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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부가 아름다운 이유 신양학술정보관 3호 건립을 앞두고 신양 정석규 이사장을 만나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정의라 기자 (tnblue@snu.ac.kr), 사진 한성민 기자 (agnostic@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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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암 수술,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내다

첫눈에도 정석규 이사장의 건강은 좋지 않아 보였다. 두 번의 후두암 수술로 성대를 잃었고, 이어진 위암 수술로 위마저 100% 적출해냈다고 했다. 인터뷰 역시 서면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두 종류의 암과 세 번의 수술이라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을 의외로 너무나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후두암 수술로 목소리를 잃었는데, 또 위암 수술로 위를 다 잘라내서 제대로 먹지를 못 해요. 요샌 체중이 47kg 정도밖에 안 나가니 건강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죠. 그래도 수술로 암을 어느 정도 이겨냈고 당장 건강에 위험은 없으니 매일 사무실에 나와서 근무하고 있어요.” 정 이사장은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걱정이라면서도 매일 사무실에 나와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학시절에 사람들이랑 참 담배를 많이 피웠어요. 싸구려 엽초 담배를 신문지에 말아 쉴새없이 피워댔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식한 행동인지 새삼 느끼곤 하죠. 그게 지금 후두암의 원인이 돼 내 목소리를 뺏어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말이죠.” 정 이사장은 이렇게 그 시절을 회상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에게 건강을 돌보는 일은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한 정신력이에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당황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강한 의지로 대처하면 못 이길 것이 없죠.” 그는 정신력이야말로 암을 비롯한 여러 역경들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원동력이라고 덧붙였다.

좋지 않은 건강에도 매일 사무실에 나와 근무하는 정석규 이사장.


“적게 먹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더라”

1929년 일제 치하에 태어나 한국전쟁과 산업화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어낸 정 이사장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지 궁금했다. “형편이 넉넉지 못했어요. 당시야 우리나라가 워낙 못 살던 시절이니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온 국민이 당장의 밥 한 끼가 아쉬운 상황이었죠. 다행히 자식교육에 열성이었던 부모님 덕분에 어려운 형편에서도 학업은 계속할 수 있었지만, 끔찍이도 배를 곯았던 기억이 대부분이에요.” 그는 당시를 견디기 어려운 비참한 생활로 묘사했다. 쌀밥은 구경도 할 수 없었고, 사료용 옥수수와 기름을 짜고 남은 콩깻묵으로 겨우겨우 연명해 나가는 나날이었다. 더군다나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였던 터에 학교생활 역시 군대 생활을 방불케 했다고.

“아침이면 수 킬로미터의 오르막길을 조깅으로 등교해야 했어요. 그렇게 학교에 가면 배가 너무 고파서 도시락을 먼저 먹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간혹 그게 걸리면 엄청난 체벌을 받곤 했죠.” 하지만 정 이사장은 매일 이어지는 훈련과 체벌, 심한 굶주림을 견뎌내며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고 했다. “사람이 적게 먹는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몸이 힘들고 제대로 먹진 못했어도 정신력으로 극복해내는 법을 배웠죠.” 학창시절의 굶주림을 통한 육체적 단련이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이어졌고, 훗날 어려운 사회생활을 극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기부는 곧 나의 삶, 뜻에 따라주는 가족들에 가장 고마워

그의 기부인생은 1996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바라오던 기부의 꿈은 1996년의 사회공익봉사활동을 시작으로, 1998년에는 신양문화재단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정 이사장은 누구나 기부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나 정작 실천을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부의 축적 욕망과 상속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의식을 꼽았다. “아무리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도 기부에 대한 의욕이 없으면 실천할 수가 없는 것이고, 큰 재산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나눔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기부를 할 수 있는 것이죠.” 정 이사장은 기부란 재산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라며 실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실상 거의 전 재산을 기부하는 것과 다름없는데 혹시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정 이사장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본인이 기부를 실천하고자 해도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나의 처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는 것을 조금 불만스럽게 생각하긴 했지만, 나의 생각 자체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자식들까지 나의 뜻에 동참해 자신의 명의로 돼있는 재산까지 기부하고 있으니 고마운 마음이야 늘 갖고 있죠.” 그의 장남 역시 현재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 이사장의 뜻에 따라 각종 기부활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하니, 온 가족이 건전한 기부문화 형성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그는 늘 사무실을 손수 정리한다.


