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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게이머, '여필패'와 '여왕벌' 사이 성적 대상화와 성차별 … 성평등 부족한 게임문화
등록일 2017.06.23 23:20l최종 업데이트 2017.09.01 18:42l 송재인 기자(gooa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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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PG는 해봤어?” “공략대로 할 수 있겠어?” 20년 차 여성 게이머 지예슬(동양사 13) 씨가 남성 게이머들로부터 듣는 질문이다. 지 씨는 "MMORPG(최대 수 천 명의 게이머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같은 공간에서 즐기는 게임)나 MORPG(5명 안팎의 게이머들이 방을 만들어 스테이지를 돌파하는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같은 게임을 좋아하지만, 남성 게이머들은 내가 이런 게임을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한다”라고 토로했다. 지 씨는 자신이 즐기는 게임들을 밝힐 때마다 ‘쟤는 여자가 아니야’라는 말을 듣곤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만10세~65세 인구 3,000명 중 67.9%가 게임을 한다고 답했을 정도로 게임은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여성 게이머들은 주류 게임문화가 남성중심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성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성별을 질문 받거나, 여성임이 밝혀질 경우 성희롱·성차별을 경험하는 등 남성 게이머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게임의 캐릭터나 서사의 대다수는 남성 게이머를 기준으로 구상된다. 여성 이용자를 ‘게이머’가 아니라 ‘여성 게이머’로만 받아들이는 게임문화의 실정을 알아봤다.



불편하지 않은 게임, 캐릭터는 없을까?

  

  여성 게이머는 우선 게임 종류와 캐릭터를 선택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 게이머가 불쾌하게 느끼지 않으면서도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설정의 게임과 캐릭터는 드물기 때문이다. 지예슬 씨는 “게임 캐릭터의 외모나 프로필에서 성적 대상화는 언제나 존재한다”라며 “여성 캐릭터는 주체적인 성격을 가졌을지라도 항상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만 묘사된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8월 인기 FPS 게임(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슈팅게임) ‘서든어택2’는 여성 캐릭터의 선정성으로 많은 지탄을 받았다. 게임의 서사와는 별개로 여성 캐릭터 ‘미야’와 ‘김지윤’의 신체 부위를 지나치게 부각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했다는 점이 화근이었다. 해당 캐릭터들은 게임 속 설정인 ‘전장의 군인’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신체부위가 과도하게 노출된 의상을 입고 있었다. 또한 총에 맞아 쓰러질 때 특정 신체부위가 확대돼 비춰지곤 했다. 이에 게이머들은 서든어택2의 설정이 성폭력을 연상시킨다며 강력히 항의했고, 서든어택2는 해당 캐릭터를 삭제했다. 이후 서든어택2는 출시 23일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RPG 게임(게이머가 게임 속 캐릭터가 되는 역할수행게임)도 여성 캐릭터를 성적으로 묘사해 비난을 받았다. ‘데스티니 차일드’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면서까지 여성 캐릭터의 특정 신체부위가 흔들리는 것을 세밀하게 묘사해 논란을 샀다. ‘마비노기 영웅전’의 여성캐릭터 ‘델리아’와 ‘린’은 춤·모션 입력 시 봉춤을 추거나 공격력을 키우기 위해 옷을 벗기도 한다. 지예슬 씨가 마비노기 영웅전을 할 때 델리아나 린이 아니라 여성 캐릭터 ‘피오나’를 주로 선택한 이유도 선정적으로 표현된 캐릭터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 씨에 따르면 2010년 당시 중장비로 무장해 신체부위가 부각되지 않는 여성 캐릭터는 피오나 외에 극히 드물었다. 더불어 성소수자 혐오도 문제가 됐다. 지난해 4월 MORPG 게임 ‘클로저스’가 만우절 이벤트로 남성 캐릭터를 위한 메이드복을 출시한 것에 대해 지예슬 씨는 “소위 ‘남성적’이지 않은 모습을 희화화하려 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많은 게이머들이 메이드복을 입은 남성 캐릭터를 캡처해 ‘게이룩’이라고 칭하는 등 성소수자혐오 표현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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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대상화로 논란이 된 '서든어택2'의 캐릭터 김지윤과 '마비노기 영웅전'의 캐릭터 린 ⓒJTBC뉴스, 루리웹

