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 > 사회 >우리가 만난 사람
장애인권운동도, 여성운동도 아닌 '장애여성'운동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를 만나다
등록일 2018.04.09 15:54l최종 업데이트 2018.04.13 00:38l 유지윤 기자(jiyoun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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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여성은 남성 중심,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그 존재가 지워지곤 했다. 이에 “여기 우리가 있다”며 장애여성의 존재와 경험을 말해온 사람이 있다. 한국에서 장애여성 이슈를 처음 독자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단체 ‘장애여성공감(공감)’의 배복주 대표다. 정책을 자문할 때 “하고 싶은 말 다 한다”는 거침없는 사람, 성희롱 발언에 “너 죽었어. 따라와”한다며 웃는 유쾌한 사람. ‘다른 몸’의 경험을 갖고 사회의 ‘정상성’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배복주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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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공감의 배복주 대표



차별적 권력에 균열을 내자

  배복주 대표가 장애인권운동에 발을 디딘 것은 1992년 故백원욱 씨의 장례집회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백원욱 씨는 장애인이 통행하기 불편한 강남대학교의 가파른 경사로에서 일어난 휠체어 추락 사고의 피해자다. 장애학생의 이동권을 소홀히 여긴 학교는 경사로에 이동편의시설은커녕 안내판조차 설치하지 않았지만, “운전미숙 때문”이라며 개인의 책임만을 물었다. 당시 백원욱 씨 사고에 공감한 이들은 장애인권을 외치는 장례집회를 열었다. 대학교 2학년이던 배 대표는 자신이 활동하던 장애학생 친목도모 동아리원과 함께 이 시위에 동참했다. 몸에 불편을 겪는 사람으로서 사고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배 대표는 이 시위에서 만난 동아리 연대체의 선배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장애인권운동을 접했다.

  그가 운동에 뛰어들었을 때 한국사회의 장애인권운동은 미숙한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조직화가 덜 돼 활동하는 장애인은 적었고, 이들의 활동마저 개인이나 작은 단체 차원에 머물렀다. 활동에서 다루는 사안의 폭도 제한적이었다. 생존에 필요한 이동권과 노동권에만 집중해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성된 근본적인 불평등 구조를 인식하지 못했다. 배복주 대표는 장애인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존중 받기 위해서는 진보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려면 무엇이 불평등인지 알아야 하고, 분노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려면 비장애인중심의 권력에 균열을 내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불평등한 장애인권실태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배 대표는 졸업 후 ‘장애권익문제연구소(장권연)’에서 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차별에 눈을 뜨다

  줄곧 장애인권 문제에 천착하던 장권연은 95년 북경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 참가하며 여성 장애인 이슈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장권연 안에 여성 장애인 소모임 ‘빗장을 여는 사람들(빗장)’이 만들어졌다. 빗장의 간사가 된 배 대표는 빗장의 세미나가 “눈을 뜨이게 했다”고 말한다. 자신은 그동안 장애차별만 이야기해왔는데, 여성을 향한 차별 또한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여성학을 전공한 빗장의 멤버들과 이야기하며 자신의 과거 경험을 재해석할 수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자신과 같이 소아마비를 겪은 남자 동급생과 함께 반장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여자면 부반장을 해야 한다”는 친구들의 말에 당연한 듯 후보에서 배제됐다. 당시에는 별 문제의식 없이 지나갔지만, 늦게나마 이러한 경험을 곱씹어보니 배 대표는 오랜 기간 여성차별을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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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미국 장애여성리더십포럼에 참가한 배복주 대표 (오른쪽) ⓒ장애여성공감



