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호 > 사회
변화를 위해 행진하는 사람들 2019년 워싱턴 D.C 'Women's March'에 가다
등록일 2019.02.28 03:20l최종 업데이트 2019.03.07 16:30l 신화 기자(hbshin1207@snu.ac.kr)

조회 수:129

  번잡한 서울과 달리 워싱턴 D.C의 거리는 한산했다. 역대 최장기간 이어진 정부 셧다운(shutdown)은 행정기관이 몰린 수도의 한산한 겨울을 완성하는 듯했다. 하지만 2019년 1월 19일(현지시간)만큼은 워싱턴 한복판이 거리로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전 10시부터 백악관 동쪽의 프리덤 플라자(Freedom Plaza)를 메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바람을 품고 한날 한시에 모였다. 2017년부터 시작해 3번째 개회를 맞이한 여성행진(Women’s March)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2019년 워싱턴 여성 행진에 나선 이들을 만나 봤다.


사진1.jpeg

1월 19일 여성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프리덤 플라자 광장에 모인 시민들




어디로, 어떻게 행진할 것인가?

  여성행진의 역사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일인 2016년 11월 8일, 하와이에 거주하는 테레사 슈크(Teresa Shook)는 페이스북을 통해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날에 워싱턴에서 집단 여성 행진을 조직하자고 제안했다. 선거 기간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대응이었다. 슈크가 만든 페이스북 그룹엔 하룻밤 사이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다. 행진은 슈크와 공동설립자 바네사 루블(Vanessa Wruble)을 중심으로 빠르게 기획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튿날인 2017년 1월 21일, 워싱턴 D.C의 거리에는 50만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애초 예상된 규모인 20만 명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였다. 행진은 미국에서 열린 시위 중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같은 시각, 뉴욕, 시카고, 보스턴,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미국 전역의 도시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도시에선 워싱턴 행진에 연대하는 자매행진( Sister March)이 열렸다. 이날 하루 동안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자의 거리로 나섰다.

  2019 여성행진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행진의 공식 임무는 “사회의 억압적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여성과 그들의 공동체가 정치적 힘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다. 일차적인 목표는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지만, 이는 여성만을 위한 목표가 아니다. 이러한 지향은 ‘Unity Principle’이라는 공약을 통해 드러난다. 공약에는 장애인, 이민자, 성소수자, 노동자, 종교인의 권리 회복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 복지, 민주주의와 같은 다양한 안건이 포함된다. 이들은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며, 인권은 곧 여성의 권리”라고 말한다. 이들의 궁극적 이상은 여성을 넘어 사회에서 억압받고 소외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는 셈이다. 2017년부터 2년째 한결같이 주장한 메시지다.

  실제로 시위에서 여성 행진의 목표는 다양한 구호가 돼 나타났다. ‘낙태를 합법으로(make abortion legal)’와 같은 전형적 여성인권 이슈부터 ‘미국 지지, 트럼프 반대(pro-America, anti-Trump)’와 같은 정치적 내용, ‘유색인, 트랜스젠더, 퀴어, 밀입국자들아, 맞서 싸우자(black, brown, trans, queer, undocumented, fight back)’와 같은 권리 문제, 그리고 ‘지구를 살리자(save the earth)’ 같은 환경 보호 메시지까지 다양한 메시지가 보였다.


저항과 연대가 만드는 희망

  오전 내내 프리덤 플라자에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활기가 넘쳤다. 플라자 서쪽의 백악관에 흐르던 적막과는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연령대, 성별, 인종을 불문한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손수 만든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다가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손을 맞잡은 노부부와 신이 난 초등학생 무리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시위보단 축제를 연상시켰다. 형형색색으로 몸치장을 한 사람들과 더불어 여성행진 시위의 상징인 푸시햇(pussyhats)을 쓴 사람들도 자주 보였다. ‘푸시햇’ 모자는 고양이 귀 모양을 한 분홍색 모자로, 여성행진 시위의 상징적 복장이다. pussy는 고양이와 동시에 여성의 성기를 뜻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여성을 ‘pussy’라고 칭한 것에서 비롯됐다.

  개성과 재치가 넘치는 팻말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82살이고 변화를 요구한다(I am 82 and I demand change)’라는 팻말의 주인은 휠체어에 앉아 있던 노인 A씨였다. 딸과 손주들과 함께 시위에 나왔다고 이야기하는 A씨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오늘 이곳에 왜 왔냐는 질문에 A씨는 “나는 1960년대부터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집회에 참석해 왔지만, 아직도 이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우리가 만들어낸 진전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목 없음.png
▲딸 손녀들과 함께시위에 나온 A씨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결집시킨 동력은 트럼프 정부에 대한 절망감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변화를 요구한다(we demand change)’라는 팻말을 들고 있던 부부는 “함께 여성행진에 참여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올해 시위 참여를 결심한 계기를 질문하자 부부는 “현재 미국이 유래 없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인권정책에 대한 실망감을 표했다. 그리고 “지금이 현 정부에 맞서 공개적으로 말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로부터 서명을 받던 여성인권단체 소속의 B씨는 이번이 세 번째 시위 참여라고 밝혔다. B씨 역시 자신이 2017년 처음으로 시위에 참석하기로 다짐했던 이유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자신의 반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B씨는 자신이 계속 여성행진에 오는 이유는 “이 시위가 다양한 사람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엄청난 기념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성행진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열정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장은 없다는 의미다.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는 얼핏 제각각인 듯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거리에 나온 모든 이들은 누군가 소외되고 버려지는 현실이 변화하길 소망했다. 6색 무지개 목회자 가운을 입은 C씨는 스스로를 동성애자 목회자라고 소개했다. 교회 사람들과 함께 시위에 왔다는 C씨는 “오늘 이곳에서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다”는 소감을 전했다. 좀 더 자세한소감에 대해 묻자, 그는 “어린이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지지와 격려를 보냈던 것이 인상깊었다”라며 “앞으로 이와 같은 행사를 통해 많은 어린이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한 C씨는 “아직 세상에는 소외된 사람들이 많지만, 오늘 이곳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많다는 것을 목격했다”며 “오늘의 현장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국가를, 나아가 인권을 염려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을 맺었다.


