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호 > 문화
"수화는 언어다" 한국수어, 손짓에서 오롯한 언어로
등록일 2016.12.10 14:24l최종 업데이트 2016.12.15 12:52l 송재인 기자(gooa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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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는 언어다!” 2013년 1월 15일, 서울시 종로구 안국역 앞 참여연대 느티나무 카페에서 농인들은 자신들이 늘상 쓰던 수화가 언어임을 새삼스레 선언했다. 수화가 농인들이 단순히 소통을 위해 쓰는 수단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하나의 ‘언어’임을 공표한 것이다. 국내에서 수화가 법적으로 고유한 언어임이 인정되기까지는 12년이 걸렸다.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공용어임을 규정하는 한국수화언어법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에서 통과돼 2016년 2월 4일 법으로 공포됐고,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8월 4일부터 시행됐다. 전문가들은 법의 시행에 따라 수어통역지원이 확대되고 수어교육도 광범위하게 시행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수어가 한국어에 예속되지 않는 고유한 언어라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더불어 한국수어의 기반이 되는 농인의 정체성과 가치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농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역시 불충분하다. 오랜 기간 사회적 몰이해 아래 가려졌지만 언제나 오롯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언어, 한국수어에 대해 알아봤다. 



 농인(deaf person)이란?

  

  농인들은 ‘언어적 소수자이자 문화적 존재’라는 자기이해를 반영하여 스스로를 ‘농인’이라 표현한다. 기존에 청인(소리가 들리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농인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라는 의료적 진단에 따라 ‘청각장애인’이라고 불렸다. 기존에 ‘농(Deaf)’이라는 용어도 이러한 병리학적 관점에 가까웠다. 그러나 오늘날 ‘농(deaf)’은 언어적·문화적 의미에서 재해석돼, 농인들이 수어라는 고유한 언어와 그 언어에 기반한 자신들의 문화를 향유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농’의 재해석이 곧 기존에 청각장애인으로 분류되던 이들을 모두 ‘농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청각장애인(a hearing-impaired person)’은 신체기능의 진단에 따라 사용되는 병리학적 용어이고, ‘농인(deaf person)’은 언어적 소수자를 의미하는 문화인류학적 용어이므로 두 단어는 포괄하는 범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노인성 난청(아주 큰 소리로 말해야 알아듣고 일상생활에 현저한 장애가 있는 상태)를 겪는 이들이 수어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농사회에의 지향, 소속감이 없다면 ‘농인’이라 지칭되기 어렵다.


*위 설명은 <영혼에 닿은 언어>의 내용 및 저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낯선 오해로 점철된 한국수어


  청인들에게 음성언어인 한국어가 있듯이, 세상을 눈으로 살아가는 농인들에게는 시각언어인 한국수어가 있다. 그러나 청인이 다수인 우리 사회에서 한국수어는 낯선 오해로 점철됐다. 이 오해들을 한 타래씩 풀어나갈 때, 우리는 한국수어를 보다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한국수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바로 한국수어가 한국어를 손으로 번역한 언어라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수화봉사동아리 ‘손말사랑’에서 2년째 활동하고 있는 천영서(철학 15)씨는 동아리에 들어오기 전에 수어란 한국어를 농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한 것에 가까울 것이라 예상했다. 같은 동아리에서 3년째 활동하고 있는 조정빈(언어 14)씨 또한 한국수어의 문법체계가 따로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두 언어의 문법체계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편견에 대해 《영혼에 닿은 언어》의 저자 김유미 한국농문화연구원 원장은 “시각언어인 수어는 음성언어의 하위언어가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다른 언어다.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한국어와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 고유의 어휘를 갖고 있다. 또한 한국어의 조사, 어미변화로 치환될 수 없는 한국수어만의 독립된 문법체계가 존재한다.


