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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살자’라는 구조요청의 또 다른 신호 24시간 365일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생명의전화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윤영아 기자 (young9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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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안재환 씨에 이어 톱스타 최진실 씨까지,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연예인들의 자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비단 연예인들의 자살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이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10만 명당 21.5명, 2006년 기준)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44분마다 한 명씩, 하루 33명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자살 바이러스’가 사회 깊숙이 퍼지고 있는 반면, 현재 우리 사회에는 자살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마련은 물론 원인 연구조차 잘 돼있지 않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33년 동안 고군분투한 단체가 있다. 바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돕기 위해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항시 전화기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생명의전화가 바로 그 곳이다.

2대의 전화에서 시작해 이제는 17개의 센터로
한국에서 생명의전화가 처음 개통한 것은 1976년 9월 1일의 일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알렌 워커(Alan Walker) 목사에 의해 시작된 생명의전화는 호주와 캐나다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 퍼져나갔다. 그러던 중 이 사업을 접한 이영민 목사가 전화 상담을 위해 서울 무교동에 ‘아가페의 집’이라는 커피하우스를 개점한 것이 한국에 생명의전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제스처만 알아줘도 지금 일어나는 자살의 반은 줄일 수 있어요.” 자살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생명의전화의 나선영 실장.

한참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도 벅찼던 1970년대, 과연 전화 상담이 가능했을까? 하지만 당시 생명의전화에 대한 반응은 예상외였다. 생명의전화 나선영 실장은 “‘상담’이란 것 자체가 흔치 않았고 전화도 거의 없던 시절인데, 개통 후 24시간 동안 2대의 전화기에 300통이 넘는 전화가 왔다”며 당시 사람들의 관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전화 상담을 위한 자원봉사자 모집에도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원을 했다. 자살이 많던 시대는 아니었지만, 단순히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정신적인 고통을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생명의전화가 서울에서 큰 호응을 얻자 78년 부산을 시작으로 지방 도시에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국에 17개의 생명의전화 센터가 자리잡고 있으며, 강원도 태백에도 새로운 센터를 준비 중에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전화를 찾는 이유는 전화 상담이 다른 상담들에 비해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나 실장은 “전화 상담은 본인이 힘들 때 언제든지 손쉽게 상담을 받을 수 있고, 까다로운 예약 절차나 비싼 상담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에서 전화 상담이 큰 관심을 받았던 이유는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의 정서에 익명이 보장되는 상담 체계가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터지기 직전의 풍선에서 살짝 바람을 빼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에요.”
생명의전화에선 매년 자살예방을 위해 전문상담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자살예방상담 전문가 교육과정 중 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한 해에 생명의전화를 찾는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될까? 나 실장은 “1년에 서울 생명의전화에서만 18,000건의 상담을 받는다”며 운을 뗐다. 물론 그 중에는 상담원들을 괴롭히는 장난 전화나 전화를 걸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끊는 침묵 전화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정보를 구하는 단순한 고민에서부터 자살에 이르는 심각한 문제까지 생명의전화에서 상담하는 내용은 방대하다. 흔치 않지만 가끔은 정말로 긴급한 상황의 전화를 받기도 한다. 전화를 건 내담자가 자살을 결심하고 칼을 소지한 상황이거나 이미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상태일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나 실장은 “비록 내담자 비밀 보호 원칙이 있긴 하지만, 이런 급박한 경우엔 최대한 내담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를 대화를 통해 이끌어내려고 한다. 위치를 파악하면 119나 경찰에 곧바로 신고를 한다”며 실제로 빠른 조치를 통해 자살 시도자를 구해낸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얼핏 생각해보면 정말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지는 의문이 든다. 나 실장도 그런 한계에 대해 어느정도 수긍했다. “물론 전화조차 하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에는 ‘전화상담’이 도움이 될 수 없겠죠.” 하지만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잘 살고 싶어서 죽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자살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나 실장은 “특히 젊은 층일수록 계획된 자살보다는 충동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다”며 그 사람들은 단지 순간의 고통이나 절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 실제로 죽음이 목적인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시지나 제스처를 주변에 보내고 그 일환으로 전화 상담을 많이 찾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이가 많은 아저씨 한 분이 술을 잔뜩 드시고 전화를 하신 적이 있어요. 이미 가족 중에 자살을 한 사람이 있었고, 사업실패와 빚, 그리고 부인의 외도로 자살을 결심한 분이셨죠. 하지만 1시간 동안 저희와 통화하시면서 술도 깨시고 충분히 지금의 삶을 꾸려갈 대안이 있다는 걸 깨달으셨죠.” 생명의전화에서 하는 일은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담자와의 대화를 통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상담원의 역할이다. 나 실장은 생명의전화를 찾는 사람들을 바람이 가득 찬 풍선에 비유했다. “한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저희의 역할은 터지기 직전까지 부푼 풍선에서 바람을 살짝 빼주는 것이라고요.” 한 통의 전화가 극단의 선택을 한 사람에게 다른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생명의전화에서 말하는 ‘자살에 대한 오해와 진실’

오해1 자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실제 자살하지 않는다.
진실1 자살하는 사람 중 10명 중 8명은 자살의도를 언급한다.

