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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여성혐오를 말하다 페미니즘 연극팀 ‘메두사’
등록일 2019.10.21 13:17l최종 업데이트 2019.10.25 13:12l 권민재 기자(mjkw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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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스럽고 흉측한 얼굴을 본 사람은 모두 딱딱한 돌이 된다는 그리스 신화의 악녀, 메두사. 아테나를 모시던 메두사는 포세이돈에게 강간을 당하고 순결을 잃었다는 죄로 저주를 받아 흉측한 괴물로 변한다. 페미니즘 연극팀 ‘메두사’는 연극을 통해 메두사를 악녀로 만든 신화 이면의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을 말한다.
  
  ‘우리가 마주한 여성혐오를 드러내 빛에 쏘이고 가려진 목소리들을 듣고 나누기 위해 무대 위에서, 말하고 행동하고 울고 웃기’. 메두사의 페이스북 페이지 소개 글의 일부다. 메두사는 작년 여름 모놀로그 ‘히스테릭’을 시작으로 올해 3월에는 미러링을 담은 ‘메갈리아의 딸들’을 무대에 올렸다. 태풍 ‘링링’이 찾아온 어느 날, 세 번째 연극 ‘우리는 엄마를 사랑할 수 있을까?’ 공연 준비가 한창인 연습실을 찾아 이들의 얘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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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페미니즘 연극팀 메두사는 어떤 곳이고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예빈 말하자면 제가 ‘주동자’인데요.(웃음)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제 얘기에 가까운 얘기를 하고 싶었고 제한 없이 얘기하고 싶었어요. 제 페이스북 계정에 ‘페미니즘 연극 하쉴?’이라고 글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빨리 모였어요. 이런 욕구가 제게만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승연 저도 연극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지만 다른 학내 극단에 대해선 ‘내가 이곳에서 안전하게 연극을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과 의구심이 강해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메두사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연극에 관련된 일을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맡은 게 ‘히스테릭’의 공동연출이었어요.(웃음) 제가 약간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서 처음부터 모든 게 편하지는 않았어요. 이곳이 정말 나에게 편해지기까지 많은 얘기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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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첫 작품인 모놀로그 ‘히스테릭’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예빈 ‘히스테릭’은 배우 네 명이 직접 쓴 모놀. 주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자고 했는데 모아보니 속된 말로 ‘빡쳐’ 있었어요.(웃음) 제목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 여성들이 이런 분노를 트인 곳에서 마음껏 표현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의 분노엔 히스테릭이라는 딱지가 붙으니까요. 사실 히스테릭이 아닌 정당한 분노라고 해야 하지만 히스테릭이라는 단어로 묶을 수 있을 것 같았죠. 저희가 돈도 인력도 없다 보니까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맘 편히 할 수 있었던 게 배우들의 이야기를 쓰는 거였어요.

준하 저는 공동연출을 맡았었는데 배우들이 쓴 모놀로그를 읽으며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걸 강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그동안 발화되지 못한 채 히스테릭으로 취급된 여성들의 감정을 무대에서 말하고 소리 내는 것에 집중했어요. 제가 한 일은 꺼내지 못했던 감정들을 꺼낼 수 있도록 도운 게 전부였어요. 큰일을 한 게 아니었죠.


Q. 올해 3월에 올린 작품 ‘메갈리아의 딸들’(메딸)에 대해선 통쾌했다는 평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어떤 연극이었나요?

승연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메갈리아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드러났잖아요. 제목엔 ‘우리가 메갈리아의 딸들이다’라는 의미도 있고 미러링 텍스트의 고전인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따온 의미도 담겼어요. 크게 보면 미러링 연극이죠. 극 중엔 네 명의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극 중에서 극을 해요. 이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면서 연극 안팎의 자신,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페미니스트 여성상과 괴리감을 느끼고 고통을 겪기도 해요. 그렇게 갈등하는 인간상을 그리고 싶었어요.

예빈 처음엔 미러링만이 존재하는 미러링 극을 하려고 했어요. ‘페미니즘 연극’ 타이틀을 가진 기존 극들은 여자들이 고통받는 얘기가 대부분인 거예요. 연극 안에서라도 여자들이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고통은 남자들에게 가게 하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젠더를 반전시키는 것도 너무 어려운 일이고. 극중극이 있어서 극중극 바깥에서는 미러링이 끝나면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이 너무 잘 드러났어요. 애초의 목표는 부분적으로 달성됐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던 연극이었어요.

