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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른 나도 괜찮아 마티 녹슨 감독의 ‘투 더 본(2017)’
등록일 2017.12.06 22:05l최종 업데이트 2017.12.07 12:27l 배인환 기자(iabae12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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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더 본(To the Bone)' 영화 포스터 @IMDb



  거식증과 폭식증은 대표적인 섭식장애다. 거식증은 음식을 거부하거나 구토하며 체중 감소에 집착하는 증상을, 폭식증은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고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구토하거나 설사제를 먹는 증상을 말한다. 거식증과 폭식증은 별개로, 혹은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의료원에 따르면 2015년 섭식장애로 치료를 받은 환자는 1만 2,468명에 달했고, 지금도 온라인에는 스스로를 거식증이나 폭식증 환자로 의심하는 사람들의 질문이 가득하다. 이렇듯 섭식장애는 사회에 광범위하게 나타나지만, 적극적으로 얘기되지는 않는다. 특히 거식증은 간혹 미디어에서 다뤄지더라도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같이 모호하게 묘사될 뿐이다. ‘투 더 본(To the Bone)’은 그 ’흔한 병‘인 거식증을, 흔치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하며, 영화에는 거식증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폭력적인 시선이 여실히 드러난다.


“다 먹어, 엘런!”

  엘런은 20살의 젊은 예술가다. 그리고 그는 거식증 환자다. 그는 세 번째 입원치료를 거부하고 아빠와 새엄마가 사는 집으로 돌아온다. 엘런은 혼자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저녁 식사의 칼로리를 계산하며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세 번의 치료에도 변하지 않는 엘런에 화가 난 새엄마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 그리고 엘런의 옷을 벗겨 사진을 찍고, 엘런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예뻐?”라고 쏘아붙인다. 퇴원 후 오랜만에 만난 친엄마도 반응이 다르지 않다. 그는 엘런을 보자마자 왜 스스로에게 이런 짓을 하냐며 묻고, “해골이 됐네”라고 읊조리며 눈물짓는다. 엘런의 주변 사람들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엘런에게 폭력적인 말들을 던진다.

  엘런은 새엄마의 마지막 권유로 베컴 의사를 만난다. 그는 엘런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가 치료하는 섭식장애 환자 합숙소에 입주하라고 말한다. 합숙소에는 6명의 섭식장애 환자가 살고 있다. 합숙소의 거식증 환자들 역시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임신 중인 메건은 자꾸만 증가하는 체중을 무서워하고, 펄은 영양제의 칼로리를 걱정한다. 밤에 몰래 구토하는 애나도 있다. 엘런 역시 팔뚝이 두 손가락으로 잡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강박증이 있어, 남몰래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굶긴다. 굶는 이유 역시 다양하다. 루크는 무용수 인생의 정점에서 커리어에 집착하다 거식증에 걸렸다. 펄은 살을 빼는 행위 자체에 중독된 상태다. 스스로 먹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섭식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영화는 섭식장애를 단순히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으로 다루지 않는다. 

  엘런이 거식증을 앓게 된 원인 또한 복잡하다. 망가진 가족 관계와 과거의 트라우마는 엘런의 거식증을 심화시켰다. 그가 13살일 때, 친엄마 주디는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했고, 부모님은 이혼했다. 이후 엘런을 둘러싼 아빠, 친엄마, 새엄마 모두 엘런의 거식증을 외면한다. 아빠는 엘런의 거식증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엄마는 거식증을 치료 대상으로만 치부하며, 주디는 홀로 딸의 거식증을 감당하느라 지쳤다. 이에 더해 엘런의 그림을 좋아하던 소녀가 자살한 사건으로 엘런은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이제 엘런은 “왜 먹지 않냐”는 질문에도 “그만둘 수가 없다. 이제 이유도 모르겠다”고 답할 뿐이다. 각자 편한 대로 자신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에 엘런도 지쳤다. 자신을 ‘문제화’하고, 자신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내리꽂는 가족들에게 엘런은 말한다. “제가 사람이 아니라 골칫덩어리였네요.” 


2.jpg멍한 눈으로 체중검사를 받는 엘런의 모습 @IMDb


엘런에서 일라이로, 완벽하지 않은 일라이로

  거식증 환자 루크는 오래전부터 블로그를 통해 올라오는 엘런의 그림을 좋아했고, 엘런이 합숙소에 입주하자 그를 알아보고 친해지려 한다. 엘런은 6개월의 치료로 거식증을 꽤나 극복한 루크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그에게 어떻게 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등을 묻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베컴 의사는 이러한 엘런의 변화를 발견하고, 엘런에게 ‘일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을 ‘엘런’에서 ‘일라이’로 바꾸는 것만큼이나,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일도 쉽게 이뤄낼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일라이가 된 엘런은 초콜릿이 가득한 음식을 먹으며 새로운 삶의 의지를 다진다. 하지만 일라이의 다짐은 오래가지 못한다. 루크가 일라이의 그림을 통해 일라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말을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이에 일라이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일라이의 그림을 좋아하던 소녀 역시 일라이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루크의 말은 죽은 소녀에 대한 아픈 기억을 불러일으켰고, 또다시 상처받은 일라이는 루크를 밀어낸다.

  베컴 의사는 ‘나약한 자신을 어루만질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는 시 구절을 들어 일라이에게 세상의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해결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일라이는 치료를 불신하고 있고, 그의 마음은 불안의 바닥에 다다라 있다.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치료를 거부하며 일라이는 애리조나에 있는 친엄마 주디를 찾아간다. 주디는 과거 산후우울증으로 일라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솔직한 이야기를 시작한 주디는 그간 일라이의 거식증을 없애버려야 할 대상으로만 여겼다며 일라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주디는 눈물을 흘리며 “네가 자살한다면 그것까지도 다 이해해”라고 말하고, 일라이의 선택과 삶을 존중한다는 말을 처음 꺼낸다. 엄마는 ‘거식증을 앓는 골칫덩어리 딸’이 아닌, ‘일라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날 밤 일라이는 환상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타인의 눈으로 본 자신의 나체는 마르고, 작고, 나약할 뿐이다. 그리고 환상에서 깨어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일라이는 뜨거운 햇살 아래 누워 속삭인다. “살아있잖아.” 다행이라는 듯 미소 짓는 일라이에게 타인의 시선은 전혀 중요치 않다. 베컴 의사가 알려준 시의 구절처럼, 일라이는 나약한 자신을 어루만질 용기를 얻었다. 변해나가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일라이는 다시 집에 문을 두드리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미소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