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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로 얼룩진 독립 움직임 유럽 통합의 물결 속에서 거꾸로 가는 스페인 바스크 민족주의자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팜플로나 = 이미하 객원기자 (나바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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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지도. 붉은 테두리로 표시된 지역이 바스크족의 근거지다.

필자는 이번 학기에 스페인 북부 팜플로나에서 수학하고 있다.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곳은, 스페인의 19개 자치주 중 하나인 나바라의 중심 도시로서 소몰이로 유명한 산 페르민(San Fermin) 축제 기간을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적은 조용한 지역이다. 그런데 얼마 전 공교롭게도 필자가 다니는 대학에서 스페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10월의 마지막 목요일, 수업 시간 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옆자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꺼내들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연속적인 폭발음이 들렸다. 처음에 든 생각은 누군가 건물에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화염병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진동이 너무 컸다. 강의실 반대편에서 일어난 폭발의 진동이 유리창의 움직임과 함께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영문을 몰라 다들 웅성거리고 있을 때 건물에서 대피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출입구를 나서서 돌아본 건물 반대편에서는 뿌연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뉴스에서나 보던 차량 폭탄 테러가 일어난 것이었다.
스페인 경찰의 ETA 요원 검거 이틀 후 발생한 나바라대 차량 폭탄 테러 장면.

대학 본관 옆 주차장에 세워진 한 차량에 장착됐던 폭탄은 다행히 사망자를 내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차량에 손해를 입힌 것은 물론이고 30여 명의 가벼운 부상자를 냈다. 경찰은 사건의 배후로 스페인 내 바스크 지역의 독립을 주장하는 과격 단체 ETA(Euskadi Ta Askatasuna, 바스크 조국과 자유)를 지목했다.

ETA, 폭력으로 찾으려는 바스크 조국과 자유

스페인에서 ‘앓는 이’와 같은 존재로 취급받는 ETA는 그 역사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의 본거지인 바스크 지역은 전통적으로 자치에 대한 열망이 강했는데, 1939년부터 36년간 지속된 프랑코 독재 정권은 지역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정책을 폈고 이에 대항해 1959년 좌파민족주의 성향의 학생들이 설립한 조직이 ETA였다. 이후 프랑코 사망으로 정권이 막을 내리는 70년대 중반까지, ETA의 투쟁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면모가 부각되면서 대중의 지지도 어느 정도 받아왔다.

그러나 이들은 1977년 자치권 획득 이후에도, 독립 요구에 가까운 보다 광범위한 자치권을 요구하며 주요 정치인에 대한 암살 기도를 비롯한 테러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1987년 바르셀로나의 한 쇼핑센터에서 일으킨 폭탄 차량 테러가 21명의 무고한 사망자를 내면서 조직은 국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이후 ETA는 스페인 정부와 평화 협상에 나섰고, 1998년에는 공개적으로 휴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조직의 와해 속에서도 현재까지 크고 작은 폭력 행위는 지속돼 지난 40여 년간 희생자만 800명 이상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0월 30일 테러가 발생했던 나바라주는 특히 ETA의 지속적인 활동으로 고통을 겪어온 곳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이 이곳 역시 바스크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나바라 경찰은 지역의 ETA 요원 검거에 열을 올려 왔다. 나바라 대학에 대한 테러도 사건 발생 이틀 전 지역 경찰이 ETA 요원으로 지목된 용의자 3명을 체포한 후 발생한 것이었다.

11월 17일 프랑스에서 조직의 전 지도자를 검거하는 등 스페인 정부는 다른 유럽 국가와 함께 ETA 조직을 완전히 해체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우선 이들의 주 활동 무대가 피레네 산맥과 닿아 있는 스페인 북부 지역으로, 대개는 산을 넘어 프랑스로 도피를 꾀하기 때문에 검거가 쉽지 않다. 다른 무장 세력들과 연계돼 있는 것도 문제다. ETA는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통일을 목표로 조직된 IRA(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 공화국군)가 2001년 활동을 중단하기까지 이들과 비슷한 행보를 걸어왔다. 최근에는 FARC(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와 공동으로 폭탄 제조 기술을 습득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완전한 자치권 획득

그러나 정부가 ETA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테러 행위에 대한 지지와는 별개로 이들의 활동 목표에 동의하는 바스크 지역 주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 했듯이 바스크 지역은 프랑코 사후 카탈루냐와 함께 가장 먼저 자치주로서 지위를 획득했으며, 현재까지 교육·보건 등에 걸쳐 자치권을 점차 확대해 왔다. ETA를 비롯한 바스크 지역 분리주의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스페인 중앙 정부로부터 완전한 자치권을 요구한다. 이들은 바스크가 스페인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어, 로마 제국이 스페인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거주해온 원주민의 전통을 줄곧 보존해왔다. 그 중에서도 현재 카스티야어(스페인어)와 함께 이 지역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는 바스크어는 라틴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독자적인 언어로, 바스크인의 정체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다.

스페인 정부는 더 이상의 자치권 행사는 사실상의 독립 요구와 다름없다며 이를 용인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분리주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올 9월, 스페인 최고 법원은 ETA와의 연계를 들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 정당인 ANV(Acci?n Nacionalista Vasca, 바스크 민족 행동당)와 PCTV(Partido Comunista de las Tierras Vascas, 바스크 조국 공산당)를 불법정당으로 규정했다.
스페인 최고 법원이 바스크의 독립을 주장하는 두 개 정당에 내린 해산 판결에 대해 바스크 주민들이 ‘비상사태에 대항하여, 바스크에 자유를’이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한 바스크 주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10월 4일 빌바오에서 열린 시위에는 수천 명이 운집, 현 상황을 바스크 지역 민주주의의 공황 상태로 규정하며 “비상사태에 대항하여, 바스크에 자유를”이라는 문구가 쓰여진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을 벌였다.

나바라주 병합, 또 다른 희망사항

그런데 바스크 지역 방송인 ETB를 통해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필자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시위 행렬 사이로 바스크 깃발과 함께 나바라주 깃발이 눈에 띄었다. 뿐만아니라 다음 소식을 전달하는 앵커 뒤에는 바스크와 나바라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나바라와 바스크는 분명 각각 자치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조국 바스크에 자유를!’ 바스크 지역에서 이런 낙서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이에 대해 나바라대 역사학과 필라르 교수는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나바라와 바스크 통합 움직임이 공공연히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만큼 두 지역 사이에 공통분모가 많고, 역사적으로 한 왕국에 속했던 시기도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이들이 나바라 또한 자신들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두 주의 통합은 스페인 정부로부터의 완전한 자치권 획득과 함께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있는 바다. 일례로 올 3월 바스크 정부는 새로운 초중등 교육안에 나바라 지역이 바스크에 속한다는 내용을 삽입, 나바라 정부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좁은 ‘우리’의 틀에서 벗어날 때

이곳 나바라대의 외국인 학생 수는 상당해서,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국적만 꼽아도 스페인, 독일, 한국, 케냐 등 11개국에 이를 정도다. 유럽 연합이 구성된 뒤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러한 교류가 활발해진 것은 물론이다. 지역 독립을 주장하는 테러 집단이 노린 곳이 이렇게 다양한 배경과 사상을 지닌 학생들로 활기찬 캠퍼스였다는 점은, 세계화와 국지화라는 두 정점의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민족, 혹은 여러 가지 잣대로 자꾸 한계지으려는 ‘우리’의 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스페인은 한동안 ‘앓는 이’를 가진 채로 유럽연합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