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호 > 사회
"거국내각을 통한 정치의 새판이 필요하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제7공화국을 그리다
등록일 2016.12.14 22:09l최종 업데이트 2017.01.06 17:06l 임재연 기자(kylie1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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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강진에 내려가 살던 정치인 손학규가 얼마 전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민주화, 빈민 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민주당을 두 번이나 통합한 ‘통합’의 아이콘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11월의 어느 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만나 정치인으로서 그가 가진 비전과 한국사회에 대해 물었다.


지난 10월 정계복귀 이후 손 전 대표는 책임총리 후보로 거론됐고 실제로 이를 수락할 의지를 내비쳤지만,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국무총리로 지명하면서 ‘김칫국만 마셨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당시 발언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터뷰 전체 내용을 보면 알수 있듯이, 나는 책임총리를 맡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것은 책임총리와 거국내각의 차이였다. 책임총리는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 있는 상황에서 일정 권한을 위임받아 총리 역할을 하는 것이고, 거국내각의 경우 여야가 합의해 총리를 지명한 후 그 거국내각의 총리가 과도정부를 이끌어야 하는데, 그렇게 과도정부의 총리를 지명했을 때 누가 거스르겠냐는 의미였다. 지금 최순실 사태로 내가 과거에 제시했던 제7공화국의 당위성이 높아지고 있다. 제6공화국과 제7공화국을 연결하는 정부가 여야의 합의로 임명되는 과도내각의 총리가 이끄는 정부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손 전 대표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최순실 사태 그 자체가 제6공화국 헌법 구조의 산물이다. 제6공화국 헌법상 권력구조의 정점은 5년 단임의, 모든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대통령이 5년보다 짧은 기간 동안 역할을 하고 그 후로는 레임덕 현상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여당의 총재였는데, 그 뒤에는 대통령이 여당마저도 컨트롤하지 못해 행정부 권력과 의회 권력이 불일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가운데 야당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맹목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싸움이 벌어 진다. 제6공화국은 수명을 다했기 때문에 제7공화국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언급한 ‘새판짜기’다. 정치의 확실한 기득권 세력이 있는데, 이에 대항하는 개혁세력을 모아 제7공화국의 중심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 새판짜기에 앞장서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


‘제7공화국’을 언급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개헌의 구체적 방향에 대해 설명해 달라

  기본적으로 개헌은 국민들에 의해 결정돼야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6공화국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내각제로 바뀌어야 한다. 또 단순 다수대표제가 권역별 명부식 비례대표제로 바뀌어 지역 간의 갈등구조가 완화돼야 하고, 이를 통해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의 안정과 효율성 증대를 꾀해야 한다.


권역별 명부식 비례대표제란?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선거제도로 정식 명칭은 혼합 비례대표제(Mixed-Member Proportional). 지역구 투표와 비례대표 투표를 동시에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같지만, 정당의 득표(비례대표)와 인물의 득표(지역구)가 서로 연관돼있다. 이 방식에 따르면 전 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해당 권역에 배정된 의석은 정당 지지율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예를 들어 서울의 총 의석이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서 100석이라면, 정당투표에 서 지지율이 A당 30%, B당 10%로 나타날 경우 A당은 30석, B당은 10석을 획득한다. 이 때 A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20명이면 이들은 자동으로 당선이 확정되고, 나머지 10명은 비례대표후보 순서에 따라 당선된다. 또 B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1명도 없다면 10명 모두 비례대표 후보 순서에 따라 당선자를 결정한다.

  이처럼 권역별 명부식 비례대표제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이 결정되기 때문에 특정 정당의 과반 의석 차지가 매우 어렵고, 군소정당의 의회 진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정당들이 상호 간의 합의와 양보를 중시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현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이상적인 거국내각의 형태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크게는 독일식 합의제 민주주의다. 우리는 지금 다당제가 불가피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여러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정당의 정책으로 모을 수 있는 제도가 되려면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진 여러 당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연립정부 합의제 민주주의가 불가피하다. 또 한국과 같이 지역 간 갈등이 심한 곳에서는 지역구도를 서로 섞을 수 있는 지역명부식·권역별 명부식 비례대표제에 의한 내각책임제가 필요한데, (이를 통해) 다당제 연립정부의 합의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한국은 87년 제6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부터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대통령의 역할을 국가의 상징적 원수로 둘 것인지, 아니면 상당한 권한을 부여할지에 따라 헌법 구조가 달라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4년 중임제를 이야기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로 4년 중임제는 안 될 것이라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제7공화국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은 앞으로 국민의 합의를 거쳐 만들어야 할 과제다.


