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호 > 사회 >우리가 만난 사람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를 만나다 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연대
등록일 2016.11.15 12:04l최종 업데이트 2016.11.17 16:24l 이기우 기자(rna2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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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대한민국에서 장애인들은 인간적인 삶을 누리고 있을까.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가 도입됐지만, 이것만으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조건에 놓여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여전히 장애인들에게 적대적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오는 한편으로, 노들장애인야학을 운영하며 기본적인 교육을 받기 원하는 장애인들의 열망을 충족시켜 왔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든 10월의 어느 주말, 대학로의 한 골목에 위치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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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권소현 사진기자



장애인에서 장애인권운동가로 거듭나기까지

  박경석 대표가 장애인이 된 것은 1983년이었다. 군대 전역 후 들어간 대학교 행글라이더 동아리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다가 추락했고,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비장애인이었다가 장애를 가지게 된 만큼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집에 틀어박혀 흘려보낸 5년의 세월에 대해 박 대표는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의미가 없으니 욕구도 없던, 그냥 살아만 있던” 시간들이었다고 회고했다. 

  5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다만 죽을 순 없으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988년 박경석 대표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시행하는 직업 훈련에 참가해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가 비로소 사회에 나와 다른 장애인들과 처음만나게 된 시간이었다. 비장애인 사회에서 교육받고 활동할 때는 장애인들과 만난 적이 없던 박 대표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장애인이 이렇게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이 사회적 차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활동가들과의 만남도 이 때 처음으로 이뤄졌다.
 
  다시 사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지 3년째인 91년, 박경석 대표는 숭실대학교 사회사업학과(현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4년간 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그는 졸업하고 나면 장애인 복지가 주 업무인 기관에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는 달리 냉정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지원했지만 성적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제한에 걸려 면접조차 보지 못한 것이다. 다른 기관을 알아봤지만 역시 나이가 많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장애인의 고용과 복지를 위한 기관들에게 나이가 많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거부당한 것은 매우 쓰라린 경험이었다. 

  취업이 좌절된 것은 박경석 대표로 하여금 장애인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에는 넘어야 할 벽이 매우 높다는 것을 절감하게 하는 계기였다. 그는 당시 교사로 참여하고 있던 노들장애인야학 활동에 집중하면서, 장애인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한 투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노들장애인야학,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자

  노들장애인야학은 박경석 대표가 장애인종합복지관에 다니며 만난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1993년에 만들어졌다. 활동가들은 장애인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이 매우 크다는 것에 주목했다. 장애인들의 절반 가까이가 초등학교 교육조차 받지 못했기에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한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활동가들은 장애인들을 모아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기초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공부를 할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한편으로, 장애인들의 인권 의식을 일깨우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노들장애인야학이 탄생했다. 대학 생활을 하고 있던 박 대표 역시 교사로서 노들장애인야학에 합류했다.

  노들장애인야학이라는 이름은 야학을 설립한 교사와 학생들이 고안했다. 노들은 ‘노란 들판’의 준말이다. 박경석 대표는 “가을 추수철의 풍요로운 들판을 시각화한 것으로, 풍성한 수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지향하며 그것을 위한 교육을 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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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23주년을 맞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와 학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홈페이지


  노들장애인야학에서의 교육은 주로 검정고시와 기초적인 문해 능력의 향상을 목표로 이뤄진다. 박경석 대표는 교육을 받지 못한 장애인들에 대해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학령기에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학령기에 교육받지 못한 2~40대 장애인들이 주로 교육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더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인권 교육과 실천도 함께 하고 있다. 박경석 대표는 “편하게 얘기하면 집회 열심히 나가는 거고, 데모 많이 나가는 것”이라고 웃었지만 동시에 이는 노들장애인야학이 매우 중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신이 학교를 가지 못해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이유는 사회적 차별 때문이자 국가나 지자체가 이에 대해 책임지지 못한 결과임을 자각해야 하며, 이를 바꿔 나가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학의 교훈인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자” 역시 이러한 정신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동권 투쟁, 본격적으로 투쟁에 나서다

