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 사회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 지킴이의 두 번째 겨울을 함께하다
등록일 2017.03.10 01:49l최종 업데이트 2017.03.10 19:45l 한기웅 기자(surfpengu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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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하의 날씨에 찬바람이 강하게 부는 아침이었다. 광화문 출근길에 사람들은 온몸을 꽁꽁 싸맨 채 빠른 걸음으로 오갔다. 바쁜 사람들 속에서 소녀상은 시민들이 하나둘 입혀 놓은 담요, 목도리, 비니에 양말까지 하고 있어 따뜻해보였다.

  처음 본 농성장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천막이나 텐트의 형태를 생각하고 갔지만 실제 농성장은 비오는 날 트럭 짐칸이 젖지 않도록 덮어놓는 대형비닐이 전부였다.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두리번 거리다 비닐을 들추고 나오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이곳이 앞으로 함께 지낼 농성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녀상의 탄생과 시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이한 2011년 11월 24일, ‘소녀상’이라고도 불리는 ‘위안부 평화비’가 설치됐다. 소녀상은 2015년 12월 28일 체결된 한일합의 이후 일본 언론과 정부가 이전을 요구하면서 외교 마찰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시민단체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또 다른 소녀상을 설치해 한일 양국 간 외교마찰은 더욱 심화됐다. 일본은 크게 반발하며 주한 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는 조치까지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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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킴이들의 농성을 알리는 칠판 뒤로 일본대사관과 경찰버스가 보인다. ⓒ신일식 기자


  국내에서도 ‘위안부’ 문제는 여전하다. 12.28 합의 이후 여덟 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이제는 39명의 피해자만 생존해 있다. 하지만 위로금 강제 지급 논란과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 블랙리스트 논란 등에서 보이듯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진전되지 않는 ‘위안부’ 문제와 함께 소녀상도 위기를 겪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소녀상을) 외교공관 앞에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발언했고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은 소녀상을 철거하기까지 했다.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자 그는 입장을 바꿔 소녀상 설치를 허가했지만 외교부가 다시 부산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녀상의 시련에 맞서 400일이 넘도록 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이곳에 머무는 이유를 듣고, 이들의 일상을 함께하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85-7번지, 광화문의 높은 빌딩들 사이에 위치한 지킴이들의 보금자리에 가봤다. 


소녀상 지킴이의 하루 

  아침 지킴이들의 농성은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24시간 교대로 이뤄진다. 지킴이들은 일어나 소녀상 주변을 청소하고 다음 지킴이들과 아침식사를 하며 서로 안부를 묻고 농성 중에 이상은 없었는지 확인한다. 6일에는 지킴이 윤혜지(22) 씨가 “어제 자다가 굴러 떨어졌는데 그 이후로 천막이 어긋나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다”라며 떠나기 전에 당부의 말을 남겼다. 

  농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지킴이들은 400일이 넘는 시간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일부 알려줬다. 근처 빌딩 화장실들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건 기본이다. 커피나 군고구마는 난로에 올려 데워 먹고 물은 밖에 내놓아 시원하게 먹는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수요집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농성장을 해체할 때는 “날을 잘못 고르셨네요”라고 웃으며 능숙하게 비닐을 걷고 다시 짓기도 했다. 

  오후 동안 지킴이들은 간혹 소녀상을 찾는 시민들에게 설명을 하거나 사진을 찍어주는 일 외에는 대부분 농성장 안에서 각자 시간을 보낸다. 그래선지 한 지킴이는 농성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심심하다”라고 답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지킴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농성장의 지루함을 이겨나갔다. 한 지킴이는 피곤했는지 낮잠에 빠졌고, 다른 지킴이는 허리가 아프다며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으며, 또 한 지킴이는 책을 읽었다. 어떤 지킴이는 ‘포켓몬 GO’를 한다면 소녀상이 포켓스탑이라고 알려주며 자신이 잡은 포켓몬들을 자랑했다. 

