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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 평화로 나아가는 길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김병로 HK교수에게 통일을 묻다
등록일 2018.06.06 00:54l최종 업데이트 2018.06.08 20:31l 박수현 기자(oksh49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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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 이후 발표된 판문점 선언은 연내 종전선언 발표 계획을 밝히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남북 간 평화 분위기는 올해 초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파견을 시작으로 급물살을 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6차 핵실험 등 무력 도발로 작년 내내 불안정하던 한반도 정세도 누그러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북한이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진정성 있게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1948년 남북한의 단독 정부 수립 이래로 70년간 이어져온 분단체제는 종식될 수 있을까. 한반도 통일은 필요하며 또 가능한 일인지, 바람직한 통일 방식은 무엇인지 김병로 HK교수(통일평화연구원)에게 물었다. 그는 한반도의 미래전략으로서 ‘평화연합’ 통일을 제시하는 《다시 통일을 꿈꾸다》를 집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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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평화연구원 김병로 HK교수



통일의 필요성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까? 평화통일연구원에서 실시한 통일의식조사 결과 2017년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중은 53.8%에 그쳤고, 20대 중 통일을 반대하는 이들은 33.9%에 이른다. 

  오늘날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는 남북이 같은 민족으로서 역사와 언어 등을 공유한다는 민족주의적 정서가 통일의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분단 이후 70년이 지나면서 구성원들은 남북을 개별 공동체로 인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민족의식은 약해지고 국가의식이 강화된 셈이다. 북한의 도발로 인한 안보 불안 이외에 분단에 따른 생활상의 불편함이 크게 없다는 점도 통일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분단 상황은 일상의 가벼운 불안감을 넘어서는 명백한 폐해가 있다. 군사적 대치에 따른 민간인 희생과 권위주의 정부 온존이 그 예다. 한국전쟁으로 남북에서 약 200만 명이 살상됐으며 그 이후에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등 군사적 대치상황이 이어져 많은 시민들이 희생됐다. 한편 남북한은 체제 경쟁을 활용해 구성원을 정치적으로 탄압하기도 했다. 한국이 대륙으로 진출할 수 없는 섬처럼 존재해 개별 시민의 국제적 시야에 제약이 가해지는 것도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명백한 분단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통일은 필요하다.

  통일은 젊은 세대의 경제적 기회를 넓히는 데도 좋은 발판이 된다. 가령 경제협력을 통해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하고 더 많은 공단을 북한에 세울 수 있다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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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실시한 2017 통일의식조사 중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응답자 비율



한반도를 넘어 세계인에게 호소할 수 있는 통일의 당위성은 무엇일까? 한반도가 통일 이후 강성해질 수 있다는 주장에 주변국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통일 한국은 국가적 발전뿐 아니라 동북아 및 세계 평화에도 크게 기여한다.북한의 무력 도발, 핵 위협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통일은 지리적 결합을 넘어 이데올로기의 화해를 뜻한다. 남북한의 통일에 평화의 상징성이 큰 이유다. 지구 곳곳에서 종교, 민족 등의 차이에 기반한 살상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류의 신념에서 출발한 이데올로기는 세계를 반으로 갈라놓았고 남북한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치열하게 사람을 죽이고 서로에게 아픔을 줬다.

  남북통일은 이데올로기로 대립하던 두 정치적 실체가 화해하고, 평화적 공존을 성취하는 일이다. 진정한 평화가 아득히 멀어 보이는 세계에 평화의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통일 한국의 건설은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다. 독일이 통일을 이룬 전례가 있지만 동서독은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 만큼 남북한 통일의 역사적 의미는 이와 구분된다. 통일의 세계사적 상징성이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주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더라도 통일을 위해 현실적으로 고려할 정치·사회·경제적 요소가 많다. 현실적이면서 바람직한 통일의 과정은 무엇일까?

  통일 방식을 논하는 데 있어 남북 간 핵심 쟁점은 정치 통합과 연방제 중 어떤 결속 방식을 택하느냐는 점이다. 한국은 연합제를 거쳐 단일국가로 통일하는 방식, 북한은 연방제를 주장해왔다. 연합제는 유럽연합(EU)이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같이 여러 국가가 협의체를 구성하되, 외교와 국방 사안은 각 지방정부가 일임하는 방식의 통일 방법이다. 연방제는 두 국가가 보다 긴밀히 결합하는 형태로서 중앙 기구가 외교와 국방까지 도맡으며 지방에 실질적 통제력을 행사한다.

