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호 > 사회
구두 노예가 아닌 구두 장인이 되는 그날까지 '탠디(TANDY)' 제화노동자 점거 농성으로 시작된 제화공들의 투쟁
등록일 2018.09.06 13:26l최종 업데이트 2018.09.10 20:14l 유서희 기자(cow110358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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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디 본사에서 점거농성 중인 하청업체 제화노동자들 Ⓒ정의당 서울대모임 이재현 씨 제공


  낙성대역 1번 출구 근처에 위치한 수제화 브랜드 ‘탠디(TANDY)’ 본사. 지난 4월 26일, 이곳에는 탠디 하청업체 제화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이 16일 간 벌어졌다.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면서였다. 제화노동자들은 4월 4일 시작된 파업에 이어 점거농성을 통해 그동안 참아왔던 불만을 표출했다. 제화공들이 구두를 내려놓고 거리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구두 장인이라는 이름 뒤에숨겨진 제화공들의 한숨과 눈물을 조명했다.



잘나가던 구두장이가 구두 노예로 전락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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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청 근처에 위치한 탠디 하청공장


  한국전쟁 시기 미군의 군화를 수선하며 시작된 한국의 구두산업은 1960년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렸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탠디분회 박완규 분회장은 당시를 “당대 최고의 번화가인 명동에서 양복을 입은 신사는 양복장이 혹은 구두장이일 정도로 구두장이가 잘나갔던 시절”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정기만 제화지부장은 “사장과 ‘차 한 잔 나누며’ 임금인상을 협상하던 인간 대우받던 시절”로 회상했다. 제화공들의 임금은 일주일 혹은 보름에 한 번 지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성기 제화공의 한 달 임금은 공무원 8개월 치 월급을 거뜬히 넘겼다.


  스승과 제자 3명(상, 중, 하견습)이 팀을 이루는 구두 제작의 특성상 제화산업의 명맥은 자연스레 이어져 왔다. 하지만1980년대 후반부터 구두생산이 기계화되면서 필요한 제화공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제화공이 손수 가위로 오려내던 구두 밑창은 이제 기계가 철형으로 찍어냈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회사는 제화공들의 임금마저 삭감하려 했다. 회사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본사의 직접고용 대신 하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의 비중을 늘렸다. 박 분회장은 “간접고용이 늘면서 구두장이의 길을 포기한 동료들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공임은 1년에 200원씩 꾸준히 상승했고 4대 보험 등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됐다.


  1990년대에 백화점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금강(Kumkang) 등 고급 수제화 브랜드들은 길거리 양화점에서 백화점으로 판매처를 옮겼다. 백화점 매장 입점 수수료와 매장 매니저 고용으로 줄어든 회사의 이익은 제화공의 공임을 삭감해 채워졌다. 탠디를 비롯한 회사 측은 제조원가의 40% 이상이 인건비일 정도로 제화공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정기만 지부장은 을(乙)인 노동자들의 공임을 줄이는 ‘편리한’ 방식 대신, 갑(甲)인 백화점 수수료를 줄였어야 한다고 반박한다. 정 지부장에 따르면 샤넬, 루이비통 등 세계적 명품 브랜드의 백화점 수수료는 약 1%인데 비해 탠디 등 국내 구두 브랜드의 백화점 수수료는 37%에 달한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탠디의 영업이익은 2007년 27억 7천만 원에서 2017년 69억 4천만 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매출이 급증해도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없었다. 정 지부장은 “잘되면 회사 탓 못되면 노동자 탓”이라고 푸념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구두 회사들은 간접고용된 제화노동자들을 특수고용직으로 또 한 번 전환했다. 특수고용직은 사실상 회사에 소속돼 일하면서도,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서 사업주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고용인 대 피고용인’이 아닌 ‘사장 대 사장’으로 계약하기에 소(小)사장제로 불리기도 한다. 특수고용직 전환을 통해 구두회사는 자신들의 세금 부담을 제화공의 몫으로 돌렸다. 카드가 주요 결제 수단이 되면서 구두 회사의 세금 부담이 급격히 늘었는데, 특수고용직인 제화공 역시 명목상 ‘사장’이므로 구두 판매액에 대한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연봉이 4800만원을 넘지 않으면 노동자가 세금을 부담할 일은 없다”며, “개인사업자가 돼도 퇴직금과 공임 인상을 보장하겠다”던 회사의 말은 거짓이었다. 제화공은 회사의 일감을 받아 회사의 재료로 물건을 만들었지만, 개인사업자 신분이기에 퇴직금은커녕 산업재해 보상도 받지 못했다. 백화점 입점 브랜드에서 도입한 특수고용방식은 이후 모든 제화브랜드에 보편화됐다. 회사의 말을 믿었던 제화공들은 허울뿐인 소사장이 됐다.