  여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며 배 대표는 장권연으로부터 독립된 단체의 필요성을 느꼈다. 빗장이 장권연의 부속 단체로 여겨져, 여성 이슈에 집중하는 빗장만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주적인 행사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최종 의사결정 권한은 장권연에 있었다. 적극적인 여성 문제제기에 갈증을 느끼던 때, 97년 미국 장애여성리더십포럼은 이들에게 새로운 단체 설립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장애여성들이 직접 장애여성과 관련된 주제를 논의한 이 포럼에서 배 대표는 ‘장애여성운동에는 장애여성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결국 배 대표는 빗장 운영위원을 비롯한 8명의 회원들과 장권연을 나와 자주적 장애여성단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쯤 배복주 대표는 빗장에서 함께 활동하던 중증장애여성 세 명이 본가를 나와 독립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 대표는 그들이 모여사는 집에서 자신도 함께 생활하겠다고 다짐했다. 장애여성운동을 하려면 장애의 정도가 다른 장애여성들의 생활감각 또한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휠체어를 타지 않고, 제도권 교육을 받은 배 대표는 휠체어에 앉아 지내고, 학교에 다니지 않은 이 세 명의 생활방식에 익숙지 않았다. 배 대표는 이 2년의 시간을 통해 부족하게나마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빗장 이후의 행보를 고민하던 배 대표는 세 장애여성, 장권연을 함께 탈퇴한 동료들과 ‘장애여성공감(공감)’을 창립했다. 고덕동의 한 지하방에서, 기념사진도 없이 깃발을 꽂은 셈이었다.


‘장애여성운동을 시작해야겠다’

  공감은 “장애여성의 경험을 말하고, 우리 사회에 장애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장애여성과 함께 생활하고 고민하며 느낀 점을 사회에 알리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공감은 장애인권운동과 여성운동 모두에서 사고의 틀을 빌렸지만, 특히 여성주의에 철학적기반을 뒀다. ‘여성장애인’ 대신 ‘장애여성’이라는 문구를 택한 것도 여성주의에 기초한다. ‘장애인 안에 여성 장애인도 있다’가 아닌 ‘여성 중 장애여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애인’ 및 ‘여성’이라는 집단이 상존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이라는 별도의 정체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여성’이 겪는 차별은 단순히 ‘장애인’이 겪는 차별에 ‘여성’이 겪는 차별을 산술적으로 더한 게 아니라는 것이 배복주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어떤경우에 장애차별이고 어떤 경우에 여성차별인지 구분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장애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겪는 차별이 장애여성차별”이라며 다양한 차별의 양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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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장애와 성폭력, 이것부터 시작해요' 발표회에서 배복주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발표회는 성폭력피해 장애인을 지원하는 기관 및 개인을 교육하기 위한 여성가족부 공동협력사업이었다.

ⓒ장애여성공감



  대표적인 ‘장애여성 이슈’는 성폭력이다. 배 대표는 2000년 강릉에서 발생했던 7년간의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마을주민들이 초등학생이던 지적장애여성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집단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이었다. 장애여성의 성폭력 사안에 막연히 문제의식을 지니던 때에 이 사건은 공감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됐다. 이 다짐이 공감 내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차이가 존중받는 사회를 향해 

  장애여성, 차별, 성폭력에 대해 고민해온 공감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2018년 공감의 슬로건은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다. 배 대표는 이를 “시대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에 도전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불구의 정치’란 “사회에서 비정상이라고 규정받은 ‘불구’인 우리가 우리들의 정치를 펴보겠다”는 다짐이라고 말했다. 공감은 이 슬로건에 맞춰 올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넘어 성적지향, 학력, 출신국가 등의 차별을 방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있어야만 복합적인 사회 내 차별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감은 또한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성소수자와 이주민을 포함한 다른 사회적 소수자 집단과도 연대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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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세계인권선언일 맞이 차별금지법 제정촉구대회 - 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 거리행진에 참여한 배복주 대표와 동료들 ⓒ장애여성공감



  공감을 만들 때 스물여덟 살이던 배복주 대표는 이제 마흔여덟이 됐다. 그 사이에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등의 ‘이름표’가 정신없을 만큼 많아졌다. 배 대표는 여러 단위에서 자신의 대표성이 가져다주는 권한과 권력을 경계하고, 나아가 스스로 저항하는 것을 과제로 꼽았다. 독단하겠다는 고집, 보수적인 사고, 대접받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십 년 전 운동을 시작했던 이유와 즐거움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이다. 불평등을 야기하는 세상의 권력을 분산하는, 대표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고민인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배 대표는 “인터뷰에서 처음 하는 고백”이라며 입을 열었다. 최근 미투운동으로 기자들과 대면할 자리가 많은데, “나의 장애를 보고 나를 판단하게 될까봐 우려된다”는 말이었다. “장애인들이 장애에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배 대표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도 “장애로 위축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이 아직 극복하지 못한 ‘과제’”라 표현했다. 하지만 이 과제는 배 대표보다 우리 사회의 몫이 아닐까. 차이가 약점이 아닌 다양성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장애여성과 ‘공감’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거침없이, 또 유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