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호 > 사회
연구의 시장화, 그 속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지금 대학원생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논의 필요해
등록일 2019.10.21 21:17l최종 업데이트 2019.11.09 22:17l 박도연 기자(doyeonizza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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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이 가르치는 걸 수동적으로 배우기보단 내가 스스로 개척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이공계 대학원생 A 씨가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이유다. 그가 대학원 진학 전 기대했던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있는지 알아봤다. 


연구비를 향한 고군분투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크게 각 연구실의 교수가 주도하는 고유 연구와 국가와 기업 등으로부터 수주해온 연구 과제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대학원과 연구실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주요 관심사는 해당 연구실의 고유 연구지만, 실제 연구실에선 고유 연구 외에도 외부로부터 다양한 과제를 받아 수행한다. 수주받은 과제가 연구실의 연구비 수혜액, 즉 예산을 결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연구 과제는 다시 정부지원사업과 그 외 정부·기업 과제로 나뉜다. 전자가 연구실의 분야에 맞춰 정부가 과제를 발주하고 지원금을 주는 형태라면, 후자는 정부·기업이 공고한 과제를 연구실이 지원해 연구용역의 대가로 연구비를 받는 형태다. 정부지원사업엔 일반적인 연구 과제부터 BK21, IBS 사업 등이 있다. 뒤로 갈수록 사업의 특수성이 높아 수혜 대상의 폭이 좁다. 한국연구재단이나 각종 정부 부처에서 발주하는 가장 일반적인 연구 과제는 해당 영역과 관련된 모든 연구실이 잠재적 수주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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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대학원 진학 관련 인식도 조사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기계·건설 공학연구정보센터(MATERIC), 

전자정보연구센터(EIRIC),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KMCRIC)


  그 이외의 정부지원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연구실은 한정적이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BK21 사업은 2019년 기준 2,698억 원 가량의 예산이 전국 525개 사업단에 배분됐다. 세계 수준의 기초 연구를 위해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 IBS 사업은 같은 해 2,365억 원가량이 30개 연구단에 배분되며 더욱 높은 집중도를 보였다. 이런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된 연구실의 대학원생들은 연구 주제 선정과 예산의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IBS 사업에 참여 중인 대학원생 B 씨는 “실제로 사업을 통해 연구비가 넉넉하게 지원되면서 연구를 위한 재료 구입이나 장비 사용에 제한을 크게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원 사업에서 소외된 연구실은 정부나 기업 수행 과제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때 수행하는 과제는 연구실이 기존에 수행하던 연구와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수혜를 받는 연구실이 수행하는 연구 과제는 대부분 연구실의 연구 주제와 부합하지만,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공고한 과제를 지원할 때는 정부와 기업을 위한 맞춤형 연구를 해야 한다. 대학원생 A 씨는 이런 구조로 인해 대다수의 연구실이 어쩔 수 없이 소위 ‘돈 되는 연구’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연구와 ‘돈 되는 연구’ 사이에서 생긴 괴리는 대학원생들에게 회의감이 돼 돌아온다. A 씨는 “오히려하고 싶은 연구가 뚜렷하고, 미리 연구실 정보를 꼼꼼히 찾아 입학한 학생들이 연구실 생활을 힘들어한다”고 덧붙였다.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연구실에선 당장 애로사항이 발생한다. 재료나 실험장비 등을 새로 구입하기 어려운 연구실은 연구를 조금 미루거나 실험 필수품을 아껴 쓰면서 긴축 상태에 돌입한다. 대학원생 A 씨는 “작년 쯤 연구실에 연구비가 부족했을 때는 실험을 할 때 깨지거나 금이 간 플라스크 등을 임시방편으로 붙여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수들도 재정난으로 인한 타격을 입는다. 고려대 윤태웅 교수(전기전자공학부)는 “금전적인 문제가 심각하면 교수가 사비로 연구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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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박상욱 전문위원은 연구실 사이에 발생하는 연구비 수혜 격차의 근본적 원인으로 연구의 시장화를 지적했다. 특정 연구 분야에 대한 정부·기업의 수요와 연구자 공급이 분야마다 다르기 때문에 연구비 수혜액의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구실이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인공지능과 같은 4차 산업 관련 분야처럼 연구실의 분야가 정부의 관점에서 전도유망해 보이고 필요한 기술로 인정받아야 한다. 박 전문위원은 “현재 연구비는 철저히 시장 논리에 따른 경쟁을 통해 수주를 하고 있다”며 “시장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왜 연구비가 차등적으로 연구실에 분배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적은 급여로 생활 유지하기 어려워

  연구비가 충분한 연구실이더라도 좋은 연구 환경을 보장할 순 없다. 연구비의 규모와 대학원생의 인건비, 즉 월급이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최종적으로 책정하는 권한은 각 연구실의 교수에게 있다. 교수는 지급받은 과제수행비의 일정 비율을 미리 인건비로 책정해 별도의 계좌로 보관한다. 대학원생이 받는 월급은 이런 교수의 판단에 기반해 결정된 후 해당 계좌에서 지급된다. 평상시 연구비 수혜를 많이 받는 연구실이라면 입학 시 책정된 월급 수준이 높을 수 있지만, 여전히 월급 책정의 칼자루는 교수가 쥐고 있다. 연구과제가 많은 연구실일수록 대학원생의 수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오르지 않기도 한다.

