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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에이즈인권활동가가 넓혀가는 연대의 망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를 만나다
등록일 2018.09.07 22:07l최종 업데이트 2018.09.10 22:42l 유지윤 기자(jiyoun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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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에이즈(AIDS)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이 아닌 ‘후천성인권결핍증’이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관리가 가능하고,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전염되지 않지만 HIV/AIDS 감염인들은 여전히 낙인과 배제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별적 현실 속에서도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어 감염인 인권을 외치는 사람이 있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의 윤가브리엘 대표다. 15년 동안 감염인 인권운동의 최전선에 서있던 그는 이제 스스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더 많은 이들의 손을 잡고 있다. 감염인, 성소수자, 장애인을 향한 다중적 차별에 온몸으로 맞서는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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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의 윤가브리엘 대표 ⓒ왕익주 기자



감염인 차별의 현실을 알다

  윤가브리엘 대표가 처음 감염사실을 안 것은 2000년 3월이다. 보건소로부터 양성 통보를 받았을 때 그는 놀라기보다는 마치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그도 게이 커뮤니티에서 ‘동성애자는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퇴원 후 당장 혼자 지낼 수 없던 윤 대표는 감염인 쉼터에서 살기 시작했다. 쉼터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감염인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져줬다. 당사자가 돼보니 에이즈도 그냥 병일 뿐인데, 쉼터의 감염인들은 사회적 차별과 지인들의 냉대에 상처 받는 경우가 많았다. 윤 대표는 에이즈 차별의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정작 에이즈 인권을 말하는 단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성소수자 단체는 감염인 인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고 싶어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를 찾아갔다.

  동인련에서 활동하는 첫 1년 동안 윤 대표는 자신의 감염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염사실을 밝히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3년, 우연히 사실을 알게 된 동료가 ‘아시아 보건포럼’에서 에이즈 관련 발언 자리를 제안했다. 윤 대표는 감염인 가족들은 장례식에도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감염인들은 에이즈 때문에 아픈 것보다 차별과 편견, 낙인 때문에 더 아프다”고 발언했다.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염사실을 드러내고 이야기한 자리였다. 발언 후 윤 대표는 포럼에 참석한 보건의료활동가들로부터 감염인 인권운동을 시작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감염인 의료차별에 관심을 갖던 보건의료 단체, 에이즈라는 ‘오명’의 대상이었던 성소수자 단체, 그리고 관심 있는 개인 활동가들이 한데 모였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나누리+)’의 시작이었다.


달라진 차별, 달라져야할 차별

  나누리+는 한국에서 최초로 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을 시작한 단체다. 당시 UN 등 국제적 수준에서는 감염인 인권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누구도 감염인 인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말하는 에이즈 예방은 공포로 무장하는 것이었고, 그 공포는 고스란히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배제로 이어졌다. 여수에서 감염인 여성이 성매매를 한 사건을 두고 “감염인 뇌에 전자칩을 넣어 추적해야 한다”는 사설이 언론에 실릴 정도였다. 하지만 에이즈의 예방을 위해서는 감염인들이 스스로 감염사실을 밝힐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감염인이 감염사실을 알리고도 지지 받을 수 있을 때 더 적극적으로 치료와 예방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누리+는 사회적으로 공고화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나누리+는 HIV/AIDS 인권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당사자들과 보건의료인, 에이즈 관련 공무원 등을 만나 인권가이드라인 작성을 준비하며 나누리+는 자연스레 감염인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제도적 차별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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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 거리행동'에서 발언하는 윤가브리엘 대표. 나누리+와 연대체들은 2006년부터 '세계 에이즈의 날'인 12월 1일을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로 선포하고 매년 인권주간을 준비해왔다. ⓒ나누리+



  감염인들이 겪는 대표적인 차별은 의료차별이다. 윤 대표 역시 의료차별을 ‘심심찮게’ 겪었다. 의사가 진료실 문 틈 사이로 윤 대표를 보며 진료를 한다거나, 감염인은 무조건 감염내과로 가야한다며 다른 과에서는 입원을 시켜주지 않는 식이었다. 입원을 해도 병원은 ‘I+(아이플)’이라는 딱지를 붙여 매순간 감염사실을 드러내도록 했다. 딱지는 이름표 옆에도, 쓰레기통에도, 심지어는 식판에도 붙었다. 감염인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방식의 정책은 보건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건소는 감염인이 3개월마다 ‘지도교육’을 받도록 했고, 받으러 오지 않을 경우에는 집과 직장으로 직원을 보냈다. 그러나 나누리+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에이즈 예방정책의 패러다임은 감시와 격리에서 감염인의 인권증진과 보호로 전환되는 중이다.

