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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남녀 단둘이 있지 말라고요? 다양성 부족하고 피상적인 성교육의 현주소
등록일 2018.03.04 01:41l최종 업데이트 2018.03.04 02:13l 이선아 기자(l2jenv@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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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와 49.9%. 2017년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청소년 성관계 경험률과 피임 실천율이다. 성관계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절반만 피임하고 있는 셈이다. 피임방법 중 체외사정을 하는 비율이 58%, 자연피임을 하는 비율이 17.7%라는 연구결과(산부인과학회, 2014)를 고려하면,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피임하는 청소년의 비율은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피임교육을 비롯한 현행 성교육에 한계를 지적하고 성교육의 적극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행 성교육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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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청소년 성관계 시 피임율 ⓒ질병관리본부


부족한 성교육 시수, 비효율적인 전달방식


  현행 성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시수다. 현행 성교육 시수는 연간 15차시로 규정돼있지만, 실제 성교육 시행시간은 학교의 자체 교육과정이나 실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부산의 모 초등학교 보건교사 A씨는 “원칙적으로는 성교육을 연 15시간 진행해야 하지만, 수업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며 “보건실을 지켜줄 사람이 없어 응급 사고 대응의 어려움이나 사고 책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성교육 시수에 포함되지만 성교육 효과가 적은 이론에만 치중해 성교육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기술·가정이나 생물, 윤리 과목 등 교과목 수업 중 이뤄지는 성교육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성교육은 남녀 신체구조 차이와 태아형성 단계 같은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분당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성은 씨는 “(수업이) 시험을 위한 암기의 느낌이 강했다”고 교육 실효성에 의문을 던졌다.


  성교육을 위해 초빙되는 전문 외부강사의 교육 또한 실질적 교육 효과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보통 수백 명의 학생들을 강당에 모아두고 진행하거나, 방송을 통해 각 교실에 전달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정보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며 민감한 주제에 대해 깊이 토론할 수도 없다. 서울 모 고등학교 학생 B씨는 “자율 시간에 방송과 피피티를 이용해 강의를 하다 보니 자습을 하거나 잠을 자는 친구들도 꽤 많았다”며 성교육 환경의 아쉬움을 전했다. 대학생 C씨도 “고등학교 때 강당에서 콘돔 사용법을 배웠지만 멀리서 보는 것에 그쳤고, 학생들이 많아 실습을 해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실성과 다양성 부족한 교육내용


  성교육 시수, 전달 방식과 같은 형식 뿐 아니라 성교육 내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현행 성교육의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 피상적이고, 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성차별적이라는 것이다. 2015년 교육부가 발표한 ‘국가수준 성교육 표준안’은 성교육에서 ‘야동’, ‘자위’와 같은 단어 사용을 자제할 것 등 성을 무조건 터부시하는 내용을 권고해 논란을 샀다. 나아가 성범죄 예방을 위해 ‘(남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여행 가지 않는다’ 등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단편적인 해결방식을 내놓아 비판을 받았다. 성 소수자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어 성적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아하센터)에 따르면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청소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표준안 내용은 지정성별·이성애자를 전제로 구성돼있어 성 소수자 청소년들이 배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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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준성교육표준안’에서는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이성친구와 단둘이 있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내용을 일부 수정했지만, 일각에서는 표준안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가이드라인을 새로 구성하고, 교육부 내에 성평등 정책 관련 부서를 재설치하도록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박현이 아하센터 기획부장은 교육부의 표준안이 “기존에 성교육을 해왔던 인권단체와 성교육단체가 아닌 교양학부 및 간호학과 교수 위주로 기획됐다”며 비전문적이고 편향적인 내용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기획배경 때문에 “장애·한부모가정·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초등학생에게 청첩장 쓰기 활동을 시키는 등 이성애 중심적”인 표준안 내용이 나왔고, 이것이 소수자 차별을 조장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피임법, 성폭력 대처법 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보가 주어지지 않아 청소년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성교육의 비현실성과 다양성 부족은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성(性)을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닿아있다. 실제로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연애 시 벌점 부여 등 연애를 금지하고 있어 청소년들이 연애관계나 스킨십에 죄의식을 가질 수 있다. 콘돔이 미성년자 판매 금지 물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변 시선 때문에 콘돔 구매조차 어렵다. 이처럼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 성교육 내용 또한 금욕·순결 중심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국가수준 성교육 표준안’은 청소년기의 성 욕구를 성병, 학업 중단, 성폭력 등 사회 문제로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자위가 음경 찰과상이나 성기 변형을 초래하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교육,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인정해야


  현행 성교육의 문제가 지적되면서 변화의 움직임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아하센터’에서는 소그룹 토론을 통해 초·중·고등학생 맞춤형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실생활과 밀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초등학생 고학년의 경우, 아이들은 서로 성관계, 스킨십, 자위 같은 단어에 대해 자유롭게 의논한다. ‘월경은 여자가 아이를 낳기 위해 준비하는 것’, ‘자위는 성관계를 못해서 하는 것’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강사가 ‘월경은 내 몸이 건강하게 순환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 ‘자위는 내 욕구와 몸을 탐색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안전한 공간에서 손을 깨끗이 씻고 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또 면 월경대 세탁법과 월경컵 사용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냉이 나오거나 몽정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아하센터 정수현 실무자는 “임신·출산뿐 아니라, 성인이 돼서 부딪히는 모든 내용이 성교육”이라며,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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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센터’에서 초등학생들은 월경이 임신·출산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몸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임을 배운다.



