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호 > 사회 >기억은 권력이다
만나면 좋은 친구 <MBC>는 언제 돌아올까 공영방송 10년의 투쟁
등록일 2017.09.05 03:56l최종 업데이트 2017.09.05 04:02l 조시현 기자(whtlgus090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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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김장겸 고영주 퇴진 MBC비상행동 출범식에서 MBC 구성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8월 11일,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불금파티‘라는 생소한 집회가 4주차를 맞이했다. 방송 업무에서 배제된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드라마 PD가 춤을 추며 무대를 꾸몄다. <KBS>, <YTN> 등 다양한 방송사의 일원들과 시민들이 함께 모여앉아 집회에 참여했다. 이날 열린 집회의 요지는 간단했다. ’현 <MBC> 사장 김장겸은 자리에서 물러나라.‘ 5년 전 2012년과 지금, <MBC>는 계속해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권력에 저항했다, 그러나

 과거 <MBC>가 한국 언론을 대표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은 매번 <MBC>기자에게 돌아갔고, <MBC>는 ‘뉴스데스크’와 ‘PD수첩’을 필두로 완성도 높은 탐사 보도를 수행했다. 대다수 언론사 지망생이 입사하고 싶은 언론사 1순위로 <MBC>를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명성은 이제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무색해졌다. 상부의 판단에 항의하는 구성원들은 빈번히 방송 업무에서 배제됐으며, ’뉴스데스크‘는 ’청와데스크‘라는 조롱까지 받으며 3-4%로 시청률이 급감했다. 지난 8월 16일 한국기자협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MBC>를 꼽은 기자들은 단 1%에 그쳤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MBC언론노조)’ 허유신 홍보국장은 “<MBC>의 후퇴는 2008년 당시 이명박 정권이 PD수첩을 경계하며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2008년 PD수첩의 보도를 계기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자, <MBC>를 손봐야 한다는 생각이 정권 내에 팽배해졌다는 것이다. 2009년, <MBC> 지분의 70%를 소유하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의 압박에 엄기영 당시 <MBC> 사장이 자진 사퇴했다. 빈 자리에 새로 선임된 김재철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 인물이었다. <MBC> 구성원들은 “김재철 사장이 정권의 기대 이상으로 부응했다”고 입을 모은다. 시사 프로그램은 연달아 폐지됐으며, PD들은 기존에 제작하던 프로그램을 떠나 타 부서로 전보당해야 했다. 김우룡 당시 방문진 이사장이 2010년 4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MBC> 내 좌파를 대청소했다”고 밝힌 일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발언이 논란이 되자 김 전 이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사측은 정권의 입맛에 방송 논조를 맞추는 행보를 이어나갔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MBC> 구성원들은 무려 5차례의 파업을 벌였다.“MBC언론노조는 2012년 총파업 전까지 거의 모든 파업에서 승리해왔다”고 허유신 국장은 설명했다. 그만큼 MBC 언론노조는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조합원 수는 서울지부만 1천명을 넘겼고, 전국언론노조 내에서도 가장 많은 조합원이 활동했다. 경영진은 사상 처음으로 파업 도중 계약직 기자와 PD들을 뽑고 보도국에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등 대규모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했지만, <MBC> 구성원들은 꿋꿋하게 버텼다. 2012년 1월에 시작했던 파업은 반년 가량 이어졌다. 170일, 대한민국 언론 역사상 최장기 파업이었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끝내 자리를 지켰고, 파업은 명쾌한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끝나지 않던 징계와 탄압

 파업이 끝나자 탄압은 본격화됐다. 노사 관계는 파행으로 치달았고, 2012년 10월에는 경영진이 노조에 일방적으로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허유신 국장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것은 사실상 노사관계가 끝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5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MBC>는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을 갖고 있지 않다. 최장기간의 파업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노조는 투쟁을 재개할 동력을 상실했다. 힘이 사측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구성원들을 보호하기조차 힘들었다. MBC언론노조에 따르면 경영진은 2017년 현재까지 10명에게 해고, 110명에게 중징계, 그리고 157명에게 업무 전보를 강행했다.

