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호 > 사회 >기억은 권력이다
남양유업과 '갑질'의 역사 '을'들의 외침으로 시작된 경제민주화
등록일 2016.05.02 21:15l최종 업데이트 2016.05.03 16:38l 이기우 기자(rna2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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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은 남양유업이 각 대리점에 ‘물건 밀어내기’를 한다고 주장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수요가 크지 않은 상품들을 본사에서 대리점에 강매했다는 것이다. 남양유업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고 오히려 본사에 대한 항의 집회에 참가한 대리점주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남양유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 역시 크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과 폭언을 가하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며칠 후에는 영업사원이 ‘떡값’을 요구하는 녹취록과 그 송금 내역이 공개됐다. 남양유업은 재빨리 해당 영업사원을 해고하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미 소비자들은 분노했고 불매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소비자들의 비판은 단순히 남양유업이라는 개별 기업의 횡포에 대한 반감에서 그치지 않고 대기업의 ‘갑질’이 문제라는 의식으로 발전했다. 남양유업 사태로 말미암아 집권 1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던 경제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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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은 남양유업의 ‘갑질’을 비난하며 집회를 열었다. 

본사에서 ‘밀어낸’ 유제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프레시안



갑질은 어떻게 이뤄졌나


  이창섭 ‘전국대리점연합회’ 상임대표는 당시 ‘남양유업 피해자대리점협의회(피대협)’를 결성해 남양유업에 대한 항의와 보상 요구를 주도한 인물이다. 현재 그는 피대협을 나와 다양한 업종의 대리점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국대리점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년 7월부터 다시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 상임대표에게서 당시 남양유업의 주된 ‘갑질’로 지적되었던 ‘밀어내기’, ‘떡값’ 요구, 판촉사원 임금 전가 등이 어떻게 이뤄졌고 현재에도 어떻게 계속되는지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남양유업과 대리점의 거래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산으로 이뤄진다. 남양유업은 해당 대리점이 주문한 것보다 더 많은 물량을 주문한 것으로 주문 내역을 조작하고 유통기한이 며칠 남지 않은 제품이나 판매가 잘 되지 않는 제품을 대리점 측에 억지로 떠넘겼다. 결국 대리점 입장에서는 이를 처리하기 위해 1+1 행사를 하거나, 원가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대리점주가 이에 대해 본사에 항의하면 본사에서는 두 가지의 선택지를 제시했다. 손해를 감수하고 영업을 계속하거나, 아니면 대리점 영업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이 상임대표는 “영업을 그만두는 것은 곧 영업을 시작했을 때 투자했던 보증금이나 권리금을 모두 포기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부분의 대리점주들이 본사의 요구에 순응하게 되는 구조다.


  이처럼 본사의 권력이 강하니 자연스럽게 ‘떡값’과 같은 다른 요구가 더해졌다. 본사의 영업직원들은 대리점주에게 새로 생긴 대형 마트에 납품을 도와준다거나, 지부장이 새로 부임했다거나, 혹은 명절이라는 등 다양한 이유로 금품을 요구했다. 밀어내기에 있어 사정을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본래 한 대리점에 100박스를 밀어냈었다면 금품을 받고 50박스만 밀어내는 식이다. 나머지 50박스는 다른 대리점에 밀어내면 그만이다.


  판촉사원 임금 전가는 이러한 대기업의 갑질이 남양유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형마트에서 판매, 판촉하는 노동자들은 대형마트 측에서 임금을 지불하거나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대형마트들은 판촉사원의 임금을 납품 계약을 맺은 본사, 예를 들면 남양유업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리고 남양유업에서 이를 다시 대리점주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쌍문동에서 약 10년째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대리점주 항기준 씨는 “남양유업 측에서는 50만원의 인건비만을 지원했을 뿐, 나머지 인건비에 4대 보험 비용, 퇴직금은 대리점주에게 전가됐다”고 설명했다. 판촉사원과 관련해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을 지는 것 역시 대리점주의 몫이다.


  이창섭 상임대표는 “대리점에 의해 고용되고 임금을 받는 판촉사원들의 역할은 납품한 물품에 대한 진열, 홍보에 국한되는 것이 당연함에도 실제로 판촉사원이 대형마트에 출근해서 하는 업무 중 대리점의 제품에 관련된 일은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측에서 해당 판촉사원에게 물류 업무 등 다른 업무들을 부담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원칙적으로 부당 노동 행위에 해당한다. 대리점주가 반발하면 대형마트는 발주량을 크게 줄였다. “대리점이 운영되기 위한 기본적인 물량의 3분의 1도 안되게 발주하면 대리점은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상임대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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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전국대리점연합회 상임대표는 남양유업 사태를 통해 정교한 착취 구조가 드러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나은 사진기자