  이따금씩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6일에는 <SBS>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다. 지킴이들은 이미 많이 겪은 상황인 듯 익숙해보였다.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명함책에 꽂힌 수많은 명함들이 말해주듯이 이제 지킴이들은 어떤 인터뷰 질문에도 막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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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킴이들이 수요집회를 위해 농성장을 해체하고 있다. ⓒ신일식 기자 


  저녁에는 ‘82쿡(Cook)’이라는 웹사이트 회원들이 매일 저녁 음식을 제공해준다. 식사 외에도 농성장에는 시민들이 기증한 음료와 과자, 라면 등이 쌓여있어 8일에는 광화문 ‘블랙텐트’에 이를 기부하기도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면 농성장 옆에 내놓았던 모금함과 서명종이 등을 정리해 들여놓고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사진과 하루일과를 올린다. 난로를 끄고 침낭과 핫팩을 꺼내 농성장의 밤을 보낼 준비를 단단히 한다. 보통 지킴이 가 2-3명인데 오랜만에 사람이 많다며 지킴이들은 기자가 불편하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다행히 5명이 일렬로 누우니 빈자리 없이 딱 맞았다. 

  새벽에 여러 번 잠에서 깼다. 몇 번 깼는지 세는 것도 4번 이후에 놓치고 말았다. 농성장이 인도에 지어졌기 때문에 바로 옆으로 차가 지나다녔다. 얇은 비닐이 차소리와 헤드라이트를 막아주지 못해 차도에서 자는 느낌이었다. 비닐 너머로 높은 빌딩의 불빛들과 달이 어렴풋이 보였다. 처음 겪어보는 농성장의 밤에 잠을 설치는 기자와는 달리 지킴이들은 이미 익숙한 듯 곤히 잠들어있었다. 


끊이지 않는 도움과 격려 

  소녀상과 농성장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학생들이 수고가 많아요”나 “힘내세요”라는 말과 함께 시민들은 각종 음료나 과자, 담요, 귀마개 등을 줬다. 특히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열린 11일 토요일에는 시민들이 많이 찾아와 지킴이들이 밖에서 적극적으로 모금과 서명운동을 벌였다. 지킴이들은 추운 날씨에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오랜만에 소녀상이 활기를 띠는 것 같다”라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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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면 농성장에도 불이 켜진다. ⓒ신일식 기자


  2월 6일 저녁에는 UN인권위원회에서 농성장을 방문했다. 저녁식사 후 나른하게 누워있던 지킴이들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UN이라고?”라는 반응을 보이며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소녀상이 무슨 의미를 갖고 왜 학생들이 여기서 농성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능숙하고 열정적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2월 7일부터는 경기도의회 독도사랑·국토사랑회 소속 의원들이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까지 보름간 독도에 소녀상 설치를 주장하는 릴레이 시위를 이어갔다. 11일에는 가수 이은미 씨가 농성장을 방문해 지킴이들을 격려하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억인 서명운동”을 도와줬다. 지킴이들은 이은미 씨와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돌려보며 기뻐했다. 

  일본인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2월 6일 한 일본인 여성이 사과문과 도넛을 들고 농성장을 찾았다. 이 여성은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 가며 일본 정부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고 싶고 자신은 오늘 일본으로 돌아가지만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지인이 한국어로 써준 사과문의 끝에는 “일본에도 이 소녀상이 필요하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8일에는 다쿠쇼쿠 대학(拓殖大学)의 다케치 잇세이로 교수가 농성장을 방문했다. 다케치 교수는 대학 교수로서 일본 대학생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적은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한국 대학생들 중에선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시민사회의 힘이 약해진 것이 아쉽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지킴이들의 크고 작은 어려움 