  

  한국콘텐츠진흥원 장민지 박사는 주류 게임의 캐릭터와 설정에는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의 욕망만이 반영되고, 여성과 성소수자는 배제되거나 대상화된다고 지적했다. 장 박사는 “영상 문화는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 시선을 내재화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경향이 크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장 박사는 “이러한 가부장적 시선은 게임에서 유독 두드러진다”라며 “게임의 주 내용이 경쟁, 승리, 갈등, 폭력성 등 소위 ‘남성성’으로 여겨지는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초기 게임 개발자들, 프로그래머들과 게임 선수들 중 대다수가 남성이었던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는 “게임의 가부장적 측면에 대한 비판이나 자성이 이뤄지지 않은 채 게임산업이 성장하며 그러한 문화가 고착화됐다”라고 강조했다.

  

  남성 게이머가 많기 때문에 게임 제작사는 수익을 위해 남성 중심으로 게임 콘텐츠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장민지 박사는 “온라인 게임의 경우 성별에 따른 이용도 차이가 거의 없다”라며 “경제적 이유를 내세우기 전에 세밀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단순히 여성 게이머의 수가 적다기보다, 여성 게이머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해 여성들이 게임을 찾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어 장 박사는 게임 개발 시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 뿐 아니라 게이머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고려할 때 이용자의 규모가 늘어나 산업이 성장할 수있다고 주장했다. 지예슬 씨 또한 “콘텐츠 제작자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할 때 오히려 수익이 커질 것”이라며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곧 게으른 사고이며 도태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닉네임이 ‘여자’ 같나? 보이스는 켜도 될까?

  

  게임 내 캐릭터와 설정이 개선되더라도 여성 게이머들은 여전히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FPS 게임 ‘오버워치’는 다양한 정체성의 캐릭터를 소개하며 주목을 받았다. ‘아나’ 캐릭터는 유색인종인 여성 노인으로 한 쪽 눈이 실명됐고, ‘오리사’ 캐릭터는 외적인 모습으로 생물학적 성별이 쉽게 구분되지 않는 ‘중성형’ 캐릭터다. 작년 겨울 블리자드에서 발표한 성탄 기념 만화에 따르면 ‘트레이서’ 캐릭터는 레즈비언이다. ‘오버워치’의 비주얼 디렉터 제프 카플란은 2월 23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DICE 서밋 2017’에서 “오버워치는 여성과 성소수자를 포함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이들을 ‘보통’의 영역으로 끌어올 것”이라고 밝혔다.


스크린샷 2017-06-23 23.30.21.png다양한 정체성의 캐릭터를 도입한 오버워치의 캐릭터 아나, 오리사, 트레이서 ⓒ오버워치

  

