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호 > 사회
교육의 경계에 선 아이들 경계선지능 학습자를 위한 교실은 없다
등록일 2019.04.19 13:14l최종 업데이트 2019.04.19 13:58l 김예정 수습기자(kyj1998200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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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내내 혼자 지낼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에게 화만 냈던 게 너무 미안하네요’, ‘새 학기가 되는 게 무서워요’, ‘담임선생님께 어떻게 설명해드려야 할까요’. 

  다음 카페 ‘사랑하는 거북이’에선 답답한 고민과 공감, 위로가 오간다. 이곳은 ‘거북이’ 자녀를 둔 부모들의 쉼터다. 교실 안 ‘거북이’는 어딘가 느리다. 방금 가르쳐준 내용도 다시 물어보면 답하지 못하고, 수업시간에는 멍하니 딴짓을 한다. 말이 늦되고 표현이 서툴러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거북이’는 경계선 지적 기능(경계선 지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가리킨다. 이 아이들은 지적장애와 소위 ‘정상’ 사이의 지능을 가졌다. 일반학급에서도, 특수학급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말 그대로 교육의 경계에 놓여있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자립 또한 온전히 이들의 몫이다. 외딴 섬이 돼야 했던 수많은 거북이의 삶을 살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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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경계선지능 아이들은 외로운 섬이 된다.



아이는 왜 모둠에 속하지 못했나

 미국 정신의학 협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에 따르면 지능지수(IQ)가 85 이상이면 ‘정상’, 70 이하면 지적 장애로 분류된다. 그 사이에 있는 71부터 84까지의 지능지수가 경계선지능이다. 경계선지능을 가진 이들은 ‘느린 학습자’로 불리기도 하며 전체 인구의 13% 정도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EBS>의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경계선지능 학생의 수는 한 학급당 3명, 전국적으로는 약 80만 명으로 추산된다(<EBS>, ‘느린 학습자를 아십니까’, 2014.10.6).

  경계선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말을 배우는 속도가 느리고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기를 어려워한다. 기억할 수 있는 정보의 용량도 적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내용을 이해하기도 버겁다. 일반 아이들과 함께하는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교실에서는 ‘답답한 아이’, ‘공부를 못하는 아이’로 여겨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의 격차는 눈에 띄게 벌어진다. 자 존감이 낮아진 아이는 학습동기를 잃고 갈수록 무기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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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신의학 협회에서는 지능지수 71~84를 '경계선지능'이라고 정의했다.



  지능은 학습능력뿐 아니라 사회성· 정서능력과도 관련이 있다. 경계선지능 아이는 친구를 사귀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눈치도 부족하다. 그래서 경계선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집단따돌림이나 학교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문계고등학교 1학년 경계선지능 자녀를 둔 A씨는 “아이가 학업보다는 오히려 또래관계를 더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은 우울함이나 불안과 같은 정서적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도 많은데,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해 아이들의 내적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미처 준비되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된 경계선지능 아이들은 더욱 치열한 세상을 마주한다. 장애판정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진학이나 취업에서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하더 라도 단순노무직, 아르바이트 같은 불안정한 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금방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아예 취직을 포기하고 집에 은둔하는 경우도 많 다.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2017 년 발표한 ‘경계선지적기능아동 자립지 원체계연구’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경계선지능 성인은 가정을 꾸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복지서비스에 의존하게 될 확률이 높다.


공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계선지능

 초·중등교육법 제28조는 ‘국가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교육상 필요한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이 2017년 발표한 ‘경계선지능아동 자립지원서비스 효과성 보고서’는 ‘경계선지능 아동이 별다른 개입 없이 방치될 경우 인지능력과 사회성이 더욱 악화되고 정서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므로 초기에 적절한 관심과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이들과 맞닿아 있는 교사들조차도 경계선지능을 잘 알지 못한다. 서울시 내 초등교사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8.3% 가 경계선지능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했다(<EBS>, 2014). 일반교사가 교직이수 과정에서 배워야 하는 특수교육학과 교사연수에서도 경계선지능에 대한 내용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또한 서울교대 교육대학원 김진아의 논문 ‘경계선급 지능 아동에 대한 초등학교 교사들의 인식’(2017)은 교사 일 인당 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아 교사가 아이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대안학교 ‘성장학 교별’의 노수진 대표교사의 “교사가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가 돼야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지적과는 상반되는 현실이다.

  경계선지능 아이들은 지적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학급에서 학교생활을 하지만, 필요에 의해 특수 학급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강남대 주은미·최승숙의 논문 ‘경계선급 지능 중학생의 학교생활 경험 및 교육 지원 요구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 인식’ (2018)에 따르면 특수학급에서 대부분의 경계선지능 아이들은 자신의 학습수준보다 낮은 수준의 단순반복 위주 교육을 받으며 장애학생들의 도우미 역할을 맡게 된다. 서울교대 강옥려 교수(유 아특수교육과) 역시 논문 ‘경계선급 지능 아동의 교육: 과제와 해결 방안’ (2016)에서 ‘시·도교육청 차원의 두드림학교 사업이 학습부진학생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경계선지능 학생들을 위한 전문적인 프로그램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2015년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 (‘느린학습자 지원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경계선지능 아이들에게도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법 개정에 따라 특수 교육대상자가 아니면서 학습에 제약을 받는 학생도 국가가 교육상 필요한 시책을 마련해야 할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개정된 법에 의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들의 교육에 관한 구체적인 실태를 조사하고 필요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또 교육부장관 및 교육감은 이들의 학습에 필요한 교재와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해야 하며, 교원은 관련 연수를 이수해야 한다. 