  치료 접근성만큼 의약품 접근성도 감염인 인권의 중요한 부분이다. 윤 대표가 꼽는 나누리+의 가장 큰 싸움은 에이즈 치료약 접근성을 위한 투쟁이었다. 감염 6년차에 윤 대표는 시청각장애를 얻었다. 오른쪽 눈은 실명했고, 왼쪽 눈은 잘 보이지 않으며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다. 사용하던 치료약에 내성이 생겼는데, 내성 환자들이 써야 하는 약인 ‘푸제온’이 한국에 공급되지 않아 거대세포바이러스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푸제온의 제약사 로슈는 한국 정부가 약값으로 제시한 연간 1800만원이 낮다며 약을 판매하지 않았다. 나누리+는 같은 이유로 치료약을 구하지 못하는 백혈병 환자들과 함께 ‘푸제온·스프라이셀 대응 공동행동’을 결성해 특허청에 강제실시를 청구했다. 사익보다 공공의 이익이 우선할 때 약의 특허를 중지하고 국가에서 약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였다. 로슈는 특허권을 잃을 상황이 되자 돌연 무상공급을 결정했다. 푸제온 투쟁은 감염인의 의약품 접근성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렸다는 데에 의의가 있지만, 윤 대표는 “철저히 이윤에 의해 돌아가는 제약사와 이를 방관하는 정부의 무능함을 깨우쳐준” 씁쓸한 사건으로 기억한다.

  더 이상 보건소에는 3개월마다 가지 않아도 되고, 먹을 수 있는 약의 가짓수는 조금 늘어났다. 하지만 인식 개선과 법 개정 등 감염인 인권운동 의제는 대부분 초창기와 비슷하다. 그만큼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최근 윤 대표가 활동가들과 준비하고 있는 의제는 에이즈 예방법의 전파매개행위의 금지조항 폐지활동이다. 전파매개행위의 금지조항은 감염인이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에이즈를 감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HIV에 감염됐더라도 약을 먹어 바이러스가 제로상태거나 일정 수준 이하일 때에는 예방 없이 성관계를 해도 감염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접화매개행위의 금지조항은 감염인을 마치 ‘걸어다니는 바이러스’처럼 인식하도록 만든다. 또한 실제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접화매개행위’를 처벌하기 때문에 결국 국가가 감염인의 성행위를 통제하는 꼴이다. 윤 대표는 “동일하게 혈액 또는 체액으로 감염되는 B형, C형 간염에 대해서는 이러한 조항이 없다”며 차별적 법체계 개선은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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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1일 국회에서 열린 '디셈버페스트' 행사에서 윤가브리엘 대표가 1분 발언 기회를 요청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과 한국가족보건협회가 주관한 이 행사는 에이즈·동성애 혐오 행사에 가까웠다.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부지런히 만들어가는 연대의 고리

  아직 싸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윤 대표는 함께 싸울 이들을 많이 만났다. HIV/AIDS 감염인이자 성소수자이자 장애인인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에서부터 연대의 접점을 탐색해왔다. 첫 번째 접점은 성소수자 진영과의 연대다. 과거에 성소수자 진영은 에이즈 문제를 자신들과 분리하려 했다. 에이즈와 동성애를 일치시키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낙인에 대응하고 나니 정작 게이 커뮤니티 안의 감염인들의 존재는 지워졌다. 또한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에이즈 천국이 된다”는 혐오세력의 문구는 에이즈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곧 성소수자 인권에도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보여줬다. 나누리+는 두 진영이 에이즈에 대해 따로 하던 고민을 같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에 힘입어 작년에는 성소수자 단체와 감염인 단체가 연합해 만든 첫 네트워크인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가 조직됐다. 네트워크는 인권운동뿐 아니라 감염인들과 성소수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데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장애인권운동과의 연대는 윤 대표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다. 윤 대표는 시청각장애를 얻으며 장애인으로서의 차별도 새로이 마주하기 시작했다. “차별은 HIV보다 장애로 인해 더 겪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만드는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는 장애인권단체로부터 함께 운동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장애인권단체와 감염인 인권단체가 서로의 운동에 연대하는 것을 넘어 함께 행동할 의제를 찾는 것은 어렵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HIV/AIDS를 장애인법 안에서 보호하거나 장애로 지정한다. 한국에서도 장애지정은 두 운동이 만나는 접점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강화할 수 있기에 아직 논의가 더 필요하다. “지금까지 넓혀 온 연대를 앞으로도 넓히는 것”이 과제라는 윤 대표와 나누리+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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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익주 기자



  에세이집 ≪하늘을 듣는다≫에서의 묘사처럼 윤 대표는 ‘환영받지 못할 타이틀’을 세 개나 가졌지만 그만큼 그는 더 차별에 저항하며 살아가고 있다. 윤 대표는 그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활동가로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위의 격려와 응원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스스로를 보며 그는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아직도 수많은 감염인들은 차별이 남긴 상처에 숨어 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감염인에게 지워진 낙인의 흔적을 없애나갈 때, 더 많은 윤가브리엘들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