  북한은 양국의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중 하나를 선택해 통일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2000년 6.15 정상회담에서 연방제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중앙정부가 외교와 군사를 통제하지 않는 결합 형태로, 한국이 과도기적 단계로 설정한 연합제 통일방안과 유사하다. 이 같은 논의에 비춰볼 때 남북은 두 체제를 유지하되, 상징적인 중앙 연합 정부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우선 통일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연합제 통일은 단일한 통일국가와 별개의 두 국가 사이 어딘가 위치해 ‘1.5국가 2체제’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통일은 연방제 형태를 상정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1989년 노태우 정부 시기에 처음 제시돼 김영삼 정부가 발전시킨 것으로 지금의 문재인 정부까지 계승되고 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라는 통일의 세 단계를 제시해 종국에 ‘1국가 1체제’의 통일국가를 추구한다.

  남북한 결합의 최종상태는 당장 결정하기보다 미래 세대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 정부가 그리는 통일국가 체제는 자유민주주의이지만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그러한 목표에 쉽게 따르지 않을 것이다. 통일국가의 체제를 결정하는 것은 남북한의 미래 시민들이 시간을 두고 참여할 일이다. 통일 준비 과정에서는 ▲연합제 형태의 지속 ▲연방제 ▲통일국가라는 세 가지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되 당장의 목표는 연합제로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통일 당사자인 남북과 엇갈리기도 한다. 외교와 자주적 통일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통일은 민족문제이지만 현실적으로 국제적 사안이므로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이해관계가 얽힌 수교국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힘들다. 국제관계가 거의 형성돼 있지 않아 자주를 강조하는 북한과 달리 한국은 ‘자주통일’과 관련해 고려할 요소가 많다. 한국 안에서 의견을 모으는 일부터 쉽지 않다. 한국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윗세대는 ‘자주’를 미군 철수와 연관 지어 생각해 그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탓이다.

  그러나 한국 노년층의 거부감과 달리 ‘자주통일’은 외교적 승인보다 중요한 과제다. 통일을 위해 실질적 대화와 협력을 주도해야 할 당사자는 주변 국가가 아닌 남북한이다. 과거 통일부의 공공외교가 대내외적 비판을 받은 것도 이해 당사자인 남북한의 화해 협력이 전제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 외교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4월 27일의 판문점 선언과 같이 남북이 먼저 소통 및 협력하고 이후 외교력을 발휘해 주변국들과 통일을 추진해나가야 한다.


통일을 추동할 핵심 조건은 무엇일까? 문화적 이질성 해소, 경제 교류 증대 등이 주로 꼽히는 것 같다.

  통합 제도·유능한 리더십·통일에 대한 의지가 핵심이다. 통일을 자동차로 비유해보자. 통합 제도는 자동차의 엔진이다. 개성공단이나 남북대화 기구는 엔진처럼 남북 통합을 강화하는 원동력이 된다. 정치지도자들의 통일 리더십은 자동차 운전자와 같다. 통일의 방향성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역할이 막중하다. 그러나 핵심은 통일 의지다. 연료가 없으면 차가 움직이지 않듯, 다른 두 조건들이 다 갖춰지더라도 남북한 국민들의 의지가 없다면 통일은 불가능하다.

  통일에 더 결정적인 조건은 북한 주민들이 한국 체제에 대해 갖는 인식이다. 현실적으로 경제력이 한국의 1/40 수준에 불과한 북한 체제가 통일의 미래상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이 좋은 비교 사례다. 사회주의 체제의 동독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서독에 흡수통일 됐다. 동독에서 서독의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동독 주민들이 서독의 경제적 풍요와 자유를 선망했다는 점이 그 배경 중 하나였다. 동독 주민이 서독 모델을 미래 체제로 원했다는 점이 독일 통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친밀감은 높지 않다. 2017년 북한주민 통일의식조사 결과, 북한 이탈 주민의 71.2%가 북한에 거주 시절 가장 친밀감을 가졌던 국가로 중국을 꼽았다.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 응답자 비율은 22.7%에 불과했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의 높은 경제력을 인지하면서 과거에 비해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꽤 높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과 비교했을 때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만약 북한체제가 붕괴한다해도 남북통일의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없다. 북한 민심에 따른 결정이 내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단 이후 현재까지 남북관계 완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면?