  남양유업의 횡포로 인해 많은 대리점주들은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남양유업 문제가 처음 제기됐을 당시, 전체 1,800여 개의 대리점 중 이전 5년간 대리점주가 교체된 적이 있는 대리점이 1,300여 개에 달했다. 남양유업의 착취로 빚을 지게 된 대리점주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결국 대리점을 팔고 나가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출을 통해 1억 원을 마련해서 대리점 영업을 시작했다면, 한 달에 3~400만 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결국 5~6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된다. 결국 대리점을 팔아야 간신히 신용불량자를 면하는 현실이다. 항기준 씨의 경우 대리점을 인수할 때 권리금으로 7,600만원, 영업용 차량 비용으로 1,100만 원의 대금을 지불했다. 담보까지 합쳐 1억 원 가량의 돈을 투자했지만 그에게 현재 남은 돈은 고작 2~3천만 원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긴 빈자리는 새로이 시장에 진입하는 대리점주가 채우게 된다. 기존 대리점주는 대리점 영업권을 판매하기 위해서 착취 구조의 존재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결국 새로운 대리점주 역시 착취에 시달리게 된다. ‘을’들이 폭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이 상임대표는 이러한 구조가 “각 기업마다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지난 2~30년간 형성된 유통업계의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갑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신할 뿐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남양유업의 매출은 급감했다. 결국 남양유업은 두 손을 들었다. 2013년 7월 남양유업과 피대협의 최종 협상이 타결됐고, 남양유업은 피대협 측에 30억 원의 상생 기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고소를 취하했다. 한편 남양유업 사태로 촉발된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국회에서는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남양유업법)’이 발의됐다. 법조문에 따르면 남양유업법의 취지는 ‘대리점 거래에 있어서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공급업자와 대리점이 동등한 위치에서 상호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갑질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항기준 씨는 “일단 현재로서는 밀어내기는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창섭 상임대표는 “공정거래법 등의 법률 체계 내에서 위반 사항은 이뤄지고 있지 않지만, 밀어내기가 사라졌다고 해서 착취 구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욱 정교하고 세련되게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전에는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면, 지금은 웃음을 지으며 회사와의 상생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추가 발주를 부탁한다”고 설명했다. 대리점주 입장에서 추가 발주를 거절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부탁과 함께 다양한 수법이 더해진다. 예를 들어 원래의 상품 가격이 100원이라면 이를 120원으로 인상해서 발주한 후, 이를 일정 목표치만큼 판매하면 가격을 100원으로 인하해준다는 식이다. 전체적인 구조를 알지 못하는 대리점주는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많은 양의 상품을 발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재고가 남게 된다.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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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대리점의 모습. 항기준 씨는 “이윤이 거의 나지 않아 많은 대리점주들이 

대리점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한편으로 이창섭 상임대표는 남양유업 측에서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공급가보다 대리점에 대한 공급가를 의도적으로 높게 책정해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양유업이 원가 1500원인 1L 우유를 대리점에는 1800원에 공급한다고 하면, 대리점은 15~20%의 운영 이익을 붙여 2000원 선에서 슈퍼마켓 등 소매업체에 제품을 납품한다. 소매업체 역시 자체 수익을 위해 2300~2500원 선에서 제품을 판매한다. 그런데 대형 유통업체에는 1700원 선에서 공급이 이뤄진다. 이를 통해 대형 유통업체들은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낮은 공급 가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대리점에 대한 높은 공급 가격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대리점주들의 이윤은 남양유업과 대형 유통업체들의 이윤을 위해 희생된다.


  판촉사원의 임금 전가 문제 역시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항기준 씨는 “남양유업 사태가 터진 후 사측에서는 판촉 사원의 인건비를 기존의 50만원에서 70만원으로 인상했지만 동시에 무상으로 지급되던 납품용 봉투에 대해 돈을 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봉투의 가격은 약 20만 원 정도다. 결국 조삼모사라는 것이다.


  여전히 착취가 계속되고 있지만 남양유업은 불매운동의 타격으로부터 완전히 되살아났다. 2월 11일 남양유업은 2015년 영업이익이 201억 3천만 원으로 흑자 전환했다고 공시했다. 대리점에 대한 횡포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발의된 남양유업법 역시 발의시점으로부터 2년 6개월이 지난 2015년 12월에야 통과됐다. 이창섭 상임대표는 그나마 통과된 법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대리점주들의 단체결성권·단체협상권이 규정되지 않았으며, 대리점 사업자들의 계약갱신요구권 또한 보장되고 있지 않아 본사의 계약 해지에 저항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정책사업단장으로서 남양유업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이헌욱 변호사는 “개별적으로는 매우 약한 주체인 대리점주 개개인이 대리점 본사와 대등한 협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리점주들이 단체를 구성해 집단적으로 협상을 체결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기업적 성향의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중소기업이나 대리점을 보호하는 역할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하며, 대안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에게 이러한 역할을 이임할 것을 제시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우 지역의 자영업자들을 보호할 정무적 유인이 중앙 부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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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남양유업법’이 통과됐지만, 대리점주들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박나은 사진기자


경제민주화, 이번에는 가능할까


  남양유업 사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분노와 함께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했다. 그전까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했던 정책, 공약 차원에서 이해됐었지만, 남양유업 사태를 통해서 비로소 본격적인 사회적 의제로 부각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논의에 미온적이었다. 정부에서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남양유업과 대리점주들의 협상이 타결되면서 국민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사건이 발생하고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기존의 의제였던 경제민주화는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의 이행실적은 한마디로 낙제점”이라고 잘라 말했다. 경제민주화 공약의 대부분이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것이다. 재벌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공약들이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한 형량 강화, 소비자 피해규제 명령제 도입 등 핵심적인 약속들은 별다른 진전 없이 사실상 중단됐다. 정 소장은 지나치게 심화된 재벌 의존도와 대기업에 편중된 경제 구조를 한국 경제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경제민주화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자, 소비자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상태”라고 설명한 그는 이를 이루기 위해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남양유업 사태가 일어난 3년 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남양유업의 ‘갑질’은 대한민국에서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의제이며 언젠가 이뤄져야 할 목표임을 상기시킨다. 남양유업 사태는 단순히 개인과 개별 기업 간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창섭 상임대표는 “을들의 외침으로 시작한 남양유업 사태는 사회에 커다란 화두를 던졌다”고 강조하며, “시민, 관료, 정치인 등 사회의 각 주체들이 이를 계속 기억함으로써,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추진할 동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