영채 저는 ‘메딸’에서 처음 배우를 하게 됐어요. 제가 극작팀은 아니었지만 캐릭터를 배우 본인에게서 많이 따오는 극이라 초반에 극작팀과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여서 인터뷰에서 ‘잘 모르겠다’란 말을 했어요. 그래서 졸지에 온건한 페미니스트 캐릭터가 됐어요.(웃음) 캐릭터가 저랑 비슷한 점이 많아서 편하면서도 현실에서는 할 수 없을 법한 행동을 종종 하는 게 통쾌했어요. 연극을 본 친구들 몇몇은 캐릭터가 저랑 닮았다고 했고 몇몇은 저랑 너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웃음)

Q. 그동안은 메두사에서 극작한 작품들이 많이 공연됐는데 작품을 직접 쓰는 이유가 있나요?

예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기존 작품도 각색해서 어느 정도 하고 싶은 얘길 할 수 있겠지만 작품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동시대성을 띠기는 어렵더라고요. 극작 회의를 잡고 모여서 쓰기도 하고 각자 쓴 다음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해요. 그런데 ‘메딸’과 이번 작품은 또 다르더라고요. ‘메딸’은 극중극도 많아서 역할 분담해서 나눠쓰기도 쉬웠는데 이번엔 하나로 이어지는 연극이라서 초반에 캐릭터를 구성할 때 얘기를 많이 나눴고 그 다음 구체적 장면을 만들었어요.

지연 극작….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죠.(웃음) ‘메딸’은 극작을 하면서 극의 내용이나 대사가 많이 바뀌었어요. 연습을 하다 보면 입에 붙는 대사도 있고 그렇지 않아서 고치는 것도 있어요. 다른 연극도 비슷하겠지만 ‘메딸’이 유독 그런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만큼 하고픈 말과 주제가 커서 그렇지 않았을까요.


Q. 연극의 주제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예빈 사람들이 모이는 뒤풀이 같은 자리에서 ‘다음엔 뭐할까’를 생각하는 편이에요. 실현 가능성은 제쳐놓고요.(웃음) 엄마에 대한 작품을 하고 싶다는 것도 그렇게 나왔어요. 메두사 안에서도 그렇고 주변의 여성 친구들과 대화해 봐도 딸들에게 엄마의 존재는 크고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통의 양상은 다르더라도 다들 엄마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엄마와 딸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부채감 같은 여러 감정이 결합해서 특수한 형태로 만들어진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이건 여성의 이야기고 페미니즘 연극으로 만들어도 되지 않나 싶었어요. 각자 엄마에 대해 하고픈 얘기가 많아서 극작도 쉬울 줄 알았는데 만들어보니 생각만큼 쉽진 않았어요. 될 수 있는 만큼 많은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나로 다 묶이지 않는 서로 다른 이야기 안에서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찾으려 하다 보니 그 안에서 어떤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봐야 할지도 고민이 됐어요. 결말에 관한 고민도 많았어요. 현실이 고통스러우니 극에서는 대안적 방향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도 드는 반면 현실과 괴리된 결말은 관객을 소외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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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포스터를 패러디한 모습



Q. 메두사를 하면서 뿌듯하거나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지연 공연을 보고 관객들이 좋아해주시면 정말 뿌듯해요. (훌쩍) 힘든 건 공연 전날이 힘든 거 같아요.

예빈 극작할 때가 제일 고통스러워요. 극작이 내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면 연습은 구현을 고민하는 거라 상대적으로 덜 고통스러워요. 극작할 때는 ‘페미니즘 연극이 대체 뭔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를 페미니즘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보면 가끔은 무서워요. ‘이건 페미니즘 연극이 아닌데?’라는 공격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승연 저는 육체적으로 힘들 때와 금전적으로 힘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메두사는 연극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지 않아서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연출을 하면서 무대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텀블벅도 하고.(웃음) 그럼 정말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요. 금전적으로 힘들 땐 개인의 지갑을 열어가며 어떻게든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쪼들릴 때가 힘들죠.


Q. 각자에게 메두사가 어떤 존재인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승연 그냥 ‘연극팀’이에요. 처음엔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냥 다른 연극과도 같은 연극팀이에요. 하고 싶은 연극을 할뿐.

채현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공간’. 저는 이번 연극에서 처음 연기를 해봤는데 제가 잘 몰랐던 감정도 배우고 없다고 생각했던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영채 메두사는 태풍 ‘링링’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태풍과 같아요. 어쩌다 보니 휘말려 있어요.(웃음)

정연 제 경우엔 캐릭터가 저 혹은 저희 어머니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맡은 역할이 50대 여성, 교사 그리고 어머니 역할인데, 저희 어머니가 딱 그러시거든요. 전에는 어머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가 연극을 하면서 저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저희 어머니한테 이런 역할을 맡았다고 하니까 어머니께서도 대학생 때 무대 동아리를 하셨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렇게 어머니와의 대화가 이어졌는데 좋았어요. 연극으로 인해 주변의 관계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새로 알아가는 것도 많아져서 좋아요.


Q. 앞으로 어떤 ‘메두사’를 만들어가고 싶으신가요?

정연 논란의 중심이 되는 곳이요.

예빈 돈 많은 메두사! 그런데 돈이 많아지려면 논란의 중심이 돼야 해요!(웃음)

정연 그래서 ‘링링’이어야 해요.

영채 음..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페미'들은 여기저기서 상처받고 다들 아프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