  노태우 대통령의 1988년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다.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남북이 민족공동체로서 함께 협력할 것을 천명했다. 중국,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선언의 계기는 88 올림픽이었다. 앞선 두 올림픽이 냉전체제가 완화되기 이전 모스크바와 LA에서 열려 각각 사회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만의 반쪽 올림픽이 됐던 바 있다. 그에 따라 88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를 원하는 국민적, 나아가 지구촌의 열망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한국 사회에서 북한을 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만연했고 공산주의의 ‘공’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7.7 선언을 계기로 탈냉전으로 접어드는 역사적 전환기에 한국이 발 맞춰 나갈 수 있었다.

  7.7 선언을 기초로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처음 제시됐고 그것이 현재까지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7.7 선언이 남북관계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지형을 극적으로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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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이 7.7 선언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권기에는 북한과의 관계가 특히 악화됐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북한을 정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아 군사적 대치가 심각한 관계 악화로 귀결됐다. 보수정권에서는 북한이 곧 망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북한을 적대적 태도로 바라보는 것과 별개로 이들 사회를 대등한 정치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북한과의 물리적 대치는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종종 있어왔지만 보수 정권의 편협한 태도가 관계 악화를 낳았다. 가령 첫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김대중 정권기에도 1999년과 2002년 서해교전과 연평해전이 발발하는 등 무력도발은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원천 단절되지 않고, 2002년 4월 제4차 이산가족 대면상봉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을 정치 주체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먼저 저지른 적대행위가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대행위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북한을 이해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적, 동포, 혹은 협력을 통해 윈윈(win-win)할 상대로 볼 것 인가가 그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어떤 상대국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2007년 10.4 공동선언에서 남북 상호 불가침의무를 확인했음에도 북한은 2010년 연평도 포격을 하는 등 남북 합의가 이행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 남북관계의 안정성을 어떻게 도모할 수 있을까?

  안정적 평화를 위해서는 평화 유지(peace-keeping), 평화 조성(peacemaking), 평화 구축(peace-building)의 세 바퀴가 쉼 없이 함께 굴러가야 한다. 평화 유지는 군대가 투입돼 철저히 힘으로써 분쟁 상황을 종식시키고 그 상태를 지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 조성은 평화협정을 통해 군사적 대립 상태의 종식과 평화적 공존을 선언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남북관계에서 알 수 있듯 선언 내용은 협정 체결만으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약속한 바를 지키게 만들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 경제 협력과 문화 교류가 증진돼 서로 간에 실질적인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 신뢰가 형성되며 그 과정이 평화 구축이다. 이를 통해 평화를 안정적으로 지속해 나갈 수 있다. 즉 핵심적 이익을 주고받아 한국과의 관계가 체제 유지에 필수불가결할 때 북한이 협상을 깨고 무력 도발을 반복해온 역사가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세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평화가 이뤄진다는 게 오랫동안 전쟁을 반복하다가 평화를 이룩한 유럽 사회의 경험이다.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 특히 의미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있다면?

  판문점 선언은 남북 종전선언과 다름없다. 공식적인 종전선언에는 1953년 정전협정의 당사국인 미국, 중국과의 협의가 필요하지만 이번 선언은 두 지도자가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또 비핵화 문제를 남북한이 함께 얘기한 것은 북한이 한국을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북한이 핵과 관련해 미국과의 대화 의지만 표명한 것과 구분되는 행보다. 작년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미국과의갈등이 고조되던 당시 북한은 ‘핵 협상의 대상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고 못 박았던 바 있다. 그 결과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한국이 당사국에서 제외되는 것 즉, ‘코리아 패싱’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었다.

  덧붙여 이번 판문점 선언의 공식 명칭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통일이 들어간 것도 상징적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