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호 > 사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위한 성중립화장실 모두에게 열려있는 화장실이 필요하다
등록일 2017.12.02 19:46l최종 업데이트 2017.12.02 20:29l 박수현 기자(oksh49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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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국내 대학 최초로 성공회대학교가 성중립화장실(gender neutral restroom)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후보 시절부터 성중립화장실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백승목 성공회대 총학생회장은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에 대한 담론이 작년부터 학내에서 있어왔고, 학교 측에서도 학생사회의 합의가 있으면 추진이 가능하다는 언급이 있었다”며 그 계기를 설명했다. 성중립화장실은 인문사회계열 건물인 새천년관 1층에 도입될 예정이며, 현재 학생회는 학교와 구체적인 비용을 논의 중에 있다. 


성중립화장실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기존의 화장실이 ‘여성용’과 ‘남성용’의 두 종류라면, 성중립화장실은 어떤 성별을 가지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올 젠더 레스트룸(all gender restroom)’이나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불리기도 한다. 일찍이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스웨덴은 대다수의 화장실이 성중립화장실로 조성돼있다. 미국에서는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로 백악관 내 성중립화장실이 설치됐으며,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지난 3월 이래로 모든 공공건물에 1인용 성중립화장실 설치가 의무화됐다. 한국은 ‘한국다양성연구소’와 ‘인권재단 사람’ 등 몇몇 시민단체의 사무실에만 성중립화장실이 도입돼있다. 가령 한국다양성연구소의 성중립화장실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세면대가 하나 있고, 좌변기와 샤워기가 각 한 칸씩 마련돼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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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다양성연구소에 위치한 성중립화장실 입구



  성별 구분이 없는 공용화장실은 이미 술집을 중심으로 국내에도 많이 설치돼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의 루인 연구원에 따르면 성중립화장실은 그러한 공용화장실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는 “공용화장실의 ‘공용’은 ‘남녀 공용’을 의미해 젠더가 두 종류임을 전제하는 반면, 성중립화장실은 화장실에 대한 관념 자체를 성중립적으로 만들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중립화장실은 성별이 ‘남성’과 ‘여성’으로 간단히 이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화장실을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기존의 화장실이 특정 정체성의 이용자를 배제한다고 강조한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여자화장실과 남자화장실 중 어느 쪽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생물학적 성별과 사회적인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 집단이 기존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김 소장은 “지인 중에 초등학교 때부터 스무 살이 넘은 지금까지 어느 화장실도 맘 편히 들어가지 못하는 트랜스젠더가 있다”고 토로했다. 남성화장실에 가면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성폭력의 두려움에 휩싸이고, 여성화장실에 가면 남자같이 생겼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외출 자체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루인 연구원에 따르면,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음료를 마시지 않거나, 용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리고, 마지못해 가야할 경우 공용화장실을 굳이 찾아가는 등 트랜스젠더는 화장실 선택 문제로 인해 일상생활에 여러 불편을 겪는다. 

  성별 고정관념과 부합하는 외양을 갖췄다 하더라도 불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남성 정체성을 갖고 있고, ‘남성적’ 외양을 하고 있지만 여성 성기를 갖고 있는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도 남성 화장실을 사용하긴 어렵다. 좌변기 칸에서 소변을 보면 ‘남성답지 못하다’고 여겨지고, 소변기를 사용할 땐 성기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가 아니더라도 외양이 성별 고정관념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화장실을 이용할 때 유사한 불편함을 경험할 수 있다. 가령 머리를 길게 기른 남성이나 짧은 머리의 여성 역시 아무 문제없이 각각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을 이용하긴 쉽지 않다. 성평등 프로젝트팀 ‘꼬막’이 성중립화장실 포스터를 제작해 배포하고 서울인권영화제, 퀴어문화축제 등에 게시한 것도 이러한 계기에서였다. ‘남성적’ 외양을 한 꼬막의 한 활동가가 볼일이 급한데도 화장실 앞에서 한 곳을 고르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려야 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루인 연구원은 화장실이 “개인으로 하여금 ‘여성다움’ 혹은 ‘남성다움’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실천하도록 관리하는 정치적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성별 이분법, 성별 고정관념에 어긋나는 사람들은 화장실을 이용할 때 자기 모습을 스스로 검열하고, 배제와 소외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요지다. 나아가 김 소장과 루인 연구원은 화장실이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역설했다. 김 소장은 기존의 화장실이 사회의 성별 이분법을 강화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성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시킨다고 강조했다. 김지학 소장은 “기존의 화장실은 비장애인·시스젠더(생물학적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성인 중심으로 설계돼 장애인·성소수자·아동에게는 아주 불편한 공간”이라고 꼬집었다. 그 누구도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고는 살 수 없지만, 그러한 필수적인 공간이 성별 이분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화장실