2019년 여성행진이 마주한 위기와 기회

  이처럼 2019년 여성행진은 희망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으나, 사실 개회 직전까지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뉴욕 타임즈>에서 올해의 여성행진이 “내파가 불가피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올해 워싱턴 여성행진엔 역대 최저 인원인 10만여 명이 결집했다. 2017년 첫 행진에 비해 1/5가량 줄어든 인원이다. 해외 언론은 규모 축소의 원인을 여러 방면에서 분석했다.

  가장 지배적인 원인으로는 여성행진 지도부의 분열이 꼽힌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도부의 분열은 여성행진 구성 초기부터 시작됐다. 분열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계기는 여성행진의 일부 공동창설자들이 유대계 창설자 바네사 루블(Vanessa Wruble)에게 ‘반(反)유대주의’적 발언을 한 사건이다. 공동창설자 타미카 말로리(Tamika Mallory)와 카르멘 페레즈(Carmen Perez)가 루블의 유대계 배경에 대해 “유대인들은 인종차별을 불러온 자신들의 역할부터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 이 사건은 이후 큰 파장을 가져왔다.

  이들의 반유대주의 논란은 말로리가 반유대주의 종교단체를 지지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더욱 커졌다. 말로리가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종종 물의를 일으킨 미국의 흑인 무슬림 단체 ‘내이션 오브 이슬람(NOI)’의 지도자 루이스 파라칸(Louis Farrakhan)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말로리는 파라칸이 주최한 행사에 종종 참석했으며, 소셜 미디어에서 파라칸을 “역대 최고(Greatest of All Time)”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어지는 논란 속 지도부의 분열은 점차 심해졌다. 루블은 여성행진 지도부에서 탈퇴당한 뒤 March On을 설립했다. 여성행진 지도부는 March On을 비롯해 여러 단체로 분화됐다. 올해 뉴욕에선 다른 단체(National Women's March와 Women's March Alliance)에서 주관하는 두 개의 행진이 동시에 열렸다. 지도부의 분열에 따라 시위대 역시 분열됐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유대계 여성들이 여성행진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나 전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와 같은 후원 단체들은 여성행진 지원을 중단했다.

  이처럼 올해의 시위는 내적인 균열 끝에 진행됐다. 하지만 시위 현장에서 기자의 눈에 띈 균열은 외부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시위엔 낙태에 반대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등 시위의 가치에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참석했다. 이들이 시위에 섞여들며 다른 시위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경찰이 사람들을 저지하는 곳을 향하면, 어김없이 시위자와 시위의 가치에 반대하는 이들이 부딪히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팻말을 높이 들고 구호를 외쳤다. 격해진 감정은 언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큰 소리를 듣고 몰려온 경찰과 사람들에 의해 싸움은 일단락됐지만, 어수선한 분위기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new_사진3.jpg
낙태 불법화를 주장하는 팻말을 가로막고 있는 시위자들


  그럼에도 2019년의 여성행진이 보여준 진보가 있다면,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정책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는 점이다. ‘여성의제(Women’s Agenda)’라고 불리는 이 정책 가이드라인은 공동체의 권리, 안전, 그리고 건강 등 여성행진이 내세우는 이상을 망라한다. 보편적 의료 보장, 전쟁 종결, 트랜스젠더 인권 보장, 재생 가능 에너지 지지 등이 제시돼 있는 식이다.

  한편 여성행진 측은 여성의제의 의미를 ‘최초의 교차적 페미니즘 정책’이라는 지점에서 찾는다. 교차성이란 흑인 여성들의 페미니즘에서 제시된 개념으로, 인종·성적 지향·장애 등 성별과 겹쳐 교차적으로 존재하는 정체성이 차별을 복합적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2019 여성행진의 지도부는 가장 취약한 여성을 최우선으로 위한다는 의미에서 이 교차성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여성의제를 만들었다. ‘흑인 트렌스젠더 여성을 향한 폭력과 차별 금지를 위한 결의안 통과’ 같은 의제들이 이를 보여준다.


사진4.png

Women's March Inc. 홈페이지에 소개된 Women's Agenda의 다양한 영역 ©Womens' March Inc.



  페미니스트이자 정치활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은 두 개로 나눠진 올해 뉴욕 여성행진에 대해 “두 행진중 하나를 골라라. 그래도 계속해서 행진해라.”라고 언급했다. 비록 반유대주의 논란으로 한 차례 내홍을 겪었지만, 여성행진의 가치가 계급·종교·인종을 넘어서는 연대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말이다. 차이는 분열을 낳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올 겨울 워싱턴의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어 연대했다. 하나의 가치를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