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호 > 문화
예술의 주체가 된 장애인, '아름다움'을 논하다 한국 장애인예술의 현주소
등록일 2016.11.13 02:12l최종 업데이트 2016.11.17 16:29l 박윤경 기자(pyk94111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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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장애인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다. 물리적으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이동권,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권 모두 장애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때문에 국내 장애인 복지정책 역시 장애인의 생존권에 집중한다. 장애인 대상 정책과 제도에서 생존 이외의 사항에 대한 지원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존 이외에도 삶의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가지며,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은 모두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사회적 관념 때문에 장애인의 다양한 삶의 방식은 도외시 돼왔지만, 사실 장애인은 오래전부터 문화와 예술 영역에서 입지를 다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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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개최된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에선 다양한 장애를 가진 안무가와 무용수가 작품을 선보였다.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국내 장애인예술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방귀희 한국장애 예술인협회 대표에 따르면 과거엔 주로 장애예술인 당사자가 개인적으로 예술 활동을 했다면, 1980년대 후반부터는 ‘농미회’, ‘솟대 문학’, ‘한국장애인미술협회’ 등의 장애예술인 단체가 결성돼 집단적 예술 활동의 길이 열렸다. 이러한 단체는 문학, 미술, 음악, 대중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장애인예술의 지평을 넓혔다. ‘장애인예술’은 이러한 장애예술인 개인 및 단체가 수행하는 모든 예술 활동을 총칭한다.



소통의 통로, 표현의 수단… 장애와 예술의 만남


  많은 장애인예술은 장애 당사자가 자유롭게 감정을 표출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지향한다. 발달장애 청소년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는 합주를 통해 발달장애 청소년들의 사회성을 높이고자 한다. ‘하트하트 재단’ 문화기획사업부 한승엽 팀장은 합주 연습을 통해 단원들이 서로 배려하고 조화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또래 비장애인 청소년들보다 타인과 접촉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발달장애 청소년들은 처음에는 자기가 원하는 소리만을 내려고 해 화음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연습을 통해 점점 원하는 것을 피력하고 다른 단원들과 소통하는 법을 익힌다.


  장애예술단 ‘땀띠’는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단원 다섯 명이 모여 주로 국악과 마당놀이를 선보인다. 각 단원이 예술 활동을 하게 된 계기나 장애로 인해 차별받았던 경험 등을 토대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다. 땀띠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석현(국문 13) 씨는 자신의 뇌병변장애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으 로 인해 느꼈던 답답함과 소심함이 음악 활동으로 해소됐다고 말한다. 무대에 올라 장구를 치면서 “장애인으로서 느꼈던 무기력함을 맘껏 표출하고 처음 희열을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와 땀띠의 단원들은 중고등학교에서 주관하는 장애인식 개선교육에도 직접 참여한다. 단원들은 학생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자신이 가진 장애에 대해 설명한다. 장애인식 개선교육은 장애에 대한 비장애인 학생들의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됐는데, 실제로 교육 전후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가 나타나 기도 했다.


  장애예술 단체의 일부 단원들은 예술전문학교에 진학하거나 일반 예술단체에 들어가는 등 전문 연주가로 성장한다. 한승엽 팀장은 예술을 통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름없는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장애인의 예술 활동이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고, 나아가 장애인을 사회에 통합하게 하는 지속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화복지”와 같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예술을 통해 상처 받았던 마음을 치유하고 억눌려온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것과 더불어 자신이 가진 장애를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 활동에 녹여내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가 함께 활동하는 극단 ‘애인’은 각 장애인이 가지는 고유한 신체적 특징을 이용해 인물을 표현한다. 배우의 뒤틀린 움직임이나 돌발적인 발화는 극중 인물의 감정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는 연극적 장치가 된다. 중증언어장애를 가진 배우의 말을 관객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인물의 부조리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를 해설하는 자막과 같은 보조장치 없이 그대로 연극을 진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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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애인'의 연극 <건드리지 마세요>. 애인은 휠체어가 출입할 수 있는 공연장에서 활동하며 필요한 경우
청각장애를 가진 관객을 위해 수화 통역을 제공하기도 한다. ⓒ극단 애인



  장애문화연구소 ‘짓’ 또한 2014년 비장애인 배우와 장애인 배우가 함께 연극을 구성했다. 짓에서 활동했던 하은빈(미학 12) 씨는 당시 선보인 연극이 장애인을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장애인이 비극적인, 혹은 장애를 뛰어넘는 데 성공한 인물로만 그려지고, 극중에서 드러나는 장애도 현실과는 달리 경증으로만 다뤄지는 기존 예술의 프레임을 탈피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연출한 연극 ‘테레즈 라캥(Thérèse Raquin)’에서는 여러 형태의 몸을 가진 배우들이 한 인물을 번갈아 연기함으로써, 각 배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을 하나의 인물 속에 담아냈다. 이중 청각장애인 배우의 독백은 자막 없이 수화로만 이뤄졌는데, 독백의 내용이 관객에게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주인공의 불안한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처음 휠체어 무용을 시작한 김용우 ‘빛소리친구들 무용단’ 단장은 휠체어를 이용해 다양한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휠체어 위에서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 외에도 휠체어를 눕혀 낯선 느낌을 자아내거나 바퀴를 이용해 부드럽게 회전하고, 휠체어의 부피감으로 큰 움직임을 표현하는 등 무용에 있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장애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때가 있었지만 휠체어를 통해 춤을 추면서 장애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전했다.


