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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화장품은 어디서 왔을까 동물실험 안 하는 제품으로 살아가기
등록일 2017.12.03 21:18l최종 업데이트 2017.12.07 17:44l 김가람 기자(1004g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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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2월부터 시행된 화장품법 개정안은 동물실험을 거쳐 만든 모든 화장품의 국내 유통 및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동물실험을 통해 제작된 원료를 사용하는 경우와 수입 화장품에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 하지만 최대 100만 원에 그친 과태료에 실효성 문제가 지적됐을 뿐만 아니라, 수출 시 해당 국가의 법에 따라 동물실험을 일부 허용한 예외 조항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수입화장품에 동물실험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중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회사는 동물실험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 제조되었다는 의미의 ‘크루얼티 프리(cruelty-free)’는 주로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에 적용되는 말이다. 샴푸, 치약, 세제부터 면도기와 콘돔까지 생활용품 전반에 실시되는 동물실험에서 연간 1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 곁에 동물 없이 만들어진 제품은 어디 있을까. 잔인함(cruelty) 없는 제품을 찾아서, 2주간 크루얼티 프리 제품만을 사용해 생활해봤다.


집에 있는 크루얼티 프리 제품, 겨우 한 개? 

  체험을 위해 필요한 크루얼티 프리 제품을 구매하기 전, 먼저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찾아봤다. 제품명을 일일이 검색해 동물실험 여부를 확인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리핑버니(Leaping Bunny) 마크’를 이용했다. 크루얼티 프리 제품 뒷면에 표시된 이 토끼 그림은 제품이 동물실험에 반대하며, 중국에 수출하지 않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유일한 국제 공용 표식이다. 모든 제품의 뒷면을 확인해 본 결과, 기자가 집 안에서 발견한 유일한 리핑버니 마크는 ‘러쉬(LUSH)’에서 만든 바디워시 뿐이었다. 당장 크루얼티 프리 제품사용을 실천한다면 몸만 겨우 씻을 수 있을 뿐, 양치질을 하거나 로션을 바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동물실험을 실시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유독 선호한 것도 아닌데, 왜 집 안에서 크루얼티 프리 제품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걸까.


(1)리핑버니마크.jpg

크루얼티 프리 제품임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순서대로 리핑버니마크,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의 크루얼티 프리 로고, 호주동물보호단체 CCF(Choose Cruelty Free)의 토끼 로고이다. ⓒ Cruelty-free International, PETA, CCF Accreditation



  무엇보다 거대 기업이 여러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업계구조의 영향이 크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등의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는 대기업으로 국내 화장품 시장 점유율이 32.5%에 달한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화장품 브랜드로 보이지만, 사실상 한 대기업의 제품으로 봐야한다는 의미다. 샴푸, 비누, 치약, 섬유유연제, 세탁세제, 주방세제 등의 생활용품 6대 부문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LG생활건강’의 제품도 개별 상표의 이름만 다를 뿐 기자의 집 안 곳곳에 있었다. 문제는 이런 대기업이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중국수출에 참여해 동물실험에 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외국 브랜드도 사정은 비슷하다. ‘질레트’(면도용품), ‘오랄비’(칫솔, 치약), ‘페브리즈’(탈취제) 등을 소유하고 있는 ‘피앤지(P&G)’, ‘존슨즈베이비’(로션), ‘아큐브’(콘택트렌즈)가 속한 ‘존슨앤드존슨(Jonson&Jonson)’, ‘키엘’(화장품), ‘입생로랑’(화장품) 등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들이 포진한 ‘로레알(Lo’leal)’, ‘맥(mac)’, ‘바비브라운(Bobbi Brown)’ 등을 운영하는 ‘에스티로더(Estee Lauder)’가 대표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 제품을 구매해봤거나, 적어도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브랜드들이다. 이중 특정 브랜드가 동물실험을 직접 진행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소유하고 있는 모회사 차원에서는 동물실험을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는 제품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동물실험에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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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프리 제품 사용하기 전과 후의 화장대 변화.



