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호 > 사회
지워진 낙태의 선택지 미프진, 여성의 건강과 기본권을 위한 또 다른 선택
등록일 2018.03.02 18:29l최종 업데이트 2018.03.02 18:30l 박수현 기자(oksh49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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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를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미프진은 비수술적 방법으로 낙태를 가능케 하는 일명 ‘먹는 낙태약’이다. 해당 글은 “낙태를 죄로 규정하고 미프진을 도입하지 않는 것은 여성의 안전과 건강을 중시하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청원이 한 달 만에 약 23만 명의 동의를 받으며 낙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한번 높아졌다. 이에 조국 민정수석은 “미프진 합법화에 앞서 임신중절에 관한 사회적, 법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낙태약 도입 가능성을 타진하기에 앞서 낙태 합법화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신중절유도제로 알려진 미프진은 어떤 의약품인지, 한국에서 미프진 도입이 늦춰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한국에선 불법인 필수의약품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리스톨이라는 두 가지 성분으로 낙태를 유도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이충훈 회장은 “미페프리스톤은 임신유지에 필요한 호르몬을 억제하고, 미소프리스톨은 자궁을 수축시켜 착상된 수정체를 체외로 배출시킨다”며 각 성분의 기능을 설명했다. 1988년 개발돼 1990년부터 유통된 미프진은 현재 총 66개국에서 유통이 승인됐고, 세계보건기구는 2005년에 미프진을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했다.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는 “의료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험한 자가 낙태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며 미프진의 효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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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성분을 포함한 경구약이다. ⓒExelgyn



  그러나 미프진의 안전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상이한 의견을 보인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심각한 부작용을 근거로 미프진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충훈 회장은 미프진의 “일반적인 부작용으로 메스꺼움, 어지러움, 발열 등이 있으며, 불완전 유산의 위험도 있다”며 “미프진 복용 시 의사와의 상담과, 복용 후 검진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이기 때문에, 미프진 복용 후 상담과 검진을 통한 지속적인 추후 관리는 어려운 실정이다. 병원에 기록이 남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편 미프진이 낙태를 위한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물이라는 의견도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씨는 연구보고서 〈유산유도제 미페프리스톤의 도입〉에서 “미프진을 통한 낙태 성공률은 임신 8주 이내의 경우 98-10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또 미프진은 복용 시 합병증 발생률과 사망률이 낮은 안전한 약물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인구학 연구소는 2015년 지난 16년간의 미페프리스톤 복용 시 사망률이 같은 기간 동안 출산과정에서의 사망률보다 훨씬 낮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미프진은 심리적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페미니스트 단체 ‘페미당당’ 김민아 활동가(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는 “미프진을 통한 낙태는 몸에 침입적인 수술 없이 이뤄져 덜 ‘트라우마틱’한 낙태법”이라고 강조했다.

  페미당당은 미프진의 존재를 알리고자 지난해 11월 미프진 자판기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자판기에는 실제 미프진 대신 한국의 낙태죄 규정을 비판하고 미프진을 소개하는 소책자가 들어갔다. 활동가들은 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오랫동안 미프진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여성 기본권을 위한 미프진, 낙태죄 폐지가 선행돼야

  낙태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미프진의 도입은 쉽지 않다. 제약회사가 주도적으로 낙태약 유통 허가를 요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가 의약품의 도입을 주도할 수는 없고 제약회사가 허가 심사를 신청해야만 의약품의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의 수요가 있더라도 낙태죄가 폐지되지 않는다면 미프진은 현실적으로 도입될 수 없으며, 식약처에 의한 안전성 검사도 진행되지 않아 그에 대한 전문의 간 합의조차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낙태 합법화에 합의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 ‘낙태반대운동연합’은 지난해 10월 말 언론에 의견서를 통해 “낙태가 합법화되면 생명경시 풍조가 더 만연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페미당당 우지안(노문 13) 활동가는 “낙태의 합법화가 낙태 시행 비율을 늘리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미국의 거트마커 연구소는 1996년부터 2009년까지 낙태의 허용 사유를 늘린 국가가 사유를 축소한 국가보다 많음에도 동일한 기간 동안 낙태 시행 비율은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낙태 범위 확대가 곧 낙태 건수의 증가를 낳지 않는다는 사실이 규명된 것이다. 또한 여성에게 낙태는 쉽게 결정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궁 천공, 감염 등 후유증의 가능성 때문이다. 페미당당 활동가 정소영(디자인 13)씨는 “낙태를 합법화할 경우 무분별한 낙태가 자행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전제돼있다”며 여성의 주체적인 결정을 존중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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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적 낙태와 수술적 낙태의 비교 ⓒ윤정원, 〈유산유도제 미페프리스톤의 도입〉



  낙태가 불법 의료행위로 규정돼 현재 미프진은 불법적 경로로 유통되고 있다. 전문의와의 상담 없이 온라인에서 출처가 불명확한 약물을 복용하면서 여성들은 허위약품 복용에 따른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여성의 건강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처는 다소 소극적이다. 식약처 관계자에 따르면 식약처는 미프진을 판매하고 있는 온라인 사이트를 발견하는 족족 삭제를 하고 있지만 해외 사이트의 경우 그것이 쉽지 않다. 또한 식약처는 미프진의 온라인 유통을 불법으로 규정할 뿐 약품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활동가 김민아 씨는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은 사회 저지대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낙태 합법화가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낙태는 여성의 문제에서 나아가 사회적 약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둘러싼 논의는 단편적 대립구도에 머물러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오랜 갈등 구도는 낙태에 대한 합리적 논의를 어렵게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 후 6개월까지는 여성의 낙태권을, 출산 3개월 전부터는 태아의 생명권을 우선시하는 판결을 내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 절충을 이뤘다. 우지안 활동가는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가 국가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여성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 또한 낙태 사유와 시점, 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고려해 낙태에 대한 폭넓은 담론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