  그러나 다양한 정체성의 캐릭터를 도입한 오버워치도 게이머들 간 성차별·성폭력을 막을 수는 없었다. 청년참여연대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남녀를 포함한 전체 응답자 4,479명 중 96.2%가 오버워치 내 성차별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고,  직접 성차별을 경험한 이는 71%에 달했다. 오버워치 내 성차별이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는 ‘팀보이스(음성대화)’를 통해 게이머의 생물학적 성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버워치는 팀원들이 서로 협력해 상대 팀을 공략하는 게임이고, 따라서 팀원들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팀보이스 기능이 중요하다. 그러나 게이머들은 팀보이스로 여성 게이머의 성별이 드러나면 ‘계집X’이라고 칭하거나 ‘애교를 부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팀보이스 기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닉네임을 통해 여성 게이머의 성별이 노출되기도 한다. 여성 게이머 권효주(언론·졸업) 씨는 “팀보이스를 쓰지 않지만 실명을 닉네임으로 썼을 때 성차별적 발언을 많이 들었다”라고 토로했다. 권 씨는 소위 ‘온라인 스토킹’을 당했다. 그는 “여성임이 밝혀지면 남성 게이머가 무조건 친구추가를 하고 게임을 할 때마다 관전(참여하지 않은 채 게임을 보는 것)을 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계속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고 게임이 끝날 때마다 연락이 와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또한 성 고정관념에 기초해 여성 게이머에게 특정 캐릭터를 강요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다른 ‘공격형’ 캐릭터를 지원하고 에너지를 채워주는 캐릭터 ‘힐러’군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권 씨는 “탱커(게임에서 팀원을 대신해 적의 공격을 받아주는 캐릭터) 직업군을 주로 선택한 여성 게이머에게도 힐러 역할을 강요할 때가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한편 여성 게이머들은 성차별·성폭력이 오버워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예슬 씨는 “실제 성별 여부와 상관없이 게임을 못하면 ‘년’이라고 욕을 듣지만, 잘하면 ‘형님’이라고 추앙받는다”라며 그것이 “게임 내 오래된 문화”라고 강조했다. 게이머 간 통용되는 용어들은 이러한 문화를 반영한다. 여자가 팀 내에 있으면 반드시 패한다는 의미의 ‘여필패’는 ‘여성은 게임을 못한다’, ‘여자치고는 게임을 잘한다’는 편견과 맞닿아있다. 반대로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남성 게이머들과 파티를 맺어 게임을 진행하는 여성 게이머를 일컫는 ‘여왕벌’도 있다. 권효주 씨는 “티어(경쟁전 점수에 따른 등급)가 높은데 여성으로 밝혀지면 여왕벌이 아니냐고 묻는다”라고 설명했다. 경쟁전의 경우 팀원 한 명에게만 혜택이 집중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게이머들은 여성 게이머가 점수가 높으면 스스로의 실력인지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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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게이머들은 팀보이스를 통해 성별이 드러날 경우 성차별 성희롱 언사를 듣거나 게임 실력을 의심받는다. ⓒ트위터 계정 '옵치하는 여자들' 


  이처럼 게임 내 다양한 성차별을 경험한 여성들은 중성적인 닉네임이나 캐릭터를 골라 자신의 성별을 숨기곤 한다. 권효주 씨는 결국 실명으로 된 닉네임을 포기하고, 다른 게이머가 성별을 알 수 없도록 닉네임을 바꿨다. 불리하더라도 팀보이스 사용을 포기하거나 심한 경우 게임을 그만두기도 한다. 지예슬 씨는 “성차별·성희롱적 발언을 들을까 걱정돼 지인들과 게임할 때에만 팀보이스를 사용한다”라고 털어놓았다. 여성 게이머는 남성인 척 하며 편하게 게임을 즐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신의 취미를 포기해야 한다.



게임 내 남성중심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러나야

  

  최근 여성 게이머들은 게임 내 남성중심성을 적극적으로 규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경 페미니스트 게이머들은 게임 내 성평등을 외치며 ‘전국디바협회(전디협)’을 결성했다. 전디협의 상징 ‘디바’는 오버워치의 천재 여성 프로게이머이자 전쟁 영웅 캐릭터이며, 오로지 게임 실력만으로 전장의 영웅이 됐다. 김지영 전디협 대표는 “지금 우리가 여기서 사회를 바꿔나가야 (오버워치의 배경인) 2060년 디바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디바를 전디협의 상징으로 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게임 내 성폭력은 정확한 용어로 명명되지 않았을 때에도 많은 이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라며 “과거에는 적당한 표현이 없어 모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전디협은 게임 내 성차별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거나 여성 및 성소수자 게이머들이 편하게 모여 게임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게임의 여성혐오 실태를 알리기 위한 ‘헬페미게이머들을 위한 굿즈’도 제작했다. 굿즈 중 한 스티커에는 ‘여자치고가 아니라 그^^냥 잘하는 거야’라고 적혀 있다. 전디협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의 성평등을 위해 여성주의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성평등 집회에 지속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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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디바협회'의 스티커 굿즈 ⓒ전국디바협회


  장민지 박사는 “게임 문화의 남성중심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가시화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장 박사는 여성 게이머들이 우선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사회문화적 환경이 개선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는 “현재 한국은 여성 게이머가 자유롭게 게임 내 성차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며 “환경 개선을 위해서 게임 개발자 중 여성 비율이 높아져야 하고, 학계에서도 관련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