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호 > 사회
대기업 공채 폐지는 희소식? 새로운 채용제도 도입이 노동시장에 불러오는 바람
등록일 2019.10.21 13:44l최종 업데이트 2019.11.09 22:19l 임은지 기자(suja0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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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3일, SK그룹이 대졸 신입사원 정기 공개채용을 폐지하고 수시 채용의 단계적 도입을 추진하기로 발표했다. 이는 올해 2월 정기공채 폐지를 발표한 현대·기아자동차에 이어 국내 10대 그룹 중 두 번째다.

  오랜 기간 정기공채는 취업 시장에서 대기업으로의 관문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규모   경쟁 시스템에 응시해 일괄적인 기준으로 평가받고, 합격자는 ‘그들만의 리그’로 이행하는 구조는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다른 대기업들의 채용제도 전환 역시 시간문제라 말한다. 모두에게 익숙한 채용방식이 변화를 맞닥뜨린 배경은 무엇일까. 대기업이 정기공채를 포기하게 된 원인을 알아보고 노동시장 차원에서 채용제도의 변화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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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정기공채를 폐지하는 이유

  정기공채는 기업이 우수 인재를 다량으로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재 선발 방식이다. 보통 한국 대기업은 일 년에 두 번, 대학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채용 시기와 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세계적으로 이런 채용 절차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미국과 유럽권 국가는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직무별 상시 채용으로 인력을 선발한다. 직무별 상시 채용은 특정 직무를 수행할 사람을 필요한 시점에 현업 부서에서 즉시 채용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입사 동기나 입사 후 직무 배정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기공채는 기업 문화에 적합하고 어떤 직무든 무난히 소화하는 범용 인재를 선호하지만, 직무별 상시 채용 하에서는 특정 직무에 빠르게 투입할 수 있는 전문인력 선발이 우선시된다.

  정기공채는 장기고용, 연공서열에 기반한 호봉제와 맞물려 작동한다. 이런 기업 운영방식은 일제강점기 한국에 들어와 개발연대를 거치며 뿌리내렸다. 고려대 김동원 교수(경영학과)는 “과거 일본은 도시의 공장으로 농촌의 인력을 끌어 오기 위해 장기고용과 연공서열에 기반한 호봉제를 보장했다”며 “이 두 가지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수 개념이 필요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채용제도가 공채”라고 정기공채의 기원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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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까지 정기공채는 취업 시장 내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암묵적 합의점으로 작동해왔다. 기업은 경영환경이 단순하던 과거 고성장기에 공채를 통해 잠재력 있는 인력을 대규모로 충원해 성장했다. 공채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이들은 직무 전문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성실한 인력이었다. 또한, 공채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정부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했다. 관계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지원자에게 표준화된 선발 기법을 일괄 적용하는 공채는 공정성을 확보하기도 용이했다. 치열한 경쟁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구직자들도 “그래도 공채만한 제도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경영환경의 복잡화와 기술 고도화에 따라 기업은 더 이상 정기공채란 균형점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김동원 교수는 “상품 시장이 끊임없이 세분화되면서 기업 경영의 복잡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기업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도록 노동자에게 높은 수준의 직무 숙련도와 전문성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인력 수급 방식의 효율성과 합리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의사는 정부 정책에서도 확인된다. 공공부문 임금체계를 기존의 연공급제에서 직무와 능력에 따라 보상하는 직무급제로 전환하고, 능력 중심의 객관적 평가 척도를 마련하기 위해 NCS(국가직무능력표준)기반 채용을 실시하는 흐름은 기업의 직무별 상시 채용 도입과 맥을 같이한다. 직무별 상시 채용 도입은 기수 개념을 약화시키고 기업 내 인적 구성의 다양성을 높여 권위주의적 기업 내부 문화 개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동원 교수는 대기업 공채 폐지가 전면화되고 있는 지금의 흐름에 대해 기업 경쟁력을 생각하면 “훨씬 이전에 일어났어야 하는 변화”라고 지적했다.


정기공채가 뭐 어때서

  한국 사회에서 정기공채는 인재 채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14년, 삼성그룹이 GSAT(삼성직무검사)의 비중을 줄이고 수시 채용 도입을 발표하면서 각 4년제 대학에 서로 다른 수의 추천 정원을 배정했다가 거센 비판에 부딪힌 바 있다. 국민들이 ‘사(私)기업’의 채용 절차에까지 칼로 자른 듯한 공정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의 공채 합격이 ‘사(私)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당선, 합격, 계급》에서 장강명 작가는 기업 정기공채를 한국에서 대규모 동시 시험으로 합격자와 탈락자의 세계를 나누는 대표적인 ‘좌절의 시스템’으로 본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시, 기업 공채, 공무원 시험과 같은 관문을 통과하는 것을 일종의 신분 상승 과정이자 ‘간판’ 획득 작업으로 해석한다.