  오늘날에는 제화공이 30만 원짜리 구두 한 켤레를 만들면 6500원에서 7000원을 받는다.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몫이다. 작업이 어려운 구두를 제작할 때 추가로 붙는 특수공임을 회사가 지급하지 않거나 불량품 가격을 제화공에게 공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일이 많을 때 제화공의 한 달 임금은 400만 원에 달하지만, 이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에 18시간 정도를 노동했을 때 받는 몫이다. 일이 없을 때는 하루 2만 원을 벌기 위해 인천에서 성수동까지 출근해 자리를 지켜야 한다. 노동환경 또한 매우 열악한데, “화장실은 하루에 두 번 남짓 가고 밥은 가장 느리게 먹어야 3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정 지부장의 설명이다. 구두장이 한 명이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후세대 제화공이 양성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 지부장은 “이대로는 10년 안에 구두장이 명맥이 끊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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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디 파업의 전야, 탠디 제화공들의 퇴직금 청구 소송 승리


  이처럼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제화공들은 그동안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특수고용직 신분인 제화노동자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기 때문에 노동3권이 제약된다. 노동조합을 결성해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또 회사 측은 “노조에 가입하면 작업 물량을 주지 않겠다”며 제화공들을 협박한다. 회사와의 갈등으로 한 제화공의 물량이 줄어들면 다른 제화공에게 할당되는 물량은 많아진다. 회사가 ‘충성경쟁’을 강요하기 때문에 제화공들이 단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2017년 탠디 퇴직 제화노동자들의 퇴직금 청구 소송 승리를 기점으로 제화공들의 일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탠디에서 제화노동자로 일하다 개인사업자 등록을 한 퇴직노동자 9명은 2016년에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1심에 이어 제화노동자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했고 제화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 판결을 계기로 100명이 넘는 제화공이 노동조합에 새로 가입했다.


  퇴직금 신고에 나선 제화공들에게 고용노동부는 퇴직금을 보장받기 위해서 두 개 이상의 대법원 판례를 가져오라고 요구해왔다. 2014년부터 탠디, 기쁨제화, 베라슈, 소다(SODA) 등의 제화공들은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그중 성수동 하청업체 기쁨제화와 베라슈 제화공들이 함께 제기한 소송에서 승리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나의 판례만 남은 상황에서 탠디는 2017년 퇴직금 청구 항소심 패소 이후 노동자들에게 개별적으로 퇴직금을 지급했다. 상고심에서의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록 탠디 퇴직금 청구 소송은 대법원 판례를 남기지 못했지만,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소다의 상고심 재판에서 제화공들이 승소할 경우 앞으로 제화노동자들은 퇴직금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제화공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2017년 탠디 노동자들의 퇴직금 소송은 구두산업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나, 곧바로 만족할만한 노동환경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에 이듬해 탠디 하청업체 제화노동자들은 ▲8년간 동결됐던 공임 인상 ▲특수공임 제공 ▲부당한 일감차별 금지 ▲직접고용을 목표로 파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화공들이 대부분 6, 70대로 고령이고 당장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파업을 길게 지속하는 것은 무리였다. 탠디 측이 용역 깡패를 동원해 조합원들이 119에 실려가는 응급상황도 발생했다. 결국 노사는 ▲납품가 공임 단가를 저부(신발 밑창)와 갑피(신발 윗부분) 각각 1300원 인상 ▲특수공임 지급 ▲부당한 일감차별 금지 ▲노사 양측의 소송 취하 ▲업무 복귀 ▲노조·하청업체와 협의회(근로조건, 일감량, 공임단가, 사업자등록증 폐지 등을 결정) 1년 2회 이상 개최에 합의했다. 그러나 특수고용직 문제를 노사 합의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탠디 파업은 미완의 혁명이다. 고용형태의 변화 없이는 제화공들의 불안정한 노동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완전한 해결은 이루지 못했지만, 탠디 제화노동자들의 투쟁은 성수동 제화단지에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냈다. 성수동 제화공들은 노동환경과 임금수준이 대체로 탠디보다 열악하다. 그러나 탠디 파업 이후 성수동 일대 제화공들은 과정과 결과 모든 면에서 노사협상을 원활히 이뤄내고 있다. 지금까지 단체교섭에 나오지 않던 ‘미소페(MISOPE)’의 사측은 탠디 파업을 계기로 교섭에 나오기 시작했다. ‘세라(SAERA)’는 원청과 하청노동자 모두 단체협약에 참여했다. 그 결과 원청 제화노동자 19명은 4대 보험과 퇴직금을, 원청 노동자들과 하청업체 3곳의 노동자들은 1400원 공임 인상을 약속받았다. 또 제화노동자가 업무 중 재해를 입을 경우 노동자가 전적으로 부담해오던 치료비를 원청과 하청이 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노사 양측의 교섭을 연 1회 실시하겠다는 조건에도 합의했다. 열악한 제화노동환경의 최전선인 성수동 제화단지에서 최초로 특수고용직 신분인 제화공을 노동자로 인정한 것이다.


  제화공들의 바람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구두 노예가 아니라 구두장이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해주기 바랄 뿐이다.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보장받고 법적으로 노동자 지위를 되찾기 위한 그 날까지, 제화공들의 투쟁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