  한국수어를 한국어의 하위언어로 보는 오해의 기저에는 수어를 하나의 ‘손짓’으로 보는 태도가 있다. 한국수어는 손 외에도 얼굴과 몸, 공간을 통해 문법을 표현한다. 이처럼 더 넓은 차원의 문법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한국수어가 한국어를 ‘손’을 이용해 속기하듯 옮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막이 제공되는 방송에서 수화통역 서비스를 병행해야 할 필요성에 의문을 품는 것 또한 이러한 오해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한국수어는 결코 한국어와 같은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평등한 언어권과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로 된 자막 외에도 한국수어로 된 수화통역을 제공해야 한다. 또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별개의 언어이지만 세계공용어는 아니다. 언어는 각각의 문화의 역사를 담은 상징 체계이므로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 


  한국수어를 하나의 손짓으로 오해하는 경우 수어 사용자의 표정과 몸의 표지(標識)는 외면당하거나 보조적 수단으로 평가절하되곤 한다. 그러나 수어는 수지기호(손의 형태, 움직임, 위치 등으로 표현하는 의미 단위)뿐 아니라 비수지기호(손이 아닌 몸과 얼굴의 표지)와 공간으로도 구성된다. 많은 사람들은 수어를 수지기호만으로 이해하지만, 사실 비수지기호는 문장의 종류, 존대법, 형용사와 부사, 넓게는 화자 전환의 역할까지 하는 수어의 핵심 문법이다. ‘손말사랑’ 회원 천영서 씨는 비수지기호가 “보조적 역할을 하는 비언어적 표현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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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는 언어다"는 한국수어가 하나의 고유한 언어임을 보여주는 슬로건이다. ©오선영 사진기자



  김유미 원장은 수화노래를 통해 수어를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통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수화노래는 수지한국어(한국어 문장에 한국수어 단어를 기계적으로 대응시킨 소통방식)와 얼굴을 통한 감정 표지로 이루어진다. 청인 입장에서는 수지한국어로 구성된 수화노래를 통해 수어 단어를 외우는 것이 효과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은 소리에 기반한 고유의 리듬과 박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수화를 하다 보면 수어 고유의 시각적 리듬이 파괴된다. 김 원장은 “(한국어 노래를) 작은 구 단위로 한국수어답게 바꿀 수는 있겠으나 이는 한국수어는 아니”라며, 수화노래만으로 수어를 배우는 경우 오히려 나쁜 언어습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수어와 농사회, 위기를 맞다


  하나로 독립된 언어로 이해되지 못하는 한국수어는 오늘날 보존과 전승에 위기를 맞았다. 한국수어 사용이 자유로운 농학교의 학생 수가 한 학급에 30명 정도에서 5명으로 줄어든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유미 원장에 따르면 농학교는 “아이들이 수어를 배우고 공동체 생활을 하며 풍부한 언어 경험을 쌓는 곳”이다. 또 과거 농학교에는 초중고 학생들이 함께 사용하는 농학교 기숙사가 있어 자연스레 미성년 농 공동체가 마련되고, 학생들은 언어 경험을 하고 정보를 나누며 공동체를 유지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농기숙사 운영은 물론 농학교조차 위축된 오늘날, 농학교를 중심으로 유지됐던 농사회 역시 위기를 맞았다.


  김유미 원장은 농학교가 위축된 이유로 ▲통합교육 기조가 주가 된 특수교육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부모들이 갖는 조바심과 교육열 등을 꼽았다. 통합교육이란 ‘장애이노가 비장애인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며 같은 기회와 혜택을 누린다’는 이상에서 출발한 특수교육 기조다. 그러나 통합교육은 농문화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적고 수화통역 지원이 병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탓에 언어·문화적 소수자인 농인들에게 오히려 독이 됐다.