  성교육 내용뿐만 아니라 공공정책도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청소년기의 충분한 정보 습득이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공공보건 수준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해 서울시는 ‘인권정책 기본 계획’ 초안에서 학교 및 보건소에 청소년을 위한 콘돔을 비치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이브콘돔’의 박진아 대표는 “청소년의 피임 접근성을 공공보건 차원에서 해석”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개인적 영역으로 여겨졌던 청소년 성 문제를 공공의 문제로 바라보고, 지자체 차원의 방안을 고안했기 때문이다. 이어 박 대표는 “지금 당장 섹스를 하지 않더라도 청소년기가 아니면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콘돔과 피임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기 때문에” 청소년기 피임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인정하고, 성에 관해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방식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관계, 피임, 자위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거나 콘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 오히려 청소년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박진아 대표는 “10대 초반 전후로 포르노그라피를 접하고, 인터넷 기사 옆에 포르노적 삽화의 광고가 넘치는 게 현실”이라며 “콘돔 하나 때문에 청소년이 없었던 성적 호기심을 품게 된다는 발상은 너무 비현실적이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대표는 “10대 또한 (성적) 주체로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성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사전에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성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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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콘돔’은 청소년 피임 접근성 확대와 콘돔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전국에 청소년 콘돔 자판기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서울대입구역의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에도 청소년 콘돔 자판기가 설치돼있다.



  실제로 2018년 유엔이 발표한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라인’에서는 청소년을 ‘성적으로 활발(sexually active)’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성관계를 언제, 누구와 맺을지에 대한 결정권과 안전한 피임 방법 및 책임성을 가르치도록 권고한다. 또 준비되지 않은 임신, 성병 같은 성관계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성적 즐거움(pleasure)에 대한 내용도 균형 있게 포함돼있다. 박현이 기획부장은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설명 없이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면, 여러 성적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충동적 욕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성적 주체성과 무분별한 행동에 대한 절제력이 향상될 수 있는 성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나아가 이들은 성교육에 성평등 교육내용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또래 간 성추행·성폭행이나 교내 혐오 발언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21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박진아 대표는 성추행·성폭행 문제가 구조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 포르노그라피와 각종 미디어에 반영된 왜곡된 성역할 인식을 바로잡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하센터의 토론수업에서도 성평등은 중요한 부분이다. 아이들은 ‘야동’에서 특정 성별이 대상화되어 비춰질 수 있음을, 또래 연애에서 서로를 동등한 주체로 바라보고, 배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성교육, 성인으로 확대돼 ‘삶에 대한 교육’ 돼야


  청소년 성교육의 문제는 성인 성교육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청소년 시기의 성교육이 미처 다루지 못한 상황을 성인이 돼서 맞닥뜨렸을 때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박진아 대표는 현행 성교육이 “청소년기까지만 어떻게든 섹스를 못하도록 하고, 그 이후에는 알아서 하도록 방치”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대학생 C씨는 경구피임약 복용 후 출혈이 있어 주로 배란일을 피해 성관계를 했는데, 피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불안할 때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또한 대학 입학 후 성추행을 당했을 당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고, 그것이 범죄임을 깨닫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성교육하는아빠’ 박제균 대표도 많은 성인들이 피임뿐 아니라 연인 간 성추행, 불만족스러운 성생활 등으로 상담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다수의 성인 성교육은 일회성 강연이기 때문에 성 관련 고민과 문제점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정기적인 교육의 장이 필요한 것이다.


  부모 성교육의 중요성 또한 점차 강조되고 있다. 박제균 대표는 성교육이 궁극적으로 가치관 및 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부모도 함께 배워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부모의 성적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배우기 때문에 아이들의 올바른 가치관 확립을 위해 부모 성교육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영·유아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부모 성교육이 어린이집, 유치원, 지방자치단체 센터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나아가 박제균 대표는 자녀가 성장하고 난 뒤에도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성범죄로부터 자녀를 보호해야 할 때 등 부모로서 처음 겪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부모들도 성교육을 통해 다양한 대처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성교육의 변화는 사회 전체를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성은 정체성을 규정할 때 중요한 요소이자, 언제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혜숙 아하센터 자원활동가는 “성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성교육은 곧 삶에 대한 교육”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피상적 정보전달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주체가 되는 성교육으로 변화할 때, 성은 사회 속에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녹아들 수 있을 것이다.