 기업체 CEO 및 임원, 전문직 종사자 및 주요기관의 간부 등 사회지도자층으로 교육대상이 한정돼 있어 대학 최고위과정과 유사하다. 서울대미술관은 ACP 과정의 수강료를 통해 미술관의 재원을 마련하고 수강생을 후원자로 포섭하기 위해 이를 미술관 개관부터 14년간 운영해왔다. 한편 ACP 과정과 비슷한 구조로 다수의 단과대가 운영하는 대학 최고위과정은 인맥 쌓기와 돈벌이 수단으로 학벌을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혜자 전 의원은 2013년 서울대 국정감사 당시 서울대 최고위과정을 비판한 바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윤동천 과장은 “ACP 과정의 수입이 미술관 재정에 큰 도움이 되진 않으며, 오히려 매번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느라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예산 부족에서 비롯된 인력 부족은 서울대미술관의 지속적인 연구를 방해하는 또 다른 난제다. 현재 서울대미술관의 직원은 총 10명이 되지 않는다. 서울대미술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B 씨는 직원에 비해 업무량이 많아 정해진 업무 외의 일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학예연구직의 인력 부족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최근까지 3명의 학예연구직원이 전시 기획, 교육, 연구, 홍보 등을 담당했으나 얼마 전 계약직 학예연구직원 2명의 계약이 만료되며 현재는 1명의 법인직 학예연구사만 근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미술관 측은 올해 8월까지 본부가 본부직할부속시설(부속시설)인 미술관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직원들의 무기계약 전환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까진 본부의 지침에 따라 2년의 근무가 끝난 대부분의 계약직 직원들은 해직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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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부는 올 9월에 들어서야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가이드라인)’에 따라 부속시설로 하여금 기존 직원을 계속 채용하거나 새로운 직원을 공개채용의 형태로 선발해 노동자의 무기계약직 신분을 보장토록 했다. 이에 서울대미술관은 공개채용을 통해 계약직에 해당하는 새로운 기금직직원 2명을 선발 중이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에 따라 무기계약직 전환을 이행해도 미술관 내 학예직원의 수는 3명으로 같다. 이 중 안정적인 연구가 가능한 법인직 학예연구직원은 1명뿐이다. 윤동천 관장은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선 법인직 학예연구직원의 수가 늘어날 필요가 있다”며 학예연구직에 법인직원이 한두 명이라도 충원된다면 서울대미술관의 활동이 보다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대학미술관으로서 정체성 찾으려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르면 대학미술관은 대학의 중요 교육지원시설로서 교수와 학생의 연구와 교육 활동에 필요한 자료의 수집·정리·관리·보존 및 전시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서울대미술관 역시 해당 법이 명시한 연구·교육과의 연계성을 보장하기 위해 서울대미술관장을 포함한 기획처장, 미대학장 등 교수 8명으로 구성된 미술관 운영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현재 서울대미술관의 전시와 프로그램에선 교수와 학생의 연구 및 교육 활동과의 연계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운영위원회는 정기적 회의체로 운영되지 않고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 생길 때 소집될 뿐이다. 미술관 측에 따르면 운영위원회 회의는 작년 9월에 열린 뒤 지난 1년간 열리지 않았다. 서울대미술관 윤연호 행정실장은 올해 운영위원회 회의는 아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학내 구성원과의 연계성을 고민해야 하는 운영위원회가 시설유지를 위한 형식적인 회의체에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해외의 대학미술관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블랜튼 미술관(Blanton Museum of Art)은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 소속된 대학미술관이다. 블 튼 미술관은 학내 구성원들을 주된 관객으로 설정하고 이에 맞춰 전시를 기획하며 학교 밖의 미술관과 차별성을 갖추려 노력했다. 블랜튼 미술관에서 4년간 학예연구사로 일했던 박정호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전시 기획단계부터 교육프로그램 담당자가 회의에 참석해 미술관의 전시가 학교 교수진들의 연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고 진행 중인 수업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본인의 경험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블랜튼 미술관에서 중세 필사본 관련 전시를 기획할 당시 “미술사학과에 있던중세 필사본을 전공한 교수와 인도 미술을 공부하는 교수 등 다양한 학문과 연계가 가능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블랜튼 미술관은 대규모의 판화 컬렉션을 갖추고 있어 자연과학, 고전학, 지리학 등 다양한 전공 수업에 관련된 소장자료를 제공한다. 또, 의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술을 통해 환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다루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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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외관과 달리 서울대미술관은 말 못할 속사정을 가지고 있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니 어떤 때는 운영되는 게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는 윤동천 관장의 말처럼 미술관은 시설 유지에 급급한 상황이다. 윤 관장은 “미술관의 제1의 관객은 학내 구성원이고 그중에서도 학생”이라며 학생을 위한 미술관 운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미술관이 현상유지를 넘어 대학 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