  결국 성중립화장실은 특정 정체성, 성별 이분법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꼬막이 제작한 성중립화장실 포스터에도 이러한 지향이 담겨있다. 포스터에는 사람을 뜻하는 픽토그램이 둥근 테두리 안에 그려져있는데, 하반신 없이 상반신만으로 간단히 표현돼있다. 꼬막 측은 공중화장실이 ‘모두와 공유하는, 내가 나일 수 있는, 안전한 나만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치마나 바지로, 두 다리나 휠체어로 정해지지 않은 한 사람이 혼자만의 안전한 공간에 있는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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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프로젝트팀 '꼬막'이 제작한 성중립화장실 포스터 ⓒ성평등 프로젝트팀 꼬막



  성공회대의 성중립화장실도 성별뿐만 아니라 모든 정체성을 포용할 수 있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백승목 성공회대 총학생회장은 “상세한 구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성중립화장실에는 당연히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보조시설이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전에는 대다수의 장애인 화장실에서 성별이 구분돼있지 않았지만, 2000년대 들어 장애인을 ‘무성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현재는 분리가 이뤄진 상태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도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 두 종류의 화장실과 더불어 성중립화장실이 필요하다.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이 서로 다른 성별을 갖고 있을 경우 두 개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가는 일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갈 때 동반할 보호자가 필요한 집단은 장애인 외에도 아동, 노인 등 다양하다. 기존 남자화장실엔 설치돼있지 않은 기저귀교환대도 성중립화장실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편 성중립화장실의 적절성 및 안전성에 대한 논쟁에서 성범죄에 대한 우려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사내 성폭행 논란이 있었던 현대카드에서 본사 건물 내부에 성중립화장실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실제로 공용화장실에서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공포감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공용화장실에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했던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서울시는 공용화장실을 전수조사하고 성별분리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성별구분 없는 공용화장실을 사건의 원인으로 바라본 결과였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주먹구구식 해결책이 여럿 제시됐지만, 루인 연구원은 “공용화장실을 분리시킨다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여성은 여성화장실에서도 몰래카메라, 성폭력 등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여전히 갖고 있으며, 흉악범죄는 장소를 막론하고 다양한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여성이 생물학적 남성과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성중립화장실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성중립화장실이 기존의 화장실처럼 내부에 여러 칸이 있는 형태가 아니라, 한 공간에 소변기에서부터 세면대까지 모든 설비가 갖춰진 ‘1인용 화장실’ 형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지학 소장은 “여성이나 성소수자가 공포를 느끼는 화장실은 ‘모두를 위한 공간’일 수 없다”며 성중립화장실은 반드시 1인용으로 지어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성공회대에 도입될 성중립화장실도 1인용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성중립화장실이 모두 1인용으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몰래카메라의 설치가 더 용이해진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불안은 계속될 수 있다. 하지만 김 소장은 성별 이분법과 몰래카메라는 “별개의 문제이자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몰래카메라 문제는 몰래카메라 탐지기 구비 및 대여 서비스 확충과 더 근본적으로는  몰래카메라 제작 및 유통 규제로 해결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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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우려가 표현된 인터넷 댓글들



반대보다 대화가 필요하다

  한편 성중립화장실의 도입은 시기상조고, 만들어진다 해도 성소수자 전용 화장실로 간주될 것이므로 성중립화장실을 이용할 경우 본인의 동의 없이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등이 공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루인 연구원은 이에 대해 “타인이 어떤 화장실을 사용하는가는 누군가가 주목해 판단할 일이 아니”며, 이는 성중립화장실을 몰래 지켜보는 사람들을 규제해야 할 일이지, 성중립화장실 자체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남성이 대개 서서 소변을 본다는 점에서 여성들이 성중립화장실의 청결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결 문제는 성중립화장실뿐 아니라 모든 공중화장실에 해당되고, 따라서 성중립화장실 반대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김 소장의 의견이다. 또 캠페인을 통해 위생적인 사용을 장려할 수도 있다. 일례로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성중립화장실 벽에 ‘앉아서 사용해주세요!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화장실입니다’라는 메모를 붙여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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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다양성연구소 성중립화장실 내부 좌변기 앞에 섰을 때 이 메모를 확인할 수 있다.



  ‘완벽한 성중립화장실’은 단순히 도입에서 끝나지 않는다. 백승목 성공회대 총학생회장은 성중립화장실 공사가 완료된 후에도 학우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및 보완대책을 지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다양성연구소의 성중립화장실도 초기에 한 차례 보수 공사를 거쳤다. 이전에는 화장실 내부에 좌변기가 두 칸으로 마련돼있었는데, 칸막이가 천장과 바닥 부분을 막고 있지 않아 안전성이 떨어지고, 이용자들이 그로 인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김 소장의 판단에서였다. 그에 따라 좌변기 한 칸, 샤워기 한 칸으로 구성된 온전한 1인용 화장실을 구축했다. 

  성중립화장실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러 보완책이 동반되더라도 여전히 성중립화장실에 불편함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화장실을 다 성중립화장실로 바꿔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성중립화장실이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성중립화장실이 아직 낯선 한국 사회에서, 성중립화장실은 기존의 공용화장실과 다를 바 없는 곳으로 여겨지곤 한다. 기존의 성별분리 화장실도 두려운 공간인 마당에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우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당연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려운 공간을 고수하기보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함께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