  그러나 2016년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개최한 ‘경계선지능 아동·청소년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경계선지능 학생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김진아의 2017년 논문에 따르면 법이 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경계선지능 아이들에게 특화된 프로그램은 여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다. 연구는 해당 개정안이 학교와 연계기관 간의 통합지원체계와 구체적인 지침은 마련하지 않은 채 개별 학교와 교사에게 부담을 전가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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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생활 17년 ‘IQ73 경계선지능’ 40대, 또 징역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달린 댓글. 

본인이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밝힌 이 네티즌은 심각한 고통을 토했다.



그 많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학교에서 온기를 느끼지 못한 아이들은 일반학교 밖을 향하기도 한다. 대안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받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어 온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습의욕과 사회 성을 되찾는다. 경계선지능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는 대안학교로는 서울 소재의 ‘성장학교별’, ‘예하예술학교’, ‘예룸예술학교’, 경기도 소재의 ‘이루다학교’ 등이 있다. 

  그러나 서울시로부터 위탁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은 예하예술학교와 예룸예술학교를 제외하면 대안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검정고시를 따로 치러야만 중·고등 학력을 취득할 수 있다. 수요보 다 부족한 공급 때문에 입학대기자가 줄을 잇기도 한다. 이러한 대안학교들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어 지방 가정에서는 선택지조차 없다. 경기도와 충청도에 사는 일부 학생들이 서울의 대안학교로 매일 통학을 감수하는 이유다. 초등 고학년 혹은 중학생부터 입학이 가능하다는 연령의 제한도 따른다.
  
  모든 경계선지능 아이들이 대안학교에 입학할 형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예하예술학교 김수완 교감은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경제적 여건이 안 될 경우 스스로 검정고시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 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러다 보니 집에서만 은둔하게 되는 아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가출했거나 보호자가 없는 경계선지능 아이는 복지시설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동·청소 년복지시설에 가면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장애인복지시설에 가면 중증장애인 위주의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복지시설이 대부분 포화 상태라 시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기도 한 다. 결국 보금자리를 얻지 못해 거리를 떠돌게 되면 각종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경계 없는 학교를 위하여

  경계선지능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경계선지능 학생들을 위한 학급이나 학교가 정식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공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로선 당연한 요구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기존의 이분법을 삼분법으로 바꾸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까. 강남대 최승숙 교수(초등 특수교육과)는 “일반교육과 특수교육이 경계선지능 학생들을 위한 지원을 적절 히 하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또 다른 교육 형태를 만드는 것은 공교육의 역할로는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분리는 결국 새로운 경계를 낳기 때문에, 그보다는 기존의 교육 형태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교육의 재정비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전문가들은 우선 경계선지능 아이들의 상태와 실태를 초기에 파악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이루어진 적이 없다. 예하 예술학교 김수완 교감은 “아이들은 어릴수록 흡수가 빠르기 때문에 일찍 충분한 교육을 받으면 경계선지능 아이들도 사회에 잘 적응해 자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경계선지능 아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이다. 이를 위해선 교사의 양성과 연수 과정에서 경계선지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김진아의 2017년 연구에 참여한 초등교사들은 경계선지능 자녀를 둔 부모들조차 아이의 상태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교육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교육 차원에서 가정-학교-상담가로 구성된 통합지원체계와 전문적인 개별 지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서울경계인청년지원센터 ‘아자라마’의 최원재 가디언은 “교육뿐 아니라 진로, 취업까지 전반적으로 이어지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짚는다. 아자라마에선 경계선지능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자립을 돕고 이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공공 차원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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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계인청년지원센터 아자라마에서는 

경계선지능과 같은 어려움을 가진 청년들이 직접 디자인한 소품을 비치·판매하고 있다.



  모든 아이들에겐 교육의 주체로서 소외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아이들의 특성이 천차만별이듯 각자에게 맞는 교육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계선지능 아이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 공공기관, 학교 등 공교육의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지금껏 효율성과 성과주의에 가려 잊혀버린 공교육의 목표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최승숙 교수는 “(학습자마다)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달라지더라도 학습자가 자아를 실현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공교육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고 힘줘 말했다. 남들보다 빨리, 더 높이 올라가기를 강요당하는 교육 속에서 아이들의 ‘교육 받을 권리’는 어느새 ‘뒤처지지 않을 의무’가 됐다. 경계선지능 아이들이 ‘거북이’가 된 것은 지금의 교육이 달리기 경주와 같기 때문 은 아닐까. 이제라도 우리는 경계 없는 학교를 상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