  선발의 공정함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공채는 다양한 문제점을 가져왔다. 중앙대 이병훈 교수(사회학과)는 “기업의 정기공채는 학력 서열주의를 노동시장에 고스란히 들여오는 역할을 했다”며 직무 전문성이 아닌 출신 대학 등을 채용 기준으로 삼는 정기공채의 한계를 지적한다. 학벌과 스펙을 보는 서류전형과 개별 직무 관련성이 없는 인·적성 필기 검사를 통과해 대기업에 합격하는 사람은, 수능을 잘 봐 좋은 대학에 간 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는 설명이다. 공채에선 몇만 명의 지원자 중 합격자를 가려내기 때문에, 당장 누군가를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때, 기업이 의존하는 손쉬운 기준은 사회에서 이미 승인한 서열화의 지표, 즉, 학벌이나 시험점수가 된다. 이병훈 교수는 구직자들은 대부분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개발하기보다 공채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일단 되는 대로 다 써보는 ‘묻지마 지원’의 형태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정기공채는 직무가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인력을 선발하기 때문에, 많은 대기업 신입사원들은 직무 적합성과의 ‘미스매치’를 경험한다. 2016년 한국 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1년 안에 조 기 퇴 사 하 는 대 기 업 신입사원의 46.3%가 조직 및 직무 적응 실패를 이유로 꼽았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 ‘<한·미·일·독 기업의 채용시스템 비교와 시사점>’은 유례없는 청년 구직난 속에서도 많은 신입사원들이 조기 이직을 선택하는 것은 현재의 공개채용 시스템이 직무적합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함을 방증한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정기공채는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1차 노동시장의 진입장벽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란 노동시장이 임금, 일자리 안정성 등 노동 조건에서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시장으로 양분된 상태로, 한국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로 꼽힌다. 이병훈 교수는 정기공채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양산한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문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진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채는 장기고용과 연공서열에 따른 호봉제와 함께 작동하므로 일반적으로 노동자는 한번 기업에 입사하면 그 기업의 내부 노동시장에서 직무를 바꿔가며 승진한다. 이런 구조에선 청년이 작은 기업에서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성립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에서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선 다시 취업준비생이 돼 공채라는 장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정기공채 선발 방식을 고수할 때, 대기업 정규직 등을 포함하는 1차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중소 및 영세기업 일자리를 포함하는 2차 노동시장 간의 일자리 이동성은 더욱 저하될 수밖에 없다.


공채 폐지가 희소식이 되려면

  직무별 상시채용은 공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위포트 조민혁 취업 컨설턴트는 직무별 상시 채용 도입에 대해, 지원자의 직무 전문성을 평가한다는 취지는 이상적이지만 그에 맞는 획기적인 채용 절차 변화는 발생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그는 “채용제도가 바뀌어도 GSAT, HMAT 등의 대기업 인·적성 검사 외엔 대규모 지원자를 걸러낼 마땅한 방법이 없기에 서류전형과 필기 전형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구직자들은 인·적성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공간 지각능력 문제나 각종 상식 문제 대비는 계속하되, 직무 전문성 강화라는 새로운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부담을 추가로지게 된다.

  직무별 상시 채용 도입에 대한 구직자들의 우려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앞으로 경력이 대기업 입사에서 더욱 결정적인 변수가 되리란 전망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기업 내 인력 구조 측면에서 신입사원 수요가 더 많기에 신입의 비중은 유지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조민혁 컨설턴트는 “이제 신입사원은 더 이상 신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신입채용과 경력채용의 비율이 유지되더라도, 직무별 상시채용 시엔 신입 채용 안에서조차 경력 우대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단 설명이다. 이병훈 교수 역시 “대학 졸업 예정자는 이미 시장에 진입한 경력자에 비해 직무 경쟁력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직무별 상시 채용이 도입되면 졸업과 동시에 바로 대기업에 합격하는 이들의 비율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대로 직무별 상시 채용 하에서의 경력 중시가 노동시장 간의 다리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병훈 교수는 “한 기업의 내부 노동시장 안에서만 진급하는 지금의 노동 방식과 달리, 외부 노동시장에서 경력과 직무 경험을 쌓아 각 기업을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도약하는 새로운 일자리 이동 경로가 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직무별 상시 채용으로 인력을 뽑는 미국과 유럽에선 이직을 반복하며 경력을 축적해 노동 조건과 임금 수준을 높이는 노동 형태가 자연스럽다. 노동자들은 첫 직장에 입사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더 좋은 노동 조건의 기업을 물색해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직무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업에 지원한다. 이런 노동시장이 형성된다면 구직자들이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입사에 매달릴 필요가 줄어든다.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경력을 쌓은 뒤, 전문성을 기반으로 이동할 통로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직무별 상시채용이 도입된다고 해도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의 분절이 심각한 한국에서는 경력을 쌓아보다 나은 직장으로 도약하는 경로가 작동하기 힘들단 점이다. 중소기업에서의근무경험이 경력이 아닌 ‘낙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직무별 채용이 도입된다면, 기업 간 수평 이동은 가능할지라도 노동시장 간 수직 이동은 여전히 어렵다. 김동원 교수는 “현 상태에서 채용제도변화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직무별 상시 채용으로 노동시장은 유연해지겠지만 대부분의 일자리 이동은 각 노동시장 내부에서만 일어날 것이라 설명했다. 이병훈 교수 역시 “직무별 상시 채용 하에서 ‘프리미어 리그와’ ‘2부 리그’가 나뉘어 시장 간 이동은 더욱 힘들 수있다”며 개인이 최초 진입한 시장 안에서만 빙빙 돌며 경력을 쌓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직무별 상시 채용도 경력의 ‘질’이 서열화될 때, 공채 못지않은 노동시장의 양극화 유지 기제가 될 수 있단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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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직무별 상시 채용이 노동시장의 사다리로 작동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이병훈 교수는 “대기업은 2차 노동시장의 경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정부는 이들이 더 높은 취업 시장을 목표로 자신의 직무 자격과 경력을 개발하도록 보조하는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년들이 첫 직장을 반드시 대기업으로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동시장 간 격차를 줄이는 정책역시 동반돼야 한다. 조민혁 컨설턴트는 “결국 문제의 본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라며, 직무별 상시 채용 흐름이 생겼다고 해서 경력을 쌓으라고 터무니없는 연봉 수준의 중소기업으로 취준생들을 내모는 일은 또 다른 불합리함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공채 폐지는 경영환경 변화에 발맞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업의 선택이다. 공채에 녹아든 노동시장의 본질적 문제는 기업이 채용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직무별 상시 채용이 제기능을 하도록 만드는 조건을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