  2001년 1월 25일,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역 출구에 설치된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박경석 대표는 이를 계기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면서 장애인권활동가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 박경석 대표는 “이동권의 제한은 곧 삶을 살아가며 많은 것들을 차별받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은 곧 공부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일상적인 행위가 제한받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일상적인 사회적 관계가 차단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이던 박 대표와 학생들 또한 이러한 차별을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었고, 사망 사고는 이들이 이동권을 제한받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박경석 대표는 “특히 지하철 리프트 문제는 사망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고 설명했다. 저상버스(계단이 없는 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이 도입되지 않은 당시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중교통은 지하철이었다. 그러나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리프트를 타는 데에는 많은 위험이 따랐다. 고장 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며, 수동 휠체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부피가 큰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경우 리프트의 좁은 면적으로 인해 떨어져서 다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역시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사망 사고가 일어난 직후 박경석 대표는 ‘오이도역 추락 참사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서울시에게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것 ▲사망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 ▲유가족에게 제대로 배상할 것 등의 요구를 했지만 서울시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2월 6일 박 대표를 비롯한 장애인들은 서울역 철로를 점거하며 본격적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박경석 대표의 문제제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01년 4월 20일, 박 대표는 ‘장애인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장애인이동권연대)’를 열고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에 더해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 도입 등, 대중교통 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이후로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집회 개최 ▲도로 점거 ▲서울시청 시장실 점거 ▲서명운동 ▲헌법소원 ▲단식농성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쟁에 나섰고, 결국 이명박 서울시장으로부터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을 도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동권 투쟁의 결과 90% 이상의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으며, 저상버스가 서울시에서 운행되는 전체 버스의 35%를 차지하고 특별교통수단이 도입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박경석 대표가 보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 비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는 수준을 100이라고 한다면 장애인의 이동권은 30 정도밖에 보장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설명한 박 대표는 여전히 경기도 등 다른 지역은 낙후된 지역이 많다면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등급제 철폐를 위해
 
  이동권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이후로 장애인들의 전반적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전국장애인차별연대(전장연)’로 거듭났다. 이동권 투쟁을 주도했던 박경석 대표는 전장연에서도 공동대표를 역임하게 됐다. 현재 전장연은 장애인등급제 철폐를 주장하며 4년째 집회와 시위 등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현행 장애인등급제는 장애인들을 그 유형에 따라 15종류로, 정도에 따라 1급에서 6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박경석 대표는 의학적 기준에만 근거하고 있는 현재의 장애인등급제가 장애인들의 욕구, 사회에서 기본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88년에 도입된 장애인등급제는 이미 그 자체로 장애인을 ‘낙인화’하는 과정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장애인 개개인의 환경을 고려해서 서비스를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경석 대표는 낙인화를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라고 정의했다. 그는“만일 여성을 1급에서 6급까지 나눠, 1~3급 여성에게는 출산 시 50만 원을 지급하고 4~6급 여성에게는 20만 원을 지급한다 하면 1~3급 여성들은 좋아하겠나. 장애인에 대해 정확히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장애인이라는 정체성 자체에 등급을 매기고 있다는 게 현행 장애인등급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주장하며, “특정 서비스를 지급하는 데 있어 필요한 기준이 필요하다면 그 서비스를 심의·평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지, 장애인의 정체성으로 몸의 등급을 결정하는 현행 방식은 납득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여기에 더해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등급제가 예산을 장애인들에게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기준이 아니라, 애초에 부족한 예산을 개인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배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예산 확대가 전제되지 않은 논의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며 “충분히 많은 예산이 확보된다면, 개인의 상황에 맞게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을 구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덧붙였다.
 
  예산과 장애인등급제의 구체적 연관성에 대해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연금의 사례를 들었다. 박 대표는 “현재 비장애인 4인 가구에 비교했을 때 장애인 1명이 포함돼 있는 4인 가구의 소득이 50%가 낮은 실정”이라며 국가가 장애인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할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현행 장애인연금제도는 전체 6급 중 1급, 2급, 중복 3급(두 종류 이상의 3급 장애인) 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중복 3급까지로 제한돼 있는 연금 대상을 3급 장애인까지 확대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만 해도 3, 4천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장애인들의 소득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대가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이며,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애인등급제는 장애인 각각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한정된 예산을 분배하는 제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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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등급제 폐지를 주장하며 발언하고 있는 박경석 대표 ⓒ민중의소리



시혜와 동정의 껍질을 벗어나서
 
  이처럼 전장연이 여러 쟁점에 대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에는 개선할 여지가 많다.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권운동이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은 결국 장애인의 사회적 위치가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장애인을 인권운동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복지를 해야 할 하나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일방적 시혜의 시선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그는 “사회에서 장애인을 직접적으로 대놓고 비하하기보단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하며 시혜와 동정의 방식으로 더 비하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다”라며, “장애인을 아예 무능력자로 보면서 시혜와 동정의 껍질 속에서 더욱 장애인을 혐오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곧 정책에도 반영된다. 국가가 예산을 지원해 장애인 수용 시설을 만들고 그 안에 장애인들을 집단적으로 격리시키는 식이다. 박경석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정부의 장애인 복지 예산의 50% 이상이 시설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박 대표는 지역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이 기본적 권리를 차별받지 않고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방향으로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석 대표는 “직접적인 행동, 표현들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직접적인 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장애인의 인권을 개선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있겠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차별을 받아 왔던 장애인 자신이 직접 투쟁에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구체적인 방법으로 집회 참여 등의 활동과 이를 위한 조직화, 교육 활동을 들었다. 과격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박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애인들의 문제의식을 전하기 위해 토론회도 열 수 있고 홍보도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의미 있는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힘이 중요하다. 우리의 투쟁은 그 대중적인 힘을 키우기 위한 과정이다.” 그는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