크루얼티 프리 제품과 숨바꼭질… 구매과정에서의 어려움

  우선 크루얼티 프리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여러 브랜드 생활용품을 파는 대형 드럭스토어로 나섰다. 한 번에 모든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바꾸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당장 필요한 필수품만 먼저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제품 뒷면 토끼그림의 유무를 찾거나,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가 제공하는 ‘카라의 착한회사 리스트’를 참고해 필요한 샴푸, 클렌징폼, 보습제품을 한 가지씩 구매했다. 아쉽게도 칫솔과 치약은 동물실험을 진행하는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제품밖에 없었다. 이틀 뒤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크루얼티 프리 칫솔과 치약이 도착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크루얼티 프리 제품 사용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생필품은 모두 구비했지만, 주어진 제품으로만 살기에는 제약이 컸다. 평소 화장을 즐겨하는 기자에게 맨 얼굴 학교생활은 어색함이 따랐다. 사연을 모르는 친구들이 아파 보인다며 걱정할 지경에까지 이르자, 기자는 대체할 수 있는 색조화장품을 찾아보게 됐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로레알 등의 브랜드가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국내 매장에서 크루얼티 프리 색조화장품을 찾는 건 어려웠다. 결국 외국의 시민단체인 ‘페타(PETA: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와 ‘크루얼티프리인터네셔널(Cruelty Free International)’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용가능한 제품을 일일이 확인하며 해외 사이트에서 직구를 감행했다. 직구한 물건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크루얼티 프리 화장품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에게 한두 개씩 제품을 빌려 사용했다. 새로운 화장품을 빌릴 때마다 화장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는 웃지 못 할 경험도 했다. 

  크루얼티 프리 제품을 구매할 때 브랜드의 중국진출 여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애를 먹는 일도 종종 있었다. 카라가 제공하는 크루얼티 프리 리스트에는 국내에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지만 중국수출은 하고 있는 브랜드까지 함께 적혀있었다. 이는 브랜드가 사실상 동물실험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결국 직접 브랜드의 중국수출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마음에 놓였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명확히 알 수 없으면, 직접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거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중국 수출 문의를 남겼다. 회사 측에서 중국수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크루얼티 프리 제품을 사용 중인 블로거 이현지 씨(가명)(닉네임 이멜리사)는 “작년까지 중국수출을 하지 않다가 올해부터 진출한 회사가 최신정보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 하지 않았다”며 인터넷 검색만으로 크루얼티 프리를 파악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3)카라의착한회사리스트(2014).png

카라의 착한회사 리스트 2014년 형. 현재는 2017년 9월 27일자로 업데이트 된 리스트가 올라와있다. ⓒ카라



  또한 같은 대기업 내 브랜드끼리 동물실험 실시여부가 다를 경우, 실시하지 않는 브랜드의 제품을 크루얼티 프리로 볼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대표적인 예는 ‘더바디샵(The Body Shop)’이다. 더바디샵은 모든 제품에 리핑버니 마크를 붙이고, 동물실험 반대 캠페인도 대대적으로 진행한 대표적인 크루얼티 프리 브랜드지만, 이를 소유하고 있는 로레알은 동물실험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다. 만약 브랜드와 모회사가 수익을 함께 공유한다면, 빈번한 동물실험으로 인해 제품 보이콧 논란이 있었던 로레알과 크루얼티 프리 운동에 앞장서는 더바디샵이 완전히 별개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LG생활건강의 브랜드 ‘비욘드(Beyond)’는 동물실험 반대를 전면에 내세운 브랜드다. 비록 비욘드가 중국진출조차 포기할 정도로 크루얼티 프리의 기준을 철저히 충족한다 하더라도, 중국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LG생활건강의 여타 브랜드들과 분리해 판단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동물실험 없는 안전, 보장할 수 있나  