서울대에만 300억 기부… 신양학술정보관 3호 곧 건립

신양학술정보관 3호가 완공되면 그가 서울대에 기부한 액수는 총 300억 원을 넘는다. 개인 자격으로는 서울대 역사상 최고액이다. 신양문화재단, 서울대발전기금 외에도 (재)관악회, 한국고무학회, 한국로타리장학문화재단, 로터리클럽, 영등포지역사회, 종교단체 등 그의 주요 기부처는 우리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다. 실로 엄청난 액수의 돈을 선뜻 사회에 기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가 처음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역시 빈곤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큰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늘 심한 굶주림 속에 훈련과 노동에 시달렸고, 학비조달에도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에 내가 사회에 진출해 성공하게 되면 꼭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죠.” 어린 시절의 어려움은 그로 하여금 지금의 조건 없는 기부를 가능하게 했다.

곧 공사에 들어갈 신양학술정보관 3호에 대해 묻자 정 이사장은 부끄러운 듯 말을 이었다. “기존에 건립된 1·2호 관이 매우 유익하다는 평을 받고 있어 3호관도 추가로 짓기로 결정한 것인데, 처음엔 장소 물색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결국 결정된 곳은 규장각 옆 사회과학대 근처의 녹지 및 주차장 일부인데, 약 800평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에요.” 이미 공대·인문대 신양으로 잘 알려진 신양학술정보관 1·2호관은 많은 학생들에게 유용한 학습 공간을 제공하며 큰 환영을 받고 있다.

인문대 학술정보관 지하 헬스장 문제에는 유감 표명

한편 정 이사장은 최근 학생들 사이에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문대 학술정보관 지하의 교직원 전용 헬스장에 대해서는 유감의 뜻을 밝혔으나 여전히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그에 따르면 인문대 학술정보관 문제는 당초에 명칭 문제부터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즉 우리가 흔히 ‘인문대 신양’으로 알고 있는 곳의 정식 명칭은 ‘신양학술정보관 2호’가 아닌 ‘인문대 학술정보관’이다. 서울대 학생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기존의 취지와 명칭의 통일성을 살리기 위해 ‘신양학술정보관 2호’를 주장한 신양재단이나 대학본부 측과는 달리, 인문대 측에서는 ‘인문대 학술정보관’의 호칭을 고집했다고 한다. 결국 인문대 측의 의견을 존중해 이 명칭을 사용하게 됐고 용도에 따른 내부 설계 역시 인문대 측에 전적으로 위임됐다.

“나로서는 지금까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문제가 야기돼 유감이네요. 명칭과 내부 용도의 권한이 인문대에 전적으로 위임됐기 때문에 헬스장 문제에 대해 스쳐 듣기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협의한 기억은 없어요. 그 곳에 들어가 본 적도 없고요.” 하지만 정 이사장은 미리 학술정보관의 내부 용도를 알았더라도, 본인은 구체적으로 간섭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인문대 학술정보관의 건립에 있어 정 이사장이 대부분의 건축비를 부담하기는 했지만 인문대에서 수억 원을 추가로 부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 이사장은 이미 헬스장이 설치됐다면 교직원에게 도움이 되고 학생들에게 지장이 없는 선에서 운영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헬스장이 교직원에게 도움이 되고 학생들에게 지장이 없는 한에서 교직원의 복지후생시설로 인정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현재의 공간이 학생들에게 부족하다면 3층과 4층까지 폭넓게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학생들의 학습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신양학술정보관 4층의 정 이사장의 사무실, 한쪽 벽면이 표창장으로 가득하다.

“세상에 쉽고 안정된 삶의 방법은 없다”

끝으로 대학가의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학생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는 경향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정 이사장은 자신은 엔지니어 출신의 경영인으로서 중소기업을 경영해 온 경험밖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명확한 답을 줄 수는 없다며 겸손하게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인적자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학생들 모두가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돼줄 것을 당부했다. “요즘 학생들은 우리세대와는 달리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바라고 있는 듯한데, 이 세상에 쉽고 안정된 삶의 방법은 없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끝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어요.” 정 이사장은 서울대에서 노벨상 수상자와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탄생하길 바란다고 했다. 하루 빨리 서울대가 세계 10위권 내의 대학으로 진입하길 바란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앞으로 이러한 목표 달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후원자로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전했다.

재산을 자손에게 상속해 무익하게 소멸시키는 것보다 기부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 아니냐며 반문하는 그에게 ‘왜 기부를 하셨느냐’ 는 처음의 질문은 너무나도 무의미했다. “남의 도움으로 얻은 돈이니까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며 말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야윈 몸에 목소리마저 마음대로 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는 기부에 대한 그의 열정이 엿보였다.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부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싶다는 신양 정석규 이사장. 사실 그것은 정 이사장 자신보다 우리가 더욱 바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