  자연히 대학원생은 연구수행과 별개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다. 한국연구재단이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등록금, 생활비 등 경제·생활 환경 관련 어려움’ 항목이 ‘연구수행 관련 어려움’에 이어 애로사항 중 2위를 차지했다. 대학원생 B 씨는 “인건비가 적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인건비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명분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운을 뗐다. 명목상 대학원생의 목적은 학업이기 때문에 인건비를 언급하기 조심스럽다는 것이 다. 그러나 실제로 대학원생은 연구나 학업의 연장선으로 보기 어려운 행정 업무나 과제 등을 도맡는다. 고용노동부 역시대학원생 조교가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할 경우 노동자성을 띨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학원생은 노동자와 학생 신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대학원생은 연구실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들의 급여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책임지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외 장학금 제도는 실효성에의문이 제기된다. 대학원생이 장학금 수혜를 받게 됐을 때 해당 장학금이 대학원생에게 오롯이 돌아갈 확률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에 응한 대학원생 세 명 모두 “장학금 수혜를 받은 만큼 교수가 월급을 일정 부분 감면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 연구에 묶여 생활비를 버는 다른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원생은 경제난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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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이 진행한  '2018년 청년과학자의 애로사항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연구재단


대학원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 필요해

  대학원생의 연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현행 연구비 수혜 체제의 보완이 필요하다. 박상욱 전문위원은 개별 연구 중심의 현행 연구비 수혜 체제에 대한 개선안으로 ‘블록 펀딩’ 체제를제시했다. 이는 정부가 일정 금액을 학교에 지급해 학내 구성원이 이를 협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도록 하는 체제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4대 과학기술특성화대학(KAIST, DGIST,UNIST, GIST)에 도입한 ‘학생 맞춤형 장려금 제도(스타이펜드, Stipend)’는 실제로 블록 펀딩을 도입한 사례다. 해당 제도가 시행될 시 학생연구원은 연구실의 과제 유무에 상관없이 석사 과정은 월간 70만 원, 박사 과정은 월간 100만 원을 제공받는다. 박 전문위원은 “블록 펀딩은 부족한 연구비를 메워줄 수 있는 마중물로 기능할 수 있다”며 “학생들의 인건비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블록펀딩 역시 한정된 예산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어떤 대학에 얼마의 돈을 배분해야 할지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현 체제와 블록 펀딩 수혜 체제가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므로 두 체제 모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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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박상욱 전문위원 ⓒ김김민수 사진기자


  정부 역시 대학원생의 처우 개선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과제는 남아 있다. 2017년 7월 석박사 학생 연구원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학생연구원 근로계약 의무화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학생연구원이 최저시급과 산재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학생연구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대학원생 C 씨는 당시 근로계약 의무화 제도가 실제로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그는 “학생의 초과 근무를 인정하지 않고 기관이 근로시간을 임의로 조정해 보수를 축소하거나, 근로자 신분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하면 학생 신분을 벗어남에 따라 정부 지원이나 장학금 등의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윤태웅 교수는 이런 부작용이 제도의 정합성이 유지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제도가 새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다른 제도들도 알맞게 변화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근로계약과 같은 경우도, 학생들이 노동성을 인정받으면서도 학생으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충돌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BK21 사업에 참여하려면 대학원생은 스스로가 전일제 학생임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근로계약 체결의 지표인 4대 보험 가입 유무로 판단하므로, 대학원생을 보호하려던 제도 내에서 모순점이 생긴다. 그러나 윤 교수는 이런 부작용이 제도 자체의 무용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고 덧붙이며, “부작용을 해소해가면서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근로 계약을 체결해서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으면서도 학생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함께 변화해야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의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대학원의 경제적 구조도 변화가 필요하다. 윤태웅 교수는 대학원생이 등록금과 생활비를 교수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현재 이공계 대학원생은 일반적으로 연구비와 정부 지원 사업으로만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윤 교수는 “교수들이 장학금과 인건비를 분리할 필요성에 공감하는 게 먼저일 듯 싶다”며, “최저 생계비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학교에서 장학금으로 받아, 학생이 전적으로 지도교수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C 씨는 “그래도 근로계약 의무화와 같은 제도가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연구환경 개선을 위해선 지금의 위치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단 의미다. 오랫동안 유지된 대학원의 고질적인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국가와 대학 차원에서 끊임 없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