  장애인 상담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농인 이광순(한국복지대학교) 씨는 “중학교까지 일반학교를 다녔으나 의사소통이 어려워 공부를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이광순 씨는 공부에 대한 뜻을 저버리지 않고 중년의 나이에 농학교에 입학해 수어로 교육을 받아 한국복지대학교에 진학했다. 이 씨는 “통합교육이라면 장애인인 나를 수용하고 비장애인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라 하지만 농인들에겐 힘든 과정”이라 털어놓았다. 김유미 원장은 “통합교육은 장애에 대한 병리학적 관점, 사회복지적 관점에서는 좋은 기조지만 문화적 관점에서는 소수자인 농인들이 자기정체성을 형성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내 정체성을 갖고 그 문화 속에서 내 위치를 찾기 위해서는 통합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부모들은 농아동들이 청인 주도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을까 조바심이 들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이어져온 구화(상대의 말을 입술의 움직임과 표정으로 이해하거나 잔존청력을 통해 습득한 음성언어로 발화하는 것)주의 농교육은 농아동 부모들이 갖는 두려움을 반영한다. 구화 또한 농인들의 소통방식 중 하나지만, 구화주의 철학에 입각한 구화학교는 학생들을 지도할 때 한국수어를 최대한 배제한다. 따라서 구화 중심의 교육을 받은 농아동들은 한국수어에 대한 접근을 차단당하고 수어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 낼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한국복지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재학 중인 농인 주민지 씨는 구화 사용자에 대해 “‘들리지 않는데 왜 말(음성)을 사용하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화를 사용했겠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구화 사용자의 경우 학교를 졸업한 뒤 늦게나마 농사회로 발을 들이며 한국수어를 배우려고 해도, 한국수어를 온전히 익힐 수 있는 특화된 과정이 거의 없어 한국수어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한국어라는 음성언어가 권력을 독점한 우리 사회에서 소수언어인 한국수어는 여전히 그 입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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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아인협회는 '농아인의 날'인 지난 6월 3일 여의도에서 '수화언어법 제정'을 촉구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비마이너



한국수화언어법, 농인들의 언어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한국수어가 언어로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의 언어권이 충족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특히 농인들은 방송 시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5년 장애인방송 편성 실적 평가결과’에 따르면, 주요 방송사들은 장애인 자막, 화면해설, 수화 방송 등의 목표 편성비율을 충족했지만, 일부 자막은 미송출되거나 오탈자가 속출하는 등 그 질은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르지 못하고 낮은 장애인방송 편성 비율도 문제다. 자막방송은 의무 편성비율이라도 높지만 수화해설 방송은 의무편성 비율 자체가 낮고(지상파는 전체 프로그램 중 화면해설방송 10%, 수화방송 5% 편성, 종편과 보도 채널은 화면해설방송 8%, 수화방송4% 편성), 이마저도 시청이 어려운 새벽 시간대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편성이 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주민지 씨는 “(농인) 가족들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수화통역사가 차지하는 화면비율이 너무 작아 시청을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현재 관공서나 병원, 은행 등에서는 수화통역 서비스가 거의 지원되지 않는다. 서울에 거주하는 농인의 경우 이런 장소에 방문할 때 각 자치구에 하나씩 마련된 수화통역센터에 소속된 수화통역사 혹은 농아인협회 소속의 수화통역사와 동행할 수 있긴 하지만, 턱없이 적은 수의 수화통역사들과 매번 일정을 조율하기란 쉽지 않다. 문화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주민지 씨는 “젊은 농인들은 영화, 박물관, 뮤지컬 등의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어도 자막서비스조차 잘 이뤄지지 않아 답답하다”며 서비스 개선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지난 8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어의 보급·발전과 농인의 교육·사회·문화 등 모든 생활 영역의 기반을 마련해 농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목적아래 제정됐다. 이에 따라 한국수화언어법에서는 농인들의 언어권을 위한 수어 서브시 지원 및 교육환경 구축을 규정하고, 한국수어의 발전을 위한 실태조사, 교원 양성 및 교재개발 등을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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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농아인협회 김정환 중랑구지부장이 한국수어로 "수화-언어-법"이라 하고 있다. 

ⓒ농아인협회 중랑구지부



  그러나 한국수화언어법에 대한 아쉬움과 염려도 존재한다. 서울시농아인협회 김정환 중랑구지부장은 “한국수어와 그에 기반한 농문화는 우리 사회의 소수·약자의 것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며 한국수화언어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국어기본법의 시행령 및 규칙과 같은 것, 그러면서도 국어기본법에서와 같이 심의와 언어보급 기능을 담당할 상설 기구가 명시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농인들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현실적인 법 시행 여부도 관건이다. 김유미 원장은 법이 사업 위주로 진행되기보다는 기초연구를 지원하고 농인 전문 인력, 농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등의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인들의 언어권은 곧 그들의 문화적 생존권이다. 한국수어가 쌓아 올리는 하나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의 주체에 대한 존중이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