 직구한 제품이 도착하고, 가지고 있는 크루얼티 프리 제품의 수가 많아지자 생활은 훨씬 수월해졌다.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의 폭은 좁았지만 머리를 감거나 양치질을 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은 모두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콘택트렌즈만은 대체하기 힘들었다. 국내 콘택트렌즈 시장의 87%를 점유하는 존슨앤드존슨, ‘시바비젼’, ‘쿠퍼비젼’, ‘바슈롬’의 4대 기업이 모두 동물실험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렌즈와 렌즈용액의 동물실험을 의무화하고 있어,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 제품은 모두 사용할 수 없었다. 크루얼티 프리 콘텍트렌즈를 판매하는 영국 기업이 있었지만,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명에 쉽사리 손이 가지는 않았다. 눈에 직접적으로 닿는 물품은 건강과 더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 확실한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결국 렌즈착용을 포기한 기자는 2주간 안경을 쓰거나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콘텍트렌즈 뿐만 아니라 기저귀나 생리대, 여성청결제, 구강청결제, 콘돔 등도 크루얼티 프리 제품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한 번쯤 들어본 유명한 제품은 대부분 동물실험을 통해 무해함을 검증한 후에야 생산되는 대기업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동물실험 없이도 제품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카라는 “이미 화장품에 한해서만 40개 이상의 대체실험이 유효하다”며 “수술 후 남는 세포나 조직, 장기 혹은 인공 피부 모델을 활용해 충분히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쉬코리아(LUSH Korea)’는 과일이나 허브같이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된 재료만을 사용하거나 대체시험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한다. 러쉬코리아 박원정 본부장은 동물대체실험에 기여한 연구진에게 ‘러쉬프라이즈'를 수여한다며, “러쉬프라이즈 수상팀의 대체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카라는 동물실험이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판단하는 절대적 지표가 아니라고 말했다. 카라는 “화학물질에 따른 신체반응이 인간과 ’비인간동물들‘ 간에 다를 가능성이 크다”며 동물실험은 실익 없는 희생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식품의약국에 따르면 인간이 가진 질병 가운데 동물과 공유하는 질병은 1.16%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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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쉬는 매년 동물실험 근절과 대체실험 활성화에 기여한 연구자를 대상으로 '러쉬 프라이즈'를 시상한다. ⓒ러쉬코리아



힘들어도 다시, 크루얼티 프리

  크루얼티 프리 제품만 사용한 2주가 지나고 다시 동물실험을 거친 렌즈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크루얼티 프리 제품이 화장대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눈앞에 두고 크루얼티 프리 화장품만 사용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동안 사놓은 제품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대기업 제품의 화려한 디자인과 기능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주간의 체험기를 끝내고도 여전히 새로운 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크루얼티 프리 여부를 확인하게 됐다. 눈앞의 제품이 어떤 존재의 희생과 착취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면 쉽사리 장바구니에 넣을 수 없었다. 집에 있는 화장품을 모두 버리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는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을 구매하지 않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크루얼티 프리는 소비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뜻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화장대 앞에서, 세면대 앞에서, 싱크대 앞에서, ‘자유로운 선택’과 ‘존재의 착취’ 사이에 고민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의식 변화에 발맞춰 동물실험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 카라는 ▲크루얼티 프리 제품의 공인인증 마크 도입 ▲대체실험 기술 마련 지원 등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이 ‘식용 개농장’에서 사육된 개를 실습에 사용한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동물실험에 공급되는 동물의 관리와 복지도 주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카라는 등록되지 않은 사업자에게 실험동물을 공급받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카라는 본 개정안에 “실험 후 건강을 회복한 동물이 일반 가정에 분양·기증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며 제도개선의 기대감을 내비쳤다. 인간중심의 생활에서 벗어나 크루얼티 프리의 생명윤리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시민과 정부, 기업의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