지난 2014년 재보선에서 패한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가 올 10월 정계에 복귀했는데, 2년 전 은퇴를 선언한 이유, 또 이 결정을 번복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인은 선거로 말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수원 팔달 선거에서 지고 국민들이 손학규는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기신거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정치를 떠났다. 강진에 가서 살면서 1년 반 가까이 정치에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나라가 어려워지고, 근래에 와서는 나라가 정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적 범죄, 청년실업과 청년의 좌절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까지 무너지고 있는데, 정치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나라의 판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 틀을 바꾸는 데 한 역할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과거 한나라당 탈당과 최근 민주당 탈당 등 잦은 당적 변경에 대해 ‘철새’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떠한가?

  ‘탈당했다’는 표현보다는 ‘당적을 내려놓겠다’는 표현이 더 알맞다. 내가 정치를 떠나면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했는데, 당적이라는 기득권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새판을 짜기 위해 그것마저 내놓겠다는 의미였다. 새판은 민주당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민의당, 여당에서도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개혁세력이 한데 뭉칠 때 가능하다. 이것이 민주당 당적을 버린 이유다.


손 전 대표가 가지는 정치적 영향력은 큰 데 반해 그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 (웃음) 나는 그동안 꾸준히 한 가지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학생운동부터 시작한 민주화운동, 빈민운동, 노동운동을 통한 사회정의 운동과 함께 복지의 확대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남북평화의 실천자로도 많은 역할을 했다. 또 민주당을 두 번이나 통합했다. 비록 대통령이 되지 못했고, 후보가 되지도 못하고 경선에서 떨어졌지만, 손학규는 소신을 갖고 일관된 원칙으로 지금까지 정치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제7공화국 건설과 이를 위한 새판짜기가 마지막 정치적 과제가 될 텐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손학규2.jpg손 전 대표는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솔직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태희 사진기자


오늘날 청년들에게는 막대한 경제적, 사회적 부담이 지워져 있다. 취업난, 가족계획 좌절 등 청년들이 겪는 여러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청년문제의 근본은 사회경제적 구조에 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은 대기업에 의한 수출주도형 성장 경제에 의존해와서 그 짙은 그림자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영향을 받는 집단이 바로 청년들이다.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에 집중되고, 저소득이 심화되는 구조에서 청년들이 1차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생활도, 등록금 마련도, 주거 문제도 어려운 데다가 분배구조도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다. 물론 청년들이 처한 여러 시대적 상황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소득분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구조를 바꿔서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물론 이는 정말 어려운 문제다. 제7공화국이 된다고 해도 이것이 바로 일자리 양산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또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청년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대학 진학률이 70%인데, 대학에 가지 않고도 사회적으로 충분한 물적, 인격적 대우를 받는 사회 제도가 필요하다. 산업과 고용 구조를 바꾸는 일을 교육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청년세대의 좌절과 기성세대에 대한 적대감이 불러올 세대갈등에 대한 해답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결국 청년들과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 안 되는 걸 뻔히 아는데 희망을 가지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솔직해져야 한다.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건 일자리 감소지, 일자리 증가가 아니다. 일자리가 감소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데, 여기서 국가가 할 일은 복지의 증대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그것이 제조업의 활성화를 가져오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와 기성세대는 청년들과의 솔직한 대화를 통
해 지금 상황에 대한 대화의 마당을 넓히고, 맹목적인 희망을 요구하기보다는 가야 할 길이 어딘지 스스로 찾게 하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온 우주가 내 마음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패기와 낭만을 가지고 살아라. 서울대학생들은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 학생들이다. 높은 지적 수준도 중요하지만 우주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패기와 비전이 필요하다. 내가 내일 무엇이 되든, 오늘 나는 큰 세상을 열어나가는 선구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라. 공부하고, 낭만을 즐기고, 미래를 그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