  지난 9월 개최된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에 참가했던 행위예술가 강성국 씨 역시 “장애가 무대 위에선 자신만의 색깔이 된다”고 말한다. 강 씨는 비장애인 무용수나 다른 장애인 무용수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자신만의 비틀린 몸, 예측 불가능한 근육의 움직임 등이 자신의 무용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장애인예술이 “장애를 억지로 예술에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활용해 최선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씨에게 장애는 작품의 유일무이한 주제도, 교정해야할 단점도 아닌 예술을 표현하는 다양한 수단 중 하나다.



경제적 지원은 부족, 교육과 홍보는 미흡… 여전히 제한적인 장애인예술


  장애인예술이 이토록 다양한 영역에서 꽃피우고 있음에도, 장애예술의 현실적 조건은 매우 열악한 편이다. 장애예술인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적 자립이다. 현재 장애예술인들은 사적 재단이나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또는 서울문화재단 등의 단체를 통해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예술 활동을 하기에 충분한 지원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아르코의 경우 전체 지원 건수 대비 선정 건수의 비율은 2.5대 1 정도로, 절반 이상의 장애예술인들이 지원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선정 기준도 작품 자체의 내용이나 질보다도 명성과 같은 외적인 요소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단체는 지원을 받기 힘든 상황이다. 장애인예술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A 씨는 “명성이 없어도 지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금액이 명성이 높은 경우에 비해 적다”며 예술계에 이름을 알리지 않으면 경제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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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문화예술지원사업 지원 양식 중 일부. 예술인 및 단체의 실적과 경력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금액 자체가 낮은 것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작품 하나당 1,000만 원 이하의 지원금이 나오는데, 이는 공연에 필요한 예술인과 스텝의 생계비, 극장 및 연습실 대관 비용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장애예술인 B 씨는 “최소생활비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 비장애인 예술가는 다른 노동을 통해 이를 채우지만 장애인은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사정이 더 어렵다”며 낮은 지원금으로 인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장애예술인 및 단체의 수도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에 대해 강성국 씨는 한국의 장애인예술이 특정 분야에 편중돼있다고 말한다. 회화, 문학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애예술인 및 단체는 적지 않지만 무용, 연극 등 무대에 오르는 분야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강 씨는 그 이유를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장애인이 설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무대의 수가 적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B 씨는 공연장 출입구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다 하더라도 내부까지 시설이 잘 갖춰진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처럼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서비스가 구축돼있지 않은 공연장에선 장애예술인이 주체적으로 기량을 펼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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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소극장은 휠체어가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구조로 돼있다. 이때 휠체어 이용자는 관객석 맨 앞에 마련된 횔체어전용석에 자리하거나, 마련돼있지 않은 경우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교육과 홍보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장애예술인은 전문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받기 힘들다. 한승엽 팀장은 발달장애 청소년이 음악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여지는 다른 비장애인 청소년에 비해 훨씬 협소하다고 말했다. A 씨는 장애인예술의 미흡한 홍보를 지적했다. 그는 작년 대학로에 개관한 장애인문화예술센터 ‘이음’이 다양한 장애예술인 및 단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더욱 많은 사람에게 장애인예술을 알리고 있지만, 이러한 센터가 하나밖에 없어 아직 홍보가 미흡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짓’에서 활동했던 문영민(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 씨는 장애인예술에 비평이 부족해 국내의 장애인 예술을 진단하고 관련 정책에 대해 제언하는 작업이 잘 이뤄지지 않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장애인예술, 사회의 ‘아름다움’에 균열을 내다


  장애인예술은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 B 씨는 장애인예술을 자주 접하면 장애인예술의 주체인 장애인을 이상하거나 불쌍하게만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장애예술인 및 단체가 활동할 수 있는 지평이 더 넓어져야 한다. 김용우 씨는 올해 9월 처음 열린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이와 같은 행사가 더 많이, 지속적으로 개최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예술은 그간의 열악한 환경에도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주류적이고 지배적인 ‘아름다움’ 개념에 의한 타자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주체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장애인예술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 다양성을 불어넣는다. 하은빈 씨는 “‘아름다움’이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에 장애인예술이 도전할 수 있다” 고 말한다. 장애인예술을 통해 기존의 미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이 기준에서 배제됐던 몸을 모두 포용하는 새로운 미의 척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귀희 대표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이 갖고 있는 다양한 능력을 인정하고, 그중 예술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방 대표는 장애인이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을 강조했다. 정부의 적절한 지원과 사람들의 관심이 뒷받침될 때 장애인예술은 더욱 풍부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