 파업이 끝난 후에도 경영진을 향한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MBC> 구성원들은 사내 게시판에 글을 쓰거나, 외부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등 안팎에서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그러나 허유신 국장에 의하면, “경영진이나 보도 간부를 비판하고 보도 정상화를 요구하는모든 시도들에는 징계가 뒤따랐다”. 부당해고 및 징계와 관련한 소송 29건 중 90% 이상을 사측이 패소할 정도로 경영진의 징계에는 정당성이 없었다. 그러나 사측이 패소한다고 해서 파행이 종료되는 건 아니었다. 허유신 국장은“정직 6개월 처분에 대해 법원이 부당징계로 판결하면, 경영진이 다시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리는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부당해고 판결이 나와도 회사에 돌아오면 다시 정직 처분이 떨어졌다. 파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구성원들마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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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PD가 인사위원회에 들어가기 전 MBC 사옥 앞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사측은 지시에 따르지 않는 구성원을 탄압하는 한편, 노조 탈퇴를 유도하기도 했다. 2012년 파업 당시 노조 부위원장이었던 <MBC> 김민식 PD는 “파업 종료 이후 사측은 파업 참가자와 불참자를 갈라놓고, 불참자에게 노조를 탈퇴하거나 사측 편으로 오라고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를 탈퇴하면 보직을 주거나,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식의 제안이었다. 김 PD는 “다른 사업장이었다면 노조 자체가 무너졌을 지도 모른다”며 “MBC언론노조는 구성원이 일부 줄기는 했어도 굳건하게 버텼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조직력으로 다시싸울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법원은 2012년 파업 이후 진행된 해고 및 징계 무효소송, 업무방해 소송, 손해배상 소송에서 항소심까지 모두 노조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허유신 국장은 “파업은 근로조건 침해에 대한 방어 수단이며, 법원도 공정방송 여부가 언론인에게 중요한 근로조건임을 인정했다”고 역설했다.


 MBC, 언론의 본질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

 현재 국회에는 보수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을 해결하기 위해 발의된 방송관계법 4개 법안이 계류돼있다. 이들 법안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여야 6 대 3에서 7 대 6으로 변경 ▲사장 선임 등의 중요 사안 결정 시 3분의 2 이상의 동의필요(특별다수제) ▲노사동수 편성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 안 역시 최소한의 개선일 뿐 최선의 방안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허유신 홍보국장은 그중에서도 특별다수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위해서는 여야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여야 합의 도출은 듣기에는 바람직하지만, 자칫하면 공영방송에 걸맞은 인사가 아니라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이 간부로 선임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8월 22일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해당 법안에 대해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며 수정을 제안했다.

 학계와 언론단체 등에서는 영국의 <BBC>나 독일 <ARD>, <ZDF>와 같은 공영방송사를 모범 사례로 들고 있다. <BBC>의 경우 규제·감독 기구인 ‘BBC 트러스트‘의 10명 중 4명을 각 지역의 대표로 선출해 시청자들의 다양한 견해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독일의 경우, 다양한 이해집단 출신의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사장의 선임권을 갖게 하는 등, 다원화된 체계를 구성하고 정치권력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와 관련해 2012년 파업 당시 해고됐던 이용마 전 <MBC> 기자는 국민 대리인단을 통해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자고 제안기도 했다. 공영방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시민사회 와 언론계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MBC> 경영진을 향한 저항도 다시금 거세지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난 이후 지난해 11월 7일, 사내 게시판에 보도국장과 간부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오며 노조 구성원들이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다. 사측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삭제하자 입사 4년차 막내 기자들은 손으로 쓴 대자보를 사내에 붙었다. 이어 사내에서 ‘김장겸은 퇴진하라’고 외친 김민식 PD가 인사위원회에 회부됐고, PD수첩 PD들과 시사제작국, 보도국 구성원이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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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MBC 본부가 입수해 폭로한 '카메라기자 성향 분석표' 중 일부 

ⓒ언론노조 MBC본부



 ‘<MBC>판 블랙리스트’의 공개는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인 셈이었다. MBC 언론노조가 입수한 문서들에 따르면, 사측은 정치적 성향과 노조 활동 정도, 파업 참여 여부 등을 기준으로 카메라 기자들을 ‘회색분자’, ‘파업의 주동계층’ 등의 4개 등급으로 분류했다. 또한 ‘X 등급’에 속한 기자들에 대해 ‘격리 필요’, ‘보도국 이외로 방출 필요’라고 언급하는 등 경영진의 낙인과 탄압이 실제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어서 지난 2월에 진행됐던 <MBC> 사장 후보 면접 속기록이 공개되면서, 방문진 이사들이 노조 소속 인사를 배제하도록 경영진을 지휘했던 정황 역시 밝혀졌다. MBC언론노조와 ‘MBC영상기자회’는 김장겸 <MBC> 사장을 부당노동행위·업무방해·명예훼손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현재 MBC언론노조는 9월 1일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예고한 상태다. 제일의 목표는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방문진 이사진을 해임하고, 새로운 방문진 이사진을 구성해 김장겸 사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허유신 국장은 “송출 부문을 비롯해, 파업을 할 때 최소한으로 남겨뒀던 인력도 빠짐없이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파업에 돌입할 때 필수 인력을 남겨두는 일은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단체협약에 규정돼있던 사항이었다. <MBC>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준의 파업을 경영진이 자초한 셈이다. 방송 송출 포기는 그만큼 <MBC>의 상황이 빨리 개선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MBC>의 투쟁은 공영방송이 얼마나 권력에 취약했는지, 또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이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상기시킨다. 김민식 PD는 “공영방송은 결국 국민의 공공재”라고 역설했다. <MBC>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결국 국민이 공영방송의 제 기능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2012년 총파업이 끝난 지 5년이 넘은 지금, <MBC> 구성원들은 온몸에 상처가 난 채 여전히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 '만나면 좋은 친구'라는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