  지킴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을 받고 있지만 길어지는 농성으로 어려움도 겪었다. 농성장은 파라솔 하나에 비닐을 씌운 형태였기 때문에 가장자리에서는 서있기는커녕 허리를 펴고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대부분의 지킴이들이 크고 작은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초창기에 농성장은 추위를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겨울에는 침낭 하나에만 의존해 밤을 보내야했고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얼어있거나 침낭에 서리가 맺혀 있는 경우도 많았다. 여름에는 무더위에 그대로 노출돼 식중독에 걸린 지킴이들도 있었고 농성장 옆 화단과 하수구에서 벌레가 올라와 지킴이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다행히 이번 겨울엔 비닐과 난로, 전기 장판이라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장 농성장 내부가 춥진 않았지만 인근 공사장에서 제공해준 전기마저도 언제 끊길지 모르는 상황이다. 

  농성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위협도 있었다. 한 남성은 농성장에 다가와 “앞에 경찰들만 없었어도 너희들을 칼로 찔렀을 것이다”라고 위협했다. 조현병 환자로 밝혀진 한 여성이 소녀상을 망치로 가격하는 일도 있었다. 이후 지킴이들은 안전을 위해 최소한 2명 이상 농성장에 함께 있어야하며 그 중 남자 지킴이가 한 명 이상은 포함돼야 한다는 규칙도 만들었다. 

  또한 농성 초기에는 경찰이 불법 집회라는 이유로 지킴이들에게 출석을 요구했고 침낭을 깔거나 파라솔을 설치할 수 없다며 물품을 빼앗아가기도 했다. 지킴이들에 따르면 사복경찰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농성을 함께하고 싶으니 카카오톡 메신저 단체방에 초대해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었다. 지킴이들은 국정농단 사건 이후에는 경찰의 태도가 변한 것 같다고 했다. 농성장을 더 견고하게 짓기 위해 물품을 들여와도 제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카카오톡 메신저가 감청 위험이 있다며 외국 회사의 메신저를 사용하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 민지연(21) 씨는 “경찰이 내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라며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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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킴이 민지연(21) 씨가 위안부 평화비의 비석을 닦고 있다. ⓒ신일식 기자 


  지킴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열악한 환경이나 외부의 압박보다 지킴이의 숫자다. 농성 초창기부터 함께했다는 김세진(30) 씨는 “한일합의가 체결된 직후 처음 농성을 시작했을 때는 30명가량의 지킴이가 소녀상 인근 인도를 꽉 채울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길어지는 농성에 지킴이들이 하나둘 떠나 상황이 어려워졌다. 지금은 5-6명의 지킴이들이 남아 거의 격일로 교대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농성장 인근 건물의 경비원은 지킴이들을 처음부터 쭉 지켜봤다면서 “옛날엔 이름을 외운 애들도 있었는데 이젠 많이 줄었고 이름을 외울만 하면 떠난다”라고 아쉬움을 비쳤다. 


소녀상 지키기는 그래도 계속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킴이들은 농성을 끝까지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고승환(21) 씨는 “한일합의를 폐기와 소녀상을 이전하지 않겠다는 약속 없이는 농성을 끝낼 수 없다”라며 굳은 결심을 밝혔다. 

  그러나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3월 3일, 일본은 아직까지도 주한 대사를 파견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으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위로금 지급도 상당히 진행됐다. 외교부는 소녀상을 대사관이나 영사관 앞에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합의 폐기나 소녀상 이전 요구의 영구적 철회가 요원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킴이들은 하나같이 문제없다는 반응이었다. 

  김세진 씨는 “이 문제가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온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노력할 것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 중간 단계를 닦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올해 5월에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고승환 씨도 “내 앞에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어받았고, 누군가 내 뒤를 이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지킴이는 훗날 지킴이들이 다 같이 모여 농성장을 해체하는 상상을 해본다며 “그 날이 오면 기쁘면서도 아쉬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해체식을 한다면 기자가 꼭 취재하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위안부’ 문제 해결이 요원해보이지만 웃으며 농담처럼 주고받았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