오해2 자살은 특징적인 징후 없이 행해진다.
진실2 자살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경고를 준다.

오해3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평생 동안 자살충동이 있다.
진실3 자살충동을 가진 사람이라도 일정 기간동안만 자살충동을 보인다.

오해4 자살위기 이후, 감정 상태가 호전되는 것은 자살의 위험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진실4 대부분의 자살은 상태의 호전 이후 세 달 이내에 일어난다. 이 시기에는 우울한 감정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운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해5 자살은 부유층에게 훨씬 자주 일어난다. 혹은 반대로 빈곤층에게 자주 일어난다.
진실5 자살은 부유층 혹은 빈곤층 어느 하나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살은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골고루 일어난다.

오해6 자살하려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진실6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이 꼭 정신이상인 것은 아니다.


생명의전화만의 특별한 행사, ‘생명사랑 밤길걷기’

생명의전화는 전문상담기관으로 단지 전화 상담만을 하는 단체가 아니다. 자살을 예방하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사랑 캠페인’부터 ‘대학생 생명지킴이 봉사단’, ‘자살 시도자 및 생존자(자살한 사람의 유가족) 지원사업’ 등 추진하고 있는 사업의 범위도 방대하다.
2007년에 열린 ‘제 2회 생명사랑 밤길걷기 행사’ 모습.

특히 생명의전화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올해 3회째를 맞고 있는 ‘생명사랑 밤길걷기’는 ‘생명 사랑’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진행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행사이다. 미국의 한 자살예방재단이 주최한 프로그램, ‘The Out of the Darkness Overnight’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행사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밤길을 걸으며 어둠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생명의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생명사랑 밤길걷기’는 행사 첫 해에 3000여 명, 지난해에는 5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밤새 30km를 걷는 무척 고된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참가자들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행사를 담당하고 있는 길정수 팀장은 “힘들다는 말씀들을 꼭 하신다”며 참가자들의 반응을 웃으며 소개했다. 그래도 매번 좋은 행사라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나선영 실장은 “보통 이 행사에 참여하면 8시간을 걸어야하는데, 다들 그 어느 때보다 가족들,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며 ‘생명사랑 밤길걷기’의 매력을 설명했다.

생명의전화에서는 이번 10월에도 서울을 비롯해 대구, 대전에서 제 3회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단지 걷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프로그램들이 코스 중간 중간에 마련돼 있다. 자신의 고민과 아픔, 상처 등을 적은 돌을 물속에 담가 가라앉게 하는 프로그램인 ‘세드 스톤’부터 전 세계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줄 메시지를 적는 ‘라이프 메시지’까지, 이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이번 행사에 예정돼 있다. 휴일도 없이 큰 행사를 준비하다보면 고될 법한데도 나 실장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는데, 아직 저희에겐 부족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 행사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길 바랐다.

자살에 대한 전반적인 인프라와 관심이 필요해
2007년 우리나라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약 25명)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 자살률에 2배를 넘어선 수치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국가가 된 지는 벌써 몇 해가 지났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살에 대한 예방책이나 사람들의 인식 중 그 어느 하나 나아진 것이 없다. 나선영 실장은 무엇보다 자살예방을 위한 국가적인 뒷받침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우리나라는 제도적이나 정책적인 측면에서 자살과 관련해 마련된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4년 전쯤 정부에서 자살예방 5개년 정책들을 내놓긴 했지만, 정작 준비된 예산은 한 푼도 없었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살 예방을 위해 발벗고 나섰던 시민단체나 민간기관들도 재원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나 실장은 연예인 자살을 너나 할 것 없이 대서특필하는 언론의 책임도 무척 크다고 덧붙였다. “연예인의 자살은 일반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정말 커요. 그런 만큼 생명존중의 철학을 가지고 정보를 제공해야하는데, 요즘 언론들은 자살을 너무 흥미 위주로 다루는 것 같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살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관심이다. 안타까운 죽음은 해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이 ‘자살위험신호’가 무엇인지, 자살시도자를 접했을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등 모르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나 실장은 “예방하는 프로그램 이전에 주변 사람들이 자살하려는 사람이 보내고 있는 제스처만 알아줘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자살의 반은 줄일 수 있다고 본다”며 모든 사람들이 자살이 남의 일이 아님을 알아줬으면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살강국’인 동시에 20~30대 사망의 원인 1위도 ‘자살’이다. 특히 대학생들의 자살은 끊이지 않고 뉴스 타이틀에 올라오고 있다. 생명의전화에도 대인관계, 취업에 대한 고민, 우울증 등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나선영 실장은 “요즘 젊은 층은 생명은 자신의 것, 즉 권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살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라고 본다. 하지만 자살은 절대 선택해선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며 대학생들의 충동적인 자살을 안타까워했다. “지금 대학생들에겐 누구에게나 도움을 요청할 열린 마음이 필요해요. 그 순간을 넘겨 어두운 터널을 나와 보면 충분히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