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호 > 문화 >오감을 유지하자
‘위안부’, 예술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로 나아가다 서울시립미술관 ‘다시, 꽃을 보다: 전쟁 그리고 여성들’展
등록일 2017.06.23 20:41l최종 업데이트 2017.06.23 20:41l 김명주 기자(audwn0118@snu.ac.kr)

조회 수:141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 달간 진행된 ‘다시, 꽃을 보다: 전쟁 그리고 여성들’전은 전쟁에서의 여성 인권유린과 ‘위안부’를 주제로 한다. 하민수 기획자는 “작가들이 각자 자신의 언어로 전쟁과 여성문제를 표현하며 작업실 밖으로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작가들은 회화부터 설치미술, 영상, 공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고민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전시는 4개의 전시실들과 1개의 공연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나무벽과 높은 천장 등을 이용한 설치미술과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 등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했다.


  입구를 통과하면 먼저 신영성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프로펠러가 없거나 그나마도 작동하지 않는 등 기형적인 선풍기들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리저리 휘어지고 녹슨 선풍기들은 상처받고 파편화된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 옆에 놓여있는 두 소녀의 그림도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작가는 피눈물을 흘리는 두 소녀의 모습과 왜곡된 선풍기들을 통해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하민수의 작품도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여성을 묘사했다. 붉은 실로 휘감긴 나무벽 아래 네 여성의 그림이 걸려 있는데, 이들은 모두 죽음, 슬픔, 가난 등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한편 두 작가는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이 당사자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민수는 “초상 속 여성들은 우리의 누이이자 딸이고 어머니이며, 우리 자신이다”라며, 전쟁 속에서 여성이 약자일 수밖에 없었음을 강조했다. 신영성의 작품 역시 ‘위안부’에서 인간의 존엄성으로 주제를 확장한다. 그에 따르면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건 비단 ‘위안부’만이 아니며,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결국 ‘해체되고 일그러진 선풍기’와도 같다. 두 작가는 ‘위안부’ 피해자가 겪은 폭력을 단순히 묘사하고 재현하는 데서 나아가 여성인권과 인간 존엄성이라는 사회 보편의 문제를 표현했다.


KakaoTalk_20170623_181747311.png

▲신영성 작가의 선풍기 오브제 '코리안 드림'  ⓒ'다시, 꽃을 보다' 전시회 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어딘가 불편한 감정을 자아낸다. 유약하고 무력한 ‘소녀’의 이미지, ‘피눈물’로 대표되는 ‘한’의 정서는 ‘위안부’에 대한 기존의 시선을 답습하는 듯하다. 이제까지 ‘위안부’를 다뤘던 영화, 드라마와 전시는 ‘위안부’를 소극적인 존재로 그리고, 순백의 저고리 등으로 순수함·순결함을 강조하거나, 피해를 성적 착취에만 국한시켜왔다. 이러한 시선은 ‘위안부’ 피해생존자의 다양한 면모를 은폐한다. ‘위안부’ 피해생존자도 주체적인 존재이며, 현재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 ‘위안부’를 다시 ‘소녀’로만 묘사하는 것은 ‘위안부’ 피해생존자의 강인한 모습을 포착하지 못하게 한다.


  한편 신정원의 작품은 앞선 작품과는 다르게 ‘위안부’ 피해생존자를 표현했다. 신정원의 애니메이션 영상 ‘할머니, 걸어가다’에 나오는 ‘위안부’ 피해생존자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재현돼있다. 흔히 ‘소녀상’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위안부’ 이미지와는 달리, 영상 속에는 허리가 굽고 가슴이 축 처진, 노색이 완연한 여성이 계속해 걸어가고 있다. 사회의 미적 기준과는 거리 있어 보이는 모습이다. 여성은 폭격 속에서도, 성희롱을 퍼붓는 일본군을 가로지르면서도, 오물과 달걀이 날아오는 와중에도 계속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영상 속 ‘위안부’ 피해생존자는 ‘아름다운 얼굴’로 눈물만 흘리지 않는다.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계속해 발걸음을 내딛는 여성의 모습은 현재 ‘위안부’ 피해생존자의 당당한 행보를 보여주는 듯하다. 실제로 현실의 ‘위안부’ 피해생존자는 국가와 사회를 상대로 끊임없이 투쟁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수요집회)’에 참여하고, 글과 그림으로 일본군의 폭력을 재현해 알리며, 다른 정치적 약자들과 꾸준히 연대해나가고 있다.


  신정원과 유사하게, 황선영은 현재 ‘위안부’ 문제를 돌파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그렸다. 여기에는 피해 당시를 증언했던 김학순 할머니, 일본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온 김샘 평화나비네트워크 전 대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요집회와 함께 해온 김복동 할머니 등의 얼굴이 있다. 황선영은 ‘위안부’가 과거의 무력하고 수동적인 존재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허은영 또한 ‘위안부’의 상흔에만 주목하기를 거부하며, 전시실 두 벽에 알 모양의 조형물들을 가득 매달아 놓은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하민수 기획자는 이에 대해 “알이 가진 부활의 이미지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은영은 알에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하듯, ‘위안부’ 피해자가 과거에 겪었던 상처를 회복하고 강인한 주체로 소생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KakaoTalk_20170623_181744132.png

▲황선영 작가의 '이젠, 우리들의 몫이다. 우리의 책임이다.' ⓒ'다시, 꽃을 보다' 전시회 도록



  전시는 ‘위안부’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했다. 피해자들이 ‘위안소’로 끌려갔을 당시의 고통을 재현하고 기억하는 작품도, ‘위안부’ 문제를 통해 현대사회를 바라보고자 하는 작품도, ‘위안부’ 피해생존자의 강인함을 표현하고자 한 작품도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를 그저 불쌍하고 비통한 존재로 바라봤던 작품들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주체적인 모습과 다양한 삶의 방식이 생략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는 ‘위안부’를 우리 주변의 ‘사람’으로 끌어올리고자 시도했다. 신정원이 말하듯, “‘위안부’ 할머니는 피해자에서 증인으로, 증인에서 혁명가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이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 당당한 행진에 주목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